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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욕 안할 테니 ‘최고존엄’만 건드리지 말라우”

국정원女 사건으로 본 남북한 치열한 심리전 내막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이명박 욕 안할 테니 ‘최고존엄’만 건드리지 말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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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비난에 “옳소” 맞장구

북한 공작기관과 종북 성향 단체들은 온라인을 통해 제주 해군기지 건립,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북방한계선(NNL) 논란 등에 대해 한쪽에서 주장을 내놓으면 다른 쪽에서 받아쓰거나 화답하는 방식으로 북측에 유리한 논평을 퍼뜨렸다(표3 참조). 사례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10월 31일 ‘우리민족끼리’가 NLL과 관련해 “남조선 보수패당의 북방한계선 고수책동은 북남 사이의 군사적 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고 북침전쟁을 도발하려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자 이튿날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는 “남측 집권세력은 연일 그 무슨 북방한계선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어떻게든 서해바다를 전쟁터로 만들려는 노골적인 전쟁기도를 마구 쏟아내고 있다”고 촌평했다.

8월 14일 범민련 남측본부가 한일정보보호협정 추진과 관련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보장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이튿날 북한 ‘구국전선’은 ‘일본 군국주의 길 터주기’라고 논평했다. 6월 20일 국내 인터넷 매체 ‘자주민보’가 한일정보보호협정 추진과 관련해 “실질적인 이 땅의 통치자인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협정 체결”이라고 주장하자, ‘우리민족끼리’는 이틀 뒤 “미국은 남조선에서 짐을 싸서 당장 아메리카로 떠나야 한다”고 호응했다. 이 매체는 8월 20일 “녹조는 이상기후가 아니라 보 때문” “녹조 오염 물고기 섭취도 치명적”이라고 촌평했다. 이 같은 주장 역시 국내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퍼 날라졌다.

“이명박 욕 안할 테니 ‘최고존엄’만 건드리지 말라우”
국정원의 ‘투박한’ 응전



북한 공작기관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때도 심리전으로 한국 내부를 분열시키고자 했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해킹으로 입수한 주민등록번호와 아이디를 도용해 국내 포털 사이트에 거짓 주장을 담은 글을 띄운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에도 국내외 연계세력과 ‘맞장구치는’ 방식으로 심리전이 이뤄졌다. 일부 종북 세력과 북한이 거짓 주장을 주고받으면서 거짓을 사실로 만드는 공작을 벌인 것. 북한 공작기관이 종북 세력이 떠드는 주장을 짜깁기해 온라인으로 전파하고 다시 남한의 좌파세력이 이를 인용하는 형태의 ‘증폭 공작’도 벌어졌다는 게 정보당국의 설명이다.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주임무가 바로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과 국내 인사의 종북활동을 모니터링하는 것이었다.

“북한의 대남 사이버 심리전을 방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북한을 찬양하는 잘못된 글이 마구잡이로 번져나갈 경우 이에 대해 사이버 공간에서 북한을 정확하게 알리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요.”

김 씨가 40여 개 아이디를 사용하면서 올린 게시 글 중에는 안보활동에 속한다고 할 수도, 정치활동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는 글이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찬성, 4대강 정책 옹호, 금강산 관광 관련(실명 거론하지 않은 문재인 후보 비판), 국가보안법 관련(실명 거론하지 않은 이정희 후보 비판) 글 등이 그것이다. 이 글들은 북한의 공작기관이 심리전의 일환으로 해군기지,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작성됐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온라인을 통한 북한의 선전전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손을 놓고 있었다면 그것은 역으로 직무유기다. 그럼에도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대응해 체제 수호적인 글을 올리더라도 국내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원이 북한의 온라인 심리전에 대응하는 과정이 다소 ‘촌스러웠다’고도 할 수 있다. 김 씨로부터 아이디 5개를 건네받아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글을 쓴 이모 씨가 등장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의 유머’ 운영자는 “김 씨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3의 인물들이 아이디 38개를 이용해 게시 글 165건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복수의 탈북자는 ‘기관’ 등의 요구로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과 관련해 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밝힌다. 한 탈북자는 글을 올리면 약간의 돈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탈북자들의 증언들은 다음과 같다.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글을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려달라더군요. 제 명의로 된 아이디와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글을 올렸습니다.” “아이디를 여러 개 주면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좌파를 응징하는 글을 썼습니다.” “하고파서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안 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글을 써주는 거죠. 나쁜 내용도 아니고요. 어느 때보다 안보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요지를 강조해서 써주는 걸 좋아하니까.”

북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 퍼뜨리는 종북세력의 비상식적 행태도 한심하지만 게시 글, 댓글 형태로 거짓 주장을 바로잡으려고 시도하다 정치개입 논란을 겪은 것도 세련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한의 간교한 심리전 공작과 종북세력의 준동에 맞서 한국 사회가 추호의 흔들림도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정보기관이 반드시 해야 할 임무다.

신동아 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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