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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입학 권하기 전 생각할 일

[노정태의 뷰파인더] 문제는 단지 서울대가 아니다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입학 권하기 전 생각할 일

  • ● “젊은 애 인생 망칠 일 있어요?”
    ● 부산은 대기업 본사 원한다는데…
    ● ‘대관’ 위해 서울에 본사 두는 현실
    ● 런던‧파리‧베를린‧뉴욕도 마찬가지
“아니, 젊은 애 인생 망칠 일 있어요?”

독자 여러분도 어쩌면 읽어보셨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글,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을 여는 문장이다.

내용은 제목에 적혀 있는 바 그대로다. 몇 년 전, 글쓴이는 수능 만점자 및 그 부모와 식사를 했다. 거기서 그는 만점자에게 서울대 경영학과가 아닌 부산대 입학을 권했다. 그러자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의 반발이 쏟아졌다.

“수능 만점자가 지방대학에 가는 것이 과연 인생을 망치는 일인지는 지금도 납득되지 않는다.” 글쓴이는 여전히 그 일을 곱씹는다. “이 일이 있고 얼마 뒤 그는 ‘예정대로’ 서울대 교문을 밟았다”는 것이다. 수능 만점자처럼 상징성 있는 인재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애착을 가진 고향에서 많은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지방 거주민의 마음이 ‘솔직하게’ 담겨 있는 글이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동아DB]

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동아DB]

논란과 해명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은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가 됐다. 기사 댓글란에서부터 독자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그래서였을까. 12월 9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최초 게시된 원문은 12월 12일 수정 보완됐다. 글쓴이는 “사실 이 칼럼은 필자가 5~6년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지난 1월 부산의 한 지역신문 칼럼으로 쓴 글”임을 밝혔다. “내 말은 서울대학교에 진학해 서울에 뿌리 내려 개인의 꿈을 이루는 것도 소중하지만, 수능만점이라는 그 특별한 재능을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활용해달라는 당부였다”는 추가 해명이 뒤따랐다.



사실 관계부터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의 글쓴이는 ‘오마이뉴스’의 기자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는 독자 투고를 선정해 메인 페이지에 실어준다. 그럴 때 ‘시민기자’라는 직함을 붙여주고 있을 뿐이다.

부산 해운대구 장산에서 바라본 야경. 왼쪽 끝 광안대교~오른쪽 끝 센텀시티.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부산 해운대구 장산에서 바라본 야경. 왼쪽 끝 광안대교~오른쪽 끝 센텀시티.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문제의 글을 쓴 이는 ‘부산남구신문’의 김성한 편집장이다. ‘부산남구신문’은 부산 남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 소식지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서울과 부산의 격차 문제에 있어 ‘당사자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산 사람이 부산 청소년에게 서울 대신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던 경험을 담은 글인 것이다.

김성한은 해당 수험생을 억지로 부산대에 보내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럴 힘이 그에게 있을 리 없다. 그저 한번 권유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해당 수험생이나 그 부모의 입장에서 다소 불쾌할 수 있을지언정,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할 금기는 아니지 않은가. 하물며 아무 상관도 없는 제3자들이 이렇게 벌떼처럼 달려들어 화를 내는 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

지방 분권 등을 소재로 이런저런 ‘미래 구상’을 펼치는 중년 남성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드물지 않은 존재다. 특히 술자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이 논란을 접했을 때 필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냥 또 어떤 아저씨가 자신의 큰 뜻을 펼쳤겠거니, 그런데 인터넷에서 또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12월 12일 업데이트된 판본의 글을 봐도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12월 9일 게재된 원문을 확인한 뒤에야 논란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글과 그에 대한 반응은 대한민국 이전부터 있어 왔던 아주 뿌리 깊은 인식과 제도의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롯데와 현대중공업은 왜?

잠시 화제를 돌려보자. 지난여름, “전국 지자체가 주력하는 투자유치 분야”라는 제목의 표 한 장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돌려 말하는 거 싫어하는 부산” 같은 제목을 달고 일종의 ‘개그 짤방’으로 소비된 그 표의 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경기도는 반도체 및 기존 입주기업 업종 고도화를 원하고, 인천은 신산업 및 첨단, 국내 복귀 기업의 투자 유치를 희망한다. 대구나 광주 울산 등 여러 광역시는 미래형 자동차, 물, 인공지능(AI), 수소에너지, 자동차부품 등 구체적 산업 분야를 다양하게 여럿 기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은 다르다. 길게 돌려 말하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대기업’이라는 한 단어만을 적어두고 있을 뿐이다. 대기업을 달라!

