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전통 명당’ 성북·강남 지고 ‘新 명당’ 부암·구로 뜬다

서울 최고 부귀(富貴) 명당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입력2014-09-18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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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은 풍수적으로 재물 명당의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 권력 기운, 자손 기운, 학문 기운 등이 재물 기운과 섞여 상승 혹은 하강 효과를 보이는 곳도 있고, 새롭게 명당 기운이 부상하는 곳도 있다.
    • 서울의 대표적 풍수 명당을 권역별로 살펴본다.
    땅의 기운은 복잡 미묘하다. 순일한 기운이 강하게 뭉친 곳이 있는가 하면, 권력 기운이나 재물 기운 등 여러 기운이 복잡하게 섞인 곳도 있다. 각기 장·단점이 있다. 특정한 기운만이 강하게 서린 곳은 그 기운을 오롯이 향유할 수 있는 반면, 당사자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되레 기운에 치일 수 있다. 재물 기운이 너무 강력하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건강을 해치게 되고, 권력 기운이 지나치면 오히려 자신의 명예를 망가뜨리는 경우다.

    여러 기운이 섞인 곳은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 순도에 선 순일한 기운을 능가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당사자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우열을 논하긴 어렵다.

    이보다 더 심각히 고려해볼 점은 살기(殺氣)의 존재다. 좋은 기운, 즉 생기(生氣)가 있는 곳엔 반드시 살기가 함께 있음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신동아’ 9월호에서 서울은 대표적인 재물 명당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살기 역시 존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왜 그런가. 동양학의 사유체계는 음양의 조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음과 양이라는 상대 짝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출발한다. 생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 파트너인 살기가 인근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명당 기운을 향유한다는 건 생기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살기를 제어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조상의 유해를 모시려고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좌청룡, 우백호를 적절히 따져 아주 모양새 좋은 명당을 찾아냈다고 치자.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격국(格局)을 갖춘 명당이라고 해도 생기가 뭉친 곳엔 반드시 그 상대인 살기도 주변에 존재함을 알아차려야 한다.



    만약 이를 제어하지 않고 조상의 유해를 모실 경우 명당 기운을 향유하기는커녕 해로움을 입기도 쉽다. 부모나 조상의 묘를 쌍분으로 모시려 했을 때 이런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예컨대, 할아버지 묘는 제대로 생기 자리에 모셨는데, 바로 옆의 할머니 묘는 의도치 않게 살기 자리로 모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이치에 의해 오히려 자손이 피해를 보는 경우다. 풍수에서 생기를 보호하고 살기를 누그러뜨리는 ‘비보(裨補)’라는 인위적 조절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음택풍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양택풍수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필자가 지금부터 소개하는 서울의 특정 명당 자리에도 좋은 의미의 생기와 나쁜 의미의 살기가 공존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같은 명당 지역에 사는데도 어떤 집은 잘되고, 어떤 집은 안 풀리는 것에 대한 풍수적 의혹과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전통 명당’ 성북·강남 지고 ‘新 명당’ 부암·구로 뜬다

    서울의 재물 명당지. 원으로 표시한 지역이 재물 기운이 왕성한 곳이다.

    4대문 안은 재물+권력 명당

    오늘날의 서울과 600여 년 전 조선의 수도 한양은 그 규모와 범위가 매우 달랐다. 조선의 도읍지는 한양도성 내부를 의미했다. 풍수적으로 보면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342m), 동쪽의 낙타산(낙산, 125m), 남쪽의 목멱산(남산, 265m), 서쪽의 인왕산(338m)이라는 내사산(內四山)이 경복궁을 중심으로 반경 약 2km의 대지(약 500만 평)를 감싼 지역을 가리킨다. 조선 태조 때 조성된 한양도성은 이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것이다.

    내사산을 따라 18.627km 길이로 축성된 성벽이 한양 방어의 최후 보루라고 한다면, 제2방어선에 해당하는 곳도 존재한다. 이를 외사산(外四山)이라고 하는데, 북쪽의 북한산(836m), 동쪽의 용마산(348m), 남쪽의 관악산(629m), 서쪽의 덕양산(행주, 125m)을 꼽는다. 대체로 오늘의 서울시는 이들 외사산이 둘러싼 627㎢의 방대한 지역을 가리킨다.

