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개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가족입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 박은경·자유기고가

    입력2004-11-09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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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신탕 논쟁이 국경을 넘나들며 치열하다. 한국은 정녕 개들의 지옥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인들은 ‘죽은 개’도 좋아하지만 ‘산 개’는 더 사랑한다. 많은 이들이 개를 삶의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들이 개와 나누는 교감과 사랑의 실체.
    유시춘(작가·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씨는 일요일마다 산악회원들과 북한산에 오른다. 그런데 구기터널에서 이북5도청을 지나 비봉까지 오르는 긴 산행길의 초입에 들어서면 늘 그의 발목을 붙잡는 광경이 있다.

    “개가 아닙니다. 가족입니다. 이 개를 보셨거나 보호하고 계신 분은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갖가지 애달픈 사연이 담긴 전단들이 산바람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것을 보면 유씨는 자신이 잃어버린 개 주인이라도 된 듯 안타까운 심정에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오래 전 그 역시 정들었던 애완견을 잃고 마치 가족을 떠나보낸 듯 가슴앓이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개도 외로움을 탄다

    그의 가족이 ‘보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0년 전. 낳은 지 한 달도 채 안된 푸들을 안고 온 친지가 한번 길러보라며 덜렁 놓고 갔다. 눈만 겨우 뜬 채 꼼지락거리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유씨는 ‘저걸 어떻게 기를까…’ 싶었다. 잠시 유년시절의 기억이 스쳤다. 경북 경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집에서 오랫동안 기르던 개가 쥐약이 든 음식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손도 못 쓰며 눈물로 지켜본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개와 살가운 인연을 맺지 못했다.



    싫은 내색도 못하고 얼결에 떠맡은 보리는 식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무릎이든 발뒤꿈치든 가리지 않고 머리를 기대왔다. 사람과 몸이 닿아 있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늘 체온을 찾아 코를 파묻어대던 보리가 어느날부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현관에 벗어둔 신발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가 하면, 발 냄새를 좇아 몸의 특정부위를 비벼대는 통에 유씨네는 몹시 당황했다. 발정기를 맞았던 것이다.

    “눈뜨기 무섭게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이었어요. 처음에는 20분쯤 돌아다니다 들어오곤 했는데, 갈수록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어느 날은 나간 지 두 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어요.”

    유씨도 그날 따라 보리를 집 밖으로 내보내기 싫었다. 보리의 성화에 못이겨 현관문을 열어준 뒤 왠지 모를 찜찜한 기분에 2층 베란다에서 보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보리는 저만치 골목 모퉁이를 돌기 전에 잠깐 멈춰 서서 집쪽을 휙 돌아보더니 이내 사라졌다. 순간 느낌이 너무 이상했는데, 아마 그게 마지막 작별인사인 듯했다.

    해질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보리를 찾아 사방으로 헤매다니느라 중요한 약속마저 까마득히 잊은 유씨는 행여 보리가 어디 가서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싶어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설사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어디에선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음날 날이 밝자 보리의 모습을 실은 전단 100장을 동네 곳곳에 뿌렸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혹시 보리를 봤다는 연락이 올까 해서 약속도 하지 못하고 며칠동안 집에 틀어박혀 전화기 앞만 지켰다.

    그러나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은 한 달이 넘도록 들려오지 않았고 유씨는 자신을 돌아보던 보리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비슷하게 생긴 개가 눈에 띄면 혹시 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름을 불러봤지만 번번이 실망만 안은 채 돌아왔고, 그런 날이면 더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는 동안 새록새록 떠오르는 보리의 기억들이 유씨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했다. 유씨와 남편, 아이들이 일터와 학교로 뿔뿔이 흩어지면 보리는 하루종일 혼자 집을 지켰다. 이웃 사람들이 “개를 왜 혼자 놔두고 다니냐. 하루종일 사람처럼 애처롭게 울어대는 통에 신경이 쓰여 못살겠다”며 눈총을 주기도 했다. 유씨는 개도 사람처럼 외로움을 탄다는 사실을 보리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보리 때문에 팔자에 없는 아양도 떨었습니다. 군사정권 때 독재반대 투쟁을 하던 기깨나 센 여자가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반상회에 나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 비위 맞추고 떡까지 해서 돌렸다면 누가 믿겠어요?”

    사람과 교감하는 개

    보리의 귀를 닦아주던 면봉과 소독약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게 보리의 몸 일부인 양 끌어안고 지냈던 때도 있다. 그나마 흔적을 없애버리면 보리가 영영 돌아올 것 같지 않았고, 한편으론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는 것 같은 야속함이 느껴져 껴안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보리를 못 잊게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보리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 요크셔테리어 ‘유리’다. 2000년에 가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유씨는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어느 날 참고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러자 울음소리에 놀란 유리가 쪼르르 달려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마치 주인의 심정을 안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핥는 바람에 유씨는 유리를 끌어안고 소리내 울었다.

