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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연구

기로에 선 ‘기업경찰’ 공정거래위

개혁의 기수인가 성장의 걸림돌인가

  • 글: 고기정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기로에 선 ‘기업경찰’ 공정거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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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79년 10·26사태 이후 실권을 잡은 신군부가 정치·사회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나선 것이 공정거래법을 제정한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법안 작성자는 훗날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전윤철(田允喆) 당시 공정거래정책관실 총괄과장. 전과장은 이미 ‘공룡’으로 성장한 대기업들을 견제하고 물가도 잡겠다는 차원에서 무소불위의 초헌법적 권력기관이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법안 초안을 브리핑했고, 이어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다.

그때도 전경련의 모 상무가 경제기획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대기업들의 전방위 반격이 있었으나, 전두환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결단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후 1984년 하도급법이 제정됐고 1986년 공정거래법 1차 개정을 통해 대기업을 견제할 수 있는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의 기본 틀이 형성됐다. 지주회사 금지, 상호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제도가 주요 내용이었다.

1994년 경제기획원이 해체되면서 공정위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독립한 뒤 1996년 장관급 기관으로 격상됐다. 그 이듬해에는 경제규제 개혁의 총괄기능을 재정경제원으로부터 이관받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공정위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 가운데 하나로 1993년의 약사회 고발사건을 들 수 있다. 그해 9월24일 약사회는 약사들의 한약 조제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에 반대해 전국의 약국을 무기한 폐문(閉門)키로 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19조의 ‘판매를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약사회에 법위반 사실을 중앙일간지에 공표토록 했다. 또 약사회 회장직무대리와 사무총장 등을 검찰에 무더기로 고발했다.



이 사건은 약사들의 파업을 ‘공정한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을 들어 금지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약사회의 폐문 결정이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약국의 한약 조제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공정위가 무리하게 법을 집행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개혁이냐, 간섭이냐

약사회 사례에서 보듯 시장에 대한 공정위의 개입은 거의 무제한적이다. 경쟁을 제한하는 요건이 사례별로 정해지지 않은 만큼 ‘걸면 걸리게’ 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권의 이해에 따라 공정위가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공정위가 신문시장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실시하고 신문고시를 개정한 것도 이 맥락에서 풀이하는 견해가 많다. 정부가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공정위가 ‘신문시장 경쟁질서 정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정거래법을 들이밀었기 때문.

경쟁촉진 이외에 공정위가 주요 업무로 삼는 분야는 독과점 해소, 소비자 보호, 하도급 질서 감시·감독 등이다. 이 가운데 독과점 해소는 사전적 의미 이외에 대기업 총수를 정점으로 하는 한국 대기업의 지배·소유구조를 바꾸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외환위기 때 겪었듯 한국 대기업은 한 계열사가 망가지면 그룹 전체가 도산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계열사끼리 상호출자를 통해 가공(架空) 자본을 만들어 총수의 지배력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의 지배·소유구조 개선작업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형 대기업인 재벌의 경쟁력이 재평가되고 있는 데다, 기업의 체질도 개선된 만큼 공정위의 개혁 요구가 시대상황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강철규 위원장은 8월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CEO포럼에서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이후 개발연대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던 요소투입형 성장이 한계에 달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구조개혁의 지속적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 살리기의 출발선이 기업개혁에 있다는 논지다.

그는 또 “구조개혁을 잘 수행하면 총요소 생산성 증가에 힘입어 2012년까지 연 5% 이상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잠재성장률이 5%를 밑돌고 성장의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강위원장도 한국 대기업의 재무구조와 경영풍토가 개선됐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가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라는 데 무게를 싣는다. 그룹 총수가 4% 안팎의 지분으로 계열사 간의 거미줄식 출자를 통해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결국 ‘시장실패’로 이어져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암적 요인이 된다고 본다.

반면 재계는 ‘현실론’을 주장한다. 공정위가 타깃으로 삼고 있는 삼성의 논리를 들어보자.

“공정위는 심지어 삼성전자를 그룹에서 계열분리하거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라고까지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삼성전자는 현 시스템에서 더 잘 작동하고 있다. 1970년대에 그룹 차원의 대규모 지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또한 매년 수십억원의 수익을 내는 캐시 카우(cash cow)를 굳이 버리라는 이유가 뭔가. 삼성전자 때문에 그룹 전체가 위험하다면 분리시키는 게 맞지만, 지금 상태로도 잘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두라는 것도 현실을 외면한 발상이다. 총수 일가가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두려면 15조원이 필요하다. 누가 그 정도의 거액을 동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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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기정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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