    현재의 서울을 대표하는 재물 명당 역시 내사산 및 외사산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먼저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한강 이북의 터, 곧 한양 지역은 서울 최고의 재물 명당 기운이 감돈다. 경복궁을 기준점으로 잡을 때 서북 방향에서 뻗어 내려온 재물 기운은 종로구 전체를 감싸고, 그 주변으로 은평구·서대문구·용산구·중구·동대문구·성북구·강북구 일부를 포함한다.

    그리고 내사산 외곽으로는 외사산 일대를 따라 군데군데 재물 기운이 포진한 형국이다. 한강 북쪽 지역의 경우 동쪽 용마산 자락의 용마자연공원을 중심으로 망우동, 신내동 일대에 일정 규모의 재물 기운이 운집돼 있다. 한강 이남 지역에선 송파구 석촌호수 남쪽에서부터 문정동과 거여동에 이르는 일대, 압구정동·청담동·삼성동·논현동·반포동·서초동 등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 디지털단지가 조성된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 강서구청을 중심으로 한 강서구 일대 등에 비교적 큰 규모의 재물 기운이 형성돼 있다. 즉 서울은 한강을 가운데에 두고 북쪽과 남쪽 모두에 강한 재물 기운이 곳곳에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앞쪽 지도 참조).

    물론 이 중 한양도성을 중심으로 한 한강 이북의 재물 기운이야말로 향후 100년간 대한민국 경제를 꾸려나갈 수 있는 가장 막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의 재물 명당은 한양도성 내부의 권력 기운까지 품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한양도성은 4대문과 4소문을 갖추고 있었다. 4대문은 동쪽 흥인지문(동대문), 서쪽 돈의문(서대문), 남쪽 숭례문(남대문), 북쪽 숙청문(숙정문, 북대문)을 가리키고 4소문은 북동쪽 홍화문(동소문), 남동쪽 광희문(수구문), 북서쪽 창의문, 남서쪽 소덕문(서소문)을 가리킨다. 이 문들을 좌표로 삼아 옛 한양도성 길을 다니노라면 서울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권력 기운의 경계선과도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재물과 권력의 기운을 목·화·토·금·수의 오행(五行)론으로 치환하면 재물은 주로 토(土)에 가까운 기운이고, 권력은 금(金)에 가까운 기운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무튼 우리 조상이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면서 그 기운을 정확히 헤아리고 있었음에 감탄하게 된다.

    한편으로 풍수학인들 사이엔 권력 핵심지인 조선의 경복궁 터와 현재 대통령이 거주하는 청와대 터의 명당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경복궁 터가 주산(主山)인 북악산의 중심 기맥(氣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청와대 터 또한 너무 외진 곳에 있다는 것 등이 명당 불가론의 근거로 활용된다.

    그런데 청와대 터와 조선의 궁궐터는 땅의 지맥(地脈)을 중심으로 살펴봐서는 그 핵심을 짚어내기가 어렵다. 땅의 지세와 지기를 살피는 중국 풍수론으로 볼 때 분명 이 터들은 지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지기의 생기가 그리 굳세지도 못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청와대와 궁궐터를 포함한 한양도성 전체는 땅의 기운만으로 볼 때는 살기에 강하게 노출된 형국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이를 하늘에서 쏟아지는 에너지인 천기(天氣)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천기에서 쏟아지는 생기가 지기에서 분출되는 살기를 적절히 제어하면서 지형 특성에 따라 권력과 명예, 건강 기운 등 명당을 형성한 것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하늘의 생기보다 땅의 살기가 더 강해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는 곳도 존재하긴 하지만….

    서울에서 여러 좋은 기운이 섞여 나타나는 지역으로 두 군데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조선의 궁궐터인 비원과 창덕궁을 중심으로 한 가회동, 성북동, 명륜동 일대다. 이 지역은 특이하게도 재물 기운 및 권력 기운과 더불어 자손에게 이로운 기운까지 3박자를 고루 갖췄다. 1세대에 의해 축적된 권력이나 재물 기운이 당대에 끝나지 않고 그 후손인 2, 3세대에게도 전달돼 자손까지 번성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앞쪽 지도 참조).

    이 지역은 그 기운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조선시대부터 주목받던 곳이었다. 북악산 자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나고 한양의 고질적인 배수 처리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비껴나 있었을 뿐 아니라 겨울의 북풍한설을 피할 수 있는 장점 등을 고루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권력깨나 행사하는 양반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전통적인 귀족촌을 형성했다. 가회동 일대는 ‘북촌’이란 별칭으로 불렸을 정도다.

