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하얼빈 거사’ 105주년

  •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사업팀 부장

    입력2014-09-19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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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백두산 천지의 절경(왼쪽). 뤼순(旅順)감옥에는 안 의사의 수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진 자료가 전시됐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하얼빈 거사’ 105주년을 맞아 안 의사와 고구려의 기상이 서린 만주와 백두산 일대를 돌아보는 의미 깊은 역사 여행상품이 마련됐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안중근의사숭모회가 후원하며 스페셜CTM이 주관하는 ‘하얼빈역 거사 105주년 기념 역사 탐방’(10월 25~30일)이 그것이다. 안 의사가 희구한 동양평화의 정신을 되새기고 20세기 초 동북아 정세의 격전장을 돌아볼 뿐 아니라 백두산에서 넓은 평원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여행엔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 김형목 박사가 동행해 알찬 역사 해석을 덧붙인다.

    여행 일정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먼저 출발일인 2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적기를 이용해 의거 현장인 하얼빈에 도착한다. 첫 목적지부터 방문자들의 마음은 숙연해질 것이다. 이곳은 생화학 실험으로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 ‘731부대’ 유적지다.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1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과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 일부 미국인과 유럽인이 이 부대의 실험 대상이었다.

    이어지는 방문지는 안 의사의 마지막 유묵을 새긴 청초당(靑草堂) 비석. 봄에 풀이 푸르게 돋아나듯 우리나라의 자유독립도 어서 이뤄지기를 바란 안 의사의 염원이 담겼다. 이 비석은 자오린 공원 내에 있는데, 중국이 숭모하는 항일 영웅이자 이 공원의 이름이 된 리자오린(李兆麟) 장군의 자취도 살펴볼 예정이다. 근방에는 근대기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이국적인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된 성소피아성당도 있다.

    하얼빈역 내 안 의사 기념관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된 성소피아성당(위). 하얼빈역사 내 새로 건립한 안중근 기념관에 그의 유필이 전시됐다(아래).

    이튿날인 26일은 안 의사의 하얼빈역 거사 기념일로, 열차역 내 안 의사의 새 기념관을 찾아갈 예정이다. 이 기념관은 하얼빈시와 철도국이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해 올해 1월 19일 개관했다. 개관 후 처음 맞는 거사 기념일인 만큼, 방문객은 거사 시각(오전 9시 30분)에 맞춰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 있게 된다. 기념관 안에는 안 의사의 사진과 유필, 손도장, 흉상과 단지(斷指)한 손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품 ‘거룩한 손’, 또한 안 의사가 의거를 결행하기까지 하얼빈에서 보낸 11일간의 행적, 체포된 뒤 뤼순(旅順)감옥에서의 수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사료가 한국어와 중국어로 병기된 설명과 함께 전시됐다. 기념관 내부에서도 통유리창 너머로 ‘안중근 격살 이등박문 사건발생지’라는 문구가 새겨진 의거 현장이 마주 보인다.

    감동에 찬 마음을 안고 창춘(長春)으로 이동한다. 목적지는 위만주국(僞滿洲國) 황궁 박물관. 1932년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에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의 황제 푸이(溥儀)가 일본 패망까지 13년간 머문 궁전이다. 건물 규모는 크지 않으나 중국 고유의 건축양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1962년 지린(吉林)성이 이곳에 박물관을 세웠다. 전시실에는 만주국의 유물과 문서 등이 전시돼 있으며, 일부에는 고구려와 요(거란)를 비롯해 오늘날의 중국 동북지방을 지배했던 여러 국가의 유물도 전시돼 있다.

    광개토대왕의 위엄을 좇아서

    사흘째인 27일,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을 찾는 날이다. 백두산 서파산문을 통과해 40분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장엄한 풍경을 감상한 뒤 1442개 계단길을 이용해 50여 분간 백두산을 등정한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 지점에서 가슴을 후련하면서도 먹먹하게 만드는 천지(天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본 뒤 용암 분출로 형성된 V자 형태의 금강대협곡 등을 둘러본다.

    나흘째인 28일은 만주 들판을 누비며 대륙과 맞섰던 고구려인의 기상을 함께 호흡한다. 지안(集安)으로 이동해 광개토대왕의 웅대한 업적을 새긴 광개토대왕비를 먼저 만난다. 높이 6.39m, 무게 37t에 이르는 비에는 고구려의 건국신화에서부터 왕가의 계보, 광개토대왕 때의 정복활동과 영토관리 등이 1775자에 걸쳐 연대순으로 기록됐다. 일제의 역사왜곡과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 실체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어 광개토대왕비로부터 300m 떨어진 광개토대왕릉으로 걸음을 옮긴다. 고구려 전성기의 대형 돌무지무덤으로, 당시 고구려 왕권의 크기와 지배력을 짐작게 해주는 유적이다. 이어지는 방문지는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의 능으로 여겨지는 장군총(將軍塚)이다. 서기 3년부터 427년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터 퉁거우(通溝) 평야에는 석릉과 흙무덤 약 1만 기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석릉은 이것뿐이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펼친 두 왕의 무덤을 돌아본 뒤 국내성 성벽으로 향한다. 고구려는 427년 이곳에서 두 번째 수도인 평양으로 천도했다. 성벽을 돌아본 뒤 단둥(丹東)으로 이동한다.

    닷새째인 29일. 안중근 의사가 남긴 마지막 자취를 돌아보는 날이다. 먼저 향할 곳은 안 의사가 갇혔던 뤼순감옥 터. 서울 서대문형무소와 흡사한 이 감옥에는 중국의 애국지사뿐 아니라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해 투쟁한 한국인과 일본인도 여럿 갇혀 고난을 당했다. 안 의사뿐 아니라 신채호 의사도 이곳에 투옥된 뒤 순국했다. 중국이 국가 중요문물로 지정해 보존하는 이곳에는 감방 253개가 있으며, 죄수 작업실과 신체검사실, 고문실 등도 있다.

    뤼순 감옥에서의 당당한 최후

    이어 안 의사가 재판을 받은 뤼순 일본관동법원 전시관을 찾아간다. 안 의사는 의거 3개월여가 흐른 1910년 2월 14일 이곳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의사는 재판정에서 “이토는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한국 용병 참모중장의 신분으로 총살한 것”이라며 의거의 정당성을 당당하게 밝혔다.

    엿새째인 30일, 하얼빈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국적기에 탑승한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 정신과 만주 평원을 누빈 조상의 기상을 함께 느낀 여정은 이로써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일행의 가슴 깊이 새겨진 뜨거운 열정은 언제까지나 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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