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호

“文, ‘서해 피격’에 비겁한 변명 한다”

‘전략가’ 김용태 여의도연구원장의 정국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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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12-2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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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자유·시장경제 질서가 내면의 가치

    • 尹 정부, 역대 가장 어려운 대외 환경 직면

    • 지금은 이견 대신 ‘원 팀’으로 갈 수밖에

    • 민노총에 대한 단호한 대처, 중도·청년에 어필

    • 尹, ‘대장동 사건’ 절대 타협 말아야

    김용태 여의도연구원 원장은 2022년 12월 6일 진행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법과 원칙을 무너뜨려온 이익집단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중도와 청년층에 어필할 것”이라고 했다. [지호영 기자]

    김용태 여의도연구원 원장은 2022년 12월 6일 진행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법과 원칙을 무너뜨려온 이익집단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중도와 청년층에 어필할 것”이라고 했다. [지호영 기자]

    윤여준, 유승민, 박세일, 김기춘, 임태희, 서병수, 주호영, 정두언, 이주영, 추경호, 김세연…. 역대 여의도연구원(여연) 원장의 목록은 화려하다. 한국 보수를 대표하는 이름이 망라돼 있다. 대통령비서실장, 부총리, 장관, 광역단체장, 원내대표를 배출했다. 2022년 10월 20일, 이 자리에 김용태 전 의원이 임명됐다. 그는 중진급 인사다. 국회 정무위원장과 당 사무총장, 혁신위원장 등 요직을 섭렵했다. 지금은 서울 구로을 당협위원장이다.

    그런 그가 여연 원장을 맡자 “격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2010년 이후 3선 이상의 인사가 여연 원장을 맡은 사례는 2013년 이주영(당시 4선 현역), 2019년 김세연(당시 3선 현역) 뿐이다. 그 외에는 전·현직 초·재선이나 학자가 맡았다. 2022년 12월 6일 여연 원장실에서 그와 마주 앉자마자 다음과 같이 물었다.

    여연 원장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습니까.

    “정진석 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연의 명성을 살려보라’고 하기에 어떻게 명성을 되살려야 하나 고민했어요. 저 나름 욕심도 있어서 맡게 됐죠.”

    과거에는 여연이 생산한 정책, 정세 분석 보고서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최근 몇 년 간엔 보이지 않는 모습이고요.

    “국민의힘이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대해 명확한 자기 규정부터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시민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고 그것을 구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내면화된 신조로 생각해요. 시장경제 질서는 단순한 방법론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거든요. 국가의 실패가 시장의 실패보다 훨씬 폐해가 크다는 굳은 믿음이 있죠. 국가의 개입은 최소에 그쳐야 하는 한편, 그 와중에도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공정한 관리자가 필요합니다.”

    ‘국민 가치 헌장’

    철학적인 말이 이어진다. 여연의 존재감이 하락했다는 점을 꼬집었는데, 돌연 당의 가치 지향에 대해 논한다. 아마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이다. 그의 ‘가치론’을 더 들어보자.



    “윤석열 정부 1호 공약이 납품단가 연동제예요. 보수정당의 정체성에 맞느냐는 시비가 있죠. 얼핏 보면 국가의 개입이 극대화되는 정책 아니냐 싶은데,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요. 생산요소 투입 과정에서 변동되는 거의 모든 비용을 하청 기업이 짊어지도록 돼 있거든요. 이 대목에서는 공정한 관리자가 역할을 해야죠. 저는 그것이 시장경제 질서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는 수단이라 봐요.”

    납품단가 연동제는 하도급 계약 기간 중 원자재 가격이 오를 경우 원사업자가 이를 반영해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인상해 주는 제도를 뜻한다. 2022년 12월 8일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시 김 원장의 말이다.

    “지금 여연이 가칭 ‘국민 가치헌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내면부터 탄탄히 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을 떠올리면 가치 지향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잖아요. 국민의힘이 내놓는 정책을 놓고는 ‘원래 (보수적) 가치에 맞느냐’는 반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저는 충돌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시민의 자유와 시장경제 질서라는 두 축이 기본 가치이고, (보수의 가치와) 부닥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보완 조치입니다. (다만) 보완 조치가 마치 기본 가치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꽤 있었죠.”

    경제민주화를 뜻합니까.

    “경제민주화와 기본소득은 보완 조치이지 우리의 본질적 가치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둬야 할 것 같아요. 기본 가치는 변할 수 없고, 대신 사회적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보완 조치를 해나가는 작업이 보수정당의 혁신이자 개혁이죠.”

    국민의힘 강령에 있는 기본소득을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보나요.

    “지금 딱 떨어지게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다음 전당대회에서 문제 제기와 조치가 있으리라고 예상은 합니다.”

    보완 조치는 될 수 있으나 기본 가치는 아니다?

    “공동체의 유지 발전이 보수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면, 기본소득 방식이 맞는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더욱 개방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 맞는지,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 혜택이 맞는지 등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죠. 여연 원장 자격이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 방식이 취지는 좋지만 결과의 평등조차 만들어내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악전고투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인사 문제나 능력·경험 부족이 거론됩니다.

    “집권 초기 시행착오라고 봐요.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하면서 경험치가 쌓여가고 있고요. 인사 문제도 윤석열 정부만 유독 그랬던 게 아니라 대부분 정부가 초기 조각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던 건 사실이죠.”