    개와의 교감. 그 무렵에 읽은 어느 단편소설의 끝 부분에서 유씨는 전율했다. 소설 속의 ‘아버지’는 한평생 술 주정꾼으로 가족에게 박대받으며 살았다. 그런 아버지를 유독 따르던 개가 어느 날 난데없이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술에 취한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고 있었다. 유씨는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의 고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불가에서는 3000억겁의 인연이 있어야 부모 자식 간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인간과 더불어 교감하고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 지금은 비록 동물로 태어났지만, 억겁 윤회의 바퀴 속에서는 언젠가 인간이었거나 인간으로 태어날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문득 서늘해질 때가 있어요. 지상의 모든 생명은 개와 사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떠나서 생명 있는 것과 교감하며 윤회를 거치지 않을까 싶어요.”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했던가. 만난 자는 뒤에 반드시 헤어지고,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유씨는 개를 기르는 동안 새삼 되새기려 애쓴다.

    “개를 키우면서 모든 생명 있는 동물을 생각하게 됩니다. 식용으로 기르는 소나 돼지도 먹이를 주고 씻겨주고 돌봐주는 주인과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맞추면서 자랐을 겁니다. 그 선하고 슬픈 듯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개고기든 쇠고기든 좀체 육류에는 손이 가질 않아요. 이러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아닌지….”

    개와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유씨는 마음 한 곳에 부채를 안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 키우는 데 정성을 쏟는 게 개 기르는 것보다는 뜻있지 않냐”며 개 기르는 정성으로 입양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인권활동에 몸담고 있는 그 또한 같은 생각이다. 입양은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개를 키우는 것에 비하면 몇 배나 더 어렵고 큰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를 기르기 시작한 이후 입양은 유씨가 스스로에게 던진, 아직 풀어내지 못한 화두로 남아 있다.

    젖먹이 아기같은 맑은 눈으로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거나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다롱이’의 모습을 볼 때면 인재근(여성인권기금 이사)씨는 슬며시 웃음을 머금으며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인씨의 목소리 톤만 좀 달라져도 금세 풀죽은 표정으로 주위를 맴돌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다 싶으면 신나게 달려와 덥석 안기는 다롱이. 그 ‘아이’를 품에 안으면 인씨는 생명 있는 존재의 포근함과 함께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실감하곤 한다.

    인씨 가족에게 다롱이는 피붙이나 마찬가지다. 인씨는 ‘다롱이 엄마’, 남편인 김근태 의원(민주당)은 ‘다롱이 아빠’로 불린다. 당연히 아들 병준이와 딸 병민이는 오빠와 언니가 된다.

    개를 웬만큼 좋아하는 인씨에게도 애완견을 기르는 일은 아기 키우기 못지 않게 힘들다. 때로는 성가시고 귀찮기도 하다. 일찍 날이 밝는 여름이면 정확히 아침 6시에 산책을 가자고 난리를 피는 다롱이 때문에 자명종이 따로 필요없다. 어쩌다 혼자 집 밖에 나간 다롱이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서는 인씨의 옷자락을 물고 늘어진다. 이웃집 할머니가 “다롱아, 오늘은 왜 엄마하고 같이 안 나왔니?” 하고 물을 때마다 벌어지는 실랑이다.

    어쩌다 이웃 사람들한테 야단이라도 맞으면 다롱이는 그 좋아하는 산책도 팽개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뭐라고 쫑알쫑알 일러바친다. 인씨에게서 “다롱아, 미국말 하지 말고 한국말로 해야지”라며 번번이 놀림을 받고도 수다쟁이 노릇을 그만두지 못한다. 개를 오래 기르면 사람 말귀를 곧잘 알아듣기 때문에 가족들은 재미삼아 다롱이를 놀리기도 한다. “야, 이 오줌싸개야!” 하면 꼬리를 착 내리고 우울해졌다가 장난인 걸 눈치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롱을 떨어 웃음을 자아낸다.

    어느 영화에 이혼을 앞둔 부부가 함께 기르던 강아지를 서로 데려가겠다며 험악하게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프랑스에는 실제 개를 두고 양육권 소송을 벌이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그 정도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인씨 가족도 개 때문에 마치 친자식을 잃은 것 같은 슬픔과 충격을 경험했다. 애완견 ‘또또’의 실종과 ‘깐주’의 느닷없는 죽음은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줬다.

    임신한 몸으로 실종된 또또는 어떻게 됐을까.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유난히 눈이 맑고 예뻤던 마르티스 또또는 인씨 가족에게 아직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출산 20일을 앞둔 또또를 잃어버린 것은 김의원이 감옥에 있을 때였다. 청소하느라 무심코 열어놓은 대문으로 또또가 나간 것을 인씨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며칠 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 인씨는 길을 가다 어디선가 개 짓는 소리가 들리자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불쑥 남의 집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또또 때문에 이러다 정신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옥에 있는 김의원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구속되기 전, 재야운동을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남편이지만, 또또가 교미할 시기가 되자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물병원까지 개를 안고 갔다. 남편은 시간이 일러 병원 문이 닫혀 있자 문 옆에 쪼그려 앉은 채 한참 동안 의사가 나타나길 기다렸고, 의사에게 ‘거금 5만원’을 쥐어주며 “우리 애 결혼시켜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그렇게도 사랑한 또또였다.

