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소통·통합·복지·경제민주화보다 성장·발전·시간제 일자리 중시

사회연결망분석으로 본 박 대통령 속내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4-01-20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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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 대통령 연설 & 회의 발언 29만 자 분석
    • ‘우향우’ 뚜렷, ‘박정희式 발전국가모델’ 계승
    소통·통합·복지·경제민주화보다 성장·발전·시간제 일자리 중시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의 어휘 연결망.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대하는 국민과 잘 ‘소통’하겠다고도 했다. 그 일환으로 ‘국민 대통합’을 지향하는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2013년 2월 취임 후엔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국정 기조를 제시했다. 그러나 ‘개념이 모호하다’는 평이 계속 따라다닌다. 기존의 ‘경제민주화’는 대척적 개념인 ‘경제성장’과 한동안 병진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복지’는 ‘경제민주화’와 맞물린 가치다. 박 대통령은 2013년 ‘기초연금’ 같은 복지공약을 축소했다. 이 문제로 사과했다. 그러면서 대선 때의 공약은 유효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복지’도 희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관심은 ‘일자리’로 옮겨가는 것으로 비치고 대북외교에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개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김용학 연세대 교수팀이 분석

    박 대통령은 1월 6일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통일은 대박’이라는 새로운 국정 기조를 제시했다. 여론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적어도 개념적 모호성은 걷혔다고 본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복지’ ‘소통’ ‘통합’ ‘창조경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같은 기존 가치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구조화되는지 의문이다. 언뜻 봐도 고차방정식 같다.

    이렇게 박근혜 정부는 지난 1년여 동안 많은 말과 가치를 쏟아냈다. 그때그때 다 ‘시급히 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듣는 사람의 관점에선 어디에 방점이 찍힌 건지 모른다는 점이다. 특히 ‘소통’ ‘통합’ ‘복지’ 같은 박근혜 정부의 태생적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속생각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신동아’의 의뢰로,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팀이 자체 개발한 ‘사회연결망분석’ 컴퓨터 프로그램에 박 대통령의 말을 입력해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사회연결망분석은 화자가 말한 주요 단어의 빈도, 거리, 중심성 등을 산출해 인지 네트워크 지도를 만든 뒤 이를 통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발언에 내재한 의식체계, 세계관, 전략, 욕망, 주요 관심 사항을 설명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최고 권위 사회학 학술지인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한 모든 대내외 연설 내용과 언론에 공개된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발언 내용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설 내용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재된 박 대통령 명의 연설문 전체를 수집한 것으로 15만7407자(3만6809어절) 분량이고, 국무회의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발언 내용은 언론에 공개돼 보도된 발언 내용을 수집한 것으로 5만1620자(8680어절) 분량이다.

    소통·통합·복지·경제민주화보다 성장·발전·시간제 일자리 중시

    박근혜 대통령의 ‘민생’ 발언은 구체적 정책 관련 어휘를 수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김 교수 팀은 박 대통령의 연설에서 핵심 어휘군 456개의 연결망을 그림으로 도출했다. 이어 중요 어휘들과 함께 쓰인 어휘들이 서로 연결된 것으로 보고 그 연결망을 하이라이트 그림으로 나타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휘 사용상의 특성을 한 화면에 들어가는 그림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회의 발언에서도 5회 이상 나타난 중요 어휘 286개를 뽑아 핵심 어휘군의 연결망과 중요 어휘별 연결망을 그림으로 제시했다.

    분석 결과, 박근혜 정부의 태생적 가치들이 박 대통령의 말과 생각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와 관련해 ‘소통’ ‘국민통합’ ‘복지’는 적게 등장하고, ‘개발’ ‘성장’ ‘시간제 일자리’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보면 박 대통령의 어휘 사용과 생각에서 ‘우향우’ 경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특히 부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전국가모델’을 계승하는 점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 교수의 설명에 기초해 풀어쓴 구체적인 분석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 연설의 경우, 가장 많이 등장한 어휘와 횟수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 508회, 경제 303회, 세계 281회, 함께 257회, 위해 256회, 일 257회, 새로운 241회, 정부 237회, 노력 190회, 발전 179회, 평화 169회, 창조 167회, 생각 161회, 문화 151회, 존경 159회.’ 이들 어휘를 포함한 456개 어휘가 핵심 어휘군을 형성한다.

    “‘국가’와 ‘발전’이 전체 아울러”

