2014년 2월호

미군 철수 후가 더 문제 ‘탈레반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들

아프간을 떠나는 자와 남는 자 ①

  • 김영미 | 국제분쟁지역 전문 PD

    입력2014-01-22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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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기로 예정돼 있는 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뒤 주범으로 지목된 빈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시작된 전쟁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간다.

    아프간 정부 외교부에 근무하는 한 외교관은 최근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 호수가 보이고 방이 네 칸이나 되는 아파트를 구입했다. 몇 년 후 그는 이 곳으로 아내와 4명의 자녀를 데리고 이주할 계획이다. 그가 스위스로 옮기려는 것은 미군이 떠난 뒤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 세상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가족은 탈레반이 노리는 타깃이다. 그동안 나와 가족은 탈레반으로부터 숱한 경고를 받았다. 만약 미군이 떠나면 우리 가족은 몰살당할 것이다”라며 미국이 떠난 뒤 아프간 상황을 걱정했다.

    그는 탈레반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탈레반을 몰아내고 현재의 아프간 정부를 세우는 데 일조한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아는 까닭에, 그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근무하다 종종 가족과 함께 본국에 들어갈 때면 꼭 도살장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이 아프간에서 떠나고 나면 탈레반이 자신에게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더 이상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외국에 집을 마련해 가족의 안전을 지키고 싶다. 운 좋게도 나는 한 시민단체에 일자리까지 구해놓았다. 하루라도 빨리 아프간에서 탈출하고 싶다. 조국을 버리더라도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할 각오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돈으로 막는 게 낫다

    아프간 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일하는 하미윤(45·가명) 씨도 얼마 전 스웨덴으로 이민 간 삼촌이 거주하는 스톡홀름 외곽에 주택을 구입했다. 아직 출가 전인 딸들과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자신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비용 마련을 위해 가족 소유의 전 재산을 팔았다고 했다. 하 씨는 “미국과 연합군이 아프간에 있을 때 법원은 탈레반 편이 아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미국 치하에서 수많은 폭탄테러와 암살사고를 일으킨 탈레반 관련 사건에서는 중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판결 때문에 나는 탈레반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 씨에 따르면, 판사 등 아프간의 고위공무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축재를 해 유럽 곳곳에 주택을 구입하고 있다. 미군이 떠난 후 이주하기 위해서다. 하 씨는 “동료 판사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재판 한 건당 미화 1만 달러에서 5만 달러를 받고 무죄를 선고하는 식이다. 법원에 오는 변호사들의 가방에는 변호할 서류보다 현찰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법조계뿐 아니라 정부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고 하 씨는 주장한다.



    아프간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3일, 독일 베를린의 비영리 부패 감시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3년 부패인식지수(CPI)’에 의하면 세계에서 사회 부패가 가장 심한 나라는 북한과 소말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이었다. 특히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이후 부패가 심해졌다.

    아프간의 상업방송인 톨로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덴저벨’은 이런 아프간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프로의 단골 소재는 바로 관리의 부패에 관한 것이다. 부패한 관리가 뇌물을 착복하는 각종 사례를 보여주는 연기가 아프간 국민의 웃음을 자아낸다. 톨로 TV의 모세이니 대표는 “부패가 가장 인기 있고 시청률이 나오는 주제다. 시청자들은 부패한 관리를 보며 웃지만, 이것은 오히려 정부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부패를 조롱하는 국민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고 한탄했다.

    아프간 정부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부패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 CIA는 물론이고 영국의 정보기관에서도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받았으며, 그의 동생들도 각종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이권을 독차지하는 등 부패의 대명사로 불린다. 부패를 막는다는 취지로 설립된 내무부의 반부패 담당국 국장(이자툴라 와시피)은 20년 전 헤로인을 판매한 죄로 미국에서 옥살이를 한 전력의 소유자다. 반부패 국장이 이런 정도니 다른 공무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경찰은 물론 법원, 내무부까지 곳곳이 부패에 찌들어 있다.