    면회가서 김의원과 마주한 인씨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차례나 망설이다 “저기, 있잖아…우리 또또를 잃어버렸어…” 했다. 인씨는 남편이 말을 더듬는 걸 그때 처음 봤다고 했다.

    “파, 파, 파출소에 실, 실종신고 해라, 얼, 얼른….”

    반평생을 경찰에 쫓기는 신세였던 김의원이 경찰을 찾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새 생명의 驚異

    또또를 잃은 후 새로 맞이한 식구가 퍼그 깐주다. 5년간 길렀던 깐주는 제왕절개수술로 새끼를 낳은 뒤 며칠 만에 죽었다. 세번째 출산이었는데, 뱃속의 새끼가 너무 커서 자연분만이 어려웠다. 키우던 개가 제왕절개수술로 새끼를 낳은 것은 처음이라 그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었다. 상처가 아물면 실밥을 풀어주고 배가 처지지 않게 복대를 해줘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것.

    인씨는 깐주의 장례식 날짜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모여 치른 장례식에서 가족들은 이웃 눈치도 보지 않고 목놓아 울었다. 장례식 다음날부터 인씨 가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몇 달 동안 집 근처 야산에 있는 깐주의 무덤을 찾아가 꽃을 놓아줬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후에야 ‘무덤 순례’는 겨우 끝이 났다.

    깐주의 죽음에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당시 중학생이던 딸 병민이다. 덩치가 큰데다 우락부락하니 못생겼지만 깐주는 병민이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깐주는 병민이가 간절히 원했던 동생 대신 얻은 강아지였다.

    “마침 남편이 감옥에 있을 땐데, 아무것도 모르는 병민이가 동생을 낳아 달라고 무척이나 졸랐어요. 어느 날은 동생을 언제까지 안 낳아주면 벌금 10만원을 내겠다는 각서를 들이밀며 도장을 찍어달라고 해요. 별수없이 도장을 찍어주긴 했지만, 약속을 지킬 수가 있나요. 그랬더니 나중엔 ‘동생을 못 낳겠으면 강아지라도 데려와라, 그러면 각서를 무효로 해주겠다’고 해서 깐주를 키우게 된 거예요.”

    그러니 병민이에게 깐주는 진짜 살붙이나 다름없는 ‘동생’이었던 셈이다. 깐주가 죽은 후 걸핏하면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보며 우는 딸 때문에 인씨는 어지간히도 속을 끓였다. 병민이는 스무살이 된 지금까지 깐주가 가지고 놀던 낡은 인형과 장난감을 담은 ‘유품’ 상자를 책상 밑에 놓아두고 있다. 상심하는 딸 앞에서 차마 내색할 수 없었지만 인씨 역시 오랫동안 깐주의 죽음이 남긴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했어요. 창문 밖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거나 나비가 날아가는 걸 보면 혹시 깐주가 환생해서 우리에게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아마 미쳤다고 했을 거예요. 또또가 실종됐을 때 제가 넋이 나가 있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깐주더러 ‘너 오래 살아라. 안 그러면 너네 엄마 쓰러지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돼버렸어요.”

    애완견의 실종과 죽음은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상실감을 남겼지만, 새 생명의 탄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기쁨을 안겨줬다. 깐주는 제왕절개 전 이미 두 번의 자연분만 경험이 있었다. 첫 출산 때는 안방에서 가족 모두가 정성껏 구완했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씻기기 위해 인씨는 아들 병준이에게 깐주를 지키게 하고 강아지들을 욕실로 데려갔다. 그 뒤로 깐주는 병준이를 몹시 미워하고 외면했다. 병준이야 억울하고 서운해했지만, 생긴 건 미련퉁이 같은 깐주가 어떻게 제 새끼 떼어놓은 사람을 용케 알아보고 미워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쪽 눈만 겨우 뜬 채 안간힘을 쓰며 일어서려고 버둥대다 금세 푹 쓰러지던 새끼들이 어느 날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네 다리로 버티고 서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두번째 출산 때는 6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이때 인씨 가족은 강아지를 손수 한 마리씩 받아냈다.

    얼마 전 김의원은 다롱이가 안타까워 속을 태웠다.

    “다롱아, 엄마한테 제발 혼인 좀 시켜달라고 해라.”

    교미할 때가 되자 별의별 민망한 짓을 다하는 다롱이를 인씨가 애써 모른 척하자 애가 탔던 것이다. 하지만 인씨는 깐주에 대한 기억 때문에 다롱이는 절대로 시집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후 다롱이의 달거리가 없어져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폐경기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다.

    인씨 가족이 다롱이를 키운 것도 벌써 5년이 지났다. 다롱이는 김의원을 누구보다 잘 따른다. 김의원이 귀가하면 다롱이부터 안고 쓰다듬어주어야 집안이 평안하다. 그렇지 않으면 펭귄처럼 두 발로 서서 안아달라고 보채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신문을 읽느라 놀아주지 않으면 인형을 물고 와 신문 위에 놓고 시위한다.

    그러다 군 복무중인 병준이가 휴가를 나오자 다롱이는 온종일 병준이 뒤를 따라다니며 재롱을 피워 아빠를 서운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귀대하는 날 군복을 챙겨 입는 병준이를 본 다롱이가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가족들은 얼이 빠진 채 요란한 이별소동을 치러야 했다. 인씨네에게 애완견은 ‘개’ 이상의 그 무엇이다.

