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총력특집] 하노이의 파국…시계제로 한반도

하노이 회담 결렬 ‘3대 의문’ 풀이

남북경협 “‘文지지율 도우미’ 김정은에 줘야 할 대가” 김정은의 빈손 “싱가포르 회담 패배 트럼프의 응징” 회담결렬 득실 “北정권엔 최악, 한국 국민엔 최선”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9-03-18 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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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8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2월 28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역사적인 하노이 회담 결렬’은 세 가지 의문을 남긴다. △문재인은 회담 결렬 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왜 추진하는가, △트럼프는 회담을 깰 의도를 갖고 김정은을 하노이로 유인했나, 그랬다면 김정은은 왜 당했나, △하노이 회담 결렬은 한국 국민에게 잘된 일인가 아니면 잘못된 일인가 하는 점이다.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다음 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한 남북경협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대북제재 유지를 천명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1도’ 안 한 만큼 비핵화를 견인할 유일무이한 수단인 대북 경제제재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국이 북한에 대량의 현금을 제공하는 남북경협 의지를 밝히자 미국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는 “남북관계 개선은 북핵 문제 해결과 분리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나아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에 대해 “노(NO)”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이 동맹에서 이탈한다”는 워싱턴발 보도가 잇따랐다.

    김정은, 지지율 상승과 선거 승리 견인

    문재인 정부의 북한 지원 시도에 대해 여권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 프레임으로는 북한 비핵화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먼저 성의를 보여 신뢰를 쌓으면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나선다”는 ‘선 일부 제재완화, 후 비핵화’ 논리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권이 남북교류를 통한 ‘지지율 올리기’와 ‘선거 승리’에 집착해 김 위원장에게 대가를 주려 한다는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의 말이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평양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문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여당의 지방선거 압승에도 일조했다. 앞으로도 남북-북미 이벤트는 지지율 올리기와 선거 승리에 큰 힘이 된다고 정권은 판단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이 이벤트에 묶어두려면 이젠 실질적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세 차례 정상회담처럼 약속으로 끝나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미국과 협의해 중단했는데 이것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준 실질적 대가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도 김에게 줘야 할 대가로 보인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남북경협에 정신이 팔렸다”고 일갈했다. 김정은에게 제공되는 대가는 한국 국민에겐 손해다. 김기호 전 한미연합사 작전계획과장의 ‘신동아’ 4월호 기고에 따르면, 몇몇 군 장교는 “이번 한미연합훈련 폐지로 한·미군은 3년 후 연합작전능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도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우리 국방부 모두 문제”라고 했다.

    트럼프의 후회와 역습

    두 번째 의문과 관련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 신뢰 구축, 후 비핵화’로 합의한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후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담 한 달 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비핵화를 이행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북으로부터 “신뢰 구축부터 하라” “강도”라는 말까지 듣자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이 자신의 실패작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측은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비건-김혁철 실무 협의에서 ‘북한이 은폐한 추가 핵시설’ 카드를 철저히 숨겼다. “이 카드를 꺼내면 김정은이 하노이로 안 올 것을 우려해서”(태영호)였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친한 문재인에게도 이 핵심 협상 전략을 숨겼다. 대신 “사랑한다” “신뢰한다” “잘 되고 있다”는 미사여구를 김정은에게 선사했다.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내주고 일부 제재 완화를 받아내는 ‘스몰 딜’의 성사를 확신했다. “미국이 오케이 했다”는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은 이완됐다. 아동만화 ‘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오는 것 같은 구식 기차를 타고 느긋하게 하노이에 왔다. 

    마침내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는 ‘인디언 잡는 기마대장’ 존 볼턴(국가안보보좌관)을 시켜 이 비장의 카드를 김정은에게 불쑥 들이밀었다. 김정은은 어쩔 줄 몰라했고, 회담 결렬에 내몰렸고,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뒤통수를 치려고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김정은을 하노이로 불러 싱가포르에서의 패배를 ‘응징’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담 결렬의 득실과 관련해, 김정은과 북한 정권은 피하고 싶은 결과를 받아 들었다.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북한에 연간 1000억 원 이상을 안겨줄 스몰 딜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조미수뇌의 세기적 만남”이라며 들떴던 평양엔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엔 ‘제재가 안 풀릴지 모른다’는 절망감이 퍼지고 있다. 

    김정은은 ‘무오류’의 신계(神界)에서 내려왔고 ‘정상회담의 달인’ 타이틀도 반납했다. 그는 지난해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따놓은 점수를 다 잃었다. 북한 사회에서 중요하게 치는 ‘최고존엄의 체면’도 구겼다. 홧김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거나 핵실험을 하기도 힘들다. 협상장에서 뱉은 말이 굴레가 돼 되레 자신을 속박하기 때문이다. 대신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목 끝을 향한 비수 같은 한미연합훈련이 폐지되는 성과물을 받아 들긴 했다.

    평화 티셔츠 가고 빅딜 온다

    반면, 회담 결렬은 한국 국민에겐 “매우 좋은 일”이라고 태영호 전 공사는 단언한다. “‘북한이 핵동결 거래를 통해 핵 보유국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2017년 김정은이 “핵 단추”를 말하고 트럼프가 “북한의 절멸”을 말하면서 ‘북한 비핵화’ 프레임은 ‘평화’ 프레임으로 대체됐다. 하노이에서도 “peace(평화)”라고 적힌 티-셔츠가 잘 팔렸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로 평화 프레임은 북한 비핵화 프레임으로 전환됐다. 회담에서 북한이 은폐한 추가 핵시설이 사실상 드러났다. “북한이 비핵화 의향을 내세우면서도 핵 개발에 집중해왔다”는 유엔 보고서가 3월 12일 공개됐다. ‘대북제재에 의한 북한 비핵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서 다시 확산하는 추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한 북핵 제거인 빅딜로 완연히 전환했다. 미세먼지처럼 뿌연 스몰 딜 논의가 걷히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도 한국 국민에겐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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