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소주성’ 2년, 서민에게 부메랑 된 유토피아 경제 실험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前 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uos.ac.kr

    입력2019-03-25 1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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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쇄경제에나 적용 가능한 소득주도성장

    • 장사 잘돼야 기업이 생산·판매 위해 일자리 늘려

    • 모든 조건 일정할 때 임금만 올리면 일자리 줄어

    • 저소득계층 소득 17.7%↓ 고소득계층 소득 10.4%↑

    • 실증분석 결과, 투자·고용·경제성장률 모두 하락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실험적 정책이 시행된 지도 2년이 다 돼간다. 이 정책을 두고 그간 많은 논란과 지적이 있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모태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주장한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이다. 골자는 이렇다. ‘임금을 올리면 가계소득이 늘면서 구매력이 증가한다. 이에 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기업의 성과 증대로 이어지고, 덕분에 기업은 근로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줄 수 있게 된다.’ 

    이는 거의 유토피아 수준의 내용이다. 하지만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포함한 몇몇 학자가 소득주도성장론을 제시했다. 거시경제적으로 볼 때 소득은 임금, 이자, 지대, 이윤을 모두 더한 개념이다. 소득주도성장과 임금주도성장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면 임금만이 아니라 지대 이윤, 이자를 다 올려야 한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은 임금 상승만을 주장하고 있다. 이름이 잘못 붙여진 꼴이다.

    “아름다우니 비현실적”

    임금을 올리면 분배와 성장이 모두 해결된다는 주장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론이 폐쇄경제에나 적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과 국내 가계만이 존재하는 경우라면 이 이론은 적용이 가능하다. 폐쇄경제에서는 올라간 소득이 그대로 국내 기업 제품 구입으로 연결돼 기업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어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지금 우리 경제는 개방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수입과 수출을 합치면 1조 달러가 넘을 정도다. 우리 가계는 물건을 해외에서 구입하고 우리 기업들은 자신이 생산한 제품을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다가 팔고 있다. 이렇게 개방된 경제에서 임금을 올리면 가계소득이 늘겠지만, 가계는 늘어난 소득을 가지고 국내 기업 제품만이 아니라 해외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돈은 해외로 빠져나간다. 임금이 올라서 증가한 소득이 국내 기업으로 전액 환류하지 못한다. 

    또한 임금을 올려 생산비용이 늘면 기업은 제품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제품의 가성비가 나빠진다. 결국 국내 기업 생산 제품은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동시에 외면받아 기업 성과가 부진해지고, 그러면 기업은 더 임금을 올려줄 수가 없다. 임금지급자의 지급 여력이 감소하면서 임금주도성장이 지속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소득주도성장이 북한과 같은 폐쇄경제에 어울린다고 지적했다. 물론 북한도 중국과의 무역으로 인해 상당 부분 개방돼 있지만 개방도가 낮으니 이 이론을 적용해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서는 어렵다. 

    개방경제에서 폐쇄경제에나 어울릴 법한 정책을 추진한 것도 그렇고, 그런 정책의 효과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한 것 또한 문제다. 공급중시경제학의 주요 학자 중 한 명인 아서 래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임금을 시간당 100만 달러로 올리면 되겠네요”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

    “치킨집 숫자와 퇴직 은행원 숫자”

    기업은 노동에 대한 수요자다. 고로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다. 문제는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개수가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가 잘되고 있느냐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를 ‘파생된 수요(Derived Demand)’로 파악한다. 생산물 시장에서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장사가 잘되면 기업은 제품을 더 많이 생산·판매하기 위해 노동수요를 늘린다. 이렇게 돼야 일자리가 늘어나니 노동 수요는 제품 수요로부터 ‘파생된’ 수요라는 것이다. 