    “개를 키워보면 영락없이 아이 키우는 것 같아요. 작은 일에도 삐치고 질투하고, 그러다 기분 내키면 애교 부리고. 어쩌다 우리 부부가 껴안는 시늉이라도 하면 난리법석을 피며 짖어대요. 우린 그게 재미있고 신기해서 다롱이만 보면 다정한 척을 하죠.”

    개 치다꺼리 하면서 웃고 우느라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지만, 인씨는 “그래서 더욱 사람 사는 집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벤지의 눈물

    10년 전 어느 날 박영수(경기도 포천 한샘아카데미 원장)씨는 둘째아들 정진이가 쓴 글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소년지 공모에서 입상까지 한 ‘강아지 생각’이라는 글에는 아이가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우리집에 강아지가 있었다. 이름은 벤지다. 아주 귀엽고 말을 잘 들었다…그런데 어느날 벤지가 얼결에 나를 물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매를 맞았다. 벤지의 눈을 가린 털을 들춰보니 벤지는 울고 있었다. ‘다시는 물지 않을게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벤지가 없다. 아파트에서는 못 기르기 때문이다. 벤지가 보고 싶다.”

    벤지는 아는 사람이 준 잡종개였다. 두 아들은 처음 길러보는 개에게 흠뻑 정을 쏟았다. 하지만 이웃의 원성이 너무 커 단독주택에 사는 직장동료에게 벤지를 넘겨주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닥친 이별에 네 식구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정진이가 그렇게 마음이 상했을 줄은 몰랐다. 워낙 씩씩한 개구쟁이였기 때문이다.

    얼마 후 박씨 부부는 개를 사려고 퇴계로로 나갔다. 길을 따라 죽 늘어선 애완견 가게를 몇 곳이나 둘러봤지만 선뜻 마음에 드는 강아지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에 부부의 눈길을 끄는 강아지가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였지만 까맣고 조그만 녀석이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주 건강해 보였다. 포메라니안 ‘보미’는 그렇게 한 식구가 되어 10년째 같이 살고 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강아지는 생후 50일이 돼서 예방접종을 마치기 전까지는 목욕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죠. 그저 깨끗이 씻겨주고 예뻐해주면 되는 줄 알았지요. 아마 그게 문제가 됐던 것 같습니다.”

    목욕 후부터 울기 시작한 보미는 오랫동안 고통스런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당황한 박씨는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누군가 “항문이 막힌 것 같다”고 해서 30분 넘게 배를 주물러줬지만 보미의 몸은 점점 더 뻣뻣하게 굳어갔다. 그 길로 동네 병원을 찾아 달려갔지만, 수의사는 “너무 어려서 실핏줄을 찾을 수 없다”며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퇴계로에 있는 큰 동물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남은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인데, 의사는 보미와 코를 맞대고 비비며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그렇지만 보미의 생사가 그에게 달렸으니 뭐라 말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죠. 영 가망이 없어서 저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의사가 치료를 하기 전에 개가 겁먹지 않게끔 친해지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보미는 진찰받고 주사맞는 동안 한번도 버둥거리지 않고 얌전했다. 보미가 두 달 간 병원 신세를 지며 중병치레를 하느라 박씨네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박씨는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준 수의사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의사는 오히려 “죽을 개가 주인의 정성 덕분에 살아날 수도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라고 했다.

    어느덧 열살이 된 보미는 성격이 순해서 미운 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밤이면 침대로 올라와 박씨 부부 사이에 떡 하니 버티고 누워 자는 것만 눈감아준다면. 볼일은 반드시 화장실에서 처리하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있으면 문을 두드린다. 그걸 본 손님들은 “개가 노크를 한다”며 놀라워한다. 볼일이 끝나면 보미는 잠깐 나왔다가 식구 중 한 사람을 앞장세워 다시 화장실에 들어간다. 용변을 치우고 엉덩이를 물로 깨끗이 닦아달라는 뜻이다.

    보미는 생선회를 유난히 좋아해 해마다 생일이면 생선회가 차려진 잔칫상을 받는다. 남들이 보면 사람도 못 먹는 생선회를 어떻게 개한테 주냐며 따질지 몰라도 다 죽어가다 기적처럼 살아난 녀석이라 남다른 정이 갈 수밖에 없다. 박씨네 집에선 사람과 개가 종종 기이한 숨바꼭질을 벌인다. 사지가 굳는 병을 앓았기 때문인지 보미의 뒷다리가 약해 운동을 시키려는 목적에서다. 그래서 술래는 언제나 보미 차지다. 보미는 네 식구를 다 찾을 때까지 이 방, 저 방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지금은 20대가 된 아이들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보미가 박씨에겐 처음부터 한울타리 안에 있던 자식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은 보미와 함께 뒹굴고 크면서 성격도 밝아졌다. 개를 돌보느라 스스로 해야할 일을 갖게 된 것도 아이들에겐 좋은 교육이 된 것 같다고 한다. 박씨도 보미에게서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 스트레스로 울적해졌다가도 꼬리를 치며 반기는 보미를 보면 이내 풀어진다.