    이날 그는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두 가지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나는 법과 원칙 정립, 다른 하나는 경제적 불안 해소다.

    “법과 원칙 정립은 윤 대통령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고 그에 대한 경험이 누구보다 많죠. 경제적 불안 해소의 경우,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나라 상황도 어렵기는 매한가지고요. 대외 문제나 전임자 문제만으로 돌릴 수는 없죠. 집권했으니 무한책임을 느껴야죠.”

    최근 일부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긴 합니다.

    “법과 원칙 문제에 관해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와 실천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대응 말입니까.

    “그렇죠. 또 북한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고 외교 전략에서도 굳건한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우호협력을 강조했기 때문에 전임 정부와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그를 만나기 전날 윤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을 겨냥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아주 강한 발언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전임 정부들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타협하거나, 심지어는 정권의 협력자들을 키우기 위해 영합했던 면이 있어요.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민노총으로 대표되는 귀족 노조의 횡포에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지지를 더 얻는 정치적 효과도 거둘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 여당에서 이탈한 중도와 청년층도 돌아올 수 있습니까.

    “민노총을 비롯해 법과 원칙을 무너뜨려온 이익집단에 대한 단호한 대처는 전통적 보수층뿐 아니라 중도와 청년층에도 어필할 수 있죠. 이것이 매우 중요한 총선 전략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와 병행해서, 경제에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죠.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잖아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전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팀이 확고한 원칙과 의지를 갖고 위기를 헤쳐나갔거든요. 그 과정에서 금융권에 덮친 시스템 리스크를 걷어내고 금융회사가 2~3배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환율 문제가 심각하고 고물가로 국민들이 신음했지만, 대신 환율 효과에 힘입어 수출이 잘됐고 이것이 투자로 선순환하면서 기업들의 능력치가 달라졌죠.”

    이 대목에서 그는 “다만 문제 제기하고 싶은 게 있다”며 말머리를 돌렸다.

    “여소야대라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정권에 기존 정책을 수정하고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게 맞죠.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룰(rule)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종부세(종합부동산세)와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신고제) 모두 잘못됐는데, (민주당이) 전혀 손을 안 놓으니 맞서 싸울 수밖에 없죠.”

    역대 최다 의석의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정권이죠.

    “거기에다 대외 환경이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죠. IMF는 국내 문제였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였는 데 반해 지금은 금융뿐 아니라 공급망 문제, 미·중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중첩돼 있잖아요. 윤석열 정부가 악전고투하고 있는데 결과는 총선에서 드러나겠죠.”

    “이 얘기 꼭 하고 싶다”

    초·재선 때 대표적 소장파로 꼽혔는데요. 현재 여당 초·재선 의원들이 주류의 견해와 다른 소신을 밝히느냐 생각하면 좀 갸우뚱합니다.

    “제가 초·재선이었을 때와 현재의 초·재선은 입장이 다릅니다. 윤석열 정부는 안팎으로 수없이 많은 반대와 걸림돌에 직면해 있죠. 내분 혹은 이견보다는 원 팀이 돼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데 집중할 수밖에요. 결국 우리가 여당일 때건 야당일 때건 내분으로 자멸했거든요. 상황상 불가피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는 보수의 대표적 전략통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세(勢)가 강한 서울 양천을에서 내리 3선을 한 ‘지역구 선거의 달인’이기도 하다.

    총선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누가 뭐래도 수도권에서 이겨야 돼요. 수도권에서 이기려면 중도와 청년층에서 우위를 보여야죠.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제입니다. 2020년에 빚 잔뜩 내서 집 샀는데, 집값 떨어지고 고금리에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차기 지도부의 공천 전략에 달려 있는데, 세 가지가 핵심일 거예요. 첫째는 경제에서 성과를 내는 것, 둘째는 늘 자멸했던 요인인 내분을 최소화해 일사불란하게 선거에 임하는 것, 셋째는 민주당 대비 인물 경쟁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됐습니다.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면서 반발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입장을 냈습니다.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겁한 변명입니다. ‘지시하지 않았다’ ‘폐기하지 않았다’ ‘조작하지 않았다’고 얘기해야지, 신뢰의 자산을 깎아버린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정오(正誤)를 말하고 정책 효과를 얘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라 생각해요. 이 문제는 타협하거나 조율할 게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이 죽음보다 더 심각한 인격·명예 살인을 당했으니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죠. 대장동 사건도 똑같아요. 기회를 날려 이익이 줄어버린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있거든요. 협치를 얘기할 수는 있지만, 이 문제는 어쩔 수 없어요. 정치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타협하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혹독한 비판에 직면합니다.”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하다가 원외로 가니 어떻습니까.

    “여의도에 있으면 거시적 관점밖에 갖지를 못해요. 낙선하고 못 만났던 친구나 후배들을 만나면 그들이 겪고 있는 불안을 실감 나게 듣죠. 오랫동안 한 집에 살기만 했지 얘기를 나누지 못했던 대학 졸업반 아이에게서 미래에 대한 불안도 듣고요. 미시적 관점에서 민생을 볼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됐죠.”

    신동아 1월호 표지.

    신동아 1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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