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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개구리소리 그리고 명상

작가 김정빈의 ‘문명 중독증’ 털기

  • 김정빈

보름달, 개구리소리 그리고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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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심이 서자 나는 그때부터 지방 소도시를 순례하기 시작했다. 고향이 남쪽에 있는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서울의 남쪽 지역과 동쪽 지역을 마음에 두었다. 집안 어르신들도 고향에 계시고, 고향에 갈 일도 적지 않은만큼 구태여 서울 북쪽에 정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생각한 것이 강원도 원주에 집을 두고 집필실은 영월에 두는 안이었다. 굳이 원주와 영월을 염두에 둔 것은 당시 내가 아는 분이 영월에 내려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와 더불어 영월에 내려가 그곳 풍광을 보면서 감탄해 마지않았다. 푸른빛을 띤 아름다운 물이 흐르고, 울창한 송림이 둘러싸고 있는 곳, 영월에는 심지어 무릉(武陵), 도원(桃園)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까지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영월에는 어렸을 적 내 마음을 애처롭게 사로잡던 단종에 얽힌 고사가 숨쉬고 있었으니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가 알던 분이 사는 곳으로 말하면 주변에 아무런 인공물도 보이지 않는 산골이었다. 앞산은 준엄하게 가로누워 있고, 집 아래쪽 시내에는 일급수에만 사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조촐하게 앉은 집에서 창밖을 내다 보니 때마침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불그레한 비단필을 장대하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선뜻 그곳으로 떠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나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굳이 그 이유를 밝히지는 않겠다). 그래서 다시 알아보게 된 곳은 대전과 계룡산 근처였고 나중에는 옥천, 영동까지도 검토 대상에 올려 보았지만 그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랴. 나는 용인 지역과 안성 지역에도 자주 들러 여기저기 적당한 곳이 있을까 싶어 기웃거려 보았고, 거의 결정 단계에까지 갔었지만 끝내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시골로 내려간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상 시골에서 살려고 하면 걸리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도시의 주거 조건, 특히 아파트의 경우는 천편일률적이어서 가서 살 곳을 쉽게 결정할 수 있지만, 시골의 경우엔 지역에 따라 집값(땅값)이 천차만별인 데다가 그 조건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곳은 풍광은 좋은데 진입하는 길이 없고, 어떤 곳은 다 좋은데 경제력이 미치지 못했다. 내가 꼭 원하는 곳은 상대방이 팔려 하지 않았으며, 어떤 곳은 다른 것은 다 좋은데 규제에 묶여 건축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번 마음먹은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드디어 도심을 떠나다

이렇듯 여러 과정을 겪은 다음 내가 최종적으로 마음을 굳힌 곳이 지금 살고 있는 평택 지역이다. 평택의 경우 우선 교통편에서 유리했다. 열차가 수시로 서울을 연결해줄 뿐 아니라 버스편도 10분 간격으로 서울과 통한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서울까지 1시간에 도착할 수 있으니 거리상으로는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평택은 이름 그대로 넓은 평지가 대부분이어서 공제선이 시원하다는 장점이 있다. 인구 8만으로 구성된 시가지는 자동차로 5분 이내면 벗어날 수 있는데, 일단 시가지를 벗어나면 하늘이 180도에 가까울 만큼 시원하게 열리는 것이다.

게다가 저녁놀이 장관이었다. 어릴 적 집 뒷산에 올라가 서글픈 마음으로 저녁놀을 바라보며 현제명 작곡의 ‘고향 생각’을 부르곤 하던 기억이 있는 그 점 또한 하나의 매력으로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평택에 자리를 잡기로 결정한 것은 이와 같은 외적 조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침 평택에는 아내의 사촌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 점이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아무래도 외지에 가서 살다 보면 외로움을 타게 마련일 것이었다. 아파트로 밀집한 지역을 벗어나 시골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지 공간 이동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골에서는 시골다운 생활, 즉 이웃과 정이 오가는 삶을 살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랬다. 부천이나 안양에 살 때 저녁 이후에 내가 남의 집에 가거나 다른 사람이 내 집을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의식이 팽배한 아파트 생활은 사람과 사람 사이 또한 콘크리트 벽처럼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평택에 온 이래로 나와 아내에게는 가까이 지내는 집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갖가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또는 그들과 함께 나는 자주 저녁 외출을 한다. 대개가 생일 등 축하할 일 때문에 만나게 되는데, 그런 만남을 통해 나는 사람이 산다는 것이 다만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내가 평택에 온 지 다섯 해가 되었다. 지금 나는 살림집으로 평택 시내에 아파트 한 채를 세내 쓰고 있으며, 어떤 분이 안성 지역 시골 마을에 지은 전원주택을 빌려 집필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평택에서도 살고 안성에서도 사는 셈이다.

나는 별일이 없는 한 아침에 집을 떠나 집필실로 향한다. 집필실에 도착하면 글을 쓰기도 하고 독서를 하기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주로 피곤할 때 자지만 할 일이 없어 자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마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뜰에 나가 잡초를 뽑거나 잔디를 손질하는 것은 물론이다.

집필실은 살림집인 아파트에서 15km 떨어져 있다. 나는 아침에 집을 떠나 집필실로 갔다가 저녁이면 돌아온다. 경우에 따라 집필실에서 잘 때도 있다. 대개는 손님이 찾아와서 자게 되지만 혼자서 잘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나는 고적한 기분과 넉넉한 자유를 함께 느낀다.

