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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라디오전쟁사령부’ RFA 정체

효과만점 대북 압박카드 김정일 몰락 노린다

  • 글: 곽대중 북한민주화네트워크 KEYS 편집장 bitdori21@kebi.com

미국의 ‘라디오전쟁사령부’ RFA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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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가 첫 전파를 쏘아 올린 것은 1996년 9월29일. 시작은 중국어 방송이었다. 단 30분의 방송이었지만 중국정부는 격렬히 반발했다. ‘중국에 언론의 자유가 없으니 그 공백을 우리가 메우겠다’는 국제사회를 향한 ‘창피주기’인 데다 방송의 주요 제작진이 중국에서 반체제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즉각 “미 중앙정보국이 만든 냉전시대의 잡음”이라며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했고 이듬해부터는 방해전파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1997년 3월 RFA가 한국말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하자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미국이 도발적으로 자유아시아방송의 조선말 방송을 불어대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우리(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과 압살정책을 버리지 않고 더욱 노골화하는 길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을 통해 RFA를 “미국의 사상·문화적 침투책동”이라고 규정하며 주민들에게 각종 부르주아 사상의 유입을 철저히 경계할 것을 촉구하는 등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RFA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유럽에서 입증된 라디오의 위력

중국, 북한 등 RFA 대상 국가의 정부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RFE(Radio Free Europe)의 악몽 때문. 현재 체코 프라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RFE 역시 미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라디오 방송이다. RFE는 1951년 서독 뮌헨에서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국가를 겨냥해 방송을 개시했다. ‘자유의 횃불’로 불리던 이 방송은, 자매방송인 RL(Radio Liberty)과 함께 냉전시기 유럽 각 나라의 언어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의 도미노식 붕괴를 유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동유럽 국가의 주민들은 국영방송보다 RFE를 더욱 신뢰하고 즐겨 들었고, 자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운동의 소식을 RFE를 통해 속보로 듣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1991년 보수강경파의 쿠데타로 잠시 실각한 고르바초프도 RFE를 들으면서 국내외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민주화운동이 성공하여 정권을 잡게 된 체코의 하벨 대통령은 2001년 RFE 개국 50주년을 맞아 이 방송을 “진실의 메시지”라고 칭송하기도 했고, 구 연방의회 건물을 무료로 내주어 RFE 본부를 독일 뮌헨에서 체코 프라하로 옮겨오게 하면서 “프라하가 RFE의 기지로 선택된 것은 체코의 명예”라고 추켜 올릴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내비쳤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차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미국정부가 RFE에 쏟는 열정은 자연히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 들어 RFE를 중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RFA라는 새로운 방송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동유럽에 민주주의가 확장되긴 했지만 여전히 민족분규와 인권유린이 계속되고 있고, 냉전시대에 생겨난 애청자들의 의지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RFE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전투상황을 자세히 전달하여 다시 한번 그 기능을 입증했고, 러시아군이 체첸에서 자행한 인권유린을 중점 보도하여 러시아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RFE는 여전히 26개 언어로 방송하며 약 3500만명의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다.

RFE의 아시아판(版)이라 할 수 있는 RFA는 1994년 미국 의회에 의해 설립되었다가 1996년 민간회사로 독립했다. 상업적인 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예산은 미 의회의 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으나 방송 내용에서는 철저히 독립적이라고 RFA 관계자는 강조한다. 미국정부의 방송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RFA 서울사무소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이수경씨는 “취재를 다니다 보면 RFA를 미국의 ‘대한뉴스’쯤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대한뉴스는 과거 정부에서 국정홍보용으로 제작하여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보여주던 보도물이다. 이씨는 “RFA의 편성원칙을 알려면 나의 하루를 보면 된다”면서 자신의 하루생활을 소개했다.

아침에 출근해 이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온·오프라인을 통한 신문 읽기. 북한 관련 뉴스는 빠뜨리지 않고 보고 북한 관련 인터넷 사이트도 모두 체크한다. 그 중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꼭 알려야 할 뉴스를 선정하고 그날의 취재대상을 정한다. 그 내용을 워싱턴 본사에 있는 한국말 방송 담당자에게 보고하여 내용과 관련한 지시를 받은 후 취재현장에 뛰어든다. 대본을 작성하고 목소리를 녹음하여 이를 본사에 보내는 일까지 모두 기자의 몫이다. 지금껏 기사 내용과 관련하여 수정을 요구받거나 방송에서 제외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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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대중 북한민주화네트워크 KEYS 편집장 bitdori21@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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