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좌절의 극한에서 부르는 슬픈 희망의 노래

  • 김시무·영화평론가

    입력2004-11-09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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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1999년 ‘쉬리’가 터뜨린 작품 한 편 당 관객동원 600만 명 시대가 열린 이후 해마다 그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는 사실은 외형적인 지표일 뿐이다. 이제 한국영화 하면 극장에서도 우선순위로 걸릴 만큼 유통환경도 변했다. 한국영화는 비디오로 보아도 된다는 기존의 통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관객이 외화보다 한국영화를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질적으로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렇게 볼 때 2001년은 한국영화의 역사에서 각별한 중요성을 지니는 한 해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대박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상당한 수준의 작품성을 담보한 상대적 소규모 영화들의 고군분투가 두드러진 해였기 때문이다.

    상반기에 개봉되었던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을 시발점으로 문승욱 감독의 ‘나비’와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 그리고 중견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 등이 비록 흥행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평단의 호평을 끌어내면서 새로운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던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역시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되어 대상(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을 차지한 송일곤 감독의 ‘꽃섬’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에서도 임순례 감독의 둘째 작품인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단연 그 중심에 선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는 이른바 작가주의를 표방한 영화들이 지향하고 있는 미덕이 다 담겨 있다. 일단 이러한 경향의 영화들을 ‘사적 영화’라고 해두자.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사적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그러한 경향의 영화들이 흔히 간과하거나 도외시하기 쉬운 대중적 정서에 부합하는 모종의 감상성(sentimentality)을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대중을 소구대상으로 하는 영화들을 대중영화라고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절묘한 융합을 이루어낸 흔치않은 영화라는 말이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사적 영화라 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영화든 영화를 보는 관객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관객보다는 만드는 사람의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들을 우리는 사적 영화라고 부르기로 한다. 여기에는 작가주의 영화 내지는 예술영화라는 개념도 포함된다. 말하자면 감독은 철저하게 주관적 입장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 내지는 자신의 생각을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표현하는 셈이다.

    위에서 말한 영화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대로 관객이 원하는 얘기를 하고 있기보다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정재은 감독은 스무살 다섯 처녀들의 입을 빌려 마치 일기장과도 같은 사적 이야기들을 신선한 영상언어로 펼쳐보인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감독 자신의 체험담일 필요는 없다. ‘수취인 불명’에서 김기덕 감독은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반(半)자전적인 이야기들을 사회적 상황과 결부시켜 직조해내고 있다. 여기에 허구적 상황이 크게 개입했다고 해서 감독의 자전적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것은 완전히 넌센스다.

    ‘라이방’에서는 어떤가. 상업영화의 틀에서 작업해오던 감독은 어느 날 돌연 동시대 남자들의 땀냄새 짙게 밴 인생이야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감독은 마침내 자기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거리를 찾아낸 것이다. 구원을 찾아 길을 나선 세 명의 여성주인공들을 내세운 ‘꽃섬’에서 송일곤 감독은 로드무비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것은 감독이 일련의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다져왔던 영화적 실험을 디지털 장편영화로 확대 적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구원의 메시지를 대중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자신의 영화스타일을 다듬는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할까.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네 명의 유랑밴드가 겪는 고단한 이야기는 사실 임순례 감독의 자전적 체험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무엇보다도 여성감독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전작 ‘세 친구’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여성 주인공들이 아닌 남성 주인공들을 화자로 내세웠다. 아무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를 감독은 또 하고 있는 것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어떤 영화인가. 고교시절 음악에 재능 있는 몇몇 친구들이 사설밴드를 결성해 콘서트에도 참가하면서 장차 명 밴드가 될 것을 꿈꾼다. 그들의 천진한 꿈은 그러나 세월의 모진 흐름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그 초라한 몰골을 드러내게 된다. 불경기로 인해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던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꿈을 키웠던 시원(始原)인 수안보 와이키키호텔의 나이트 무대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애당초 돌아오고 싶었던 곳은 아니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아닌 탓이리라. 갈 곳 없어 할 수 없이 흘러오게 된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는 그들이 겪는 참담한 실패의 한 정점일 따름이다. 홀로 남은 밴드의 리더 이얼은 한 단란주점에서 연주를 해주다가 몽땅 벗어 던지고 광란의 밤을 보내는 짓궂은 술꾼들에 의해 실오라기 하나 남김없이 발가벗기는 수모를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얼은 문을 박차고 나오지 못한다. 추락할 대로 추락한 사춘기 때의 꿈이 한순간 울분을 토로했다고 달래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삼류 밴드의 좌절을 그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 그러나 그 극한의 이면에서 우리는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하는데, 그 빛에서 퍼져나오는 따스함이 영화 전체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절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희망을 노래하고, 슬픈 목소리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만가(輓歌)를 부르면서도 가슴 벅찬 환희를 느낀다. 특히 영화의 라스트신에서 여주인공 오지혜가 부르는 심수봉의 히트곡 ‘사랑밖엔 난 몰라’는 그런 점에서 희망의 찬가로 들린다.

