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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함’을 마시다… 클래스가 다른 스페셜티커피

[김민경 ‘맛’ 이야기]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스페셜티’가 될 수 있을까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특별함’을 마시다… 클래스가 다른 스페셜티커피

품질 좋은 커피를 흔히 스페셜티커피라고 한다. [Gettyimage]

품질 좋은 커피를 흔히 스페셜티커피라고 한다. [Gettyimage]

요리 선생인 친구에게 원두를 조금 나눠 받았다. 연한 갈색이 돌며 기름지지 않고 보송했다. 깨짐 없이 작은 알갱이가 온전한 원두 두 줌이다. 우리집에 있는 전자동 커피 머신에 쏟아 붇는 기름지고 까무잡잡하며 알갱이가 일정치 않은 원두와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거 한 5만 원 어치는 된다. 잘 갈아서 필터에 꼭 내려 마셔봐. 북유럽 스타일로 로스팅 한 원두야.” 언제나 내게 ‘신문물’을 전해주는 그 친구는 이번에도 새로운 바람을 타고 있는 라이트 로스팅 스페셜티커피를 주고 갔다.

나는 커피를 맛으로 마시기보다 도구를 쓰는 재미나 습관으로 마셔왔다. 그러다가 원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필터 커피를 접하며 내게도 커피 입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좋아하는 맛을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커피에서 우러나는 신맛, 그중에도 뾰족하게 고개를 쳐드는 에스프레소의 시큼함은 아주 질색한다. 신맛 즉, 산미는 어디에나 있다. 자연에서 방금 거둬들인 식재료에도 있고, 요리된 음식에도, 술과 치즈에도 있으니 당연히 커피에도 존재한다. 품질 좋은 커피의 다른 말로 통하는 스페셜티커피 세계에서도 산미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여기서 내가 진짜 알고 싶은 건 대체로 신맛이 도드라지는 스페셜티커피가 왜 좋은 커피로 여겨지느냐는 것이다. 내 경험치의 부족 탓이지만, 스페셜티커피에서 ‘스페셜’을 찾지 못하는 게 문제다.

‘지속가능성’ 장착

프랑스 스페셜티커피 전문 브랜드 테르드카페. [TERRES DE CAFE]

프랑스 스페셜티커피 전문 브랜드 테르드카페. [TERRES DE CAFE]

스페셜티커피라고 하면 SCA(Special Coffee Associations)에서 커핑 점수 80점 이상을 획득한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즉, 이력추적이 가능한 원두인지도 중요한 판별 기준이다. SCA는 커피 품질을 통제하는 기관이 아니기에 강제성은 없지만 이곳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스타 상품이 될 수 있다. 와인에도 등급 외 고품질 제품이 있듯 SCA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도 개성 있는 마케팅과 독특한 풍미로 무리 없이 팔려나가는 커피도 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 약 9만 개의 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여러 이유로 다소 줄었거나 늘었다고 해도 놀랍도록 큰 수치다. 게다가 서울 도심 여기저기를 걷다보면 크고 작은 커피가게에서 스페셜티커피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다지도 많은 스페셜티커피가 있으니 무수한 선택지가 내 앞에 펼쳐진 셈이다. 이제 나의 스페셜티커피를 찾아봐야겠다 싶을 때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다.

지인의 소개로 프랑스에서 스페셜티커피 개척자로 알려진 크리스토프 세르벨과 커피 타임을 갖게 됐다. 세르벨은 꼬마 때부터 커피 가운데서 자란 사람이다. 조부모를 시작으로 부모와 그 자신까지 규모는 다르지만 커피로스터리를 운영한다. 2009년에는 프랑스에 스페셜티커피 브랜드인 테르드카페(Terres de Café)를 설립했고, 최근 한국에도 두 군데 문을 열었다.