    지금도 잔병치레가 잦은 보미 때문에 박씨네는 종종 비상이 걸린다. 그럴 때면 집안 분위기도 덩달아 우울하고 무겁게 가라앉는다. 박씨는 보미가 아픈 날이면 출근을 하지 않는다. 그런 날은 직원들도 으레 박씨가 아픈 셈친다. 요즘 들어 부쩍 박씨를 착잡하게 하는 것은 보미의 죽음에 대한 걱정이다. 개 나이 열살이면 환갑을 넘은 지 오래. 이제 스무살, 스물두살인 두 아들이 장가갈 때까지만이라도 보미가 살아줘야 할텐데….

    임인학(개 전문 사진작가·디자인21 기획부장)씨는 개와의 인연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후면 매일처럼 작은 동물원을 찾았어요.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 안의 동물들과 눈을 마주하고 지냈죠. 나와 동물들은 눈높이가 같았습니다. 친구, 바로 그런 느낌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인간 이외의 동물은 모두 잊어버렸고, 사자와 코끼리는 이미지의 세계에서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어요.그때 내 옆에 개가 있었습니다….”

    불현듯 오래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의 소설 ‘클라우디’에 나오는 29세의 남자 주인공 ‘나’는 대학 졸업 후 영세한 인쇄소에서 포르노 잡지물을 인쇄하며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낸다. 사춘기 때부터 줄곧 ‘망명’을 꿈꿔왔던 ‘나’가 어른이 된 후 망명 대신 찾은 현실의 도피처가 바로 동물원이었다.

    언젠가부터 임씨는 동물원 대신 애견가게가 줄지어 늘어선 퇴계로로 발길을 돌렸다. ‘동물학습도감’에서 우연히 본 ‘천연기념물 진돗개’ 사진 한 장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는 일요일마다, 방학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서 애견상점의 진돗개를 구경하다 날이 저물어야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한겨울엔 유리창 너머로 개를 살펴보느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추운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한 아버지가 그에게 라면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서 진돗개를 발견했을 때, 그때가 제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용돈과 세뱃돈을 2년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서 아버지께 드리며 진돗개를 사달라고 했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렇게 빨리 진돗개를 갖게 될 줄 몰랐죠.”

    임씨는 마당에 있던 개집에서 진돗개와 함께 먹고 함께 자다시피 했다. 고1때 진돗개가 처음 새끼를 낳았는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밤새 새끼를 직접 빼내주었다. 그 중 한 마리는 낳자마자 기도가 막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임씨는 엉겁결에 입을 갖다대고 강아지의 목을 막고 있던 이물질을 빨아냈다. 새끼는 거짓말처럼 살아났고, 임씨는 자신의 손으로 한 생명을 살린 감동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개 싫어하면 결혼 못한다”

    임씨는 그 무렵에 진돗개협회에 가입해 주말이면 성인 회원들과 함께 진돗개를 보러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대학 때는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지 못해 그동안 찍은 진돗개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랬지만, 그럴수록 허전한 마음이 커져갔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전생에 나는 개가 아니었을까.

    임씨는 부인 이동인 씨와 7년 동안 연애했지만 막상 결혼을 앞두고는 몹시 고민했다. 이씨가 개를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를 싫어하면 우리는 결혼 못한다”는 임씨의 폭탄선언에 이씨는 순순히 그의 기호를 인정해야 했다. 그래도 결혼 후 꼬박 3년 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진돗개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주말에 제사가 있어 개를 보러 가지 못할 때면 임씨는 마치 정서불안 환자처럼 안절부절했다.

    임씨는 ‘개에 미친 놈’ ‘개놈’ 소리를 듣는 요즘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사람들이 으레 “저 놈은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라며 한 수 접고 그를 대하기 때문이다. 임씨는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기는 사람보다 오히려 개가 더 편하다”고 말한다.

    “‘돌아온 백구’로 광고에 출연한 유명한 진돗개를 사진에 담으러 진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백구는 이미 늙어서 죽고 없고, 여든을 넘기신 할머니가 백구의 ‘손녀’ 한 마리를 기르고 계셨어요. 할머니가 개를 벗삼아 얘기하는 모습이 너무도 정겨워 보였습니다. 마침 할머니가 백구의 무덤에 가신다길래 따라나섰는데, 무덤에서 잡초를 뽑아주던 할머니가 손길을 멈추고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중얼거리더군요. ‘백구야 이놈아, 나 두고 너 먼저 가니까 좋으냐. 나도 곧 따라갈테니 하늘에서 만나자’고.”

    배낭 속의 쪼끔이

    김흥규(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부원장)씨는 개를 기르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개가 뛰어놀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있을 것, 언제든지 개를 돌볼 수 있도록 가족 중 누군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 그것이다. 개는 주인이 잘 돌봐주지 않으면 자립하기 어려울 만큼 나약하고 외로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화초와 달리 개 주인은 윤리적 책임감을 필요로 합니다. 병들면 병원에 데려가고 건강하게, 또 불행하지 않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해요. 그런 의무 속에서 서로 관계 맺기를 하는 게 개 기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개와 나, 개와 이웃, 개 주인인 나와 이웃 등의 관계가 새롭게 형성되는 거죠.”

