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현장취재

자해 청소년 급증 경보

꾸짖지 말고 “그럴 수 있다” 안아줘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4-07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 반에 한두 명 꼭 있다”

    • 학교에서도 ‘자해 흔적 신체검사’ 실시

    • 청소년 자해는 살기 위한 몸부림

    • “관종이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는 금물

    • 반복된 자해 막을 구체적 방법

    “얼마 전 학교에서 자해검사를 했어요. 반 애들 다 있는 데서 팔 들라고 하고 자해 흔적 있는 애들을 찾아낸 거죠. 누가누가 걸렸는지 소문 다 났어요. 이렇게 해도 되나요? 이제 자해하고 싶은 애들은 허벅지, 등, 팬티라인 같이 검사해도 안 보이는 데다가 하라는 건가요?” 

    중학생 A양이 분통을 터뜨리며 한 말이다. 요즘 자해검사를 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청소년 자해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결과다. 포털 사이트나 주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을 검색하면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그 결과를 촬영, 공개한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종이에 베인 것처럼 얕게” 상처를 냈다는 인증사진부터 주사기로 몸속 피를 뽑아내는 영상까지 온갖 내용이 눈에 띈다. 주인공은 대부분 청소년이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교사들에게 들어보면 자해하는 아이가 한 반에 한두 명씩은 꼭 있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 또한 하루에 여러 명씩 이 문제를 가진 청소년을 치료한다”고 밝혔다. 정신과전문의 최정원 씨(국립정신건강센터)는 자해 방식에 대해 “커터칼 등의 도구로 손목을 긁어 상처를 내는 게 가장 흔하다. 자기 손톱을 자해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학생의 정신건강 문제를 제때 파악하고 대처하고자 매년 1학기 초 전국 중·고등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를 한다. 2017년부터 이 조사 항목에 ‘자해’를 넣었다. 조사 첫해 중학생의 8.3%, 고등학생의 5.9%가 ‘자해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에는 중학생 7.9%, 고등학생 6.4%가 자해 경험을 고백했다. 적잖은 수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자해를 해본 학생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학생들이 이런 조사에 솔직하게 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열린 ‘자해 대유행, 대한민국 어떻게 할 것인가?’ 심포지엄에 참석한 고교생 신승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컴퓨터실에서 무슨 검사를 하나 받았다. 첫 질문이 ‘행복한가’. 잘 몰라서 ‘모르겠다’에 체크했다. 다음은 ‘학교가 좋은가’. 우리나라 학생 중 학교 좋아하는 애가 어디 있겠나. ‘아니다’라고 했다. 다음 질문은 ‘살고 싶은가’. 또 한 번 ‘모르겠다’고 했다. 이러면 자살위험군이 된다(웃음). 이렇게 한번 분류되면 1년을 고생한다. 중학교 때 이 경험을 한 애들은 다음 검사 때는 ‘학교생활이 즐겁고 모든 게 행복한 아이’로 행세한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교사들이 ‘기습 자해 검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자해 흔적을 발견하면 학교 상담실이나 관련 기관 등을 통해 전문 상담을 받게 한다. 부모에게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자해 행위는 순식간에 만천하에 공개된다. 이처럼 친구와 부모에게 자해 사실을 ‘들키면’ 아이의 문제 행동이 곧 바로잡힐까.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자해는 “하지 마”라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곧 멈출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오히려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다.

    스스로를 해치는 청소년들

    “대가리는 의미 없어 장식품이야/ 이제 내 차례는 끝났으니 사요나라야/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유행한 노래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의 가사 일부다. 이 노래에는 “나는 우리 집도 못 찾아가 개멍청이야/ 나무야 미안해 난 너의 거름도 안 돼/ 엄마 나는 밥만 먹는 식충/ 엄마 미안해요 물론 아빠도 미안해” 등의 대목이 있다. 충격적인 가사와 달리 박자는 힘차고 멜로디는 명랑하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우리나라 청소년의 상황을 상당 부분 대변한다고 말한다. 과도한 학업 부담과 스스로에 대한 불만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만, 자기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부모에게 미안해 힘든 척도 하지 못한다.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 ‘웃고 있지만 속마음은 웃는 게 아닌 증상’을 뜻하는 ‘스마일마스크증후군’,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증상’을 의미하는 ‘민모션증후군’ 같은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가수 빈첸은 자해 경험을 암시하는 ‘전혀’라는 노래에서 “난 불행해도 가족들은 웃게 해줘야지”라고 읖조렸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청소년들을 정신적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최근 청소년 자해가 늘어나는 이유로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 SNS 콘텐츠를 모방하려는 심리 등을 꼽는 이가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이 발행한 ‘자해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돕기 위한 교사용 가이드’에 따르면 자해하는 학생이 관심과 사랑을 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자해의 이유는 아니다. 자해에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원인과 과정이 있다. 정찬승 마음드림의원 원장은 “청소년들은 자해의 이유로 △고통스러운 감정 해소 △멍한 상태에 있다가 살아 있는 느낌을 받기 위해 △죄책감 해소 등 여러 가지를 든다”고 밝혔다.

