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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물 ‘제왕적 대통령제’ 폐기하자

[봉달호 편의점 칼럼]

  • 봉달호 편의점주

박정희 유물 ‘제왕적 대통령제’ 폐기하자

  • ● 작디작은 자리까지 낙하산이…
    ● 대통령 하나에 ‘2만 개’ 감투 왔다 갔다
    ● 노력<‘빽’…뭐 하러 열심히 일하나
    ● 내각제 해도 나라 안 망한다
    ● 낡고 부패한 이름 ‘대통령’
[Gettyimage]

[Gettyimage]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벌어진 일 가운데 해괴한 일이 한두 건이 아니다. 기억에 남는 사건 가운데 하나는 코레일유통 비상임이사에 문재인 팬클럽 출신 인사가 임명된 일이다. 코레일유통은 뭘 하는 회사인가. 과거 ‘홍익회’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회사다. 열차 안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팔고 역사(驛舍) 매점과 자판기 등을 운영하는 회사다. 투박하게 표현하자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장사가 되는’ 회사다. 기차역에 가면 ‘스토리웨이’라는 편의점이 있는데, 그것도 모두 코레일유통에서 독점으로 운영하는 점포다. 그런 회사의 ‘꿀보직’에 대통령 팬클럽 리더 출신을 갖다 앉힌 것이다.

대통령 팬클럽이 스펙인 나라

코레일유통 비상임감사는 상근직이 아니다. 하는 일이라곤 한 달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다. 수령 급여는 연 1700만 원. 연봉으로 따지면 ‘낙하산’치고는 작디작은, 초미니 낙하산에 불과하지만 회의가 고작 1시간 정도이니 시급은 무려 141만 원이다. 당시 논란이 됐을 때 당사자 박모 씨가 내놓은 해명이 가관이다. 그는 자신이 코레일유통 감사 자격이 충분하다면서 총여학생회장, 입시학원 상담실장, 문재인 팬클럽 카페지기 이력 등을 앞세웠다. 거기에 ‘간접적 편의점 운영’이라는 알쏭달쏭한 이력을 덧붙였다. 편의점을 ‘간접적으로’ 운영했다는 것은 대체 뭘까. 그러거나 말거나 임명은 강행됐고, 이 사건은 그런 자잘한 자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자기 진영 사람끼리 골고루 나눠 가진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뭐가 좀 달라졌을까? 유사한 사례는 이번 정부에서도 차고 넘친다. 한국전력 비상임이사에 임명된 A씨 경우 ‘국민의힘 조직위원장’이 마지막 경력이다. 논란이 일자 사퇴하긴 했지만 한국수력원자력 비상임이사에 거명된 B씨는 모텔과 주점 운영 경력이 전부다. 연봉이 억대에 이르는 한수원 상임감사 자리에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지역구 사무국장 출신이 앉았다. 물론 해당 사업 분야에 대한 이들의 경력은 모두 ‘제로’다.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 사장 자리에 대통령의 낙하산들이 내려앉는 것은 그렇다 치자. 조그만 비상임이사 자리 하나까지 ‘우리 진영’의 수족들이 꿰차는 것은 한국 정치의 유난한 풍경이다. 이렇게 말하면 “문재인 정부는 더했다”면서 이번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한국 정치의 오롯한 풍경이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뽑아준 것이지, ‘너희는 조금 덜하라’고 뽑아줬을까. 이러니 정치에 회의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내 손가락을 저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정부에서든 생겨나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쪽을 뽑든 저쪽을 뽑든, 한 치도 다름없는 정치다.

대통령 바뀌면 은행장이 바뀌는 나라

한국 정치의 문제가 뭘까. 뿌리부터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아가 한국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앞에서 사례로 든 행위가 없어지는 것이 한국 정치가 달라지는 것이자 한국이 새로운 국가로 다시 태어나는 길이다. 그럼 낙하산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또 낙하산은 왜 문제인 걸까.
잠시 시선을 돌려보자. 현실 정치판에 잠깐이라도 기웃거려 본 사람이라면 바로 ‘웬만한 낯짝과 정신 상태로는 정치를 할 수 없구나’ 하고 깨닫는다. 어느 거물급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명함이 수북이 쌓였다. 직함을 보면 지방의 무슨 위원장, 무슨 단체 이사, 조합장, 연구원, 교수에 ‘전직 무엇’ 등 온갖 경력으로 명함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이 정치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몇 개월 후 같은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다시 열렸다. 참석자는 적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굽신굽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앞 출판기념회 때는 정치인에게 권력이 있어 보이니 불나방처럼 몰려든 것이고, 뒤 출판기념회 때에는 그의 권력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니 찬바람만 불었던 것이다. 권력이란 그렇다.



