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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사람이 ‘개’ 되는 군대 ‘개’가 사람 되는 군대

  • 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사람이 ‘개’ 되는 군대 ‘개’가 사람 되는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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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똑같은 사건이 군대에서 일어나면 관련자들과 일반 국민의 반응은 더 과격하고 극단적이 된다. 유족, 특히 그 부모의 비통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을 종종 언론을 통해 접한다. 이 현상을 자식에 대한 유별난 사랑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일반 사회에서 비슷한 사고나 자살이 발생했을 때 자녀를 잃은 부모나 사회의 반응과는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그 사건 자체에 특수성이 있다기보다는 군대이기에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이 독특한 것이다. 이런 독특성은 하나가 아닌 여러 복잡한 요인과 연결되고, 그 요인들은 한국 사람의 심리적 특성과 연결된다.

우선 한국에서는 군대에 대한 인식에서 ‘의무’가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징병제를 채택한 한국에서 국민의 의무 중 하나가 국방의 의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나 교육 없이 그 의무의 공평성에만 더 집중해왔다. 그러다보니 그 필요성과 가치보다 무조건적인 의무만을 강조했고, 대부분의 젊은이와 심지어 그 부모들은 군복무를 ‘시간 때우기’ 또는 피할 수 없는 무가치한 시간 낭비로만 인식한다.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서 사소한 의미라도 찾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사건에 적응하는 데 크게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런 가치도 없고 의미가 없는 죽음은, 특히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고통이 된다.

여기에 가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인에게 국가로 인해 받은 피해는 억울함뿐 아니라 배신감마저 갖게 한다 ‘군사부 일체’라는 유교적 관념에서 군(君)은 현대사회에서 임금이 아닌 정부를 의미한다. 그래서 정부는 부모와 같이 국민에게 무한책임을 지며, 국민은 정부를 믿고 따르고 싶어 한다. 서구 사람들이 한정된 약속에 근거해 정부를 지지하고 국가 시스템을 신뢰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정부와 국민 간 관계가 마치 가족 간의 무한책임, 무한신뢰여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자녀의 사고와 실패에 대해 아무 잘못도 없는 부모가 자신을 책망하듯이, 책임의 유무나 정도와 상관없이 정부가 군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군대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은 억울함과 배신감에 더 분노한다.



실제로 군대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한국 젊은이의 90% 이상이 복무하는 군대에서는 일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것은 아무 의미와 가치가 없는 줄 알면서도 큰아버지를 믿고 자식을 맡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큰집에 간 아들은 별일 없을 거라고 모두 믿는다. 그래서 한국민에게 군대는 특별하다.

군대는 원래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시를 대비한 조직이다. 그런 군대가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비만 하다가 끝난다. 대부분의 군인도 자신이 복무하는 기간에는 전쟁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군대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효과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군대는 항상 자기모순 속에 산다. 

군대의 자기모순

사람이 ‘개’ 되는 군대 ‘개’가 사람 되는 군대

강원 고성군 22사단 일반전방소초(GOP)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 병장(가운데 총 든 사람)이 7월 8일 현장검증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배경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수륙양용배를 타고 해변전투에 투입되는 미국 군인들의 모습은 매우 비장하다. 해변으로 다가오는 수륙양용배를 향해 육지의 독일 군인들은 계속 기관총을 쏘고 있었고, 배 안의 미국 군인들은 그 총알이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철문에 와서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배의 바닥이 해안 모래에 닿자마자, 기관총 총알이 쏟아져 부딪히는 바로 그 앞문을 열고 돌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 순간 자신이 죽을 것이 빤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거짓말같이 군인들은 배 앞의 문을 활짝 열고 돌격했다. 실제로 문이 열리자마자 제일 앞에 있던 군인들은 한 발짝도 내디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만약 이 순간 각 병사 개개인에게 그 돌격 명령의 합리성에 대해 판단할 능력과 기회가 주어진다고 가정해보자. 행여 병사들이 ‘열까 말까, 조금만 기다렸다 열까, 과연 이 명령이 합리적인 것인가, 이게 최선인가?’라고 고민한다면, 과연 전투가 가능하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군대에도 합리적인 명령만을 따르고 부당한 명령에는 따르지 않는다는 교과서적인 지침은 있지만, 현실에서 이는 그냥 허울 좋은 지침일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전시에는 상사의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며 따르지 않으면 처벌도 가능하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다.

하지만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는 어떨까. 훈련할 때는 각 병사가 합리성을 가지고 판단하고, 전시에는 그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상관의 명령에 이유를 묻지 말고 무조건 따르라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시에는 훈련 때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위험하고 (각 병사가 보기에는 빤히 죽을 것 같은) 비합리적인 명령이 난무할 텐데, 평상시에 경미한 명령을 따르지 않던 병사들이 전시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군대는 병사들이 ‘돌격이나 후퇴’라는 명령을 받으면 상황판단을 하기보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게끔 하기 위해 평상시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반복적인 훈련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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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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