    “살고 싶어 자해한다”

    SNS에 등록돼 있는 자해 인증 콘텐츠.

    SNS에 등록돼 있는 자해 인증 콘텐츠.

    “회색으로 짙게 빛나는 날이 살갗을 미끄러지듯이 지나가고 틈에 스민 따뜻한 피가 팔을 타고 흐릅니다. 오늘도 통증을 넘어선 해방감이 나를 안도하게 합니다. 나의 고통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기에 완벽하게 나 혼자만의 것입니다. 설마 당신이 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제1회 레진코믹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웹툰 ‘자해클럽’ 소개 글이다. 자해를 하는 소녀들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일부 청소년이 왜 스스로 자기 몸을 해치는지 잘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다. 

    자해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한 청소년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자해를 하면 그 고통으로 다른 고민을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죽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내 피를 보면 ‘내가 살아 있구나’ 싶어 조금 안정이 된다”고 말한 청소년도 있다. 자해가 자신을 달래고자 하는 행위라는 얘기다. 

    슬라보예 지젝의 책 ‘실재에의 열정’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면도칼 자해자들에 대한 표준적인 보고에 의하면, 스스로 자해한 상처에서 붉고 따뜻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느낌이 다시 살아나고 현실에 확고히 뿌리내린 기분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이현우 씨는 저서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풀이했다. 

    “자해행위는 병리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정상성을 회복하고 완전한 정신병적 붕괴를 피하려는 병리적 시도이다. 즉 자해자는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신병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는 자이다.” 

    자해가 자살 시도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자살 시도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끝내고자 하는 행동이다. 반면 자해에는 기분을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교육부가 펴낸 자살예방 교육자료 ‘괜찮니 톡톡톡’에도 이에 대한 내용이 있다. 

    “죽고 싶어서 자해를 한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잘 살아보려고, 죽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해 감정을 조절한다. 또 자해를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이처럼 죽음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고의로 자기 신체 조직을 훼손하는 행동을 ‘비자살적 자해’라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정신장애 진단 기준으로 널리 쓰이는 미국정신의학회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는 2013년부터 ‘비자살성 자해’ 항목이 생겼다(257쪽 참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다른 방법

    비영리 조직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동료상담가)’ 과정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2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자해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하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 페이스북]

    비영리 조직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동료상담가)’ 과정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2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자해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하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 페이스북]

    최태영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사람이 자해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그러나 감정적으로 괴롭고 특히 자기비판적이며 자기혐오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자해는 감정의 균형을 얻는 방법일 수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에 따르면 자해를 할 때 몸에서 아편과 비슷한 화학물질이 분비돼 통증과 조직 손상에 대처한다고 설명하는 이론도 있다. 사람이 이 화학물질에 적응하면 안정감을 얻고자 더 자주 자해를 시도할 수 있다. 

    결국 자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보다 그것을 유발한 마음속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자식이 자해하는 걸 알게 됐을 때 ‘부모 관심을 끌려는 행동’ 정도로 여기고 “죽지도 못 할 걸 뭐 하는 짓이냐?”하고 비웃는 것은 금물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행동을 하느냐”며 흥분해 꾸짖고, 자해에 쓰일 만한 도구를 집에서 다 치우는 등 과민하게 행동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9월 20일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등의 주최로 ‘자해 대유행 특별 심포지엄’ 이 열렸다.

    지난해 9월 20일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등의 주최로 ‘자해 대유행 특별 심포지엄’ 이 열렸다.

