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가맹점 공급 원가·마진 공개” 시행령 공포
업계 “영업비밀 공개하라는 전례 없는 규제”
업계, 前 헌법재판관 선임해 헌소 청구키로
여론은 업계에 불리…공정위 뜻대로?
김상조, 취지 좋아도 갈등 점화 방식 맞는지 고민해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뉴시스]
‘삼성 저격수’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기대(?)와는 달리 재벌이 아닌 가맹·대리점 문제, 즉 프랜차이즈 이슈를 정책의 가장 우선순위로 꼽았다. 그는 “많은 분이 재벌 개혁에 관심이 많겠지만 이 부분은 서로 협의해서 결과를 도출하면 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골목상권, 가맹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과 프랜차이즈 업계의 ‘악연’은 이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요즘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프랜차이즈 시장 규제의 칼날을 쥐고 있는 공정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가맹점 관련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속으로는 불만이 있더라도 겉으로는 정부 정책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던 그간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친노 변호사”
이들이 ‘집단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표면적으로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 공급가와 마진 공개 건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4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공포했다. 연 매출 5000만 원 이상인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주에게 공급하는 식자재, 비품 등의 원가·마진 관련 정보를 올해 4월 말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이에 따라 프랜차이즈 본사는 공정위에 등록하는 정보공개서에 ▲공급 대금 기준 상위 50% 필수품목에 대한 공급가 상·하한선 ▲가맹점당 평균 차액 가맹금(본사가 가맹점에 필수품목을 공급하면서 단가에 이윤을 붙이는 방법으로 받는 가맹금) 규모 및 매출 대비 비율 ▲가맹본부의 특수관계인 영업 현황 등을 기재해야 한다. 정보공개서란 가맹 사업을 하려는 가맹 희망자가 가맹본부와 계약을 체결할 때 알고 있어야 하는 주요 정보가 담긴 문서다.
그간 국내 프랜차이즈 본사 대부분은 가맹점주가 꼭 사야만 하는 식자재와 원재료 등 필수품목에 마진을 붙이는 방식으로 가맹금을 받아왔다. 일부 업체는 필수품목을 지나치게 폭넓게 정해 높은 마진율을 붙이는 식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가맹본부의 친인척 회사를 유통 단계에 끼워 넣어 중간 마진을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공정위가 프랜차이즈 본사에 관련 정보를 공개토록 해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이 시행령 탓에 ‘영업비밀’이 공개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산업 경영자(CEO) 모임인 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지난 1월 긴급 대의원 총회에서 이 시행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키로 했다. 이에 앞서 정보공개서 등록 효력 금지 가처분을 3월 13일 신청했다.
시행령을 무력화하려는 협회의 의지는 꽤 굳건해 보인다. 협회는 법무법인 화우의 조대현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등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조 변호사는 친노(親盧)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현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친노 변호사를 끌어들였다는 점이 여러모로 관심을 끄는 데 도움이 된 모양새다. 협회가 제기한 가처분 소송이 받아들여지고 헌법소원 절차까지 진행되면 시행령은 최장 6개월가량 지연될 수 있다.
사실 프랜차이즈 본사의 원가·마진 공개 건은 최근에 갑자기 불거진 이슈는 아니다. 김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다. 김 위원장은 취임 두 달 뒤인 지난 2017년 7월 발표한 ‘가맹 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을 통해 정보공개 강화를 예고했고, 이후 같은 달 열린 협회와의 간담회에서도 업계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업계와 협의를 통해” “업계가 용인하는 수준에서” 결정하겠다는 견해를 내놓은 바 있다.
“반성하다 반격”
박기영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회장이 2017년 7월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행위 근절 방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뉴스1]
공정위는 특히 협회가 주장하는 원가·마진 공개가 사실이 아니라며 적극 반박하고 있다. 공정위는 “다수의 구입 요구 품목의 평균 차액 가맹금 규모만을 기재하기 때문에 개개 품목별 마진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 “가맹본부의 구입 가격이 아닌 가맹점 사업자에 공급하는 가격만 기재하므로 원가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맹점의 구입 가격 역시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해당 가맹 희망자(예비 창업주)에게만 공개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그러면서 지난 2월 27일 정보공개서 표준양식을 개정해 공개하는 등 ‘예정대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순미 공정위 가맹거래과장은 “가맹본부는 이번에 개정된 정보공개서 표준양식을 참고해 지난해 시행령 개정으로 정보공개서에 새롭게 기재해야 할 사항을 충실히 반영, 4월 말까지 변경등록을 해야 한다”며 “올해 정보공개서 변경등록이 차질 없이 완료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만큼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프랜차이즈협회가 헌법소원까지 제기하기로 한 건 단순히 시행령 개정에 대한 반발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 지속해온 ‘프랜차이즈 옥죄기’에 대해 쌓인 불만이 이번 건을 계기로 터진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다.