    이런저런 여건과 환경을 고려하느라 김씨는 개를 좋아하면서도 기르지 못했다. 예전에는 집안 어른들이 개를 싫어했고, 한때는 마당이 너무 좁아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장모님이나 아내도 번거롭다며 집에서 개 기르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데 김씨 가족이 개를 기르게 된 건 공교롭게도 부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시장에 갔던 부인의 뒤로 털이 하얀 마르티스 한 마리가 졸졸 따라왔던 것이다. 아무리 쫓아도 도망가지 않고 집까지 따라왔길래 먹을 걸 주니까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너무 더러워서 목욕도 시켰다.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만 보살펴줄 생각이었지만, 김씨 가족은 어느새 강아지와 흠뻑 정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강아지를 데리고 시장을 보러 갔던 부인이 혼자 돌아왔다. 길에서 주인을 만나 어쩔 수 없이 돌려줬다고 했다.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며칠 동안 장모와 부인의 눈치를 살피던 김씨는 딸과 의기투합해 집 근처 애견센터에서 마르티스 한 마리를 사왔다. 하지만 얼마 못가 집 앞 차도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개 키울 생각을 못하다 서울 수유리로 이사한 뒤 새 식구로 맞은 놈이 퍼그 ‘쪼끔이’다. 우락부락하고 멍청하게 생긴 쪼끔이는 하는 짓마다 영락없는 코미디여서 가족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김씨는 큰 몸집에 비해 다리가 몹시 가늘고 더위를 잘 타는 쪼끔이를 북한산 등산길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쪼끔이는 진달래 피는 봄만 돼도 얼마 걷지 않아 숨이 턱에 찰 듯 헉헉대곤 했다. 쪼끔이에겐 긴 산행이 무리인 듯했지만, 김씨에겐 이미 산행 친구가 된 터라 없으면 적적했다. 생각 끝에 커다란 배낭에다 쪼끔이를 넣고 목만 밖으로 삐죽 나오게 빼주었다. 등산객들은 김씨의 등에 매달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쪼끔이를 보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나 쪼끔이는 2000년 4월, 사랑하는 김씨 가족을 떠나갔다.

    “동네 진돗개한테 물려 죽어간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온몸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처참하게 물려 죽어 있는데, 뭐라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관계 맺기’의 어려움

    진돗개 주인은 보상금이라며 얼마간의 돈을 건넸다. 쪼끔이의 값어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액수였지만 김씨는 돈을 받았다. 몇 천만원을 준다 해도 쪼끔이의 목숨과는 바꿀 수 없을 테지만, 그렇게 사나운 개를 묶지도 않고 밖으로 함부로 내돌린 진돗개 주인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지금도 집 근처 산에 있는 쪼끔이의 무덤에 종종 들른다.

    “개를 기르는 심리는 아주 복잡합니다. 남다른 관계를 만드는 거니까요. 가족이나 친구 관계도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하는 세상 아닙니까. 꽃이나 나무는 관심을 베풀고 보살피는 만큼 싱싱한 생명력으로 보답하기에 즐거움을 얻습니다. 애완견은 그런 관심과 보살핌에 덧붙여 서로의 심리적 소통을 필요로 하고 어떤 행위를 주고받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곧잘 상호적인 관계를 벗어나 이기적이 되기도 하지요. 자는 놈을 깨워 데리고 논다든지…. 따지고 보면 사람이 심심함이나 외로움을 달래려고 개를 기르는 것도 이기적인 행동일지 모르죠.”

    ‘관계 맺기’의 번거로움에다 두 번의 죽음이 준 충격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또 개를 기르고 있다. 쪼끔이의 죽음이 너무 끔찍했던 나머지 가족 중 누구도 다시 개를 기르자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집안은 왠지 모를 허전함에 젖어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서 또 마르티스를 길렀는데, 요놈이 지금까지 키워본 녀석 중에 제일 참을성이 없어요. 식구들이 뭘 먹으면 줄 때까지 참지 못하고 칭얼대며 졸라대죠. 그래도 발랄하게 잘 노니까 귀엽지요. 외출에서 돌아오면 숨 넘어갈 듯 좋아라 뛰어오르고 어리광부리는 게, 제깐에는 마치 쪼끔이를 잃은 주인을 위로하려는 듯해요.”

    이 녀석은 김씨가 2층 서재에서 글을 쓸 때면 저만치 뒤에 쪼그리고 앉아 일이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한참 지나 돌아보면 기다리다 지쳐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어느 땐 그 모습이 측은해 보여 하던 일을 접고 아래층으로 안고 내려간다. 김씨는, 애정의 교감은 서로 나눌수록 커지고 깊어진다는 걸 개인들 모를 리 없다고 믿는다.

