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이회창 총재, ‘위험한 정치’그만두시오”

  • 안기석daum@donga.com 육성철sixman@donga.com

    입력2005-05-10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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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대통령 면전에서 여권 실세의 퇴진론을 주장해 화제가 된 정동영 최고위원으로부터 청와대 발언 막전막후와 현 정권의 위기론, 그리고 그가 말하는 여권 실세들의 의혹 배경과 차기 대권주자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다.
    ‘정치적 스타’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일까. 민심이 가장 원하는 말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극적인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스타가 될 수 있다면, 민주당 최고위원인 정동영(鄭東泳·47) 의원(전주시 덕진구)은 최근 이 공식에 꼭 맞아떨어지는 발언을 한 셈이다.

    화려했던 증권시장의 몰락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구조조정의 찬 바람에 ‘따뜻했던’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인사개입과 비리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여권의 실세를 향해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물러가라’는 말을 꺼낸 것은 민심의 풍향에 좌우되는 언론이 ‘극적인 드라마’로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추락하는 주가와는 달리 정동영 최고위원의 인기는 급상승을 하고 있다. 발언 직후 정동영 의원 사무실로는 수백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격려의 글이 연일 올라왔다. 물론 화려한 인기 이면에는 질시와 미움의 그림자도 따라 붙었다. 정의원으로부터 공격당한 여권 실세를 지지하는 듯한 민주당 중앙당 부위원장급 당직자들이 정의원을 규탄했고 당내에서는 ‘배은망덕한 짓을 했다느니’ ‘벌써부터 인기에 영합하는 발언을 한다느니’ 하는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12월14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정동영 후원회는 만원사례였다. 광화문 일대가 교통체증을 일으킬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후원금도 예년의 수준을 휠씬 넘어섰다.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이인제 최고위원도 이날 축사에서 “정의원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뜨거운 충정으로 (퇴진)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청와대 발언 직후 인터뷰를 신청했지만 그의 바쁜 일정으로 후원회가 끝난 다음날인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내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애당초 오전에 약속이 잡혔지만 후원회를 성황리에 치른 후유증 때문인지 몸살이 나 오후 3시로 인터뷰를 미뤘다. 정시에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바람에 그는 자리에 없었다. 낡고 묵직한 책상과 푹신한 소파도 없이 딱딱한 등받이 의자만 있는 그의 사무실은 서재나 마찬가지였다. 책상 오른편 벽에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고 책상 정면 벽면에는 ‘견리사의(見利思義)’라고 쓴 목판이 걸려 있었다. 조금 늦게 들어온 정의원은 자강불식에 대해 묻자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라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사진기자가 사진을 계속 찍자 정의원은 잠시 양해를 구한 후 머리를 손질하고 나왔다. 방송인 출신답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신경쓰는 것 같았다.

    “위기의 빨간 불이 들어온 겁니다”

    ─청와대 발언 이후 전화가 많았나요.

    “대부분이 기자들 전화죠. 한 몇 백통은 통화했을 겁니다. 국회 출입기자만 200여명이잖아요.”

    ─정의원은 민심을 어떻게 체험합니까.

    “중앙당이나 국회에서는 민심이 체감되지 않아요. 정치인은 민심을 해석하는 사람이지만 민심의 실체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친구나 후배 모임이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많이 느껴요.”

    ─이번 청와대 발언 배경에도 그런 자리에서 느낀 민심을 반영했습니까.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집착이 있어요. 그게 저의 정치적 핵이거든요. 사실 IMF가 왔을 때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 겁니다. 문민정부가 실패했을 때 ‘차라리 전두환 시대가 좋았다’는 반작용이 있었잖아요. 그때 김대중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잘 극복했어요.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다시 출렁거리니까 민간정부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어요. 김대중 정부의 실패 여부를 가리는 바로미터는 다음 선거예요. 그런데 불만의 파고가 자꾸 높아지니까 ‘위기’라고 인식하는 거예요.”

