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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남북한 자주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訪北 문정인 교수에게 듣는 평양 2박3일

  • 대담·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남북한 자주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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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새벽 2시. 밤샘 인터뷰는 해봤어도 새벽 2시에 취재원 집 초인종을 눌러보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어쩌랴. 상황이 상황인걸….

연세대 문정인(文正仁) 통일연구원장(정치학)은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의 일원으로 2박3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15일 저녁 서울에 돌아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그냥 쉬도록 내버려둘 리 없다. 그는 저녁 내내 이리저리 불려다니다 방송국 심야토론 프로그램까지 마치고 새벽 1시가 훨씬 넘어서야 자택에 돌아왔다고 했다. 평소 왕성한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던 그도 이번에는 힘이 좀 부치는 듯했다.

“어젯밤도 두 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했어요. 오늘밤 안에는 ‘타임’지 기고문을 써야 하는데…”

그렇지만 문교수의 얼굴에는 2박3일간의 피로감을 압도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55년간의 분열과 대립 끝에 이뤄진 남북 정상의 만남,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다는 보람일까?

―먼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랄까 전반적인 소감을 말씀해주시지요.



“‘김대통령이 은둔에서 해방으로 나를 해방시켜줬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이 농반 진반으로 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북쪽이 이번에는 정말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모든 면에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공항 영접에서, 환영인파에서, 14일의 만찬과 15일의 오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에는 정말 뭔가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북측은 이번에 양보도 많이 했어요. 가령 공동성언 첫째 항에서 ‘외세배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간다’고 했는데, 이건 우리가 주장해온 당사자주의 원칙과 같은 겁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었고….”

‘성명’ 아니라 ‘선언’

―그렇지만 지금까지 북쪽에서 ‘자주’라는 용어는 주한미군 철수, 외세배격을 주장할 때 써온 말이지 않았나요?

“과거 북한이 주장해왔던 ‘외세 개입을 배제한 자주’라는 의미와 이번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어요.

두 번째 항목인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건 기본적인 철칙이지요. 북측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통일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를 말해줍니다.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양측의 입장을 수렴해보려는 의지가 없었어요.

이건 또 지난해 10월에 ‘동아일보’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서 내가 주장했던 내용과 부합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봐요. 양측이 합의를 이루는 쪽으로 수렴해가야지 줄곧 평행선만 그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게 그 때 내 주장이었는데, 이번에 그런 수렴점을 찾는 노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어요.

제가 듣기로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김대통령은 합의문에 ‘한반도에 이제는 전쟁의 공포를 없애야 하겠다’는 정도를 포함시키고 이산가족 상봉문제, 남북한 경제교류·협력을 위한 당국자회담, 이렇게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하고 계셨다고 해요.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까지도 선언문에 포함됐습니다.

또 한 가지,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하는 건 남북이 공동성명이 아니라 ‘선언’의 형태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는 점입니다. 북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선언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6·15 공동선언은 과거 7·4 공동성명이나 남북 기본합의서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지요. 전에는 항상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는 전제가 붙었는데 이번엔 남북 정상이 직접 합의한 거니까…. 이렇게 양 정상의 선언 형식으로 나왔다는 건 마치 3·1 독립선언처럼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겁니다.”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내용면에서 이번 공동선언을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앞으로 이번에 합의된 남북연합 문제를 다뤄가는 과정에서 남북 기본합의서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 모두 포함됩니다. 이산가족 상봉, 미전향 장기수 등 인도적 교류문제, 남북한 사회·문화교류, 경제교류·협력, 당국간 대화…, 모두 이번에 포함돼 있어요. 그러니까 과거에 했던 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던 거지요.

북한이 이번엔 자기들 고집을 접고 서로가 수렴점을 찾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 나는 이게 혁명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고려연방제에서 말하는 연방제나 우리측이 얘기하는 연합제라는 개념 자체가 좀 애매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남북 기본합의서에는 남과 북이 민족 내부간의 특수관계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남북연합’이란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 즉 ‘국가연합→연방제→완전한 통일’에서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국가연합이란 뭐냐, 이건 2국가 2정부 2체제를 의미해요.