    잡종 발발이에 이어 지금은 영국에서 가정견으로 유명한 에어데일테리어와 가족으로 살고 있는 이남희(소설가)씨는 두 종류의 개를 기르면서 많은 일을 경험했다. 아파트에서 기르던 발발이는 싸구려 잡종개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오며 가며 사람들 눈총을 많이 받았다. 그 ‘싸구려 개’가 어쩌다 짖기라도 하는 날에는 온 동네가 들고 일어날 지경으로 주인과 개가 한묶음으로 욕을 먹었다. 하지만 아랫집 푸들은 늘 시끄럽게 칭얼거려도 무사했다. 결국 열 달을 못 버티고 집 지킬 개가 필요하다는 농가에 발발이를 주고 왔다.

    아파트에서 싸구려 개를 기르며 겪은 수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이씨는 이번엔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비싼 개를 샀다. 그러나 에어데일테리어 ‘주니어’도 며칠 못가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뭐 저렇게 이상하게 생긴 개가 다 있나” “곰같이 생겼다” “저게 사자새끼야, 개새끼야.” 별 소리를 다 들었지만, 싸구려라고 구박받지 않는 것만도 다행스럽게 여겼다.

    “물론 다 그렇진 않겠지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주변 사람이 자기와 비슷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덩치가 큰 개를 애완견으로 낯설어하는 경향도 있고요. 다른 사람에게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이씨는 아파트에서 연립주택으로 이사한 뒤에도 적잖이 스트레스가 쌓였다. 올림픽공원으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여기가 사람 공원이지, 개 공원이냐” “왜 큰 개를 데리고 사람들 많은 데로 나왔냐”며 시비를 걸어왔다. 한편으로는 이해할 만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건 그런 사람들이 주인의 손을 벗어나 마음대로 공원을 뛰어다니거나 똥, 오줌을 싸는 작은 개한테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점이다. 덩치는 크지만 목줄을 한 채 얌전하게 주인 옆을 따라다니는 개가 왜 그렇게 문제가 될까.

    이씨는 주니어를 기숙학교에 보내고 두 달 동안 매주 면회를 다녔다. 개를 학교에 보냈다고? 금시초문인 사람들은 “주니어, 너 수능점수 얼마 나왔니?” 하며 놀렸다. 하지만 이씨도 주니어 덕분에 개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혈통이 좋은 주니어는 영리하고 의젓하다. 주인이 바쁘게 원고를 쓰는 날이면 앞다리를 가지런히 세우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기다릴 줄 안다.

    “속상할 땐 주니어한테 털어놔요. 그러면 주니어가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런저런 반응을 보여 정말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혼자 사니까 주니어가 없었으면 틀림없이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지내는 날도 있었을 거예요. 혼자 밥 먹기 싫을 땐 일부러 주니어한테 ‘야, 이것 참 맛있겠다’ 하고 말을 걸어요. 그렇게 하면 음식이 정말 맛있어요.”

    대학 강의를 잠시 접고 책 쓰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이씨는 한 달에 두 번 장을 보러 간다. 아마 주니어가 없었다면 냉장고가 텅텅 빌 때까지 버텼을 것이다. 이씨의 차 소리에 베란다로 달려나와 콩콩 짖는 것을 보면 코끝이 찡해진다. 그가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면 주니어를 대여섯 번씩 깨울 때가 있다. 그래도 투정 부리지 않고 잘 받아준다. 같이 사는 사람에게 그랬으면 어떻게 됐을까?

    주니어를 결혼시키려고 일주일 동안 종견장에 떼어놓고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이씨는 너무 쓸쓸해서 늦게까지 밖으로 돌며 집에 들어오길 꺼렸다. 마치 사람과의 관계처럼 시시각각 애증이 교차해도 주니어에게는 일일이 그런 감정을 설명하거나 화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이씨의 아버지는 그의 집에 올 때마다 주니어를 보고 “쟤 아직 안 내다버렸냐?” 하며 얼굴을 찌푸리신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대신 이씨는 엉뚱한 상상에 빠져든다. 주니어를 지하철에 태울 수 있으면 함께 시내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을 텐데….

    열한 마리 ‘개 아빠’

    우정순(청주 제중한의원 원장)씨네 다섯 식구는 리트리버와 진돗개 열 한 마리를 기르고 있다.

    “사람은 생각이 많아서 눈에 드러나는 감정이 복잡하지만, 진돗개의 눈은 다릅니다. 아주 단순해 보일 만큼 맑아서 상대를 현혹하거나 흔들지 않지요. 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에게 왜 수양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우씨는 아이들을 위해 6년 전부터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 ‘사육’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동격’으로 동물을 볼줄 아는 아이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진 아이들이 개를 친구 삼아 사랑과 포용, 배려의 정서를 체득할 수 있길 바랐다. 성인이 된 뒤까지 개와 교감하며 익힌 따뜻한 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해 전 리트리버 두 마리가 장염에 걸렸다. 그 중 한 마리인 ‘에코’는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주위 사람들은 도태시키라고 충고했다. 우씨가 갈등 끝에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아이들은 ‘도태’가 뭐냐고 물었다. ‘죽이는 것’이라는 설명에 울며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떠밀려 개를 입원시켰다. 회복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며칠 뒤 문병을 가서 눈이 게슴츠레하게 풀려 늘어져 있는 에코를 보자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후회스러웠다.

    “에코야. 많이 아프니? 꼭 살아야 한다.”

