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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절대반지 다루는 법 시민들이 알아야”

‘헌법을 쓰는 시간’ 저자 김진한

  • 김현미 기자|khmzip@donga.com

“권력이라는 절대반지 다루는 법 시민들이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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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근혜를 나쁜 대통령으로 만든 절대권력의 문제
  • ● 의원내각제가 되면 제왕적 권력이 사라진다는 착각
  • ● 출세에 목매는 사회, 권력에 복종하는 국민
  • ● 노동시간 단축돼야 정치도 달라진다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질문받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누구도 질문하지 못했다. 헌법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를 향한 질문이 시작되었을 때다. 질문들이 등장하면서 헌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끝내 질문받기를 거부했던 그는 추락하고 말았다. 나쁜 권력에 대한 가장 위력적인 대응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헌법의 시간’ 에필로그)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권력자가 함부로 무시한 헌법을 광장의 바닥에 또렷하게 새겨놓았다. 통제되지 않은 나쁜 권력은 ‘탄핵’과 ‘파면’이라는 글자 뒤로 사라졌다. 이제 다시 헌법을 쓰는 시간이다. 새로 쓰는 헌법의 저자는 주권자인 ‘시민’이어야 한다. 물론 헌법을 다시 쓰기 전에 우리는 먼저 질문하고 토론해야 한다. 국가권력은 무엇인가. 스스로 괴물로 변해가는 권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권력을 제한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작동시키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어야 하는가.

김진한(49) 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돌연 한국을 떠난 지 2년 만에 ‘헌법을 쓰는 시간’이란 책과 수많은 질문을 안고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의 시작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겨울, 공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외로움과 절망감에 쪼그라들던 사법고시 준비생 시절 유일한 위안이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는 것이었다. 다수의견으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반대의견도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헌재 결정문은 그의 영혼을 열광케 했고 헌법이 지닌 언어의 힘에 매료됐다. 언젠가 헌법의 논의와 질문을 담은 책을 쓰겠노라고 결심했던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진짜 적은 우리 안에 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됐을 때 무슨 생각을 했나. 
“파면이란 결과는 당연하지만 긍정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적이 ‘박근혜’였다면 승리겠지만 우리의 적은 ‘박근혜’가 아니다. 어찌 보면 진짜 적은 우리 안에 있다. 박근혜를 나쁜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우리라는 이야기다. 우리 시스템은 왜 자꾸 무너지는가, 대통령이 잘못된 정치를 하는데 왜 아무런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묻지 않고 넘어간다면 우리는 또 그런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탄핵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괴물’한테 우리를 내주게 된다.”



또 다른 괴물이란 무엇인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영혼을 타락시키는 ‘절대반지’의 마력을 떠올리면 된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만들어낸 1987년으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마다 희망에 차 이륙했지만 우리 헌법 질서는 정확하게 그 이륙 횟수만큼 반복해 추락했다. 왜? 국가권력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지원정대는 암흑의 세력에 쫓기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절대반지를 이용하지 않는다. 반지를 사용하는 순간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선악은 대부분 권력을 사용하는 자의 의도가 아니라 ‘제한되는가’ 혹은 ‘제한되지 않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 책에서 나는, 갖고 있을 수밖에 없고 갖고 있어야 하지만 갖고 있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반지의 권력을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헌법을 쓴다는 것의 의미

책 제목이 ‘헌법을 쓰는 시간’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것인가. 
“헌법이란 ‘국가권력을 제약하고 길들여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약속의 규범’이다. 헌법은 모든 권력과 법 위에 존재하는 최고의 법이다. 하지만 헌법에는 강제수단이 없다. 그 효력을 거부하는 권력에 복종을 강제할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헌법은 최종적 효력을 국민에게 의존한다. 국민들이 헌법을 알고, 최고 권력도 헌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고 있을 때만이 권력으로 하여금 순순히 따르게 할 수 있다. 시민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할 때 비로소 헌법은 쓰이는 것이다. 우리는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그것을 경험했다. 또 헌법의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다. 법은 정치가 만든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감시함으로써 더 공정하고 더 정의로운 법을 만들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정치인들에게 맡겨버리면 결국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그들에게 유리한 법이 만들어진다. 법을 시민의 도구로 만들 것이냐, 힘 있는 자들의 도구로 만들 것이냐는 정치에 달려 있다. 시민의 관심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헌법이고,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실현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헌법의 올바른 작동이라는 지점에서 하나로 모아져야 바람직한 정치와 헌법이 동시에 가능하다.”

