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 동생의 ‘영업활동’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12-26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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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 동생에 대한 보고를 정 보좌관에게 올렸다.
    • 정 보좌관은 동생을 불러 경위를 물었다.
    • 동생은 억울하다고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 동생의 ‘영업활동’

    2003년 3월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오른쪽)과 문재인 민정수석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1월7일 광주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다들 문재인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을 실세라고 말하는데 인사업무를 맡은 정찬용 인사보좌관이 진짜 실세입니다.”

    노 대통령이 2003년 말 개각계획을 밝힌 직후 청와대 누군가가 ‘장관수행평가 결과’를 언론에 흘렸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꼴찌’로 나왔다. 윤 장관은 자진 사퇴했다. 잘리는 것도 서러운데 불명예까지 덮어쓴 셈이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국회 본관에 들어서는 허 장관은 ‘성적표’ 질문을 받자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처럼 장관들 벌벌 떨게 하는 장관평가가 청와대 인사보좌관 업무 중 하나다. 정 보좌관은 12월8일 “나는 600여명의 장관 후보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으며, 1개 부처당 30여명의 후보군이 있다”고 말했다. 인사보좌관은 장·차관을 비롯한 주요 공직뿐 아니라, 국내 공기업 인사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부산 문재인, 광주 정찬용’은 대통령이 광주에서 인사치레로 한 말은 아니다.

    노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인 송기인 신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재인이, 호철이(청와대 이호철 민정1비서관)만 5년 내내 대통령 곁에 있으면 안심이야.” 문재인 수석은 권력을 ‘사용(私用)’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광주에서는 정 보좌관이 그런 평가를 받는다. 그는 광주일고-서울대 문리대를 나와 경남 거창고 교사, 광주 YMCA 사무총장을 지냈다. 젊었을 때 집안에서 “사업을 하자”는 얘기가 나오자 그는 “난 돈 벌 줄 몰라. 돈 몰라”하며 손사레를 쳤다.

    정 보좌관에겐 사업을 하는 7살 아래 남동생이 있다. 두 사람의 우애는 남다르다. 그런데 요즘 정 보좌관은 몇 차례 동생을 불러 조심스러운 얘기를 꺼냈다. 첫 번째는 소위 증권가의 ‘정보지’가 발단이 됐다. “증권가 찌라시에 이런 게 있던데… ‘대통령인사보좌관의 동생이라는 정찬석이라는 사람이 여러 기관에 인사 리스트를 들고 다닌다’는 내용인데… 우리 가족 중에는 그런 이름이 없으니까 혹시 네가 그런 오해를 산 것은 아닌지 해서.” 동생은 펄쩍 뛰었다. 동생은 “불량한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음해성 작품이니 무시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정 보좌관은 사실 무근임을 확인한 뒤 안심했다.

    그러나 두 번째 발단은 ‘정보지’가 아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보고’였다. 민정수석실은 정 보좌관 동생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조사를 한 뒤 정 보좌관에게 보고를 한 상태였다. 정 보좌관은 다시 동생을 불렀다. 정 보좌관은 다짜고짜 “네가 모 대기업에 가서 특정 업체의 물건을 구매해달라는 압력을 넣었느냐. 되지도 않는 장비를 강매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다시 “억울하다”고 말했다. 동생은 또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생의 설명을 들은 뒤 정 보좌관은 민정수석실에 “다시 조사해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민정수석측이 또 다른 실세인 인사보좌관의 동생을 조사해 당사자인 인사보좌관에게 보고를 해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해프닝은 아니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다. 일종의 ‘경고’ 의미도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동생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보고

    무역회사인 K사의 대표이사인 정 보좌관의 동생은 2003년 9월1일 미국 실리콘 밸리에 본사를 둔 IT기업인 S사에 채용돼 이 회사의 서울지사에 근무하게 됐다. 직함은 ‘아시아·태평양 영업담당 본부장’. K사 대표이사직도 그대로 유지했다. S사는 주로 인터넷통신 성능을 계측하는 장비를 판매하는데 한국 내 상당수 초고속 인터넷 통신사들, 공기업들이 수요처로 알려져 있다. 정 보좌관의 동생은 S사 영업본부장에 임명된 뒤 모 공기업을 찾았다. 이 공기업은 자신들의 IT관련 사업현황에 대해 그에게 브리핑해줬다고 한다.