    아프간 정부 관리들이 다른 주머니를 차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나 자원 개발과 관련된 투자에 개입해 착복하는 경우도 많다. 아프간 전쟁이 벌어진 지 13년째를 맞은 올해까지 천문학적인 금액의 아프간 원조금과 수많은 개발 계획에도 아프간이 계속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아프간은 2002년 이후 민간부문 원조로 총 600억 달러를 받은 바 있다. 세계은행은 “해외 원조가 이 나라의 국내총생산과 거의 맞먹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2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28개국 참가)에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를 유지하려면 연간 20억 달러가 필요하지만, 그 금액은 많을수록 좋다”고 말하며 미군과 연합군이 2014년 아프간에서 철수하더라도 원조금은 유지해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과 상당수 유럽국가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한 요구로 비쳤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정상회담 참가국들은 아프간 대통령이 요구한 금액의 2배가 넘는 연간 41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키로 결정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결정에 앞서 “미국은 전쟁 후 아프간 지원에도 나토 회원국의 참여를 요청할 계획이다. 미국은 아프간 치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4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고려하는데 이 중 절반을 나토 회원국이 부담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프간 내부에서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타카르 주 출신 마울비 와하브 상원의원은 정상회담 이후 열린 아프간 상원회의에서 “아프간군에 대한 자금 및 장비 공급에 나토 회원국들이 중요한 결정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프간을 의심하면서 서방 측 이익 증진에 힘쓰는 나라들만 더 지원하는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아프간에 주둔하는 한 미군 당국자는 “아프간 사람들이 기대했던 돈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과 나토 국가들은 아프간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프간에 대한 지원을 늘린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돈을 더 주고라도 무조건 아프간에서 나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군에 세금 물린 아프간

    2012년 9월부터 미국은 아프간에 파견된 병력과 장비 철수작업을 진행해왔다. 12년간 아프간에서 주둔한 미국의 장비나 군용차량 등 각종 군사 물품을 바다 건너 미국 본토로 옮기는 일이다보니 그리 간단하지 않다. 2001년 10월 아프간 전쟁 개시 이후 미군이 아프간에 배치한 군사장비 총액은 330억 달러가 넘는다. 철수 대상 차량만 5만 대에 달할 정도다. 각종 군용장비만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0만 개 분량이다. 컨테이너를 한 줄로 세우면 길이가 무려 600km에 달한다.

    그런데 이 ‘초대형 이사’는 처음부터 문제를 낳았다. 지난해 여름에는 아프간 세관부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군 장비에 대한 관세를 내지 않았다며 786억 원 규모의 벌금을 물린 일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철수 비용은 급증했다. 아프간 정부가 미군 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관세는 수송 컨테이너 한 대당 1000달러(약 110만 원) 정도다. 거기에 지금까지 미군이 관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측에 7000만 달러(약 786억 원)의 벌금을 추가로 부과했다.

    미국 정부로서는 아프간 정부가 갑자기 관세며 벌금을 들고 나온 것이 황당할 뿐이었다. 아프간 세관부가 미군의 수송 물자에 대해 원래 내기로 한 관세보다 지나치게 높은 금액을 요구했기 때문. 관세협상이 진행되는 사이 아프간 정부는 미국이 관세와 벌금을 지불할 때까지 미군 장비를 아프간 국경 너머로 반출하지 못하게 아예 금지했다. 군 장비를 싣고 아프간을 빠져나가려던 미군 트럭들이 국경에서 발각돼 방향을 돌리는 사태가 속출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 빌 고트니 해군 중장은 “미국과 아프간 사이의 논쟁은 아프간 관세 과정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됐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아프간 세관당국은 “2010년부터 아프간으로 수송된 군 장비에 대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모두 잘못돼 벌금을 부과했다. 벌금을 회수하기 위해 미군의 월경이라도 막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아프간에서 파키스탄으로 빠져나가는 육로가 막히자, 수세에 몰린 미 국방부는 결국 아프간 정부에 관세를 물지 않고 우회로를 통해 병력·장비를 빼내는 묘책을 세웠다. 바로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하늘로 장비를 실어 나르는 계획이었다. 아프간에서 출발해 러시아 남부 도시 울리야노프스크를 경유해 철수하는 나토군 물자를 운송한다는 계획이었다.