한국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몇 개나 될까. 직접 임명하거나 임명에 개입할 수 있는 자리가 2000개쯤 된다고 한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는 7000개쯤 된단다. 마치 다단계 조직처럼, ‘대통령 권력을 차지한 진영’의 힘으로 뒤바꿀 수 있는 자리가 2만 개 정도 된다는 말까지 들린다.

2017년 9월 8일 강만수 전 산업금융지주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대우조선해양 비리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계 4대 천왕’으로 꼽혔다. [뉴스1]

2017년 9월 8일 강만수 전 산업금융지주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대우조선해양 비리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계 4대 천왕’으로 꼽혔다. [뉴스1]

결코 과장이 아닌 듯한 게, 한국에선 대통령이 바뀌면 은행장들이 바뀐다. 법률에 따라 설립된 국책은행장이 바뀌는 것이야 그럴 수 있지만 정치하고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민간 금융그룹 수장까지 교체설이 나돈다. “청와대(대통령실)에서 누구를 낙점했네” “대통령과 가까운 누가 유력하네” 하는 등 말이 들린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하나·우리·KB 금융지주 회장이 모두 바뀌었고,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더불어 이들은 ‘금융계 4대 천왕’이라 불렸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4대 시중은행장과 금융지주 수장이 모두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자 또 ‘지난 정권의 알박기’라며 이들을 밀어내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렇게 은행장 자리를 꿰찬 사람들은 임원진을 어떤 인물형으로 구성할까? 임원은 또 일선 관리자를 어떤 사람들로 채울까? 이런 것이 과연 정상인지 싶지만 이것이 바로 한국의 실상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포스코 회장이 바뀌는 것도 5년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이제는 완전히 민간기업이 된 포스코 회장이 왜 권력과 관계가 있어야 하는가. 포스코는 정권교체 때문에 회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정권만 바뀌면 교체설이 나도는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같은 민간기업인 KT 역시 마찬가지다. 정권만 바뀌면 KT 대표이사 얼굴이 바뀐다. KT 경영진은 물론이고 일반 직원 채용에까지 유력 정치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한국에서 결코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대통령 권력으로 ‘다단계’ 하는 나라

기관이나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심지어 군대에서 일반 병사가 특정 보직에 가는 것까지 ‘빽’이 없으면 안 되는 곳이 한국이다. 전화 한 통화로 일선 부대 소총수가 사단장 운전병이 되고, 이른바 ‘땡보직’이라 불리는 곳으로 옮겨간다. 어릴 때부터 그런 문화에 길들어 왔으니 권력을 이용해 누구를 어떻게 해주는 것을 자랑쯤으로 여긴다. 충분히 ‘빽’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써주지 않으면 ‘청렴하다’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만하다’거나 ‘인색하다’ 여긴다.

그러니 노력하는 것보다 줄을 잘 서고 잘 대는 것이 훨씬 경제적 투자 방법이 됐다. 노력해 봤자 뭐 하나. 누구는 20년, 30년 아등바등 노력해 올라간 자리를 누구는 정치권 언저리만 기웃거리다 한 방에 낙하산으로 내려앉는데. 부지런히 출판기념회 같은 행사에 기웃거리고 정치인 팬클럽 리더 같은 것만 하면 연봉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자리를 손쉽게 차지할 수 있는데 뭣 하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단 말인가.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래봤자 상무, 전무 정도 하다가 끝나는 것이 인생이다. 더 ‘크게’ 되고 싶으면 노력의 방향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한다. 무조건 정치권에 줄을 대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일선 과장, 부장 인사에까지 사내(社內) 정치와 ‘빽’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제대로 성공하고 싶으면 일하지 말고 정치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 한국이라는 정글의 생리다. 최종 승부처인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면 낯짝도, 인성도 모두 내던져야 한다.

앞에서 대통령이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자리가 2만 개라고 했지만 사실은 200만 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무원 수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다. 물론 말단 공무원 한 명까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능력에 따라 충분히 승진할 수 있는 사람이 정권의 향방에 따라 누락되고, 한직에 머물던 사람이 갑자기 뛰어오르는 것 역시 그리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그렇게 자리를 빼앗기거나 빼앗은 사람은 그 뒤로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

공무원뿐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 건설업체 임원으로 있는 후배가 ‘낭패’라는 듯 표정 짓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는가 했다. 관급공사를 위해 그동안 유지해 온 ‘선’이 있는데, 담당 라인이 민주당 쪽이었나 보다. 정권이 바뀌면 회사 내에서 자신의 지위도 흔들린다는 것이다. 관급공사는 모두 공개 입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무슨 말이냐고? 정말 그것이 전부라고 여긴다면 참 순진한 사람이다. 건설업체뿐 아니라 유통업체, IT업체, 언론계, 심지어 방송·연예계에 이르기까지 정치권과 연줄에 의존하지 않는 영역이 어디 있는가. 한국은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의 ‘다단계 부패 사회’가 된 지 오래다.