반면에 북한에서 얘기하는 고려연방제라는 건 1국가 2정부 2체제입니다. 여기서 1국가라는 건 하나의 국가가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는다는 걸 의미해요.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할 경우에는 남이나 북이나 자기네 헌법에 위배됩니다. 양쪽 헌법 모두가 한반도 전역을 영토로 한다고 돼 있으니까.

그러니까 상호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국가 인정까지 포함된 걸로 보면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민족 내부의 모순적 문제 때문에 ‘국가연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남북연합’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남북연합 단계라는 건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관세동맹을 만들고, 공동시장을 만들고,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문화교류를 확대시키고, 이렇게 해나가면서 남과 북의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국민투표에 의해서 통일의 형태를 결정하는 단계가 됩니다.

이렇게 보면 북쪽에서 많이 양보했다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점진적 통일방안을 북쪽도 인정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공동선언의 첫 번째 ‘통일 원칙’ 항목과 관련해서, 앞으로 북한이 ‘자주’라는 용어를 과거처럼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연계시킬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됩니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한이 앞으로 민족 공조를 하는 데 있어 이제 더 이상 주한미군이 결정적인 걸림돌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번 평양 방문을 통해 느꼈다, 이게 우리의 공통적인 관측입니다.”

―그러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세요?

“그 문제를 지금 미리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당장은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협력하는 게 중요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서 과거처럼 주한미군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관찰이에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공동선언문의 1, 2항을 놓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한미관계에 대해서 불안해 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그런 불안감은 과거의 세력균형 결정론이 가져온 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안해 할 것은 없다고 봐요. 요즘 나오는 얘기로, 평양-베이징-모스크바를 잇는 북방 3각관계와 한·미·일의 남방 3각 관계가 대립하는 새로운 구도가 생겨나는 것 아니냐, 이런 얘기가 있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미국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입니다. 내가 보기에 북한이 여기에만 협조해주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건설적인 일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면 남북한간 민족 공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남북 두 정상은 이걸 분명하게 알아야 해요. 즉, 남북간 화해·협력·단결이라는 민족공조의 문제와,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조의 문제를 어떻게 잘 엮어 나가느냐, 이건 마치 마차의 수레바퀴같은 것인데 이걸 어떻게 잘 조율해가느냐, 이것이 두 정상이 안고 있는 공동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핵과 미사일 문제는 우리 정부의 소관사항이라기보다는 국제사회, 다시 말해 미국과 북한 사이의 어젠더로 계속 남는 겁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북한은 핵·미사일을 계속 대미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터이구요.

“그럴 가능성이 분명히 있지요. 북한에게 그것마저도 없다면 불안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 대통령이 하신 얘기, 민족공조와 국제공조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씀이 의미가 있어요. 이번에 이걸 김정일 위원장에게 많이 얘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대목만 해결된다면, 한반도 문제는 전향적으로,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앞으로도 난관이 많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남북경협이 크게 활성화되고, 우리가 한·미·일 3국 공조를 통해 북한에 대해서 과거처럼 채찍보다는 당근을 많이 쓰면 북한도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과거처럼 깡패국가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마침 최근 외신 중에, 북한이 미국에 대해서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거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나는 이렇게 봐요. 김정일 위원장이 장쩌민 주석을 만났다, 그러면 장쩌민은 클린턴과 그것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고 봐야죠. 또 푸틴이 평양에 간다, 그러면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이미 얘기가 돼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런 식의 국제공조를 통해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이라는 것이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전달하는 겁니다.

우리 대통령도 이번에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북쪽에서 반응은 없었지만, 분명히 전달했어요. 이렇게 보면 북쪽에게는 아직 카드가 있습니다. 그 카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결정되는데, 우리 정부가 여기에 주목하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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