    청소년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인정 △편안함 △강함 △솔직함 △차분함 △일정함 △머무름 등 7가지 키워드를 유념하며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안병은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원장이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먼저 ‘인정’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해 행동에 초점을 맞추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동에 이르게 된 마음과 감정에 집중하면 ‘이해’와 ‘인정’이 가능하다. ‘편안함’은 아이를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자해하는 청소년은 기질적으로 긴장과 불안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이야기를 하도록 재촉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당장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강함’은 아이의 자해 상처를 피하지 않는 것이다. 상당수 사람이 자해로 인해 생긴 상흔을 잘 보지 못한다.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런 태도는 자해 당사자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안 원장은 이외에도 “아이를 솔직하고 차분하며 원칙을 갖고 대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와 고통을 호소할 수 있도록 제자리에 있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자해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돕기 위한 교사용 가이드’에는 좀 더 구체적인 지침도 담겨 있다. 하나는 긴장을 풀어주는 호흡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해를 하고 있거나 할 가능성이 높은 청소년은 일반적으로 감정적 고통에 취약하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면 호흡이 가빠져 견디기 어려워진다. 몸의 힘을 빼고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는 것을 훈련하면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진정이 되는 음악 듣기 △향기 좋은 입욕제를 사용해 목욕하기 △신문지나 잡지 찢기 △고무찰흙 주무르기 △벽에 얼음 던지기 △춤추기 △발 구르기 △껌 씹기 △얼음 씹어 먹기 △마사지 △찬물 샤워 등 기분을 풀어주는 것으로 알려진 여러 행동을 평소 실험해보고, 실제로 자신에게 진정 및 이완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바람직하다. 

    살다 보면 언제고 견딜 수 없이 힘든 감정이 밀려올 수 있다. 자해를 멈추려면 이때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 말고 다른 수단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어야 한다. 전문가와의 상담 및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 자해를 검색하면 전문상담 전화번호와 관련 기관 홈페이지 정보가 가장 위에 노출된다. 교육부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다 들어줄 개’를 설치하면 문자 상담도 가능하다.

    비자살성 자해 진단 기준

    A. 지난 1년간, 5일 또는 그 이상, 신체 표면에 고의적으로 출혈, 상처, 고통을 유발하는 행동(예: 칼로 긋기, 불로 지지기, 찌르기, 과도하게 문지르기)을 자신에게 스스로 가하며, 이는 단지 경도 또는 중등도의 신체적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자해 행동을 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즉, 자살 의도가 없음). 

    *주의점: 자살 의도가 없다는 것이 개인에 의해 보고된 적이 있거나, 반복적인 자해 행동이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개인이 이미 알고 있었거나 도중에 알게 된다고 추정된다.

    B. 개인은 다음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기대하에 자해 행동을 시도한다.
    1. 부정적 느낌 또는 인지 상태로부터 안도감을 얻기 위하여
    2. 대인관계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3. 긍정적인 기분 상태를 유도하기 위하여 

    *주의점: 개인은 원했던 반응이나 안도감을 자해 행동 도중에 또는 직후에 경험하게 되고, 반복적인 자해 행동에 대한 의존성을 시사하는 행동 양상을 보일 수 있다.

    C. 다음 중 최소한 한 가지와 연관된 고의적인 자해 행동을 시도한다.
    1. 우울, 불안, 긴장, 분노, 일반화된 고통, 자기비하와 같은 대인관계 어려움이나 부정적 느낌 또는 생각이 자해 행위 바로 직전에 일어남
    2. 자해 행위에 앞서, 의도한 행동에 몰두하는 기간이 있고 이를 통제하기 어려움
    3. 자해 행위를 하지 않을 때에도 자해에 대한 생각이 빈번하게 일어남

    D.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예: 보디 피어싱, 문신, 종교적 또는 문화적 의례의 일부)이 아니며, 딱지를 뜯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E. 행동 또는 그 결과는 대인관계, 학업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방해를 초래한다.

    F. 행동은 정신병적 삽화, 섬망, 물질 중독 또는 물질 금단 기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신경발달장애가 있는 개인에게서는 반복적인 상동증의 일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해 행동이 다른 정신질환이나 의학적 상태로 더 잘 설명되지 않는다(예: 정신병적 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지적장애, 레쉬-니한 증후군, 자해를 동반하는 상동증적 운동장애, 발모광(털뽑기장애), 피부뜯기장애).

    출처 | 자해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돕기 위한 교사용 가이드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