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남양‧MP, 절벽 몰린 '갑질' 기업

수년째 구설수에 실적 곤두박질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19-04-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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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양, 갑질 기업 꼬리표 여파 오래 지속

    • MP, 한때 상장 폐지 위기까지

    2013년 5월 8일. 서울 성북구 한 편의점에서 사장이 남양유업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동아DB]

    2013년 5월 8일. 서울 성북구 한 편의점에서 사장이 남양유업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동아DB]

    “이번 실적 떨어진 건 갑질 논란과는 관련이 없어요. 우선 업황이 너무 안 좋고요. 신제품이 잘 안 팔리기도 했어요. 이제 저희 갑질 안 해요.” 

    수년 전 ‘갑질 논란’을 일으켜 사회적 지탄을 받은 한 기업의 홍보 담당자는 답답해했다. 사건 이후 조직 문화도 바꾸고 꾸준히 상생 노력을 해왔는데 ‘갑질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과거에는 기업의 오너나 일부 직원이 갑질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면 개인적 일탈로 치부되던 분위기도 있었다. 잠깐 여론의 비판을 받고 나면 그걸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부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져 잠시 실적이 안 좋아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뇌리에서 잊혔고 기업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한번 찍히면…”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갑질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꺼내 들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한번 사건이 터지면 워낙 이목이 쏠리는 탓에 이후에도 좋지 않은 뉴스가 줄줄이 터진다. 말 그대로 ‘한번 찍히면’ 오랜 기간 이미지 회복이 어려운 분위기다. 사건이 터지기 전 미리미리 ‘착한 기업’이 돼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한번 찍힌 후 가장 오랜 기간 시달리고 있는 기업이 남양유업이다. 남양유업의 갑질 논란이 터진 건 지난 2013년이다. 당시 남양유업의 한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한 녹취록이 공개됐고, 이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벌써 6년이 지났지만 남양유업은 아직 여기저기서 이름이 오르내리며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 국민연금은 남양유업을 콕 집어 배당 확대를 요구해 주목을 받았다. 국민연금은 최근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지침) 강화의 일환으로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는데, 한진칼에 이어 남양유업을 두 번째 타깃으로 삼은 것. 

    국민연금이 남양유업을 겨냥한 건 언뜻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국민연금은 2015년 합리적인 배당 정책을 수립하지 않은 기업을 지정해 대화를 추진하고 3년이 넘도록 개선하지 않으면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남양유업을 ‘대화 대상기업’으로 정했다. 이어 2017년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2018년 ‘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국민연금은 남양유업의 지분 6.15%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배당을 더 높이라는 것은 주주로서 당연한 요구인 데다가 정해진 단계를 밟아가는 ‘절차적인’ 작업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일각에는 국민연금의 선택이 정무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단순히 저배당 기업이어서가 아니라 갑질의 대명사처럼 돼 버린 남양유업을 지적함으로써 최근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행보에 힘을 싣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또 다른 ‘갑질 기업’인 한진그룹의 한진칼이 국민연금의 첫 번째 타깃이었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남양유업은 국민연금과 충돌하기 전에 이른바 ‘곰팡이 주스’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남양유업의 아동용 음료에서 곰팡이가 나왔다는 게시 글이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왔고, 이는 사실로 확인됐다. 남양유업은 사과와 함께 해당 제품 판매를 전면 중단해야 했다.

    갈피 잡지 못하는 실적

    문제는 카토캔이라는 종이 소재의 포장 용기에서 발생했다. 카토캔은 친환경 포장용지로 최근 국내 식품 업계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일반 알루미늄 캔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양유업은 제조과정이나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배송 과정 중 외부 충격 탓에 구멍이 났고 내용물과 외부 공기가 접촉해 곰팡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업계서는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가 비판 여론을 더욱 키웠다는 해석이 나왔다. ‘갑질 기업이 제품 관리도 못 한다’는 식으로 회자됐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남양유업 관련 뉴스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곤 한다. 2018년 10월에는 남양유업 분유에서 코털과 코딱지로 보이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루머가 퍼졌다. 발끈한 남양유업은 전문 연구소에 의뢰해 제조 공정상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검사 결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대표이사가 돌연 사퇴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1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부대표를 지낸 이정인 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는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씨는 리스크 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어서 업계에선 남양유업이 끊이지 않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 그가 돌연 회사를 떠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양유업의 실적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남양유업은 2012년 63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가 갑질 사건이 터진 직후인 2013~2014년 2년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영업이익이 다시 정상화하는 듯하다가 2017년에는 재차 51억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83억 원에 그쳤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국내 우유업계의 업황이 좋지 않고 중국 사드 보복으로 인한 타격을 받은 영향이 있긴 하지만, 갑질 사건 이후 조직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부정적 여론이 지속적으로 형성되면서 더 큰 어려움에 빠진 듯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 “안 좋은 사건으로 실적이 추락하면 이후 기업 투자 활동 등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는 악순환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SNS 발달로 갑질 여파 더 커져”

    프랜차이즈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그룹도 2016년 정우현 전 회장이 경비원 폭행 혐의로 갑질 논란에 휩싸인 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에는 횡령·배임 혐의가 불거지는 등 지속해 타격을 받았다. 설상가상 피자업계 불황이 겹쳐 경영난을 겪다 상장 폐지 위기까지 경험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는 데다가 SNS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소비자들이 조직적으로 반응하고 있어 기업의 매출이나 영업에 미치는 영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자본시장에서도 매출 감소 등의 부정적 영향을 투자에 반영하고, 주가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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