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호

포커스

‘막강 통상 전문 인력 속히 갖춰야’

한미 FTA 재협상 이렇게 대비하라

  • 정인교|인하대 대외부총장(국제통상학 전공)

    입력2017-07-20 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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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말뿐 통상 당국 확정 없어
    • 국내 정치 위해 한미 FTA 재협상 카드 이용
    • 재협상 요구, 자동차·철강 무역 불만 해소용
    • 자동차, 국산 메이커의 대미투자로 달랠 수 있어
    • 철강, 한미 관계보다 미중 관계에서 파악해야
    문재인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자체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북핵,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등 안보 현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양 정상 간에 신뢰를 구축한 무난한 회담이라는 평가와는 달리, 통상 현안에 대해서는 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끌려다녔다는 지적도 있다. 한미 FTA, 무역불균형 등 통상 분야에서 합의된 것이 없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돌발 발언과 개인기로 한국을 압박했다.



    ‘무역협정 재검토안 10월까지 만들라’


    정상 간 합의가 없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재협상을 트위터를 통해 제기하더니, 각료들이 참석한 확대 정상회담 인사말에서 “(한미 FTA가) 미국에 공정하지 않고, 우리는 (재협상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발언할 시점에 느닷없이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게 한미 FTA 재협상 문제 제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측근의 발언은 트럼프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정상이 순차적으로 발언하는 외교적 관례를 깨고 TV로 생중계되는 정상회담을 자기 지지자에 대한 메시지 전달 기회로 활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미 무역대표부(USTR)가 7월 12일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협정 개정 필요성을 고려하기 위해’ 한미 FTA 특별위원회 개최를 제안했지만, 아직은 재협상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심스럽지만 한미 FTA 재협상 건이 다분히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일 뿐 미국 통상 당국이 재협상 추진을 확정한 사안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몇 가지 더 있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을 수차례 직간접적으로 언급했지만, 한미 공동성명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 취임 100일째인 4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 미국이 이행시킨 모든 무역협정(FTA, WTO)에 대한 재검토 보고서를 10월말까지 제출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여기에는 한미 FTA도 포함되는데, 이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에 재협상 절차를 개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양국이 폐지 합의를 하기 전에는 유효한 한미 FTA에 대해 “만기가 이미 지났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넷째, 한미 FTA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이 다소 완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 당초에는 한미 FTA에 대해 ‘무시무시한(horrible)’ 협정이라고 하더니 조금 지난 시점에선 ‘매우 나쁜(very bad)’ 것으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거친 협정(rough deal)’으로 표현이 바뀌어갔다. 재협상 의사가 강하다면 강한 표현을 유지했거나 정도를 더 심하게 했을 것이다.



    “자동차·철강 무역 굉장히 심각”

    통상협정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재협상 주장은 상대국에 무역수지 적자 해소 방안을 강구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용도일 가능성이 크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상품분야에서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국가와의 FTA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지금껏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누려온 서비스 분야,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로 인한 로열티 등 자국이 유리한 분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게 그 방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언론인이 참여한 행사, 특히 TV로 중계되는 상황에서 한미 FTA 재협상을 유난히 강조한 것도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인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중서부 러스트벨트(Rust Belt) 유권자를 의식한 때문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통상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여러 정황 속에서 향후 한미 간의 통상 문제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특정 산업을 지목해 통상 이슈화하려는 속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때문에 지난 5년간 대(對)한국 무역적자가 2배 증가했다”면서 “자동차와 철강 무역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불공정무역 업종을 특정한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자동차를 포함한 수송기계 분야 대미 무역흑자는 178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대미 무역흑자인 232억 달러의 77%를 점하고 있다. 반면, 한미 FTA 발효 이후 우리나라의 미국산 자동차 수입 또한  빠르게 늘었다. 미국 차가 독일 차 다음으로 국내 수입 차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통계치를 제시해도 미국 통상 당국은 자동차가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요인이란 점만 되레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 대한 미국의 무역 불균형 시정 요구가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동차에 비해 철강은 더욱 더 미 대통령이 직접 불공정무역 업종으로 지적할 정도의 분야는 아닌 듯하다. 국산 철강 제품은 꽤 오래전부터 미국의 수입 규제를 받아온 대표적인 품목이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 철강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 조사가 8건이나 진행됐다. 올 3월 미 상무부는 국내 후판 생산 P사에, 4월엔 유정용 강관 수출업체인 N사와 H사에 대해 두 자릿수 반덤핑 관세를 매겼다. 대미 총 수출 중 철강의 수출 비중은 2014년 6.1%를 차지했지만 미국의 반덤핑 규제 이후 지난해에는 3.5%로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FTA 이행관리 무난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 의사를 밝히면서 불공정무역의 사례로 자동차와 철강 분야를 언급한 사실은 예사롭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한미 FTA 재협상 발언은 자동차와 철강에 대한 자국의 불만에 대해 즉각 해소 방안을 마련하라는 압력 수단일 뿐이다. 한미 FTA의 경우 협정 발효 5년차로 아직 협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문제점이 제기되지 않고 있으며, 그동안 30회 이상의 협정이행위원회와 4차례의 장관급 회담으로 협정 이행 현안을 무난하게 관리해왔기에 재협상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나 비중으로 볼 때 한미 FTA에서 자동차만 분리하면 재협상 주장을 차단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우리나라 FTA 정책의 최대 수혜 품목을 제외하면 FTA 이익의 균형이 흔들리게 되므로 우리 통상 당국이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국산 메이커의 대미 투자 확대로 미국의 불만을 충분히 완화할 수 있다.