옛 시인처럼 자연에 묻혀

남향으로 앉은 집필실은 방 세 개와 넓은 거실로 구성되어 있다. 건평은 모두 36평이다. 짓던 무렵에는 방을 작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는지 방들은 좀 작다. 대신 거실이 아주 넓으며, 거실 남쪽과 동쪽으로 전망창이 나 있다. 그 두 개의 창 가운데 동쪽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으로 일품이어서 이 집을 찾는 사람마다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 창 밖에는 둥그스럼한 공제선을 그리고 있는 봉우리가 멀리 바라다보인다. 봉우리들은 계절마다 그 계절의 색깔을 연출하는데, 지금은 막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절인만큼 산은 초록에 묻혀 있다. 그리고 운이 좋을 경우 그 산으로 달이 떠오르는 풍경을 볼 수도 있다. 거기에 더 운이 좋다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것이요, 거기에 더 좋은 운이 추가되면 그 달은 꽉찬 보름달일 것이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요즘엔 잘 안 부르는 노래지만 그 노랫말이 달을 옳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한다. 달은 쟁반같이 둥글고 잘 익은 빵처럼 노르스름하다. 그것도 거죽이 우툴두툴한 소보로빵(곰보빵)이다. 거기에 거무스름하게 탄 데까지 있으니, 달은 영락없는 하느님의 빵일 것이다.

하지만 달이 쟁반처럼 크게 보이는 것은 달이 떠오를 때와 질 때뿐이다. 이것은 착시현상이다. 달의 운행이 중천에 이르면 이 사랑스러운 선녀는 떠오를 때에 비해 훨씬 작아 보인다. 파티의 시작 때 주빈으로 등장한 귀부인이 파티가 중반에 이르러 손님들 속에 끼어들게 된 격이라고나 할까. 그때쯤이면 눈부시던 귀부인도 처음처럼 돋보이지는 않는다. 귀부인을 존경하고 달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파티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달은 어김없이 운행되어야 하니까.

이 집필실을 며칠 빌려 사용했던 한 작가의 권유에 따라 나는 달이 떠오를 때는 집안의 불을 끈다. 그래야만 달이 거실까지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달은 인공이 빚은 전기 불빛을 질투하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달을 집안으로 불러들이면 나는 영락없는 21세기의 이백(李白)이 된다. 이백은 달과 시와 술을 지독히도 사랑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달을 사랑하고 시를 읊조릴 줄은 알지언정 술을 사랑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떠랴. 천년 전의 대시인이 사랑한 것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을 닮고 싶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

그리고 그때쯤 나는 눈에 휴식을 주기 위해서라도 잠시 눈을 감아야 한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개구리 왕자들이 얼마나 애타게 자기를 알아달라고 외치고 있었는지를 알고 좀 미안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개굴개굴개굴개굴개굴…. 나는 지금 그들이 부르는 다섯 번의 노래를 적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다. 수천 번의 노래, 수만 번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들은 참 끈질긴 가수들이다.

개구리들의 노래에는 쉼표가 없다. 일정한 시간마다 멈춰서 박수를 받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개구리들은 그런 욕심도 없다. 또 개구리들에게는 오직 한 곡의 레퍼토리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개굴’이라는 단 두 음절로 된 짧은 노래가. 리트 형식은 대개 여덟 소절이 한 곡을 이루지만 개구리 왕자님들은 그런 독일말은 모른다. 또한 그들은 음악에는 리트 형식말고도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소나타라든가 심포니 같은 게 있다는 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이곳에서 달을 즐기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개구리들의 이 위대한 합창 때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점에 의거하여 나는 개구리의 노래를 함부로 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사정은 이렇다. 내가 아내와 함께 이 마을에 들른 것은 초여름의 한낮이었는데, 우리는 초저녁 무렵에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았다. 바로 그때 어둠이 막 덮은 논에서 개구리들의 열렬한 합창이 들려왔다. 시골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나, 나는 그만 그에 반해버렸다. 그런데 반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고향이 서울인 아내 또한 나 못지않게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성은리(聖恩里) 통심(通心) 부락. 이름까지 너무나 다정한 그 마을에 마음을 둔 나는 마침내 이곳에 집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은 전과 달라졌다. 마음은 더 편안해졌고, 인생은 더 유장(悠長)하게 비쳐왔다. 풀과 나무, 새와 벌레, 꽃과 이슬, 하늘과 구름, 그리고 음악과 명상 또한 꿈꾸던 피안(彼岸)으로부터 현실적인 차안(此岸)이 되어 다가와 주었다.

역시 평택에 온 것은 잘한 일이다. 살림집을 시내에 두고 집필실을 전원에 두기로 한 것 또한 잘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근래 들어 나는 살림집까지 전원으로 옮길 수 있는 첫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 어쩌면 올해 안으로, 늦어도 내년에는 그 꿈이 이루어질 것으로 나는 기대하고 있다.

만일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집 안에 내가 좋아하는 나무와 꽃을 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새와 곤충을 가까이에 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초대하여 시를 읊고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이 몇백년을 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어 하는 사이에 내 나이도 벌써 마흔여덟, 내일모래가 쉰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어머님은 고작 마흔여섯을 사셨을 뿐이요, 금아(琴兒:피천득) 선생은 “마흔부터는 여생”이라고 하였으니, 나는 이제부터라도 조촐하고 한가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욕심을 더 줄여야 할 것이다. 한사코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속도에 속지 말 것이며 느림의 미학, 음미의 철학을 더욱더 다져야만 할 것이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한(무형적인), 또는 스스로 그러한 것(형상이 있는). 생각해 보면 이 대자연 속에 오직 인간만이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파괴하고 조작하는 인공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노자는 조작심을 버리고 자연성을 회복할 것을 가르쳤거니와 나는 전원에서 사는 동안 그 가르침의 참뜻을 몸으로 느낀다. 또한 아무 조작도 하지 않고 심신을 지켜보라는 부처님의 명상법에서도 다시 한번 진리의 힘을 느낀다. 그렇게 살고 싶다. 물처럼 바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고 싶다.

신동아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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