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없인 성장 없다, 선의의 경쟁 하라
남과 비교하는 ‘이기적 경쟁’이 고통 원인
공부하라, 그리고 일을 놓지 마라!
최선 다하는 사람이 성공과 행복 누린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하이델베르크는 1386년 독일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학문의 도시’다. 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낭만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네카어강을 사이에 두고 구도심 건너편 언덕에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이마누엘 칸트가 2.5㎞에 이르는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칸트뿐 아니라 헤겔과 하이데거 등 세계적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으며 철학적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교토에는 ‘철학의 길(哲学の道)’이 있다. 1482년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별장으로 지은 은각사부터 선불교의 대본산 난넨지까지 이어지는 약 2km의 산책로다. 일본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이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겼다고 해서 ‘철학의 길’로 이름 붙었다.
서울에도 ‘철학자의 길’이 있다. 106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매일같이 산책하던 ‘작은 안산’ 산등성이에 난 오솔길이다. 25년 전 팔순을 갓 넘긴 김 교수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이사 온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뒤편에 위치해 있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걸어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작은 안산’에 조성된 ‘철학자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 교수는 “4월이 지나면 (한국 나이로) 107세가 되는데,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데 산책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920년 4월 23일생인 김 교수는 4월 24일로 만 106세가 됐다.
“독일에 갔더니, 국민 건강을 위해 좋은 운동 두 가지로 수영과 자전거 타기를 얘기해요. 수영이 건강에 좋은 것은 알았는데, 자전거 타는 건 왜 그런가 했더니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걷는 게 적어져 70~80대가 되면 다리 힘이 빠져 건강이 나빠진다는 거예요. 자동차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전거를 타면 다리 힘이 길러져 건강해지는 거지요. 요새는 그것도 바뀌어 걸으라고 해요.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걸어라. 그게 세계적인 장수 비결로 통해요.”
팔순이 지나자마자 김 교수가 지금 살고 있는 연희동 집으로 이사 온 이유는 집 뒤 ‘작은 안산’이 좋아서였단다.
“전에 살던 집은 터널이 생긴 후 자동차가 많이 다녀 소음이 심했어요. 그래서 어디가 좋을까 알아보다 ‘산’이 아쉬워 이리로 오게 됐어요. 여든한 살에 이사 왔으니 올해로 25년이 돼가네요.”
25년 동안 매일같이 ‘철학자의 길’ 산책
‘철학자의 길’은 김 교수 집에서 1분 남짓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초입에는 ‘철학자의 길’ 조성을 기념해 식재한 기념식수가 있었다.“처음 이사 왔을 때는 산에 길이 없었어요. 내가 맨 처음 길을 개척했기에 누구보다 이 길을 좋아하고, 이 산을 사랑하게 됐죠. 친구들이 찾아오면 ‘산에 함께 가볼래’ 하고 같이 올라오기도 했고요. 매일같이 이 길을 다니다 보니 이웃들과도 가까워지게 됐지요.”
김 교수는 개척자답게 ‘철학자의 길’ 이모저모를 자세히 소개해 줬다.
“하루에 한 번쯤은 올라왔어요. 걷는 게 건강에 좋으니까 건강을 위해서도 올라오고. 원고 쓰다 더 생각하고 싶으면 올라와서 또 걷고. 처음에는 저쪽(철학자의 길 오른쪽)에 길이 없어 가지 못했어요. 지난해 구청에서 ‘철학자의 길’을 조성하면서 길을 내 편리하게 다닐 수 있게 됐지요. 봄에는 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요. 그동안 나무들이 더 울창해졌어요. 키도 훌쩍 큰 것 같고, 꽃도 더 많아졌어요. 한번 올라오면 산 중턱 바위까지 왔다가 잠시 앉아 쉬었다 내려가곤 했지요. ‘철학자의 길’이 만들어진 뒤로는 이 길을 다니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어요. 이름은 ‘철학자의 길’이지만 동네 사람 ‘모두를 위한 길’이 됐지요.”
처음 김 교수가 산을 오르내릴 때는 초입부터 중턱까지 가파른 직선코스로 오른 뒤 능선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지난해 서대문구청에서 완만한 경사로의 덱(deck) 길을 조성한 덕에 편리하게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고.
덱 길을 따라 산허리에 오르니 오른쪽에 야트막한 동산이 나왔다. 동산을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과 곧바로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두 갈래 산책로가 있었다. 둘레길을 돌아 오른쪽으로 반 바퀴 돌자 벤치가 나왔다. 잠시 앉아 김 교수와 담소를 나눴다. 김 교수는 ‘철학자의 길’에 얽힌 에피소드는 물론 강원 양구군에 조성된 ‘철학자의 집’, 그리고 전북 완주군에 설치된 ‘철학자의 시비(詩碑)’에 대해 들려줬다.
‘철학자의 집’ 그리고 ‘철학자의 詩碑’
“강원도 양구에 가면 ‘철학자의 집’이 있어요. 우리 집 서재에 있던 책과 책상, 소파를 가져다 꾸며놓은 곳이에요. 책과 가구를 거기로 다 보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변변한 게 없어요.”강원 양구군은 양구인문학박물관 2관을 ‘김형석·안병욱 철학자의 집’으로 꾸며 운영하고 있다. 2012년 처음 문을 열었고, 2024년 9월 3개월에 걸친 대수선을 마치고 재개관했다. 재개관 때에는 김 교수를 초청해 ‘인문학 소양 함양을 위한 치유 토크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양구군은 김형석·안병욱 선생의 고향이 북한인 데다 양구가 지리적으로 북쪽과 가까워 두 분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한 차원에서 ‘철학자의 집’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학자의 집에 책과 가구를 모두 보내서인지 정작 김 교수가 기거하는 연희동 자택은 단출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와 가전만 놓여 있었다. 대신 거실 양쪽 벽에 걸린 다양한 가족사진이 김 교수의 106년 삶을 증언하고 있었다.