    ─김대중 정부의 위기를 언제부터 느끼게 됐습니까.

    “느낌만 있는 게 아니라 과학적 지표로 나타나고 있어요. 11월에 4년만에 최초로 여야 지지율이 역전됐어요. 제가 당에서 세번쯤 얘기했어요. 공식회의, 최고위원회의, 비공식 조찬 간담회에서 ‘이거 빨간 불이 들어온 겁니다. 지금 깜빡깜빡하는 겁니다. 비상한 시국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조기에 민심의 트렌드를 돌려놓지 않으면 97년 신한국당 꼴이 납니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외부의 이회창 총재나 야당이 강해서 위기가 온 게 아니라 내부의 품질과 단합, 리더십에 문제가 생겼다고 봅니다. 그래서 ‘당쇄신론’ 입장에 서게 된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폭탄발언’을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조용히 직언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런 노력을 했습니까.

    “11월11일 청와대에서도 대통령께 개인적으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내부 쇄신이 필요합니다. 의원들의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내부에서부터 위기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내부에서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통령은 그냥 듣기만 했습니까.

    “특별한 반응은 없으시고 ‘알았다’고만 했습니다.”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동료들도 비슷한 무력감과 답답함을 호소하더라구요. 그래서 반추해서 작년 옷사건 때를 떠올렸어요. 김대중 정부에 대한 신뢰의 일각이 무너진 게 옷사건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옷사건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기술적인 문제였거든요. 신속하고 과감하게 조기에 자르고 수습했으면, 모두가 다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깔아뭉개고 실기하다가 7개월을 끌었어요. 그때 저는 평의원이었는데 요로를 통해 건의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어요.”

    ─옷사건 때는 직접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았나요.

    “직접은 안했구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비공식 라인을 통해 전했어요. 이번에 청와대에 가서 한 얘기도 그겁니다. ‘저는 젊은 의원의 한 사람으로 작년 옷사건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의원직을 던지고라도 대통령을 가로막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오늘 그런 연장선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의원직이나 최고위원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는 것이 대통령을 돕는 일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가감없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정의원의 발언을 권력투쟁의 시발탄으로 보는 시각이 강한데요.

    “신문에서는 청와대 발언을 두고 음모니 배후니 하면서 좁게만 보는데, 제가 무슨 친권이고 반권입니까? 저는 정권교체가 최고의 선이라는 생각에서 야당에 뛰어들었던 초심 그대로입니다. 이게 실패하면 제가 정치에 투신한 의미가 사라지는 겁니다. 김대중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지만,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실망을 넘어서 분노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의 일부를 제가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고장났어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최고위원들끼리는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지 않았습니까.

    “11월 하순에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제가 워크샵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하룻밤을 새서라도 왜 민심이 이렇게 됐는지 따져보자고 했어요. 정말 위기인가 아닌가? 위기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날짜까지 잡기로 했는데, 대통령께서 토요일에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니까 그 전날 최고위원들이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권최고위원 문제를 얘기했어요. 하지만 초점은 큰 물줄기를 반전하는 일대 국정쇄신 차원에서 시스템론을 얘기한 겁니다. 시스템을 점검하고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은 시스템이 작동하질 않아요. 시스템보다는 비공식 의사결정 구조가 지배하니까 시스템은 느려지고 무력해지는 거죠.”

    ─권노갑 최고위원을 포함한 동교동계가 현 집권 여당의 시스템과는 부적합하다는 거죠?

    “그건 시스템이 아니고 비공식 라인이죠. 제 주장의 핵심은 퇴진이 아니라, 일대 쇄신 차원에서 시스템을 재구축하자는 거였어요. 동교동계 문제는 부차적으로 얘기였어요”

    ─부차적이지만 그게 중요한 얘기였지 않습니까. 그동안 시중에서는 소수의 여권 실세가 나라를 휘두른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당내부에서는 이를 쉬쉬했던 것 아닙니까.