    이 지역은 현재도 부유층이 대거 모여 산다. 한국의 전통 부촌 1번지로 꼽히는 성북구 성북동 단독주택가는 우리나라 재벌의 집합처라 할 만하다. 원래 이곳은 박정희 정권 시절 정·관계 인사들이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1970년대부터 정권 주도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대기업 총수 등 한국의 부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김상하 삼양사 회장 등을 비롯해 재벌 1세대 및 중견 기업인 10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특히 현대그룹의 재벌 가족은 이곳에서 ‘성북동 일가’를 이뤘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과 그 아들 가족,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이곳에 둥지를 틀어 그 명당 기운을 누린다. 최근에도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한남동 단독주택에서 벗어나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100억 원 넘게 들여 단독주택을 신축했다.

    ‘전통 명당’ 성북·강남 지고 ‘新 명당’ 부암·구로 뜬다

    한양도성 내 전통 명당 지역.



    서울 최고의 전통 명당 동네

    성북동이 부자 동네로 널리 알려졌다면, 명륜동과 가회동 일대는 정치인들의 권력 의지와 맞물려 회자되는 곳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8년 여의도 아파트에서 명륜동 빌라로 이사한 후 이 집터에서 줄곧 살면서 2002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반면, 당시 경쟁 상대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가회동 빌라에서 살다가 집으로 인한 구설에 시달려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고 결국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6년 대권 도전에 뜻을 둔 후 원래 살던 강남 논현동 자택에서 가회동 한옥으로 이사한 후 공교롭게도 그의 지지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원래의 논현동 집으로 이주했는데, 가회동 집은 대권 명당 프리미엄이 붙어 시세가 상당히 높게 형성됐다고 전한다. 이 전 대통령이 가회동에서 집을 구하던 시기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던 손학규 씨 역시 가회동에 집을 구하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부귀 명당의 지위를 오래 누려온 만큼이나 현재는 쇠락의 기운 또한 없지 않다. 기운은 융성한 때가 있으면 쉬어가는 때도 있는 법이다.

    권력, 재물, 자손 기운의 3박자

    재물과 권력 기운, 자손 기운이 강하게 형성된 또 다른 지역은 종로구 세검정을 중심으로 한 구기동, 평창동, 부암동 일대다. 성북동과 명륜동, 가회동이 지금까지 전성기를 누려왔다면 구기동, 평창동, 부암동 일대는 새로 기운이 부상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단, 이들 지역은 새로 기운이 ‘뜨는’ 지역인 만큼 살기 역시 만만치 않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살기를 제어하지 않고 섣불리 안착하려 했다간 되레 해를 입을 수 있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정치인들이 풍수지리설을 따라 무작정 평창동 일대에 정착했다가 낭패를 당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당시 권력 실세들이 평창동에 대거 모여들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 역시 구기동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들과 땅의 인연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던 듯하다. 최형우 전 의원은 평창동에 이주한 후 병으로 쓰러졌고 서석재 전 의원, 이원종 전 청와대 수석, 김현철 씨 등도 정치적 고초를 심하게 겪었다. 오래전부터 평창동 주민이던 권노갑 전 의원도 옥고를 치른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했고, 같은 지역 주민인 정몽준 전 의원은 1995년 이곳으로 이사한 후 대권의 꿈을 키웠으나 번번이 좌절됐으며 최근 서울시장선거에서도 참패하는 시련을 겪었다. 오죽했으면 고(故) 김윤환 전 의원이 “평창동은 기가 세서 정치인에게 좋지 않다”라고까지 말했을까 싶다.