대통령 탄핵 이후 헌법 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헌법 개정을 정치인들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일부 전문가와 학자들에게 맡겨버리면 정략적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헌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것은 주권자의 고유 권한이다. 헌법 개정 토론에 시민들이 개입해야 한다. 대통령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면 어떻게 제한하고 견제할 것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일단 토론에 참여하려면 헌법의 원칙을 알아야 한다. 법치주의, 민주주의, 삼권분립 같은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의 원칙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곧 시민이 헌법을 쓰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통령제 대신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인가.
“마트에서 상품 고르듯 정부 형태를 바꾼다고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또 실패할 확률이 거의 100%다. 우리 국민은 의원내각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모른다. 의원내각제의 본질은 행정부와 의회 권력의 통합이다. 여당과 야당은 여전히 큰 권력을 쥐기 위해 싸울 것이다. 내각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대통령이 사라지면 총리라는 또 다른 제왕적 권력이 등장한다. 정부 형태란 권력분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인데, 우리가 계속 실패해온 대통령제에서 권력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작동하지 않는 권력분립 원칙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권력을 대하는 우리의 본성과 관계가 깊다. 존 스튜어트 밀이 1861년에 쓴 ‘대의정부론’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회가 나온다. 그 핵심은 ‘지배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지배당하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 즉 권력을 욕망하는 사람들은 남을 지배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를 가능성만 있다면 자신의 자유를 쉽게 포기한다. 권력의 명령에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는 대신 좋은 지위를 기대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유를 욕망하는 사람들은 남을 지배할 기회, 즉 출세의 기회가 있다 해도 권력자에게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다. ‘나의 자유를 다 내주더라도 남을 지배하고 싶다’와 ‘나의 자유를 빼앗기면서까지 지배하고 싶지 않다’ 중에 우리는 어느 쪽인가. 불행하게도 전자다. 우리는 너무나 지배하고 싶어 한다. 흔히 출세지향적이라고 하는 것은 곧 권력지향적임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권자인 시민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권력을 제한하는 ‘법치주의 원칙’조차 ‘법을 통해 통치하는 것’ 또는 ‘법을 잘 준수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경우도 드문데 정치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출세’에 대한 관심이다. 누가, 어느 지역 사람이, 어느 정당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총리가 되고, 청와대 수석이 되고, 장관, 검찰총장이 되는지에 관한 관심이다. 지위를 우러러보는 공동체에서는 어떤 것을 주고라도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키워낼 수밖에 없다. 자기 본업의 양심과 권한을 팔아 지위를 거래하는 공무원, 법조인, 언론인, 학자들이 등장한다. 동료들의 성공적 거래를 목격한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경쟁적으로 충성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 책에서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가장 큰 이유를 대통령이 갖고 있는 ‘인사권’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의 임기를 6년이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나.
“미국 연방판사는 종신제다. 미국 헌법의 기초자 가운데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법관직을 종신으로 하는 것은 그 제도만큼 사법부의 견고함과 독립성에 기여하는 제도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등의 임기가 장기가 될수록 헌법의 원칙과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되며, 그럴수록 임명권자도 더욱 신중하게 선별해 후보자를 지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법조계는 ‘사법부의 제일 좋은 자리를 몇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조인들이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이란 자리를 빛나는 선물로 여기는 순간 권력자가 이들을 얼마나 쉽게 복종시킬 수 있을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자유를 꿈꾸고 헌법을 공부할 권리

권력분립의 원칙을 되살리기 위한 대안으로서 ‘기능적 권력 통제’를 제안했다. 
“현 제도는 행정부와 의회 권력이 서로 분리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이 정당을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 두 권력을 모두 장악하는 구조다.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표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은 곧 정부 여당의 대표이며, 정부 여당은 국회의 다수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다 해도 입법부와 행정부, 가장 막강한 두 권력이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될 수밖에 없다. 제왕적 권력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많은 학자가 그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다 나온 것이 ‘기능적 권력 통제’다. 어떤 한 기관에 권력의 통제를 기대할 수 없다면 다양한 기관이 갖는 여러 기능을 활용해 권력을 견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즉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공영방송 같은 독립기관들이 의회와 행정부의 통합 권력을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함부로 개입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정부 형태를 바꾸는 것만큼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헌법 개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권력집중 문제는 헌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의 공직문화와 노동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경쟁과 출세를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우리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권력집중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뀔 수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이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이다. 우리는 노동과 직장 외에 개인적 삶이 없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것이 곧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밤새워 일하는데 언제 자유를 꿈꾸고, 헌법을 공부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나. 시민들이 정치와 공공 문제에 정당한 관심을 갖게 하려면 여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학자 김진한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12년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재직했다. 미국 노트르담대학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UC버클리대학, 미국연방사법센터에서 방문학자를 거쳐 2014년 고려대에서 헌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8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2016년 봄부터 독일 에를랑겐의 프리드리히-알렉산더 대학에 방문학자로 머물며 독일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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