대통령이 총통이나 다름없는 나라

“‘민주’와 ‘평등’을 외치는 좌파 운동권 출신 인사가 왜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부패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또 “진보 세력은 부정부패 행위가 드러나도 왜 그렇게 뻔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좌파의 낯짝이 유난히 두껍기 때문일까.

앞에서 이야기한 부패 양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반세기 넘도록 차곡차곡 쌓여온, 말 그대로 적폐다. 민주당 진영 사람들은 그 시간을 ‘보수 세력의 시간’으로 여긴다. 말인즉, “너희(보수)는 50년 넘게 노골적으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너희만의 나라를 만들어왔으면서 우리가 잠깐 (혹은 일부) 이러는 것이 뭐가 대수냐”라는 것이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탓한다는 식으로 여기고, 자신들을 향한 공격을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한 보수 세력의 몸부림쯤으로 여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보수 세력은 우리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그러니 아무리 추잡한 행위가 드러나도 그들은 당당하다. ‘뭐 이까짓 것쯤이야’ 하는 태도다. 노조 간부 자녀들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되는 것도 그들은 그렇게 여긴다. “너흰 더했잖아?”

필자는 민주당 진영의 이런 태도가 전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의, 이른바 보수 세력은 반공과 안보라는 이름으로 장기 집권하며 이익 카르텔을 견고하고 두툼하게 유지해 왔으니까. 그렇다고 민주당 진영의 부정부패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려는 생각 또한 추호도 없다. 국민이 민주당 진영을 지지한 것은 ‘당신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사명을 주는 것이지 ‘너희도 적당히 해먹어라’고 용인해 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수 진영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부정부패 당사자들이 마치 역사의 면죄부라도 얻은 양, ‘이 정도가 뭐가 어때서’라는 듯 도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 운동권 출신인 필자 역시 역겨움을 느낄 정도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경제 면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 됐으면서 사회적 청렴도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인의 민족성 자체가 탐욕스럽고, 비굴하고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일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유난스러움은 오롯이 ‘독점적 정치구조’에서 비롯한다.

필자는 내각제를 지지한다. 한국에서 내각제를 지지한다고 하면 마치 동성애자가 커밍아웃을 한 것처럼 눈을 흘기며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각제에 대해 뭘 알고 그러는 걸까 싶다. 한국 국민이 내각제에 부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흔히 보고 자란 내각제가 이웃 나라 일본의 내각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각제를 실시하게 되면 한국도 일본처럼 ‘1당 장기 집권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의원들끼리 ‘짬짜미’ 해먹기 좋은 정치구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각제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전 세계를 놓고 보자면 내각제 및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하는 국가가 70~80%에 이른다. 오히려 한국처럼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나라가 특수한 경우다. 게다가 한국의 대통령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통령 1인 중심의 총통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이승만이 갖고 있던 대통령 제도에 대한 숭배 의식 때문에 정부 수립 때부터 대통령제를 채택하긴 했지만 4·19 혁명 직후 잠시 내각제로 전환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오늘과 같이 강력한 대통령 제도가 굳어진 것은 박정희 정권부터다. 박정희의 유산을 이젠 좌파나 우파나 똑같이 ‘유일무일한 제도’인 것처럼 강변하고 있으니 웃지 못할 형국이다.

독일엔 대통령이 있지만 명예직이며 정치적 실권은 모두 총리가 갖는다. 사진은 연설하고 있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P 뉴시스]

독일엔 대통령이 있지만 명예직이며 정치적 실권은 모두 총리가 갖는다. 사진은 연설하고 있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P 뉴시스]

내각제엔 일본식뿐 아니라 영국식, 독일식도 있다. 만약 한국이 내각제의 길로 간다면 일본식이나 영국식보다는 독일식으로 갈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엔 ‘왕’이 없기 때문에 일본·영국과 다르고, 한국 국민의 정치적 역동성은 한국이 일본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내각제엔 대통령이 있지만 명예직일 따름이고 정치적 실권은 모두 총리가 갖는다. 따라서 한국에서 내각제를 실시하는 방법은 어쩌면 간단하다. 한국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임에도 총리가 존재하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대통령을 그대로 두고 직접선거로 계속 뽑되, 권한은 모두 총리에게 주면 된다. “그래도 대통령을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라” 하면 나설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독일식 내각제에선 국민이 배제되거나 정치가 혼란을 겪지 않는다. 독일 정치가 ‘정치인들만의 밀실 정치’인가. 내각제를 채택한 어느 나라가 과연 그토록 혼란스럽던가. ‘내각제’라는 말만 꺼내면 “한국에서는 안 돼”라며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보면 대체 한국의 국민성과 정치의식을 얼마나 얕보기에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각제를 시행한다면 처음 경험하는 정치제도이기 때문에 초기엔 당연히 어느 정도 혼란을 겪을 것이지만 차차 익숙해질 것이다.