    그 순간 거의 실신 상태였던 에코가 꼬리를 몇 번 흔들더니 후들거리는 다리를 세우고 일어나 우씨에게 코를 내밀었다. 마치 기적을 보는 듯했다. 에코는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마침내 살아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 우씨네와 살고 있는 진돗개는 여덟 마리. 그 중 ‘백구’는 훈련을 받던 중 약물과다 투여로 백내장에 걸려 한 쪽 눈을 실명했다. 눈먼 개가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을 더 써야 하기 때문에 나머지 개들한테 영향을 줄 것 같아 고민스러웠다.

    그가 백구를 내보내자고 하자 아내와 세 아이는 “차라리 다른 개를 다 내보내고 백구만 기르자”며 펄펄 뛰었다. 건강한 개들은 다른 집에 가도 귀여움을 받으며 잘 살겠지만 눈이 먼 백구는 누가 예뻐하겠냐, 그러니 우리가 길러야 한다는 얘기였다. 결국 우씨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백구는 지금까지 한식구로 살고 있다.

    열한 마리나 되는 개를 돌본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밥 주고 똥 치우는 것만도 큰일이다. 우씨는 아침, 저녁 하루 두 차례 병원 건물 꼭대기에 있는 견사(犬舍)에 올라가 개들을 돌보고 함께 놀아주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

    특히 진돗개를 기를 때는 여느 애완견에 비해 족히 세 배는 더 품이 든다. 토종 진돗개에겐 야생적 특성이 많이 남아 있어 개성이 매우 강하다. 우씨는 애완견과 진돗개를 딸과 아들에 비유한다. 애완견이 애교 부리고 재롱 떠는 딸 같다면 진돗개는 불퉁대고 반항기 많은 사춘기 아들과 비슷하다. 그게 진돗개의 매력이기도 하다.

    “한의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 양체질과 음체질이 있듯 개도 그렇게 구분할 수 있죠. ‘겹개’는 양체질, ‘홑개’는 음체질로 봅니다. 겹개는 투실투실하고 성격도 느긋한 편입니다. 반면 홑개는 여리고 성격이 예민하죠. 그런가 하면 주인이 자주 쓰다듬어주고 귀여워 해주는 개들은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들도 신체접촉을 통해 안정을 찾기 때문이죠.”

    개와 더불어 깨닫고 나누는 삶

    우씨의 개들은 잘생기고 앙칼진 놈, 못생기고 서글서글한 놈, 의뭉스런 놈, 미련한 놈 등 천차만별이다. 못생겨도 곰살궂게 굴어 예쁜 놈이 있는가 하면, 똥 싸놓고 그냥 뭉개서 일거리 만들어 놓는 미운 놈도 있다. 그래서 사진촬영 여행을 갈 때면 늘 고민스럽다. 기껏해야 한두 마리와 동행할 수 있는데, 예쁜 놈만 골라 편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와 더불어 깨닫고 나눌 수 있는 ‘그 무엇’이 고생에 비해 훨씬 크고 많기 때문에 ‘개 아빠’ 우 원장은 행복하다.

    개 덕분에 큰 화를 모면하기도 했다. 우씨는 견사에서 나는 냄새가 혹시 이웃집 담을 넘지 않을까 걱정돼 자주 견사를 청소한다. 어느 날 청소를 하고 있던 그에게 학교에서 돌아오던 큰아들이 휴대폰을 걸어왔다.

    “아빠, 우리 집에 불났어요!”

    그제야 병원 옆 건물 사이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물이 콸콸 쏟아지는 호스를 다급히 아래로 들이댔다. 소방차가 달려 왔을 때는 이미 불이 꺼진 상태였다.

    견사를 청소할 때 쓰는 소방용 호스 덕분에 불길이 크게 번지기 전에 끌 수 있었던 것. 견사 설치하느라 돈이 좀 들었는데, 그때 톡톡히 덕을 본 셈이다. 그후로는 개가 좀 짓더라도 이웃들 눈총이 덜한 것 같다.

    견사에서 자라는 개들을 운동시키기 위해 매일 밤 11시면 우씨 가족은 병원 근처 무심천 둑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 시간이면 주위에 사람이 없어 안심하고 개들을 풀어놓을 수 있다. 아이들이랑 개들과 뒤얽혀 한바탕 풀밭을 뒹굴며 땀을 빼고 나면 스트레스가 말끔히 풀려 상쾌하다.

    그렇게 개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똥 치우고 목욕시키는 건 질색이다. 그래서 우씨는 방학이면 용돈을 미끼로 아르바이트를 시킨다. 그러고 나서부터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이 생겼다고 한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노동시간과 날짜를 계산하고 똥 치우기 아르바이트를 자청한다. 목표액을 달성할 때까지는 웬만해선 게으름도 피우지 않는다.

    요즘 우씨네는 설레는 마음으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교미시기가 끝난 줄 알고 잠시 합방시켰던 진돗개 한 쌍이 가족들 몰래 ‘사고’를 친 것이다. 개를 기르기 시작한 이래 처음 경험하는 출산이라 가족 모두가 예쁜 강아지를 기다리며 잔뜩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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