그간 협회는 공정위와 김 위원장이 추진하는 정책에 공식적으로는 발맞추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7년 공정위가 ‘가맹 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을 내놓기 직전 윤리경영 도입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박기영 협회장은 “프랜차이즈 업계가 새 정부의 개혁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고 일부 CEO의 일탈 행위로 국민의 시선이 매섭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윤리경영을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한껏 몸을 움츠리던 프랜차이즈 업계가 이제는 헌법소원까지 내며 반격에 나선 셈이다. 협회가 보도자료를 통해 “프랜차이즈 업계가 정부의 정책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협회는 “타 산업에도 전례가 없는 과도한 규제로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위험이 높다”며 현 정부와 공정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갑질의 대명사”
치킨 프랜차이즈 bhc의 가맹점주들이 2018년 6월 1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집회를 열고 본사의 불공정 행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김 위원장은 되레 프랜차이즈 업계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한 간담회에서 “(프랜차이즈가) 우리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불공정 거래, 이른바 갑질에 따른 사건들이 폭주하고 있다”며 프랜차이즈 업계를 재차 압박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지난해 말 프랜차이즈 갑질을 전담하는 유통정책관(국장) 자리를 신설한 데 이어 조만간 갑질 행위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일단 프랜차이즈 업계가 헌법소원 등으로 당장 시간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김 위원장의 의지대로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전망이 많다. 우선 여론이 프랜차이즈 업계에 부정적이다. 이제는 프랜차이즈 갑질의 대명사가 돼버린 미스터피자를 비롯해 호식이두마리치킨, 교촌치킨 등 오너와 오너 일가의 갑질이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고 있어서다.
최근 법원은 BBQ가 가맹점주에게 매장 리모델링을 요구하고 비용을 떠넘기는 관행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앞서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BBQ에 4억 5000여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이에 반발한 BBQ가 소송을 냈는데 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프랜차이즈 업체를 지속해서 압박하는 공정위의 행보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만은 없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지나친 갈등을 유발하는 정책은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공정위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가맹 분야 실태조사 결과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불공정거래 관행은 상당 부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가맹점주에게 부담이 되는 점포 환경 개선 건수는 1250건으로 전년 대비 17.4% 감소했지만 본사가 부담한 비용은 36.2% 늘어난 1108만 원으로 나타났다. 창업 시 정보공개서와 인근 가맹점 현황 문서에 대해 본부로부터 법 위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점주의 비율은 13.5%로 전년 대비 22.2%포인트 하락했다.
이 조사 결과는 이른바 ‘김상조 효과’ 덕분에 프랜차이즈 갑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나 반대로 프랜차이즈 업계 역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7년 협회와의 간담회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율 시장경제의 질서를 지키는 기관이지 개입하는 기관은 아니다”며 “다만 협회 측이 가맹점들과 자율 상생협약을 하는 등 노력이 진전되면 공개하는 정보의 수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뒀던 셈이다.
“갈 데까지 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갈 데까지’ 가버린 지금의 상황이 더욱 더 안타깝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그간 공정위와 협의하면서 업계의 의견이 일부 반영되기는 했지만, 결국 (최종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이제 공정위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단계는 지났다”고 했다. 헌법 소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협의 과정은 결국 ‘파국’으로 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양측이 이 과정을 되돌아보며 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더는 저격수가 아닌 행정기관의 수장으로 김 위원장이 이끌어내야 할 것은 법정 다툼이 아니라 원만한 합의다.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거나 업태별로 차등 적용하는 등의 묘안을 끌어내는 게 전혀 불가능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프랜차이즈 업계도 협의의 당사자로서 오직 본인들의 이익만 추구하려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