    “신문에서는 제목으로 크게 뽑았지만, 부분적인 문제예요. 부분이 해소됐다고 해서 시스템이 작동되는 게 아니잖아요. 설사 권 최고위원이 물러났다고 해서 당이 활성화됩니까? 아니지요. 저는 권노갑 최고위원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도움이 되고 대통령에게 좋은 사람을 천거해준다면 그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잖아요.”

    ─청와대 발언 전에 초재선 의원을 만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 특정 세력이 조직을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힘이 안 난다는 것을 확인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쇼크를 받았어요. 능력이나 심지, 순수성에서 경외심을 갖고 있는 동년배 의원 한 명이 ‘의원직을 더 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고 말하는 걸 듣고 찬 물을 등줄기에 끼얹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오히려 사태를 안이하게 보는 것 같았어요. 거의 한결같이 무력감, 답답함, 총체적 위기라고 했어요.”

    당내에는 노회한 ‘쥐’들도 많지만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은 ‘순진한’ 정 의원이 자임한 것일까. 당시 상황이 궁금해 물었다.

    ─언론에는 자세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청와대에서 몇 번째로 발언했나요?

    “제가 마지막이었어요. 대통령 옆에 한화갑, 이인제, 김중권 최고위원 등 공교롭게도 이번 전당대회 득표순으로 앉았어요. 서영훈 대표가 김근태 최고위원에게 먼저 얘기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돌아가다 보니까 제가 맨 마지막에 발언을 하게 됐어요. 먼저 말문을 연 김근태 최고위원이 사실 할 말은 다 했어요.”

    “더 심한 루머도 얘기했어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권노갑 최고위원을 만나서 ‘이런 말을 하겠다’고 했다면서요.

    “하겠다고 얘기한 게 아니구요. 총체적 위기로 봐야 한다는 말을 했죠. 의원들이 권최고위원을 뭐라고 얘기하는지 그대로 전달했어요.”

    ─그때도 권노갑 최고위원에게 ‘YS정부의 김현철’이라고 얘기했나요.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죠. 그보다 더 심한 루머도 얘기했어요.”

    ─권노갑 최고위원도 자신이 금융권과 벤처업계에서 돌아다니는 비리에 관한 루머를 듣고 있다던가요.

    “그렇다고 해요. ‘정 최고가 얘기하는 것 중에 일부는 처음 듣는다’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정동채 의원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국정 쇄신이라는 틀 속에 권최고 문제는 부분으로 들어간 거였어요. 그런데 본질은 다 어디로 가고 권최고위원 문제만 권력투쟁으로 부각됐어요”

    권노갑 최고위원이 처음 듣는다는 얘기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 같아 인터뷰가 끝난 후 ‘인터뷰 팁’으로 가르쳐 달라고 물어보았더니 정 의원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금융 벤처업계 소문을 들어보니까 권노갑 최고위원과 여권 실세들에 관한 것들이 많더라구요.

    “사실이 아닌 게 많죠. 권 최고위원은 벤처에 이해가 없는 아날로그 세대예요. 구세대지요. 디지털 벤처 쪽과는 연이 닿을 수가 없어요.”

    ─중요한 건 사실 여부보다 시중 여론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거잖아요. 김현철씨도 인사 개입외에 이권 개입은 나중에 밝혀놓고 보니 별것이 없었는데 당시에는 모든 비리의 배후가 김현철씨라고 믿지 않았습니까.

    “저도 권 최고위원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저는 권 최고가 결백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야당할 때 김현철을 한보 몸통이라고 쳤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보와는 관련이 없습디다. 그러니까 정치인에게는 이미지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것을 직시해야 됩니다. 그냥 아니라는 생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그렇게 좋지않은 소문이 나돌면 소문을 안고 사라져 주면 될텐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그건 권 최고위원이 대권 주자 만들기에 관심이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건 전혀 제가 고려해보지 않은 생각이에요. 대권은 2002년 국면의 일이지,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잖아요. 저는 정치적 역관계 같은 데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이미 언론에 도배질한 친권이냐 반권이냐는 이분법으로 대권이나 당권에 대해 더 이상 정의원을 ‘고문’하는 것은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았다. 정 의원의 충정이 신뢰의 위기로 인해 정지된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해 더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당정 시스템이 정지하게 된 핵심 원인은 결국 대통령이 제공한 것 아닙니까.