    여기서 의미 구조의 전반적 배열을 보면 좌상 면에는 행복, 헌신, 존경 등과 같은 추상적이고 가치적인 개념이 눈에 띈다. 대각선으로 반대쪽인 우하 면에는 경제, 창조, 성장, 기술, 기후 등과 같은 구체적이고 정책적인 개념이 드러난다. 좌하 면에는 평화, 통일, 국제, 함께, 인류, 나라 등과 같은 세계화와 관련된 개념들이 있다. 우상 면에는 여성, 벤처, 중소, 기업, 투자, 창업 등 경제 정책 중에서도 주안점을 두는 정책 개념이 등장한다. 정중앙 면에는 국가, 발전, 미래, 도전이 서 있다. 국가, 발전 등 정중앙 면이 전체 개념 지도를 아우르는 핵심 개념 집단이므로 박 대통령이 ‘발전국가모델’을 지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등장한 단어 중 ‘국민’이 가장 많다. 이는 연설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같이 ‘국민’을 반복해 호명하고 여러 정책을 설명할 때에도 국민을 정책의 동반자이자 수혜자로 여긴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함께’ ‘위해’가 ‘국민’과 같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을 많이 쓰는 건 역대 대통령 연설도 모두 마찬가지인데, 연설의 특성상 수용자를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통·통합·복지·경제민주화보다 성장·발전·시간제 일자리 중시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다음으로 ‘경제’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경제’와 함께 언급되는 단어들은 ‘새로운’ ‘세계’ ‘창조’ ‘일’ ‘발전’ ‘성장’이었다. 이를 보면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성장’을 주된 국정 기조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경제 문제에 접근할 때 세계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국민에게 알린 뒤 이를 논거로 경제를 성장·발전시켜야 할 당위성을 설파하고 성장과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자 방법론으로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논리 구조를 띠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어휘 연결망에서 드러나는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문화를 융합한 새로운 것,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세계’라는 어휘가 세 번째로 자주 등장한 것은 박 대통령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세계’는 ‘경제’ ‘문화’ ‘성장’ ‘발전’ ‘나라’와 함께 제시된다.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1년간 국내 문제보다는 외교 등 해외 문제에 더 관심을 뒀고 해외에서 성과를 올리는 데에 주력해온 점과 맞닿는다. ‘세계’가 ‘경제’ ‘성장’ ‘나라’와 맞물린 것은, ‘세계에 한국의 경제성장을 알림으로써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동시에 세계의 상황을 국내에 알림으로써 경제성장과 발전의 동기를 부여하고자 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친다.

    다음으로 강조된 키워드는 ‘정부’였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의 유지와 발전의 중심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민이나 기업과 함께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점이 반복된다.

    박 대통령은 ‘평화’라는 어휘를 자주 강조했는데 그의 평화는 국민을 위한 평화, 신뢰에 기초한 평화, 자유에 기반을 둔 평화였다. 주로 해외 연설에서 남북한 간 ‘신뢰’ ‘협력’ ‘번영’ ‘통일’ ‘평화’를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해 ‘비전’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발전’이라는 어휘가 공약이나 공식 정책 발표에 등장하는 주요 어휘보다 더 비중 있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전국가모델’을 이어받아 이를 두드러지게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의 ‘행복한 세상’은…

    전체적으로 볼 때 박 대통령은 현안을 세부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추상적인 가치들을 강조하는 편이다. ‘행복’ ‘미래’ 같은 키워드가 대표적이다. ‘행복’을 구성하는 연관 어휘는 ‘삶의 질’ ‘문화’ ‘여성’ ‘안전’ ‘발전’ ‘꿈’ ‘자유’ ‘통일’이다. 이는 여성 대통령으로서 평소 생각한 ‘행복한 세상’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공약에서 가장 비중 있게 자리 잡았던 ‘복지’ 어휘와 복지 관련 개념·정책 어휘가 그의 연설 전반에 걸쳐 의외로 적게 등장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의 생각에서 ‘복지’에 대한 관심도나 가치 비중이 낮다는 의미다. 이는 복지정책을 공약한 내용대로 추진하기 어렵게 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공약에선 ‘소통’ ‘국민통합’ 어휘가 강조됐는데 이들 어휘 역시 상당히 약화돼 나타난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에서 나타난 특성은 박 대통령의 연설에서 보이는 경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일한 특성에 대한 설명은 생략해도 좋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회의 발언은 그의 연설에 비해 특정 이슈를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관료들과의 회의다보니 ‘대책’ ‘점검’ ‘강구’ ‘철저’ ‘감독’ 등 정부의 임무를 강조하는 어휘가 많은 편이었다.

    세부적으로 ‘국민’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어휘는 ‘일’이었다. 일자리로서의 일 또는 정부가 해야 할 일로 쓰였다. 주로 ‘일자리 창출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의 정책과 정치권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맥락이다. 특히 ‘일’과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긴밀히 연결돼 일자리 문제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점을 무척 강조했다.

    또한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을 자주 언급했다. 취업 주체와 관련해 여성, 청년 문제를 주로 거론하면서 차별 해소, 다양한 일자리 마련을 역설했다.

    일자리, 안전, 개인연금, 원전

    회의 발언에서 화제의 중심에 빈번하게 올린 시사 이슈 관련 어휘는 ‘사고’ ‘연금’ ‘원전’ ‘공약’ ‘비리’ ‘부패’ ‘세금’ ‘야당’ ‘의혹’ ‘월세’ ‘주택’이었다. 박 대통령이 회의에서 주로 관심을 두고 고민한 이슈가 일자리 외에 각종 사고로부터의 안전, 개인연금 공약 축소에 따른 논란, 원전 비리 척결, 증세 논란, 야당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제기, 주택 문제 순이라는 점이 나타난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민생’이란,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하고 철저히 살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생’이라는 어휘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구체적인 정책 관련 어휘는 나타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1월 6일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474’ ‘통일은 대박’을 핵심 어휘로 언급했다. ‘3개년’ ‘474’ ‘대박’은 박 대통령의 이전 연설이나 회의 발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거의 새롭게 등장한 어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이전 연설에서의 ‘박정희 식 발전국가모델’이 개념적으로 더 다듬어진 형식으로 비친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의 연설과 회의발언을 보면, ‘소통’ ‘국민통합’ ‘복지’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성장’ ‘발전국가’ ‘시간제 일자리’를 더 중심적 가치로 여기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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