해당 표는 ‘서울경제’의 2021년 6월 24일 기사 ‘소재부품서 대기업까지… 지자체들 투자 유치전’의 일부다. 당시만 해도 아직 코로나19 유행이 채 끝나지 않았던 무렵이다. “지자체별로 차별화된 주력 사업을 앞세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살펴보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었다. 각 지자체의 보도자료를 취합해 어떤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는지 검토한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모든 지자체는 어떤 산업을 유치하고 육성해야 할지 나름의 구상을 갖고 있다. 대부분 기존에 자리 잡은 산업에 ‘플러스알파’를 하는 식이다. 단, 부산만은 그렇지 않다. 앞에서 잠깐 거론했듯 부산은 ‘대기업’을 원한다. 인구 340만의 대도시 부산에 대기업이 없을 리 없다. 즉, 여기서 말하는 대기업이란 대기업의 공장이나 지사가 아닌 본사를 의미한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며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로 기능하기도 했던 부산은, 대기업 본사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뉴스1]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뉴스1]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진다. 왜 대기업들은 부산에 본사를 두지 않을까. 심지어 부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이언츠 야구단의 모기업인 롯데마저도 본사는 서울에 두고 있다. 다른 지역 사정도 비슷하다. 현대중공업은 울산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기업이다. 하지만 2019년 한국조선해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서울 종로구 계동으로 소재지를 옮겼다. 물론 현대중공업이라는 법인 자체는 여전히 울산에 본사를 두고 있으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뿐 아니라 울산 시민들 모두가 반발했다. 사실상의 본사 이전이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한국조선해양 혹은 현대중공업 측의 설명은 이랬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그리고 기업결합 승인 뒤 대우조선해양까지 자회사로 두는 중간지주회사이자 그룹 조선사업의 투자·엔지니어링 등을 담당하는 회사로 서울에 본사를 두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거다.

현대중공업의 해명 중 조선사업의 투자, 엔지니어링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본사가 서울에 있는 편이 유리하다는 대목을 곱씹어 보자. 11월 입주를 시작한 현대중공업의 새로운 R&D(연구개발) 센터는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다. 배와 관련된 신기술을 연구하는 R&D 센터지만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권에 자리를 잡았다.

연구 개발 인력이 수도권 선호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 개발 인력들이 수도권에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는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울산이 아닌 수도권에 거주하고 싶어 하는 연구 개발 인력의 채용을 포기하거나, 그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금전적 인센티브를 지불해야 할까. 울산시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투자’라는 말로 뭉뚱그려진 또 하나의 이유는 좀 더 대답하기 까다롭다. 대한민국의 모든 은행은 결국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투자 관련 업무 진행의 필요성 때문에 서울에 본사를 둔다는 말은, 곧 ‘관’을 상대하기 위해 서울에 본사를 두어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은 본사를 지방에 두지 않는다. 심지어 부산이나 울산, 혹은 다른 도시에서 시작했고 뿌리를 두고 있는 대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상 모든 대기업의 본사는 서울에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비즈니스를 하려면 결국 ‘대관 업무’가 중요해지는 현실 때문이다.

이는 수도권 집중의 순환논법을 낳는다. 투자, 협력, 기타 등등 여러 말로 포장되는 대관 업무의 필요성 때문에라도, 결국 대기업은 서울에 본사를 두게 된다. 따라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대기업 일자리가 서울에 몰린다. 서울에 좋은 일자리가 모이니 생활 여건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그에 따라 고급 인력 및 그 가족들도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생활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마치 블랙홀이 주변의 물질을 빨아들이며 점점 더 질량이 커지고 그에 따라 중력이 강해져 더 많은 물질을 흡수하는 이치와 유사하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물리 법칙처럼 보편적이다. 런던 대 그 외 지역의 갈등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라는 극단적 정치 현상으로 나타났던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파리와 베를린으로 인재와 자원이 쏠리면서 빈부격차 및 사회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심지어 드넓은 국토를 지닌 미국 역시 ‘대도시 블랙홀’ 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동부의 뉴욕과 보스턴, 서부의 LA와 샌프란시스코 등 몇몇 대도시로 젊은 인재와 자원이 집중되며, 그 외 지역에서는 인구의 절대적 숫자와 인구밀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을 향한 집착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산 정약용마저 자녀들에게 ‘반드시 사대문 안에 집을 얻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는 편지를 남겼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의 수도권 집중은 다른 나라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맥락을 지닌다. 우리의 문화에는 ‘중앙’을 향한 애착을 넘어서는 집착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러한 집착에서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의 글쓴이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오마이뉴스에 12월 9일 게시됐던 원문 중 삭제된 대목에서, 김성한은 수능 만점으로 부산대에 갈 미래의 인재를 향해 덕담을 한다. “학업에 갈증을 느낀다면 시민기금과 시민추천으로 하버드대학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엔들 못 보내주랴.” 좋은 말 같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대한민국의 ‘중앙’인 서울행에 반대하면서, 미국, 더 나아가 세계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하버드대는 보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 중심주의에는 반발하지만 ‘중앙’을 향한 열망은 남아 있는 모습 아닐까.

수도권 집중 현상은 전 세계의 발전된 산업국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며 간단한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수능 만점자에게, 더 나아가 청년에게, 무턱대고 ‘고향에 남아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이 일으킨 논란이 작은 소동에서 멈추지 않고 보다 깊고 진지한 사회적 논의의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3년 1월호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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