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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특집 Ⅱ | 핵무장론 불붙다!

‘공포의 불균형’ 속 ‘핵 가진 가난한 한국’ 원하나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공포의 불균형’ 속 ‘핵 가진 가난한 한국’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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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라늄 禁輸, 중국 보복…한국 경제 ‘쪽박’
  • ● 아마겟돈 될 ‘핵에 의한 공포의 시대’
  • ● 안보적 자해 조치…‘백기 투항’ 운명
  • ● 결심만 하면 된다? 기술적 난제 가득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익숙한 풍경이 재현된다. 숨통을 끊을 만큼 강력하면서도 포괄적인 대북 제재를 가해야 한다거나, 핵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조속히 배치해야 한다는 주문이 대표적이다.
북한이 ‘수소탄’이라고 주장한 4차 핵실험 이후에도 이러한 풍경은 어김없이, 아니 더 강경하게 재현됐다. 한·미·일이 독자적 대북 제재 방침을 마련하는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끝장 제재’를 추진 중이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쏘아 올리자 한미동맹은 사드 배치 논의에 착수했고,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를 불사한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북핵 대처와 관련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여전히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정치인과 전문가는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며 목청을 돋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면서 결단만 내리면 수년 안에 상당수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한국의 핵무장은 기술적으로도 그리 쉽지 않고, 정치·외교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안보적으로는 자해적이다. 왜 그런지 하나씩 따져보자.



‘연탄 찍기’처럼 간단한 일?

한국의 핵무장 능력이 새롭게 조명 받은 때는 지난해 4월이다.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핵 전문가와 미국 관료 및 의회 전문가가 참석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이 국내 언론에 소개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퍼거슨은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5년 내 수십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목한 원전은 월성에 있는 4개의 가압중수로다.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의 사용후 연료의 경우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보다 플루토늄의 농도가 높다. 퍼거슨은 이를 근거로 한국이 이 4개 중수로에서 5년 내 수십 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의 핵 전문가 토머스 코크란과 매튜 매카시는 한국이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 분량에 해당하는 플루토늄 2500㎏을 생산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전문가들의 이 같은 분석은 핵무장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표적 인물이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다. “2년 내 최대 100개까지 생산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 원전에 쌓인 사용후 핵연료는 1만t에 육박”하고 “이 가운데 플루토늄이 수십t으로, 핵폭탄 한 발 제작에 플루토늄 5㎏ 정도가 필요하니 핵폭탄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우리의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수준에 이르러 플루토늄 없이도 단기간에 핵무장이 가능하다. 우리는 강력화약 TNT 고폭 실험을 통해 핵폭발에 관한 공학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핵실험 없이 슈퍼컴퓨터만으로도 핵탄두 설계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가 결심하고 정치인이 방패만 돼준다면 핵개발은 연탄 찍기처럼 간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에는 중요한 문제점들이 내포돼 있다. 우선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대규모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한국은 재처리와 관련한 연구개발 기술을 일정 수준 축적했지만, 아직 상용화해본 경험은 없다. 북한 영변의 재처리 공장과 일본 도카이무라 재처리 공장의 연간 플루토늄 생산량이 20㎏ 정도다. 따라서 한국이 연간 수백㎏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재처리 공장을 짓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는 게 기술적으로 타당하다.



핵 문턱 넘으려다간 ‘쪽박’

레이저 농축 기술 역시 상용화한 기술로 보기 어렵다. 일부 국가에서 레이저 농축으로 핵연료 생산을 시도하고 있지만, 대세는 여전히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이다. 핵심적인 이유는 레이저 기술이 우라늄 농축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원심분리기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더구나 한국은 2000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고 레이저를 이용해 0.2g의 고농축 우라늄을 실험용으로 추출했다가 미국과 IAEA에 발각된 적이 있다. 이후 한국의 레이저 농축 기술은 정체 상태에 있다는 게 이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의 전언이다.
한국이 핵실험 없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핵실험은 실제 핵실험을 통해 다량의 데이터를 확보한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핵실험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조차 핵무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제 핵실험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며,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거부하는 실정이다. 핵실험 경험도 전혀 없고 데이터도 전무한 한국이 과연 ‘실험 없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더구나 현대식 핵무기는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도록 소형화가 필수적이고, 소형화는 실험을 통한 데이터 축적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한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고 총력을 기울이면 핵무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갈수록 촘촘해지는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뚫고 핵 문턱을 넘어서려다간 쪽박 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독재국가인 북한과 달리 민주국가인 한국에선 국민의 동의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다시 말해 한국의 핵무장은 정치외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력·의료大亂 불 보듯