커피라는 단어에 가둘 수 없는 풍성한 향

스페셜티커피라는 개념은 1970년대 중반 스페인의 커피 문화가 미국에 상륙하면서 생겼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꾸룩꾸룩’ 소리를 내며 커피 가루를 통과해 내려온 커피 맛 물이 커피로 통용됐다. 이런 와중에 중남미의 신선한 원두를 볶고 갈아 풍미를 살려 내린 ‘살아 있는 커피’는 말 그대로 ‘스페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커피의 맛과 문화가 미국으로 옮겨졌고, 그때부터 품질 좋은 커피의 기준이 만들어지며 상품화가 시작했다. 어언 50년이 지난 지금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입맛도, 커피를 평가하는 기준도, 유행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를테면 커피가 품은 풍미를 700가지로 표현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세르벨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앞에도 필터를 거친 커피 한 잔이 놓였다. 연하게 우린 홍차처럼 볼그스름하면서 맑은 빛을 띠는 따뜻한 음료다. 라이트 로스팅, 요즘에는 노르딕 로스팅으로 불리기도 하는 원두를 사용한 커피다. 원두는 라이트(약), 미디움(중), 다크(강) 로스팅의 세 단계로 크게 구분해 볶는 과정을 거친다. 나를 처음 길들인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대체로 강배전 원두를 쓴다. 쓰고 기름지고 진한 것이 특징이다. 사실 나는 ‘라이트 로스팅 원두는 대체로 시큼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 만난 자리에서 맛본 커피는 찻잎을 발효시켜 허브와 과일을 보태 발효한 것처럼 풍미가 다채로웠다. 코로 느껴지는 향이 커피라는 단어에 가둘 수 없을 만큼 풍성하고 맛은 떫지도 시지도 쓰지도 않다. 이런 커피라면 SCA에서 빵점을 받더라도 내게는 스페셜티커피이겠다 싶었다. 물론 세르벨이 취급하는 모든 커피는 SCA에서 최소 80점, 대체로 85점 이상을 받은 것들이다. 눈이 동그래진 내 앞에서 그는 이 한 잔의 커피가 내 앞에 놓이기까지 거친 진짜 공정에 대해 설명해줬다.

바리스타에게 패를 보여주라

한 잔의 특별한 커피를 위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 ‘지속가능성’이다. 환경 친화적이어야 하고, 원두를 키우는 사람과 세르벨처럼 원두를 관리하고 커피로 판매하는 사람과의 협력 관계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 다음엔 매일 같이 발전하는 원두를 숙성하고 가공하며, 보관하고 유통하는 기술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기술의 토대에는 원두의 품질과 상태를 평가하는 수많은 사람의 꾸준한 본능과 경험이 있다. 농장에서 공장까지 한 발 한 발 지속가능한 과정을 밟아 고향이 어디고 누가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원두가 우리에게 온다. 우리는 수많은 원두 가운데 내 취향에 맞는 걸 찾아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점쟁이처럼 그걸 찍어 맞추려 했다. 바리스타라는 중요한 사람을 건너뛴 결과다. 무뚝뚝한 얼굴로 ‘신맛은 싫어요’라고 외치기 전 바리스타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은 어떤 원두를 추천하는지, 나는 오늘 어떤 상태인지 서로의 패를 친절하게 보여주며 주문한다. 그 다음엔 내가 속한 공간과 앉은 자리, 오감을 자극하는 카페 분위기에 바리스타의 솜씨가 겹친 오늘의 커피를 만나게 된다.

스페셜티커피가 말하는 지속가능함이란 비단 원두의 품질과 추적 가능한 이력이라고만은 볼 수 없겠다. 나라는 사람이 엄청나게 복잡한 개인의 역사를 지니고 있듯, 원두도 흙에서부터 커피 잔에 담기기까지 무수한 경험을 거쳐 왔다. 우리는 그 가치를 앉아서 누리는 행운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새해가 밝아 그런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스페셜티’가 될 수 있을까.



신동아 2023년 1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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