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곽재식의 괴물여지도

도깨비 : 서울 청계천 영도교, 전남 나주 등 전국 각지

음험한 귀신일까, 귀여운 친구일까

  • 곽재식 소설가

    gerecter@gmail.com

    입력2019-04-0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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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극에 무던히 등장하는 조선 영조와 그 아들 사도세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곁가지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만나게 된다. 한국 괴물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친숙하게 생각하는 도깨비 이야기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조선왕조실록 1745년 2월 13일 기록을 보자. 영조가 죄인을 붙잡아 놓고 조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죄인 이름은 이득중, 조징, 유명복, 차섬 등. 이들이 사도세자를 해치려 한 게 적발돼 국문이 열렸다. 

    1745년이면 사도세자 나이가 아직 만 10세 정도였다. 50대 초반의 영조는 늦둥이 아들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가르치려 했다. 세자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큰 기대를 갖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몇몇 무리가 아들을 해치려 했다니, 영조는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그는 잡힌 죄인들을 철저히 다그쳤다. 그 문답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그럼 이들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임금의 아들을 해치려 한 것일까. 그 내용은 차섬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드러난다. 무당이던 차섬이 저주를 거는 술법으로 사도세자를 몰래 괴롭히려 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차섬의 남편 유명복은 사람들이 아내를 ‘독갑방(獨甲房)’이라고 불렀다고 말한다. 이때 ‘방’은 지금도 일부 방언에서 쓰이는 ‘심방’ 같은 어휘로 무당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앞의 ‘독갑’은 ‘도깨비’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악한 주술의 대상

    같은 날 기록에는 사람들이 차섬을 ‘망량방(房)’이라고 불렀다는 대목도 나오는데, 망량은 중국 고전에서 도깨비와 비슷한 느낌의 괴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앞의 ‘독갑’이 도깨비를 한자로 쓴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 차섬이라는 무당을 당시 사람들이 ‘도깨비방’이라고 불렀고, 조선왕조실록은 그것을 한 번은 말소리 그대로 옮겨 ‘독갑방’으로, 다음엔 뜻으로 풀어 ‘망량방’으로 각각 표기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 속에서 도깨비는 무당이 섬기거나 무당이 무엇인가를 부탁하는 귀신 같은 존재다. 그리고 임금 아들을 해치는 것 같은 음침한 주술을 들어주는 대상으로 돼 있다. 이날 기록을 보면 사람들이 차섬을 처음에는 ‘호구방(虎口房)’이라 하다가 후에 ‘독갑방’이라고 불렀다는 내용도 있다. ‘호구’는 ‘호구마마’에서 알 수 있듯 천연두나 전염병을 내리는 귀신을 일컫던 말이다. 그렇다면 영조 시대, 무당과 무당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깨비가 전염병 귀신 같은 위치에 있던 괴물이라고 짐작해 볼만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도깨비 이야기는 하필이면 이렇게 몰래 궁중에 침투한 무당이 주술로 임금 아들을 해치려고 할 때 나온다. 동화로 도깨비 이야기를 접한 요즘 사람들이 도깨비를 장난스럽고 해학적이며 친근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는 제법 차이가 난다. 도깨비를 이렇게 주술적으로 무엇인가 기원하는 대상, 요사스럽고 음침한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조선시대 다른 기록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기인 세종 때 출간된 책 ‘석보상절’에는 ‘돗가비’라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간행한 불교 서적이다. 따라서 도깨비라는 말이 한글로 적힌 매우 초기 기록으로 손꼽힌다. 

    석보상절에 있는 돗가비, 그러니까 도깨비에 대한 내용은 이렇다. 사람들이 허망하게 비명횡사하는 것을 피하려고 부질없이 도깨비에게 수명 연장을 기원한다는 것. 즉 여기서도 도깨비는 사람들이 숭배하거나 주술적인 힘을 얻고자 도움을 청하는 대상이다. 불교 사상을 설명하는 책인 석보상절의 취지를 감안할 때, 도깨비를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불길하고 나쁜 것으로 묘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 또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도깨비를 음침한 주술 대상, 어두운 소원을 빌 때 사악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괴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장난꾸러기

    충남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 무늬벽돌 위에 새겨진 도깨비 부조.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충남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 무늬벽돌 위에 새겨진 도깨비 부조.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현대 연구자들이 도깨비에 관한 전설을 연구할 때 자주 참조하는 건 ‘한국구비문학대계’다. 1970년대 말 이후 수집된 설화를 집대성한 자료다. 바로 여기에 친근하고 우스꽝스러운 도깨비 모습이 많이 실려 있다. 도깨비를 소재로 한 동화는 일제강점기 이후 출판물과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유포되고 있었으니, 1970년대 말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동화에 어울리는 도깨비가 강한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과정에서 옛날 도깨비 이야기에 나타나던 음침하고 주술적이고 사악한 모습은 점점 사라져버리지 않았을까. 

