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개털은 죄가 없다

‘기도로 넘어가’ ‘알레르기 유발’ 속설은 오해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입력2019-04-0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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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를 데리고 자면 개털이 기도로 넘어가서 위험해!” 반려견 보호자 가운데 상당수는 주위 사람에게서 이런 경고를 들어봤을 것이다. 출산을 앞두고 “아이랑 개는 한집에 두는 게 아니다. 개털 때문에 아이한테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으니 얼른 개를 다른 집에 보내라”는 이야기를 들은 부부도 많을 것이다. 개털은 정말 그렇게 위험할까.
    얼마 전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손자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 항상 프렌치 불독 반려견과 같이 자는데 괜찮으냐는 것이다. 그분이 가장 걱정하는 건 ‘개털이 아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쌓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말씀드렸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도 어릴 때 어디에선가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개와 같이 살면 털을 ‘마시게’ 되고, 털이 기도로 넘어가 쌓여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 한 어르신에게 직접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갑자기 “개랑 같이 살면 기도에 털이 잔뜩 낀다. 왜 개랑 같이 사느냐”고 하셔서 “내가 수의사이고, 그런 일은 없다”고 답하다 조금 말다툼을 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개털이 사람 코와 목을 통과해 기도에 쌓이는 게 가능한 일인가. 사람보다 개털에 더 많이 노출되는 건 개 자신이다. 그런데 수의사를 하면서 개털이 개 기도에 쌓인 걸 본 일이 한 번도 없다. 고양이 소화기에서 털이 뭉쳐진 이른바 ‘헤어볼’이 나올 때가 있긴 하다. 이건 혀가 빗처럼 까슬까슬한 고양이가 자기 털을 핥는 행동(그루밍)을 자주해 일부 털이 식도를 통과해 들어간 것으로, 털이 기도에 쌓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개털은 호흡기 침투 못해

    우리 호흡기는 매우 강력한 방어기전을 갖고 있다. 외부 물질에 그렇게 쉽게 뚫리지 않는다. 요즘 한국인을 괴롭히는 미세먼지 문제만 떠올려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입자를 미세먼지, 2.5㎛ 이하인 것은 초미세먼지라고 한다. 미세먼지를 이렇게 정의한 건 10㎛보다 큰 입자는 코와 목에서 걸러져 체내에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를 우리가 흔히 아는 단위로 환산하면 ‘1000분의 1㎜’다. 10㎛는 1㎜ 크기 입자를 100개로 쪼갠 것 중 한 조각에 해당한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못 본다. 눈에 아주 잘 보이는 개털이 우리 코와 목을 통과해 기도에 침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코에서는 코털이 1차적으로 개털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코와 목구멍의 점막 또한 단단한 방패 구실을 한다. 가끔 공기가 나쁜 지역에 오래 있다가 코를 풀면 까만 콧물이 나오는데 체내 점막이 큰 먼지 입자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개털이 만에 하나 이 방어막을 뚫고 기도에 침범하려 한다고 하자. 그때는 기침이 우리 몸을 보호한다. 사레들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된다. 음식을 먹다가 아주 작은 찌꺼기라도 기도로 넘어갈라치면 반사적으로 기침이 튀어나온다. 개털도 마찬가지다. 그만 한 크기 물질이 기도와 폐로 넘어가게 놓아둘 만큼 우리 몸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개털은 인체에 무해한가. 이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답하는 게 옳다. 알레르기 때문이다. 알레르기는 우리 몸의 과민 반응을 일컫는 용어다. 앞서 설명했듯 우리 몸의 방어기전은 아주 견고하다. 개털이 호흡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코털, 점막 그리고 기침까지 겹겹이 막아선다. 이런 물리적 방어막이 다 뚫리면 세포적 방어기전이 작동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보통 면역 기능이라고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코털, 점막, 기침 등은 성벽과 철조망, 세포적 방어기전은 군인에 비유할 수 있다. 알레르기는 군인이 너무 예민해 굳이 공격하지 않아도 되는 물질에 과민하게 대포, 총, 미사일 등을 쏘아대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전방 군인이 비무장지대에 나타난 사슴 한 마리에게 총을 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즉 개털 자체는 사람 몸에 해를 입히지 않는데, 내 안의 군대가 예민하게 반응해 공격할 준비를 하거나 진짜 공격을 퍼부으면 개털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밝혀둘 것은 개털 자체가 알레르기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개의 몸에 있는 각질, 침, 체액 등이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그런데 이런 물질이 개털에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털에 접촉했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듯 보여 개털 알레르기라고 하는 것이다. 

    출산을 앞둔 부부나 곧 조부모가 될 분들 중 반려견 때문에 고민하는 이가 적잖다. 그중 상당수가 오랫동안 식구처럼 살아온 개를 출산 직전 다른 집에 보낸다. 심지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개털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그분들한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려고 이 글을 쓴다. 일단 개털이 아이 호흡기로 들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설명했다. 

    그렇다면 알레르기는 어떨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개랑 같이 사는 게 알레르기 예방 면에서 오히려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에서 18년 동안 56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신생아가 동물 특히 개와 함께 자란 경우 개 관련 알레르기 발생률이 50% 이상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 나이에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키우면 면역세포가 여러 물질을 접하고 ‘이건 괜찮은 거야’라는 걸 스스로 익히지 못해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이론도 있다.

    알레르기 위험 적은 견종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개를 키울 때 더욱 걱정해야 할 것은 털이 아니라 안전사고다. 신생아는 정신연령이 성견보다 낮다. 게다가 개의 언어를 전혀 모르고 개의 거절 신호를 알아듣지 못해 개에게 물리는 경우가 있다. 보호자들은 이에 대비해 개를 잘 교육해야 한다. 이 경우, 개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은 크게 떨어진다. 

    사실 개는 우리 주위에 있는 그 어떤 물체보다 안전한 축에 속한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부모, 자동차, 침대, 욕조, 식탁 등이 개보다 아기에게 더 위험하다. 개에게 물리는 아기보다 부모의 부주의 또는 학대로 다치는 아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성인에게 개 알레르기 증상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 설명했듯 알레르기는 개털 자체가 아니라 거기 묻은 개의 각질, 체액, 침 등에 의해 유발되는 만큼 주기적으로 개 목욕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 너무 자주 씻기면 개 피부가 건조해져 각질이 더 많이 날릴 수 있으니 2주에 1번 정도 목욕시키는 걸 추천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각질을 걸러낼 수 있도록 집안에 공기청정기도 설치하는 게 좋다. 단, 이런 방법은 알레르기 유발 원인을 아주 조금밖에 줄여주지 못하니 자신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안 사람은 애초에 개를 키우지 않는 게 좋다. 

    만약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꼭 개를 키워보고 싶다면 되도록 알레르기를 적게 유발하는 견종을 선택하자. 달리 말하면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옮기는 개털이 덜 빠지는 종류다. 털이 꼽슬꼽슬한 비숑프리제, 푸들, 코동드툴레아, 말티즈, 시추 등이 상대적으로 알레르기를 적게 유발한다. 명심할 것은 알레르기를 아예 일으키지 않는 견종은 없다는 것이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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