    정 보좌관의 동생은 2003년 10월말 한 초고속 인터넷 통신회사도 방문해 부사장과 인사를 나눴다. 초고속 인터넷 통신회사의 해당업무 본부장이 배석했다. 이 통신회사는 S사가 주요한 영업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곳이다. 이에 대해 정 보좌관의 동생은 “S사의 영업담당으로 취업하게 됐기 때문에 나를 소개하는 자리였고 인사만 나눴을 뿐”이라고 말했다.

    2003년 12월초 S사의 대표이사가 서울에 왔다. 정 보좌관의 동생은 S사 대표이사에게 한국에 R&D센터를 조성할 것을 처음 건의했다고 한다. 정 보좌관의 동생은 정보통신부에 진대제 장관과의 단독 면담을 요청했고 12월12일 면담이 성사됐다. 진 장관은 장관실에서 한국의 IT산업 현황, 외국기업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 정부차원의 R&D센터 유치계획 등을 정 보좌관 동생과 S사 대표이사에게 상세히 브리핑했다. 진 장관은 다음날 유럽 출장이 예정돼 있는 상태였다. 진 장관이 주로 설명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 면담은 예정시간을 30분 넘겨 1시간여 동안 계속됐다.

    진 장관은 면담 도중 “정찬용 대통령 인사보좌관의 동생이 맞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맞다”고 하자 진 장관은 “정 보좌관과 많이 닮았고 이미지도 비슷하다”는 취지로 화답했다고 한다.

    이후 정 보좌관의 동생은 해양수산부의 실·국장 등 고위 간부급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는 “내가 해양수산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인연이 있다. 내가 경영하는 무역회사가 선박의 전자장비 수출관련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정 보좌관 동생은 목포 해양대를 나온 선박기관사 출신이다.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정 보좌관 형제의 우애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주동자로 지목돼 도피중이던 윤한봉씨 문제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 정 보좌관이 동생을 찾아와 “네가 좀 도와주어야겠다”고 했다. 동생은 두말없이 자신이 타고 다니던 4만t급 무역선에 윤씨를 태워 미국에 입국시켰다. 이후 윤씨는 미국에서 망명이 받아들여진 최초의 한국 민주화운동 인사가 됐다. 덕분에 정 보좌관 동생은 사정기관의 수사를 받았다. 5·18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을 경계한 전두환 정부는 사법처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은 계기로 정 보좌관 동생은 여권을 압수당해 배를 탈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정 보좌관의 동생은 “형은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하면서 옥고도 치렀다. 형이 그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나는 집안에서 경제를 맡았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경제활동”

    정 보좌관은 정부 인사 관행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정상적 틀을 잡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혀왔다. 정 보좌관이 최근 민간 전문가와 정부 공무원간, 중앙 공무원과 지방 공무원간, 정부 부처와 부처 공무원간 인사교류 등 획기적 인사방안을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보수적인 정부 인사 시스템에 대대적으로 개혁의 칼을 들이대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들은 훨씬 더 많아진다. 그만큼 인사 담당자의 도덕성, 객관성, 공과 사를 구별하는 처신은 더욱 엄격히 요구될 수밖에 없다.

    정 보좌관의 동생도 형의 이런 고충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형에게 티끌 만한 흠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정 보좌관에게 개인적 청탁을 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사업가다. ‘형 임기 동안 해외에 나가 있어 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접었다. 그는 “평범한 개인으로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스스로 행동을 절제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사회 각계에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요즘엔 만나는 사람들도 가리는 편이다. 주변 사람들이 농담으로라도 형 이야기를 못하게 한다.”

    형이 ‘대통령도 인정하는 실세’로서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기에 동생이 정부기관, 공기업, 대기업을 직접 접촉하는 S사 영업직에 스카우트되어 대외활동을 하는 것을 두고 오해가 있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오해를 완전히 불식시키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점도 인정한다.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면 대체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더라.” S사에 입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정 보좌관의 동생은 “세상은 IT산업 중심으로 변화해가고 있으며 사업가로서 이에 적절히 적응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권력형 비리에 분노하지만 막상 실세가 부탁해오면 ‘노(No)’ 하지 못하는 게 한국의 주류 사회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때문에 실세의 친인척들은 정당하게 성취한 것들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찬용 보좌관은 동생을 믿는다. 정 보좌관의 동생은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계속 행동해야 할까. 아니면 달라져야 할까. 한국에서 실력자의 친인척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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