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샌프란시스코 통신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 취재기

금융 중심가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엿보다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19-03-3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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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증권회사, 로펌,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모여 있는 샌프란시스코 중심 상권 파이낸셜 디스트릭트(금융지구). 이곳에 ‘아마존 고(Amazon Go)’ 매장이 있다. 물건을 들고 나오면 자동으로 계산되는 시스템을 갖춘, 계산대 없는 편의점이다. 미국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이끄는 대표 주자 ‘아마존 고’ 매장을 이용해봤다.
    샌프란시스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 있는  아마존 고 매장.

    샌프란시스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 있는 아마존 고 매장.

    3월 4일 점심시간 무렵, 샌프란시스코 포스트가(Post St) 98번지에 있는 ‘아마존 고’를 찾았다. 매장 주변은 점심을 먹거나 샌드위치 같은 테이크아웃 음식을 사러 나온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아마존 고’ 로고가 새겨진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직원이 지하철 개표구처럼 생긴 출입구에 서서 인사를 한다. 

    지하철 개표구처럼 생긴 아마존 고 출입구.

    지하철 개표구처럼 생긴 아마존 고 출입구.

    “혹시 ‘아마존 고’ 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나요?” 

    대답을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스마트폰의 ‘아마존 고’ 모바일 앱을 열어 보여줬다. ‘뭘 좀 아는구나’ 하는 표정이다. 이 매장을 이용하려면 일단 아마존 회원이어야 하고, 스마트폰 해당 모바일 앱을 실행해야 한다. 

    “그걸 여기에 대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에 들어가셔서는 필요한 걸 집어서 그냥 나오시면 되고요.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지하철 개표구에 교통카드를 대고 통과하듯 점원이 말하는 위치에 스마트폰 앱 화면을 스캔하자 출입구가 열린다. 매장 안에서는 대여섯 명의 손님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관광객과 근처 회사 직원 등이 섞여 있는 듯했다. 이들이 집어 드는 상품은 대부분 점심거리로, 샌드위치 빵 음료 디저트 등이었다.



    계산 안 하고 물건을 사다

    필자가 아마존 고에서 받은 영수증. 그냥 들고 나온 물품 명세와 신용카드에서 자동으로 결제된 금액이 적혀 있다.

    필자가 아마존 고에서 받은 영수증. 그냥 들고 나온 물품 명세와 신용카드에서 자동으로 결제된 금액이 적혀 있다.

    아직은 ‘무인 매장’이라고 하기에 어색하다 싶은 풍경이 자주 보였다. 손님이 물건 하나를 잠시 쳐다본다 싶으면 어김없이 직원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매장 이용 방법을 설명하며 손님을 ‘교육’하는 것이다. 부족한 상품을 채우고 쇼핑을 돕는 직원 수가 손님 수보다 많은 듯했다. 직원 전용 공간을 슬쩍 엿보니 7, 8명이 더 있었다. 매장에서 손님을 돕는 직원 4명을 더하면 총 12명 정도가 있는 걸로 보였다. 

    매장을 둘러보다 빵 진열대에 시선을 멈추니 곧 직원이 다가왔다. 뭘 찾느냐고 하기에 ‘아마존 고’ 매장에서만 살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었다. 

    “아마존 밀키트(아마존에서 만드는 즉석조리식품) 제품이 있기는 한데 많진 않아요. 대신 로컬 푸드 제품이 많습니다. 여기 이 빵은 스타벅스에 공급하는 제과점에서 만든 겁니다. 이외에도 버터크라상, 치즈빵이 아주 인기가 많아요.” 

    점원의 추천대로 버터크라상과 치즈빵, 그리고 젤리과자 한 봉지를 집었다. 젤리과자는 주머니에 찔러 넣고 빵 2개는 손에 든 채 매장 출입구를 빠져나왔다. 계산대도 없고 지켜선 직원도 없다. 원하는 물건을 골라 들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매장 출입구 옆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조그만 주방이 마련돼 있었다. 일회용 접시, 포크, 나무젓가락, 냅킨, 전자레인지 등이 있는 그 장소 벽에 큼지막한 오렌지색 글씨로 ‘대기 줄이 없고, 계산대도 없습니다(없어요, 진짜). 그냥 집어 들고 나가면 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무인 편의점은 최근 한국에서도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셀프 계산대를 두고 손님이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 등의 방식으로 직접 대금을 지불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마존 고’와는 차이가 있다.

    직원이 필요 없는 상점

    ‘아마존 고’ 주방 의자에 앉아 빵을 먹으며 2~3분쯤 지났을까.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구매한 물건 값을 정산해 영수증을 보냈으니 앱으로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세 품목을 구매하고 지불한 가격은 7달러 47센트, 매장에 머문 시간은 8분 4초였다. 매장 천장에 1㎡ 당 두세 개꼴로 설치돼 있던 검은색 카메라 센서, 그 외 어딘가 설치돼 있었을 다른 인공지능 기기가 내 움직임을 포착하고 분석해 물건 값을 정산한 것이다. 