    러시아와 나토는 2012년 2월부터 아프간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환적기지를 울리야노프스크에 건설하는 협상을 벌여 이후 관련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 협정을 통해 2009년 이후 7만5000명의 병력을 아프간으로 들여보내거나 철수시켰으며 7만4600개의 컨테이너 화물을 수송했다. 아프간에서 울리야노프스크까지 항공기로 물자를 수송한 뒤 이곳에서 열차로 환적해 나토 국가로 실어 나른다는 것이었다. 1983년 건설된 울리야노프스크 ‘보스토치니’ 비행기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활주로가 있어 환적기지로서 최적의 조건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울리야노프스크 환적기지 임대에 따른 엄청난 수익과 아프간 대테러전에서 나토와의 협력 원칙 등을 고려해 기지 임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별안간 러-미 간 협정이 무산됐다. 러시아 측이 지나치게 높은 기지 사용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아프간의 비협조로 미국 정부는 철수 비용이 육·해로에 비해 5∼7배까지 치솟는 공수 비용을 감당해야 할 처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육로와 영공으로 철수하는 방법이 난관에 부딪히자 미 국방부는 비용을 절감하며 동시에 아프간 세관부와 부딪치지 않고 장비와 병력을 철수하기 위한 묘수 짜내기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종 선택한 방법은 아예 장비들을 없애는 것이었다. 이동시킬 장비를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폐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을 세운 후 무려 17만6000 t에 달하는 각종 장비가 고철이 됐다. 미군은 폐기 과정에서 나온 고철을 아프간 업체 쪽에 넘겨 4650만 달러가량의 수익까지 올렸다. 폐기 대상이 된 군용장비는 장갑차·탱크 등 무기류부터 트럭이나 소형 발전기, 운동기구와 사무용 가구, 에어컨 등 가전제품까지 다양했다. 미군 당국은 “이들 장비 대부분은 사용연한이 지났거나, 운송비용이 아까울 정도로 노후한 것들”이라고 밝혔다.

    미군이 장비를 폐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철군 이후 이들 장비를 탈레반이 차지할 것을 우려해서다. 미군 당국자는 “러닝머신이나 가전제품에도 타이머와 구리선이 있다. 이것을 이용하면 (탈레반이) 사제폭탄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연일 미군부대 안에서는 포클레인과 해머로 장비 부수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프간 정부는 노발대발했다. 파예드 와헤디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군·경이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는 군용장비 폐기를 중단하라고 미군 쪽에 여러 차례 요구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남도 가질 수 없게 한 미군에 대한 불만이었다.

    아프간과 미국의 갈등

    장비 폐기 문제는 양국 간 갈등의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과 아프간은 지난해 11월 ‘안보·국방 협력 협정(Bilateral Security Agreement·BSA)’에 잠정 합의했다. 2014년 말로 예정된 미군 철군 시한 이후에도 미군의 장기 주둔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합의안은 미국-아프간 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을 겸한다.

    그런데 이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미국 측에선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주장(제로 옵션)까지 나왔고 이에 맞서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난 12년간 미군이 아프간에서 군사작전 도중 살해한 아프간 민간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 회담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감정싸움 끝에 재개된 회담에서는 2014년 이후 계속 주둔하게 될 미군에 의한 범죄 처리 문제, 즉 미군에게 면책권을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양측이 대립했다. 앞서 이라크에서는 이라크 정부가 미군의 면책권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미국은 이라크에서 소위 ‘제로 옵션’으로 철수한 전례가 있다.

    양국 정부는 철군 이후에도 아프간에 주둔할 미군의 법적 지위와 군사작전 범위 등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여왔다. 결국 힘들게 타결된 25쪽의 협상안은 “두 나라 정부는 2014년 말 이후 국내 치안은 아프간 군과 경찰이 전담하고, 미군은 테러 등 외부 위협이 있을 때 아프간 군경을 지원”하는 식으로 합의됐다. 아프간 정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미군이 아프간 내부 치안 위협에 대해 긴급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규정도 들어 있다. 가장 치열한 쟁점이었던 아프간 주둔 미군에 대한 사법권 문제는 미국의 의견(사실상의 면책)이 대부분 관철됐다.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을 묻기 위해 합의제로 운영되는, 아프간 의회 격인 ‘로야 지르가’(부족 원로회의)를 지난해 11월 21일 열었다. 드디어 같은 달 24일, 이 잠정 합의안은 로야 지르가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이제 남은 건 카르자이 대통령의 협정문 사인 절차뿐이다. 이 절차가 끝나면 12년간의 아프간 전쟁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카르자이 대통령이 현재 협정문에 사인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수도 카불에서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담당 미국 특사인 제임스 도빈스를 만나 올해 4월 5일 아프간 대선 이후로 안보협정 서명을 연기한다는 방침을 미국 측에 공식적으로 전했다. 그는 “미군의 아프간 민가 공격 중단,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협상에 대한 미국 측 지원 문제 등을 협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 등을 서명의 새로운 조건으로 내걸었다.