    임금도 그렇다. 기업의 비즈니스가 잘돼 성과가 좋아지면 노동 수요가 늘고 임금도 자연스레 오른다. 즉 장사가 잘돼야 일자리 수와 임금이 자연히 오르게 된다는 것이 경제 원론 수준의 논의다. 정작 소득주도성장은 느닷없이 임금부터 올리면 경제가 잘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아무리 보아도 직관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우리 경제에는 아주 취약한 부문이 있다. 자영업이다. 우리 경제의 자영업 비중은 매우 높다. 전 취업자의 25% 정도가 자영업자다. 이들은 주로 도소매음식료, 숙박 운수업에 종사하면서 힘들게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다. 이들 부문은 안타깝게도 저부가가치 업종이다. 이윤을 시원하게 올리지 못하고 과당경쟁까지 겹쳐 힘들게 영업하고 있다. 

    2019년 1월 기준 약 550만 명이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또 이들을 돕는 무급 가족종사자가 약 100만 명 정도다. 과거 우리 경제가 중국과 교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됐을 때 자영업자가 급증했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가 늘면서 자영업자가 또 한 번 급증했다. 당시 은행원만 10만여 명이 퇴직하면서 이들이 자영업으로 진출하자 “우리나라의 치킨집 숫자는 퇴직한 은행원의 숫자와 같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회자될 정도였다. 

    소득주도성장을 근거로 시행된 최저임금 인상 조치는 힘들게 영업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자영업자가 장사를 해서 성과가 좋으면 임금을 올려줄 수가 있다. 한데 성과가 나쁘면 임금은 오히려 인하돼야 한다. 임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라 자영업자가 번 돈에서 지급된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영업 성과가 서서히 안 좋아지는 시점에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시행됐다는 데 있다. 

    사실 2년 누적 29%의 인상률은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통계청은 우리 경제가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은 시점을 2017년 중반 정도로 보고 있다. 경기의 정점과 저점은 시간이 지나서야 파악된다. 이 부분에 대한 농담을 하나 소개해보자. 기상학자와 경제학자에게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둘 다 예측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기상 예측에 실패하고 후자는 경제 예측에 실패한다. 차이점은 전자는 현재 기상 상황은 정확하게 아는데 후자는 현재 경제 상황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점이다. 씁쓸하지만 새겨야 할 부분도 있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시점이 우리 경제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시점이었던 셈이다. 상황 인식이 정확했다면 새 정부는 최저임금인상 정책을 무모할 정도로 추진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면서 경제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선행했어야 했다. 자영업자가 자기 몫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정부는 이들에게 본인 몫을 챙기기는커녕 근로자 월급부터 올려주어야 한다는 규제를 시행한 셈이다. 

    결국 문제는 터졌다. 일자리 참사가 발생했다.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할 때 가격만 갑자기 올리면 수요는 줄어들게 된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 임금만 올려주라고 지시하면 노동 수요는 감소한다. 당연히 일자리 개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소득 통계는 엉망”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이 2월 13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1월 고용동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이 2월 13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1월 고용동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임금이 올랐을 때 일자리를 지킨 사람은 급여가 올라 소득이 는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 감소로 인해 일할 기회를 잃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지킨 사람들의 소득 통계를 분석하면 소득은 당연히 증가한다. 홍장표 전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해 파문을 일으킨 자료가 바로 일자리를 유지한 사람들만 따로 떼어놓고 본 통계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까지 같이 놓고 보면 소득 통계는 엉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를 소득을 기준으로 5등분했을 때 2018년 4분기를 기준으로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3.8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7% 감소했다. 반면 소득 5분위는 932.4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4% 증가했다. 가장 낮은 소득계층의 소득은 20% 가까이 줄고 가장 높은 소득계층의 소득은 10% 정도 늘었으니 따로 계산할 것도 없이 소득 분배는 많이 나빠진 셈이다. 

    올해 1월 고용동향을 보면 일자리 증가 숫자는 1.9만 명으로 나타났다. 과거 30만 명 수준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숫자다. 일자리가 감소한 산업은 제조업 17만 명,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및임대서비스업 7.6만 명, 도소매업 6.7만 명이었다.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와 자영업 부문과 관련된 도소매업 등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이다.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가 27.9만 명, 일용근로자는 2.5만 명 증가했다. 하지만 임시근로자는 21.2만 명 감소했다. 비임금근로자 중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4.9만 명,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1.2만 명 감소했다. 한때 정부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숫자가 증가한 부분을 거론하며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를 반박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힘들게 버티고 버티다가 장사를 포기하기 시작한 셈이다. 가슴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분야에서 폐업 행렬이 시작된 꼴이다.