    풍수적으로 최고 명당으로 꼽힐 만한 지역인데 왜 그럴까. 이들 지역은 조선시대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조선 후기엔 신식군대인 별기군의 훈련소로 이용될 만큼 산세 역시 성북동이나 가회동에 비해 험한 곳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권력과 재물 등 생기를 온전히 누리는 데 방해가 되는 거친 기운이 적잖이 남아 있다. 이 기운에 잘못 노출될 경우 폐해를 입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친 기운이 순화되면 이들 지역은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 명당 동네로 부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구기동, 평창동, 부암동 일대에 문화예술인이 집중적으로 모여드는 현상을 눈여겨본다. 미술인을 비롯해 작가, 음악인, 연예인까지 합하면 400여 명의 문화예술인이 이들 지역에 산다. 지금도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 관련 시설이 속속 들어선다. 풍수적으로 해석하면, 문화예술인들의 예술 기운에 의해 이 지역은 그 거친 기운이 순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명실상부한 명당 터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일대를 답사하면서 그 기운이 순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지역에 비해 부자들이 모여 사는 또 다른 명소인 장충동과 한남동, 이태원동 일대는 순수하게 재물 기운만이 강하게 형성된 곳이다. 한 기운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과 여러 기운이 혼잡된 것을 두고 좋고 나쁨을 가리는 건 의미가 없다. 당사자에게 정작 필요한 기운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최고 명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물 기운만이 강하게 형성된 곳에 사는 사람은 반드시 건강에 신경 써야만 한다. 재물 기운은 건강 기운을 갉아먹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이 그 뿌리를 둔 장충동 일대엔 일종의 삼성타운이 형성돼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범(汎)삼성가의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이 이곳에 산다. 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자택이 있는 한남동과 이태원 지역엔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 재벌가가 둥지를 틀고 있다.

    풍수적 입장에서 보면 재벌가들이 재물 기운이 왕성한 곳에서 산다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재물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선 건강 기운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건강 기운은 서울 강북의 북한산국립공원 일대, 강남의 강동구 일대, 구로구 궁동과 항동 일대가 왕성하다. 멀리 갈 것 없이 이 일대에서 건강을 챙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통 명당’ 성북·강남 지고 ‘新 명당’ 부암·구로 뜬다

    한강 이남의 명당 기운 분포도.



    삼성동과 구로동의 부귀 명당

    한양도성의 재물 명당만큼 규모가 크진 않지만 상당한 기세를 갖춘 재물 명당 기운이 한강 이남에도 군데군데 존재함을 서두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중 강남구 지역의 재물 명당 가운데에서 그 한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서린 권력 기운이 필자의 흥미를 끈다. 봉은사를 중심으로 청담동, 삼성동 일대에 있는 권력 기운이다. 그리고 바로 이 권력 기운의 직접적 수혜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옆쪽 지도 참조).

    1990년 박 대통령은 현재의 삼성동 소재 주택을 매입해 이사했다. 묘하게도 이 시기는 그가 내심으로 정치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 무렵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의 운세 흐름을 볼 때 1988년 이후부터 대통령직에 대한 의지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 첫 행보가 삼성동 이주로 나타났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그가 삼성동 주택에 대한 풍수적 자문을 구해 이주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권력 기운이 강한 삼성동 주택으로 이주한 것이 알게 모르게 권력 의지를 키우는 데 부채질 작용을 해왔음은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삼성동에 둥지를 튼 이후 재계 유력 인사들도 집중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은 강북의 저택 외에 2012년 이곳에 단독주택을 신축했고,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허기호 한일시멘트 부회장, 박세준 한국암웨이 회장 등도 이곳에 터를 마련했다. 삼성동은 권력 기운은 차치하더라도 한강과 탄천의 물길이 감싸고돌아 재물 기운이 왕성할 것이라고 믿는 일반 풍수론적 해석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동의 권력 기운은 그 국세가 별로 크지 않아 박 대통령을 배출한 것으로 그 구실을 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강 이남에서 재물 기운과 함께 상당한 규모의 권력 기운을 갖춘 곳은 또 있다. 구로디지털단지를 중심으로 한 구로구와 영등포구, 금천구 일부 지역이다. 이곳에선 아직 권력 기운의 혜택을 받은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미래에 부상할 권력 기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일대에 권력 기운과 재물 기운이 거의 비슷한 규모로 형성됐다는 점이다. 과거 ‘구로공단’으로 대표되던 구로동 일대는 1960~70년대 대한민국 산업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한 곳이다. 이후 이곳의 기운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휴지기에 있다가 다시 한 번 재물 기운이 날개를 펼치는 형세다. 현재 한국의 미래성장 동력으로 일컬어지는 정보기술(IT)산업도 가산디지털단지, 구로디지털단지에 집중적으로 형성돼 있다. 21세기 미래 한국의 경제력은 이곳의 기운을 받아 더 활발히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

    한양도성 내를 제외하고 후손이 빛을 볼 수 있는 자손 기운은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 강남구 수서동과 세곡동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일대 역시 자손 기운이 있긴 하지만 워낙 센 재물 기운에 눌려 약간 ‘치이는’ 형국이다. 이들 지역 중 특히 목동과 상계동은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로도 유명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풍수의 기운과 현실 환경의 만남은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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