먼저 국제적 현실부터 보자.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면서 IAEA의 상시 감시를 받는다. 몰래 핵무기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려면 북한처럼 NPT와 IAEA를 탈퇴해야 한다. 한국이 이런 결정을 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유엔 안보리 회부가 불가피해진다. ‘NPT를 탈퇴할 경우 안보리 차원에서 다룬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안보리의 제재는 핵무기 개발 수위 및 태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가장 먼저 취해질 조치 가운데 하나가 우라늄 금수(禁輸)다. 비축해놓은 핵연료가 떨어지면 ‘원전 제로’를 강요받을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전력대란(大亂)과 의료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이 핵 개발 고집을 꺾지 않으면 경제 제재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라크, 북한, 이란 등의 사례를 종합해보면 국제사회의 수출 통제 품목은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으로 전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공산품을 포괄할 것이다.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85%에 달한다. 한국 경제는 국제 금융시장과 신용평가사의 움직임에도 대단히 민감하다.
한국에 대한 제재는 앞서 언급한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일부 국가가 독자 제재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동맹국인 미국, 그리고 한국의 준(準)동맹으로 가고 있는 일본은 독자 제재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강도 높은 경제 제재로 한국의 핵무장 의지를 꺾으려 들 것이다. 특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국의 제재는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핵무장 시도의 결과는 자명하다.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반면 핵클럽에 가입하기도 전에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농축 공장을 만들어도 우라늄 금수 조치로 인해 곧 소용없게 된다.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재처리 공장을 짓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이 한국의 사용후 연료 형질 변경, 즉 재처리 시설 보유에 동의해줄 가능성도 극히 낮지만, 설사 미국이 동의해줘도 문제가 따른다. 재처리 시설은 으뜸가는 위험 시설이기에 해당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을 야기해 입지 선정 단계부터 커다란 진통이 따를 것이다. 재처리 시설을 만들어 가동하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피격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피격당하면 그 자체가 엄청난 방사능 물질을 뿜어내는 핵폭탄이 될 위험이 크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 실질적 핵무장을 위해서는 핵실험이 필요하다. 과연 좁은 영토에 5000만 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핵실험을 할 수 있을까.


北과 핵군비 경쟁 불리

안보적으로도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독자적 핵무장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의 다른 표현이다. 기실 한미동맹은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포기’와 ‘미국 핵우산 제공’의 교환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한미동맹의 파기까지 감수해야 한다. 미국을 믿지 못하니 핵무기를 갖겠다는 한국을 방치하면 미국의 세계 전략은 큰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미국은 초장에 한국의 기를 꺾어놓으려 할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핵무장을 고집하면 한미동맹에 일대 파란이 불가피해진다. 과연 독자적 핵무장이 한미동맹과 맞바꿀 정도의 안보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또 한 가지, 핵무장 추진에 따른 난관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북한과의 핵군비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재처리에 이르기까지 독자적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놓고 있다. 현재 20개 가까운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영변 핵시설만 가동해도 매년 7~8개의 핵무기를 추가 생산할 수 있다. 영토의 80%가량이 산악 지대이고 수천 개의 지하시설도 갖춘 터라 2차 공격 능력에 필수적인 핵무기의 은폐 및 분산 배치도 용이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우라늄의 자체 조달이 어렵고,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려면 3년 안팎의 시간이 족히 걸린다.
핵전쟁 시나리오에서도 한국이 훨씬 취약하다. 대도시와 거대 산업시설뿐만 아니라 24기에 달하는 원전과 사용후 연료 중간 저장소 등이 핵무기로 피격당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아마겟돈’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남북한이 ‘핵에 의한 공포의 시대’에 진입하면 우리에게 압도적인 공포의 불균형을 초래할 것임을 예고한다.



감정적으론 이해되지만…

핵무기를 갖자?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 6개국 가운데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핵 강대국이고 북한도 기술적으로는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본도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잠재적 핵 강대국이다. ‘왜 우리만 안 되느냐?’는 반문은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자적 핵무장은 기술적으로 그리 쉬운 것이 아니고, 정치외교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안보적으로는 자해적 조치와 다르지 않다. 핵무장은 ‘헬조선’을 우려가 아닌 현실로 만드는 첩경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미국의 핵우산을 비롯한 강력하면서도 현명한 대북 억제력은 불가피하다. 이건 이미 있는 것이다. 두 가지가 추가돼야 한다. 하나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협상다운 협상을 해보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_미관계 정상화 등 근본적인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大)담판을 시도해야 한다. 이 같은 대안들도 익숙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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