    물론 조선시대 기록에서 친근하고 장난스러운 도깨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친근한 도깨비 이야기를 담은 기록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 건국의 이론적 기반을 세운 사상가 정도전이 쓴 ‘사리매문’이다. 

    정도전은 젊은 시절 지금의 전남 나주 지역 어느 외딴 마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때 경험을 소재로 쓴 글이다. 내용을 보면 정도전은 당시 ‘낮은 길기만 한데 사람은 아무도 없는’ 외롭고 무료한 상황에서 완전히 실의에 빠져 지냈다. 그러던 중 언뜻 잠결에 ‘이매망량(魅)’이란 것이 떼거리로 자기 옆에 찾아와 뛰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소란을 떠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서 ‘이매망량’은 귀신 비슷한 괴물의 통칭으로 중국 고전문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관용어다. 조선시대에는 이 말을 도깨비와 비슷한 느낌으로 쓸 때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앞서 소개한 영조시대 조선왕조실록에서 도깨비 무당을 한자로 ‘망량방’이라고 쓴 게 한 사례다. 석보상절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돗가비’가 나오는 대목은 원래 불교 문헌 ‘약사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약사경에서 ‘돗가비’에 해당하는 단어가 바로 ‘망량’이었다. 그러니까 석보상절 출간을 주도한 수양대군 등 조선 초기 사람들은 한자어 ‘망량’을 우리말 ‘도깨비’로 여긴 것이다. 

    조선 말기에도 같은 사례가 보인다. 1908년 일본인 우스다 잔운(薄田斬雲)이 조선 풍속에 대해 쓴 책 ‘암흑의 조선(暗黑なる朝鮮)’에는 조선의 독특한 요괴귀신을 다루며 ‘이매망량’과 ‘독각(獨脚)’을 묶어서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둘 다 성을 김씨라고 한다’고 쓰여 있는데, 이것은 현대까지 전래된 전설인 ‘도깨비를 김첨지라는 별명으로 부른다’와 맥이 통한다. 그렇다면 ‘독각’도 도깨비를 한자로 옮긴 말일 것이다. 

    ‘암흑의 조선’에서 ‘이매망량’은 우연히 사람이 흘린 피가 변한 괴물로, 불덩이에 휩싸인 모습이며 사람보다 덩치가 큰 악마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독각’은 피 묻은 빗자루에서 생긴 괴물이라고 한다. 이매망량은 씨름을 하고, 독각은 사람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준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대목은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사람의 친구가 되기도 하는, 요즘 널리 알려진 도깨비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알 수 없는 괴물의 통칭

    일본 에도시대 출간된 요괴 그림책 ‘금속화도속백귀’에 실린 망량(왼쪽)과 일본 도깨비 그림을 조각한 일본 기와. [위키피디아, 강우방 제공]

    일본 에도시대 출간된 요괴 그림책 ‘금속화도속백귀’에 실린 망량(왼쪽)과 일본 도깨비 그림을 조각한 일본 기와. [위키피디아, 강우방 제공]

    우리 문헌에서 도깨비의 겉모습에 대한 묘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의 ‘오니(鬼·おに)’를 그린 삽화가 도깨비 모습으로 대충 사용된 사례가 많았다는 사실이 요즘 널리 알려졌다. 그만큼 우리 선조가 그린 도깨비상을 찾는 게 쉽지 않다. 도깨비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은 기록도 드물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저서 ‘성호사설’의 ‘기선(箕仙)’ 항목에서 우리나라 ‘독각(獨脚)’이란 것이 중국 문헌에 나오는 ‘기선’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때 독각 또한 도깨비를 한자로 표기한 말로 보인다. 

    이익은 이 글에서 도깨비가 사람 흉내를 내고, 사람과 어울리기도 하는데, 그 정체는 오래된 빗자루나 절구공이이며, 모두 자기 성을 김씨라고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도깨비의 특징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설명하면서도 그 형체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았다. 사람 흉내를 낸다는 걸 보고 사람 형상과 닮은 점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정도가 전부다. 

    17세기 말 조선에서 출간된 중국어 어휘 사전 ‘역어유해’를 보면, 버드나무 정기에서 생긴 괴물이라는 뜻의 중국 단어 ‘유수정(柳樹精)’, 야차(夜叉)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이라는 뜻의 ‘야차정(夜叉精)’, 여우나 살쾡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이라는 뜻의 ‘호리정(狐狸精)’ 등을 모두 우리말 ‘독갑이’, 즉 도깨비로 번역했음을 알 수 있다. 나무와 관련된 괴물을 도깨비로 보았다는 점에서 ‘암흑의 조선’이나 ‘성호사설’과 맥이 통한다. 반면 여러 괴물을 구별 없이 모두 도깨비로 총칭한 것을 보면 겉모습에 크게 구애치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조선 초기에 간행된 불교서적 ‘월인천강지곡’에서도 부처의 제자 사리불과 노도차가 요술 대결을 하는 불경 대목을 한글로 옮기면서 노도차가 야차로 변하는 대목을 노도차가 도깨비로 변했다고 번역한 사례가 있다. 