    “농림·어업 국가라는 농담마저”

    2017년 12월 1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는 장하성 당시 정책실장(왼쪽)과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 [동아DB]

    2017년 12월 1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는 장하성 당시 정책실장(왼쪽)과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 [동아DB]

    일자리 숫자 감소는 소득 통계와 맞물려 소득이 낮은 계층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더구나 이러한 통계가 2인 이상 가구를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560만에 달하는 1인 가구를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안 좋을 수도 있다. 예들 들어 독거노인 등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순간 빈곤층이 된다. 돈을 버는 가구원이 혼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을 올려주는 것보다 오히려 임금이 좀 낮더라도 일자리 숫자가 늘어 일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기초연금을 받는다. 여기에 급여를 합치면 훨씬 형편이 나아진다. 그러려면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1월 통계에서 특기할 점은 농림·어업 종사자가 전년 동월 대비 10.7만 명 증가했다는 것이다. 1월 전체 일자리 증가 폭이 전년 동월 대비 1.9만 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숫자다. 농림·어업 취업자 총 숫자가 110만여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농어민이 1년 사이 10%쯤 증가했다. 실제로 농림어업 종사자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난 지역이 경남인데, 이 지역에서는 최근 조선업 불황으로 조선 분야 근로자가 많이 실직했다. 

    경남지역 2018년 수출은 전년 대비 32% 줄었고 건설 수주는 40% 감소했다. 광공업생산(-6%) 소매판매(-0.7%) 등 주요 지표가 거의 다 마이너스다(건설수주를 제외한 다른 지표들의 전국 평균은 모두 플러스다). 즉 경남을 중심으로 조선업 등에서 실직한 근로자들이 대거 귀농해 농림·어업 종사자 숫자 증가 현상이 통계에 잡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업 분야 부가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의 소득은 감소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러한 귀농이 잠재적 실업에 해당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실상은 실업자인데 취업자로 분류돼 통계 왜곡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농림·어업 취업자 증가 폭 10.7만 명 중 20% 정도를 실업자로 분류하면 지난 1월 우리 경제에서의 일자리 증가 폭은 전년 동월 대비 사실상 마이너스가 된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이 농림어업 국가로 회귀하고 있다는 농담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최근 경제학 통합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최인 서강대 교수의 논문 ‘신정부 거시경제 성과의 실증평가’는 이러한 부정적 결과를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이 추진된 뒤 경제성장률과 투자 및 고용증가율이 일제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 추진 이전인 2013년 1분기부터 2017년 2분기까지와 정책 추진 이후인 2017년 3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의 두 기간 통계를 비교분석한 결과, 투자 증가율이 4.98%에서 2.01%로 2.97%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과 고용증가율은 각각 0.13%포인트, 0.67%포인트 하락했다.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인데, 최 교수의 논문은 정작 우리 경제에서 총 소비는 증가했지만 이것이 국내 소비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서 내수 증진 효과가 별로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가 증명되지 못했다고 판단한 셈이다.

    “경제에 왕도는 없다”

    같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김대일 서울대 교수의 논문 ‘2018년 최저임금의 고용효과’에 따르면 2018년 고용 감소치 가운데 총 21만 개(근로시간 감축 포함)의 일자리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정적 영향으로 해석된다. 특히 제조업과 일용직에서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보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최악 수준의 경제 실험으로 판명 날 가능성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 인구 5000만 명에다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개방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경제 실험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꼴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주도한 경제팀의 주요 멤버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모두 경제팀을 떠났다. 향후 경제 운용이 혁신성장 중심으로 운용된다고는 하지만 아직 뚜렷한 변화는 없어 보인다. 힘들고 어려운 계층을 위한다면서 시행된 이 정책이 이제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쪽으로 귀결돼가고 있다. ‘경제에 왕도는 없다’는 지적이 더욱 실감나는 요즘이다.


    윤창현
    ● 1960년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 現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신용회복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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