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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23

‘슈퍼맨’의 추억과 ‘싱가포르 슬링’의 낭만

  • 김원곤|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

‘슈퍼맨’의 추억과 ‘싱가포르 슬링’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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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슬링이라는 칵테일은 1990년대 초 싱가포르의 래플즈호텔(Raffles Hotel)의 롱 바(Long Bar)에 근무하던 전설적인 바텐더 은지암 통 분(Ngiam Tong Boon, 嚴崇文)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래플즈호텔은 1887년에 문을 연 곳으로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세계적 명소 중 하나다. 래플즈라는 호텔명은 싱가포르라는 도시를 처음 만든 영국의 정치인 스탐포드 래플즈 경(Sir Stamford Raffles. 1781~1826)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호텔은 엘리자베스 여왕, 부시 대통령, 마이클 잭슨, 찰리 채플린 등 수많은 유명 인사가 묵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롱 바는 지금도 이 호텔 2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싱가포르 슬링을 기억하는 많은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때문에 롱 바에서는 현재 고객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반자동 제조 시스템을 동원해 싱가포르 슬링을 제공하고 있다. 칵테일 장식은 파인애플과 체리로 한다.

다양한 레시피

흔히 싱가포르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표현한 것으로 묘사되는 싱가포르 슬링 칵테일에는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한다. 래플즈호텔의 오리지널 레시피는 진(Gin), 체리 헤링 리큐어(Cherry Heering Liqueur), 베네딕틴(Benedictine)에 갓 짠 파인애플 주스를 섞은 것이었다. 체리 헤링은 체리브랜디의 일종으로 루비색이며 덴마크 산이다. 파인애플은 원칙적으로 말레이시아 사라왁(Sarawak) 지방의 것으로 싱가포르 슬링 특유의 거품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현재 많이 사용되는 레시피 중 하나는 진, 일반 체리브랜디, 베네딕틴에 그레나딘 시럽 소량(dash)과 가당 레몬주스 소량 5가지를 섞는 것이다. 그레나딘 시럽은 색깔이 없는 일반 체리브랜디를 보완해 색깔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들 재료들을 잘 흔들어 긴 잔(tall glass)에 따른 다음 마지막으로 소다수를 추가해 싱가포르 슬링의 거품 효과를 만든다. 하지만 국제바텐더협회(IBA)의 공식 레시피에 의하면 진, 체리브랜디, 베네딕틴, 그레나딘 시럽까지는 같으나 갓 짠 레몬주스를 사용하고 여기에다 파인애플 주스, 코인트로(Cointreau)와 앙고스투라 비터스까지 추가한다. 대신 소다수는 쓰지 않는다.

앞서의 레시피에서 비터스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슬링이라는 용어의 어원을 거론하며 재미있는 모순점을 거론하는 견해도 있다. 원래 슬링이라는 말은 알코올에다 감귤류(citrus)를 중심으로 한 과일 향, 설탕, 물 등을 혼합한 가벼운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일종의 과일 음료로 청량감이 뛰어나 열대지방에서 주로 음용되었다. 이런 슬링 종류는 그간 여러 가지가 개발되었으나 그중 싱가포르 슬링만이 독보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19세기에 칵테일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칵테일은 비터스(bitters)를 포함한 알코올음료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슬링은 당연히 칵테일로 간주되지 못했다. 이때의 기준에 의하면 칵테일을 ‘bittered sl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오늘날 싱가포르 슬링에 비터스를 첨가하는 것은 슬링의 어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오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영화 장면의 보드카에서부터 마지막 비터스에 이르기까지 오류에 관련된 이야기로 앞뒤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오류들은 싱가포르 슬링 한 잔이면 저녁노을에 뉘엿뉘엿 사라지는 해와 같이 그 자체로 아름답게 머리에 남게 될 것이다.

신동아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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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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