    철강은 한미 양자 관계보다는 미중 관계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반덤핑 규제가 가장 빈번하게 적용되는 품목이 바로 철강이고, 무역 규제의 역사도 깊다. 올해 5~6월 2개월 동안 미국은 철강에 대해 7건의 반덤핑 관세 부과, 2건의 덤핑률 판정, 6건의 덤핑 예비조사 등 총 15건의 무역 규제 조치를 취했다. 현재 미국은 철강 순수입 국가이지만, 철강산업은 19세기 후반 미국 산업화 과정에서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옛 제조업 중심 지역인 미국 러스트 벨트 주들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는데, 이는 쇠락한 전통 제조업 부활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미국의 철강 생산량은 7800만t으로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인도 다음으로 세계 5위 생산국이다.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8억800만t으로 세계 전체 생산량의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초과 생산설비 추정치인 8억1100만t과 같은 규모다. 즉 중국이 구축한 생산 역량이 전 세계적 공급 초과 물량이 된 셈이다.



    중국 철강산업 호황

    중국이 대외개방을 선언한 1978년 일본을 방문한 덩샤오핑이 당시 신일철(新日鐵) 요시히로 회장에게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중국에 건설해주길 요청하자 요시히로 회장이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중국의 철강 굴기(崛起·우뚝 섬)가 시작됐고, 바오산강철, 우한강철, 셔도우강철, 안산강철 등 세계 수준의 철강 회사 외에 지방 차원의 중소규모 철강 회사까지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돼 공급초과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중국 당국은 산업구조조정 필요성을 느끼고 낙후시설 도태 등 철강 구조조정, 오염물질 감소와 에너지 절약, 신기술 개발 등에 나서고 있다.

    오바마 정부 시절 중국산 철강은 미국의 대표적인 무역 규제 품목이었다. 매년 개최되는 미-중 간 ‘전략 대화’에서도 철강산업 구조조정은 단골 이슈였다. 미국의 규제로 중국은 H빔을 비롯한 철강 수출 길이 막히자 지난해 대미 수출 축소와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약속했다. 국유 철강업체인 바오산강철과 우한강철을 통합해 바오우강철그룹으로 개편하고, 인도 아르셀로미탈 다음의 세계 2위 철강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이는 합병만 한 것일 뿐 생산규모를 줄인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수요자는 품질을 이유로 중국산과 국산 철강의 가격 차이를 40~50달러 정도 뒀고, 중국산 철강 가격은 국내 시장 여건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중국의 철강 수출국이 다변화되고 품질이 개선되면서 이제는 그 차이가 20달러 정도로 줄어들었고, 중국 기업이 글로벌 가격을 결정하는 형국이다.

    중국 철강업체들은 미국의 강력한 규제를 피해 아세안, 아프리카 등 철 가공 업체가 많은 국가로 수출을 늘려 예상외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과 합의한 철강 구조조정은 차일피일 지연시키는 한편으로 세계 철강 시장에서 주도권을 계속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 과거에는 품질을 고려해 한국 기업들이 구매하는 중국산에 대해서만 아세안 국가들이 수입했다. 하지만 중국산 품질이 개선되면서 중국산을 수입하는 아세안 국가가 늘고 있고, 수요 기반이 확장되면서 중국 철강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철강 수출 통계를 보면 놀랍게도 최대 수출 대상국이 우리나라이고 올해 4월 기준으로 1년 수출량은 전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베트남(2위), 필리핀(3위), 태국(4위), 인도네시아(5위)에 대한 수출은 줄었다. 미국 시각에서 보면 이는 원치 않던 ‘풍선효과’였다. 미국이 한국의 철강 우회수출을 문제 삼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저가이면서 품질이 양호한 중국산 철강을 수입해서 가공하거나 부품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한미 FTA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는 데에도 이 방법은 유용하다. 철강 제품 대부분은 B국가의 원료를 가지고 A국에서 새 제품을 만들어 원료의 물품 분류 기호(Tariff Heading)가 변경되면 원산지를 A국으로 간주하도록 원산지 기준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통상교섭본부 부활 추진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철강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무역 규제를 하고 산업 구조조정을 요구했는데, 다른 국가에서 중국산을 수입함에 따라 중국 기업이 되살아나는 풍선효과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싶은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산 철강 우회수출을 거론한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산 철강을 가장 많이 수입하고, 중국산 철강을 사용해 만든 제품을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 수출하는 상황을 시정해달라는 우회적 요구다. 

    트위터와 언론을 적극 활용하고 상대방이 예측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상대를 압박하고 전략상 우위를 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기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폭넓게 발휘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FTA 재협상 건을 일관되게 제기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 또한 재협상 대책을 미리 준비해야 하겠지만 우선은 미국 행정부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FTA 재협상 발언 및 강경한 자세는 전략적 포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협상 개시 및 협정 폐지는 공식 채널을 통해 문서로 요구해야 함에도 언론을 통해 여론전을 벌이는 것은 다분히 국내 정치를 위해 한미 FTA를 이용하는 트럼프식 접근 방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FTA 통상정책의 강화를 국정목표의 하나로 설정하고 통상교섭본부 부활을 추진 중이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성과로 꼽히고 있고, 이 협상을 타결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미 통상 당국을 논리적으로 설득한 막강한 통상 전문 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FTA 재협상이든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 협상을 위해서든 한미 FTA 협상 당시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통상 역량이 강화되어야 하고, 통상 문제 해결에 범국가적 역량이 결집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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