대통령제 아니면 망하는 줄 아는 나라

1971년 7월 1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동아DB]

1971년 7월 1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동아DB]

기실 대통령 제도라는 것은 왕정을 타도해 국왕이 없어지니 그 자리에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앉혀놓은 것이다. 대통령은 잘 알려졌듯 미국에서 만든 정치적 발명품이다. 그래서 초기엔 명예직에 가까웠고, 이름도 그저 프레지던트(president)일 따름이다. 결속력이 약한 연방국가를 지탱하기 위한 통합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대통령의 권한이 조금씩 강화돼 온 과정인데, 한국은 이를 완전히 잘못 받아들여 ‘황제’처럼 만들어버렸다. 이런 사례가 어디 한둘이겠냐만 잘못이라면 시정돼야 하는데, 대통령 제도의 문제점은 유난히 고쳐지지 않는다. 심지어 ‘좌우 대합작’까지 이루어진다. 이유는 간단한다.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좌파든 우파든 권력을 잡으면 일자리 수천, 수만 개가 무상으로 쏟아지니 이렇듯 달콤한 제도를 과연 바꾸려고 하겠는가. 상층 정치인 일부가 바꾸려 해도 밑바닥 정치인들이 기를 쓰고 반대한다. 그들 나름대로 인생을 걸고 덤벼든 도박판이 사라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치인들은 단결을 참 잘한다.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겠다”는 말이다. 2022년 대선에서도 모든 후보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당선되고 나서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은 대통령이 누가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지, 소통의 방식만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청와대를 백번 다른 곳으로 옮기면 뭐 하나. 권력을 내려놓을 준비와 검토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집무실만 덜렁 옮겨놓은 채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한 증거’라고 말한다면 국민을 상대로 한 기만극일 뿐이다.

사실 필자는 내각제를 지지하지만 정치적 이상향으로서 여길 따름일 뿐 현실에서 쉽게 이뤄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각제가 시행되면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좌우가 합작해 국민을 기망하고, 내각제를 지지하는 사람을 음흉한 밀실주의자인 것처럼 매도하며, 대통령제를 옹호하는 자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곡해하는 식자(識者)가 넘쳐나는 마당이니 내각제 개헌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일종의 절충안으로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어떻게든 분산하자’는 주장만 간곡히 하고 싶은데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여측이심(如廁二心)은 정치권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법이다. 이미 당선된 권력이 획득한 이익을 스스로 내려놓을 것이라는 예상은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결국 한국은 ‘부패의 무한루프’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허망한가.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이 네다섯 명쯤 더 탄핵되고,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프랑스혁명쯤 되는 상황까지 가야 개헌이 이루어질까. 낯선 제도를 끌어들이는 일은 말 그대로 ‘혁명’이다.

그만 작별할 때 되지 않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 정치 현실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해 인위적 다당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문제 많은 정치구조가 바로 다당 구도에서의 대통령제다. 다당 구도에선 이합집산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내각제라면 정책을 주고받는 공개적 정치 협상 가운데 연정(聯政)이 이뤄지지만(독일은 연정 합의서를 국민 앞에 공개한다) 대통령제하에서 다당 간 정치 협상은 대통령의 권력을 나눠 갖는 그야말로 ‘밀실 거래’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이익에 눈이 먼 정치꾼들만 더욱 득세하게 된다. 각설하고 내각제로 나아가기 위한 다당제라면 모르겠으되 대통령제를 위한 다당제는 안 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 차라리 양당제에서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부정부패 가능성도 낮다.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희망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다. 2024년엔 또 총선이 있다. 결과가 어떻든 개헌을 논의해 봤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치열한 진영 다툼과 갈등 구조는 결국 대통령이라는, ‘절대 반지’를 차지하기 위한 승자독식 전쟁에서 비롯한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정치·경제적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멋모르는 사람만 신념에 들떠 불쌍하게 동원된 것이 한국 정치 역사다. 어떻게든 그 시대를 뛰어넘자.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의 유물은 이제 폐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낡고 부패한 이름 ‘대통령’에게 홀가분하게 작별 인사를 고할 때다.

신동아 1월호 표지.

신동아 1월호 표지.



신동아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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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물 ‘제왕적 대통령제’ 폐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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