    ‘아마존 고’ 매장은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 근처의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 시애틀에 4곳, 시카고에 4곳,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2곳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엔 올해 하나 더 문을 열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9월 아마존이 2021년까지 ‘아마존 고’ 매장을 3000개까지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 계산대 없는 편의점의 성장 잠재력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케츠(RBC Capital Markets)’에 따르면 기존 편의점보다 단위 면적당 매출액이 훨씬 높다. 기존 편의점은 연평균 매출이 1ft²(제곱피트·약 0.03평)당 570달러인 반면 ‘아마존 고’ 매장의 평균 매출은 853달러로 추정된다. 3평 매장을 기준으로 하면 매출에서 한화로 연간 300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향후 인건비 절감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아마존이 물류창고를 자동화하듯 편의점에 제품을 보급하고 진열하는 작업을 로봇에게 맡겨나가면, 또 고객들이 점점 아마존 고 시스템에 익숙해져 ‘교육’ 필요가 줄어들면, ‘아마존 고’ 매장의 사람 직원 수는 점차 줄다 어느 순간엔 거의 다 사라질 수 있다.

    세상에서 현금이 사라진다면

    현금을 받지 않는 유기농 패스트푸드 음식점 ‘오가닉 쿠’ 매장 풍경과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안내문. ‘직불카드와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현금을 받지 않는 유기농 패스트푸드 음식점 ‘오가닉 쿠’ 매장 풍경과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안내문. ‘직불카드와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아마존 고’가 매장 안에서 ‘사람 직원’보다 먼저 없앤 것은 현금이다. 계산대가 없는 이 매장에서는 현금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 

    ‘아마존 고’ 고객이 되려면 일단 모바일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 또 일반적으로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한다. 현금밖에 없는 사람이 ‘아마존 고’를 이용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일반 마트에서 아마존 상품권을 현금으로 산 다음, 그것으로 아마존 계좌에 ‘아마존 캐시’라는 일종의 사이버머니를 충전하면 된다. 그 뒤 스마트폰에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아마존 캐시로 대금을 결제하는 것이다. 가능하긴 해도, 쉽고 편리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엔 현금을 받지 않는 상점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아마존 고’ 근처에 있는 ‘오가닉 쿠(The Organic Coup)’도 그중 하나다. ‘유기농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라고 홍보하는 이 식당은 2015년 전직 코스트코(Costco) 임원 두 명이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했으며, 그사이 매장 수를 11개까지 늘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매장 유리창에는 ‘직불카드와 신용카드만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직원들의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라고도 적어놓은 게 보였다. 현금을 노린 무장강도 침입 가능성을 줄이는 차원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매장에 들어가 대표 메뉴라는 치킨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결제하면서 현금 지불도 가능하냐고 묻자 점원이 “현금은 받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 드려요”라고 답했다. 

    ‘오가닉 쿠’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커피숍 ‘블루스톤 레인(Bluestone Lane)’도 현금을 받지 않았다. 2013년 뉴욕에서 출발한 ‘블루스톤 레인’은 미국 전역에 매장이 31개 있을 만큼 인기가 많은 커피숍이다. 샌프란시스코 매장 정문 유리창엔 ‘Cashless(현금 받지 않음)’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어 최근엔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커피숍 ‘블루보틀’도 이 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새다. 올해 2분기 한국 성수동에도 매장을 내는 이 커피숍은 최근 미국 일부 매장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를 저지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2월,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밸리 브라운 의원은 일반 상점에서 현금 사용을 의무화하는 조례안을 발의했다. 현금 없는 사회가 국가 전체로 보면 금융 거래를 투명화하고 개인의 쇼핑 편의를 높여주는 등 장점이 있지만, 가난해서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없는 사람, 스마트폰 같은 첨단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이 조례안에서 ‘아마존 고’는 현금을 받아야 하는 상점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계산대 자체가 없는 게 그 이유였다. 앞으로 ‘아마존 고’처럼 아예 계산대를 두지 않는 무인 상점이 늘면, 해당 조례가 제정돼도 현금 사용 의무화를 피하는 매장이 많아질 수 있다.

    현금 없는 사회의 그늘

    커피숍 블루스톤 레인 매장 곳곳에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뜻의 ‘Cashless’ 안내문이 붙어 있다.

    커피숍 블루스톤 레인 매장 곳곳에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뜻의 ‘Cashless’ 안내문이 붙어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샌프란시스코뿐 아니라 뉴저지, 필라델피아 등 다른 지역에서도 현금을 받지 않는 상점에 대한 규제가 추진되고 있다. ‘금융 강국’으로 명성을 떨쳐온 영국에서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우려를 담은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액세스 투 캐시 리뷰(Access To Cash Review)’라는 독립 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인의 47%(약 2500만 명)는 현금 없이도 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면 17%는 현금을 사용하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편리한 게 사실이다. 다만 많은 사람에게 ‘현금 안 써서 편리한 사회’가 적잖은 이에게는 ‘현금 못 써서 불편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아마존 고’ 같은 계산대 없는 무인 매장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무인 매장에도 별도의 현금 전용 계산대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될지도 모르겠다.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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