    로야 지르가의 대부족장들까지 나서 미국 요구대로 연내 협정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으나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도빈스 특사는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나 협정에 조속히 서명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으나, 기존 방침만 전해 들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과 나토 관리들은 이미 지난해 11월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협정의 서명을 촉구하며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으면 군사·경제적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엄포도 놓은 바 있다. 그러나 카르자이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지난 10년간 친미정책으로 아프간을 통치한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협정 서명을 차기 대통령에게 미루려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아프간 헌법은 두 번 이상의 대통령 연임을 금지하기 때문에 카르자이는 더 이상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협정의 최종 절차인 아프간 대통령의 사인이 미뤄지자 미국은 난감한 처지다. 지난해 11월 25일,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아프간 수도 카불로 날아가 카르자이 대통령과 만나 협정에 조속히 서명하라고 종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협정 서명을 두고 승강이

    이 와중에 미국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아프간 남부 헬만드 주에서 미군의 무인기가 민가에 폭격을 가해 두 살배기 남자 아이가 사망하고 여성 2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아프간과 협정안을 두고 가뜩이나 날이 서 있는 와중에 벌어진 사고로 미국은 궁지에 몰리게 됐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즉각 성명을 내고 “이번 공격은 미국이 우리 영토에서 아프간 국민의 안전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만약 미군이 이런 식의 공격을 계속 한다면 우리는 대미 안보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 조지프 던포드가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다. 미국-아프간 안보협정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해를 넘긴 현재까지도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 협의안에 사인을 거부하고 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자 미군 사령관 조지프 던포드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카르자이 대통령이 사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프간 경제가 위험해졌으며 아프간 군인들의 자멸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왜 서명을 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알고 있으나, 그것이 미국에 어떤 의미인지 카르자이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던포드 사령관은 또 “2014년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많이 걱정한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나라를 탈출하거나 부동산 가격이나 아프간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아프간 현실을 지적했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미군 철수가 막바지에 이르자 아프간 전역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미군부대 통역으로 일하는 바시르(26·가명)의 경우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바시르처럼 지난 수년간 미군을 위해 일한 아프간 사람들은 미국으로 갈 수 있는 비자를 받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미군이 떠난 뒤 탈레반에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미국으로 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는다. 바시르의 얘기다.

    “미군 철수 이후 일자리를 잃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지난 7년간 미군부대에서 영어와 아프간 현지어(파슈툰어) 통역을 맡아 근무하면서 많은 월급을 받았다. 그 돈으로 가족을 위해 집도 사고 결혼해 두 명의 자녀까지 두었다. 그러나 실직보다 더 큰 문제는 탈레반의 보복이다. 난 미군이 순찰을 가거나 대규모 군사작전을 할 때마다 동행해 현지인들의 통역을 맡았다. 나의 일은 아주 위험한 것이었고 실제로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탈레반은 나의 존재를 안다. 나와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프간을 떠나야 한다.”

    미국은 현재 미군과 함께 일했던 아프간 통역들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신청하면 미국행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 조건이 문제다. ‘탈레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 증거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자 신청서에 아무리 “탈레반이 내가 미군과 일하는 모습을 봤다”고 써도 미국 관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미군 감옥에서 통역으로 일해온 사람도 비자 발급이 거부될 정도다. 최근 비자가 거부된 한 익명의 미군 통역은 “우리 마을에 탈레반 전사가 수없이 많다. 그들은 내가 미군과 일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신에게 맹세하건대 미국에 못 간다면, 내 인생은 끝이다. 언젠가 탈레반이 나를 체포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미국대사관은 “비자 발급 초기 단계에서 신청자는 미군과 일한 경험 때문에 겪었거나 겪는 위협을 증명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만 반복한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시작할 때보다 마무리를 해야 하는 지금 더 많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을 괴롭힌 전쟁으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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