    참담한 종말과 판타지

    하지만 그 찬가는 영화 바깥의 현실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희망의 찬가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에 따른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종의 판타지(fantasy)란 말이다.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의미다. 밴드로서 대성하겠다는 꿈은 이얼이 단란주점에서 발가벗기는 장면에서 이미 그 참담한 종말을 고했다.

    한때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 했던 오지혜와의 재회는 첫사랑의 뒤늦은 실현이 결코 아니다. 안타깝게도 첫사랑은 첫사랑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새삼 재확인하는 절차라고나 할까. 그래서 오지혜가 여수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부르는 사랑노래는 더욱 가슴 저미는 여운을 남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꿈, 즉 판타지 속에서의 ‘소원성취’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하질 않던가.

    이 판타지가 대중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지만, 안타깝게도 현행 영화판의 유통구조로 인해서 그 통로는 원천봉쇄당하고 말았다. 철저하게 대중영화적인 구조에서 만들어진 상업영화들에게만 유리하게 짜여져 있는 복합극장(멀티플렉스) 시스템의 횡포 탓이다. 시스템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자연스런 경제논리에 따른 결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사적인 영화 속에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던 임순례 감독의 야심에 찬 시도는 일단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니, 관객들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대중적 정서에 기반한 ‘대중을 위한 영화’라는 것을 감히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자기들이 원하는 대중영화가 아니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대중을 위한 영화와 대중영화는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이 점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임순례 감독은 대중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이 아니라 사적인 영화를 추구하는 작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뿌리를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임순례 감독은 1996년 영화판에 입성했다. 그에게 비평적 찬사만을 안겨주고 흥행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장편 데뷔작 ‘세 친구’가 이때 만들어지고 개봉되었다. 그 해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운위될 정도로 새로운 감각과 문제의식을 지닌 신인감독이 대거 등장한 해였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홍상수 감독,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김응수 감독, ‘악어’의 김기덕 감독, ‘미지왕’의 김용태 감독 등이 그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임순례 감독의 위치는 주목할 만했다.

    이는 비단 그가 이 작품으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평론가들이 수여하는 ‘넷팩상(NET PAC)’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그가 여성감독 기근인 우리나라에서 그 명맥을 이어 줄 여성영화인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영상에 담을 줄 아는 진지한 영화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임순례 감독은 ‘세 친구’로 기성 영화판에 입성하기 이전에 ‘우중산책’이라는 단편영화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1994년)에서 대상 및 젊은비평가상을 휩쓸면서 이미 차세대 선두주자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 단편영화에서 나타난 ‘존재와 무’에 대한 성찰이 ‘세 친구’에서는 집단적 존재의 무기력과 소외에 대한 고찰로 구체화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세 친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세 친구’의 주인공들이 성장했다면 결국 그들처럼 좌절의 길을 걸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삶의 교활함’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차이는 크다. 깊은 정서적 울림까지 잡아내는 작가적 역량의 발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임순례 감독은 제21회 영평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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