김형석 교수가 '철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박해윤 기자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진리로 향하는 그리움과
겨레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그 짐은 무거웠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 김형석 ‘백 년 인생’ -
김 교수와 함께 걷는 동안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려 ‘철학자의 길’이 ‘꽃길’이 됐다. 오른쪽 동산을 중심으로 난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 작은 안산 정상으로 난 오르막길로 향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큰 바위 두 개가 길가에 놓여 있었다. 김 교수가 가던 길을 멈추고 바위를 가리키며 입을 뗐다.
“처음 나 혼자 이 길을 다닐 때는 여기 바위 있는 데까지 올라와 바위에 잠시 앉아 쉬었다 내려가곤 했어요.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가팔라 힘드니 여기까지만 안내해 드릴게요. 나머지 길은 천천히 둘러보고 오세요.”
김 교수가 바위 옆에 설치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철학자의 길’은 산 중턱 바위를 지나서도 정상까지 한참 더 이어져 있었다. 조금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면 다시 평평한 길이 나왔고, 산 정상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김 교수의 호를 딴 정자 ‘송촌정’이 나왔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장이 구비돼 있는 ‘송촌정’은 ‘철학자의 길’을 걷는 이들의 쉼터이자 열린 도서관이다. 책장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책 여러 권이 꽂혀 있었다. 산책 나온 주민이 잠시 송촌정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더 읽고 싶은 이들은 집으로 책을 가져갔다가 다음 산책 때 가져다 놓기도 한단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다 읽은 책을 다른 이들과 나누려 송촌정 책꽂이에 꽂아두기도 한다고. ‘철학자의 길’ 순례를 마치고 바위 옆 벤치에 앉아 있는 김 교수에게 돌아와 대화를 더 이어갔다.

갈등과 경쟁 없으면 성장 못해
김 교수는 ‘성공한 삶, 행복한 삶’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인간에게 100리 길이 주어져 있다면 초·중·고등학교까지 30리는 나라가 교육을 맡아요. 대학에 안 가거나 못 가는 사람은 나머지 70리 길을,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도 나머지 60리는 더 가야 성공하죠. 그런데 ‘나는 대학도 다니지 못했는데, 할 수 없지’ 하는 사람은 70리를 포기한 것이고, ‘나는 대학까지 다녔는데 더 배울 게 있나’하며 중단하면 60리를 가지 않아 실패하게 돼요. 나는 중·고교만 졸업하고도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서 대학 출신보다 중책을 맡은 지도자를 여럿 보았어요. 주어진 책임과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갈등이 없고 경쟁이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성장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1년 내내 농사지을 수 있고 과일이 풍부한 동남아시아가 왜 우리보다 뒤처지게 됐을까요. 그건 경쟁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는 일본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을 예로 들었다.
“일본 정부가 원주민을 도와주려 집도 지어주고 생활비도 대줬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됐나요. (원주민이) 노력도 안 하고 술만 마시다 사라졌어요. 경쟁이 없으면 당장은 좋을 것 같지만 개인도 사회도 성장하지 못해 결국 도태되고 말아요. 그런데 경쟁이 고통스러운 건 자꾸 남하고 비교하는 ‘이기적 경쟁’을 하니까 그래요. 경쟁하되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해요. 누구보다 잘하겠다는 비교 경쟁을 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 직장에서도 불평불만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 그런 선의의 경쟁을 해야 발전이 있어요.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 그게 성공이고 행복이에요. 선의의 경쟁은 앞선 사람에게 박수 쳐주고 ‘나도 다음에 잘해야지’ 하며 함께 노력하는 경쟁이에요.”
김 교수는 은퇴 이후의 삶을 눈앞에 둔 중년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나이 60쯤 되면 대개 남자들은 정년퇴직하고 가정으로 돌아오고, 아들딸은 독립해서 사회로 나가요. 그런데 그때 집에 돌아온 남자들이 ‘가정에 돌아왔으니 이것으로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거기서 끝나요. 60대가 되면 제일 중요한 게 다시 출발하는 거예요. 그때 잘 출발하면 70~80대까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요. 그럼 뭘 해야 하느냐. 첫째는 공부를 해야 해요. 독서든 뭐든 공부를 해야 해요. 두 번째는 뭔고 하니, 일을 놓치지 말아야 해요. 돈을 벌기 위해 수입을 올리려 일하지 말고, 일 자체를 사랑해서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는 봉사활동도 좋아요.”
김 교수는 캐나다 연금을 받는 은퇴 부부가 한국에 와서 병원에서 2~3일 봉사활동을 하는 사례를 들려줬다.
“그분들이 돈이 없어 일하는 게 아니에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일을 안 하게 되면 행복까지 잃어버리거든요. 또 한 가지, 은퇴 후에는 젊었을 때 못 했던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좋아요.”
김 교수는 104세에 펴낸 책 ‘백년의 지혜’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이렇게 피력한 바 있다.
“100세를 넘기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일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돕는 데 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더 큰 봉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내 인생관이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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