    일본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의 도깨비 오니상. [flickr@Paul tractor]

    일본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의 도깨비 오니상. [flickr@Paul tractor]

    그러므로 도깨비가 특정한 모습을 한 구체적인 형태의 괴물이라기보다는, 귀신과 사람 사이, 잘 알 수 없는 이상한 괴물을 두루두루 일컫는 말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정도전 또한 ‘사리매문’에서 자신이 만난 이매망량은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흐릿한 것도 아니고 또렷한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요즘 일각에서 뿔이 두 개 달리면 일본 오니이고, 한국 도깨비는 뿔이 하나라느니 아니면 아예 없다느니 하며 도깨비 모습을 엄격하게 규정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옛글에 드러난 선조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옛글 가운데서 도깨비의 독특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사례를 굳이 찾아보면 19세기 이야기책 ‘기관(奇觀)’에 실린 ‘연귀취부(宴鬼取富)’라는 제목의 글이 있긴 하다. 염동이라는 사람이 이매(魅) 같은 부류를 만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염동이 만난 것은 김첨지라고 하는데, 패랭이갓 쓰고 베 홑옷을 걸치고 허리에 전대를 두르고 손에는 채찍을 쥐었다. 키는 8척이고 걸음걸이는 허둥거리며 용모는 아주 기괴해 사람 비슷하면서 사람이 아니고 귀신 비슷하면서 귀신이 아니라고 쓰여 있다. 김첨지는 비슷한 존재들과 패거리를 지어 어울리는데, 패거리의 두령을 야차라고 했다. 야차는 머리에 뿔이 하나 있고 붉은 털에 푸른 몸뚱이다. 

    ‘연귀취부’ 이야기에서 김첨지 패거리는 사람에게 잔치를 열어달라고 하고, 잔치를 열어주면 많은 재물을 베풀어 부자가 되게 해준다. 이 패거리 40명 정도가 무리 지어 광희문과 영도교에서 번쩍거리며 나타난다는 대목도 있다. 이들은 두더지 고기 삶은 것 따위의 특정한 것을 먹으면 죽어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본래 모습이란 오래된 빗자루에 뼈다귀 따위가 섞인 것이라고 한다.

    도깨비의 고향

    태국의 야차상. 방콕의 왕실 사원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에 있다.

    태국의 야차상. 방콕의 왕실 사원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에 있다.

    나는 ‘조선시대 기록으로 본 도깨비의 특징’(107쪽 상자 참고)을 정리했다. 작가로서 도깨비 이야기를 새롭게 짓는다면 나는 이런 특징을 살리고 싶다. 도깨비를 전문적으로 부리거나 섬기는 ‘도깨비방’이라는 직업이 있었다는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되살려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교육 예산 부족으로 수십 년 동안 책걸상을 교체하지 못한 학교에 도깨비와 관련해 천부적 재능을 가진 학생이 입학한다. 그 학생이 교실에 깃들어 있던 도깨비를 만나고 자유자재로 부리게 된다는 줄거리다. 

    혹은 도심 재개발을 위한 옛 집터 해체 과정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을 수도 있다. 공사장 인부가 수백 년 동안 땅 아래 묻혀 있던 빗자루나 절굿공이를 파냈다가 거기 붙어 있던 도깨비를 만나고 도깨비를 부리는 사람이 된다는 줄거리도 괜찮을 것 같다. 

    ‘사리매문’의 배경이 되는 전남 나주 한 마을이나, ‘기관’에 나오는 도깨비 이야기의 무대 청계천 영도교 등을 도깨비 관련 명소로 좀 더 다채롭게 꾸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 한국 괴물의 대표로 단연 꼽을 만한 것이 도깨비이니, 이를 상징하는 장소나 도깨비의 고향 같은 것을 한 군데 정도는 마련해놓는 게 마땅하지 않나 싶다. 

    마침 청계천 영도교는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멀지 않다. 도깨비의 신비로운 동화를 떠올리기에 그럴듯하다. 오래된 목각인형을 팔고 사는, 마치 도깨비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데, 그 사람을 만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조선시대 기록으로 본 도깨비의 특징

    (1) 귀신은 아니지만 사람이나 짐승인 것도 아니다.
    (2) 사람 소원을 들어주거나 주술을 행한다.
    (3) 사람이 부자가 되게 해줄 수 있다.
    (4) 중국 고전의 이매, 망량과 통하는 점이 있다.
    (5) 불교 문헌의 야차와 통하는 점이 있다.
    (6) 오래된 빗자루, 절굿공이, 나무가 그 본모습일 수 있다.
    (7) 불빛을 보이거나 불에 휩싸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8)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할 때도 있다.
    (9) 자신을 김씨라고 한다.


    곽재식 | 1982년 부산 출생. 대학에서 양자공학, 대학원에서 화학과 기술정책을 공부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교양서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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