    “글쎄요. 모시고 있는 대통령을 제가 뭐라고 평가할 수는 없죠. 다만 지금까지 당정을 운영해온 방식이 성공적이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정부와 청와대와 당이 시스템을 갖춰서 대통령이 하시는 일을 전파시키고, 국민들이 불평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해야 하는데…. 시스템 작동이 안되는 거죠.”

    ─아무래도 연로한 것이 민심을 파악하는데 한계로 작용하겠죠.

    “글쎄요. 대통령은 신문을 제일 꼼꼼하게 챙겨 읽습니다. 사실 신문에 안 나는 얘기는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좀 억울한 심정은 들 거라고 생각해요. 신문의 비판이 정당한 것도 있지만, 터무니 없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비판이 대통령에게 쏠리니까 ‘이럴 수 있느냐’는 심정이 종종 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게 핵심인 것 같습니다. 옷로비 사건 때도 대통령이 ‘김태정 전검찰총장은 억울한데 언론들이 몰아치고 있다’고 생각해서 결국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과연 김태정씨가 억울했느냐는 문제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 과정에 대통령을 보좌한 참모들은 과연 정직했느냐는 점도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게 대통령 고집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위기는 어느 정권에서나 발생합니다. 그런데 서구나 미국의 경우를 보면 위기관리 시스템이 있어요. 우리는 그게 가장 취약해요. 위기가 발생하면 위기와 관련된 이해당사자는 다 배제하고 정말로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판단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가 이것을 다루어야 하거든요.”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있는 민주당 시스템이 집권 2년이 지나도록 여당으로서 제대로 구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청와대나 대통령을 쳐다보고 불평할 일이 아니라, 몸을 던져 일하지 못한 당 책임자들이 반성해야죠.”

    ─최고위원제라는 것이 당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 효율적으로 기여하기보다는 차기 대권주자들의 대기소로 역기능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의미있다고 봅니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 임기 중반에 자유경선을 실시한 건 최초입니다. 대통령은 힘을 갖고 일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게 잘 안됐어요. 1차적으로 최고위원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물론 최고위원이 12명이나 돼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힘들었어요. 숫자가 많고 색깔도 서로 다르고….”

    ─청와대 사람들은 민심 이탈의 핵심을 경제가 나빠진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정 의원도 그렇게 보십니까.

    “병합론으로 봅니다. 경제가 중요한 원인이지만, 위기의 본질은 경제보다 신뢰의 위기에 있다고 봅니다. 검찰을 안 믿고, 당을 안 믿고 정부를 안 믿어요. 심지어 대통령의 말도 안 믿는 지경이 된 거죠. 신뢰의 위기를 해소해야 민심이 재생된다고 봅니다.”

    ─민심의 이탈 배경에는 인사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첫번째는 호남편중 인사고, 두번째는 인력배치의 문제입니다. 편중인사는 정부가 ‘시정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바닥 현장에서는 비호남 출신들이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력배치 문제는 당이나 정부에 책임과 권한이 주어졌으면 상황을 잘 조정해서 임무를 100% 완결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게 비일비재합니다. 인력배치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민들은 각종 금융 비리사건의 배후에 동교동 핵심멤버들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고조되면 희생양을 요구하는 대중심리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의 비대해진 힘을 약화시키는 한편 새로운 경제의 활력소로 벤처기업이라는 물적 토대를 만들다가 현재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 와중에 일반 국민들은 벤처기업에 주식투자만 하면 잘될 줄 알고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너희가 알아서 한 걸 왜 우리보고 뭐라 하느냐’ 하지만, 과연 ‘정부에 책임이 없느냐’ 하는 것도 살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사실 주식값이 올라가면 민심도 좋아지게 돼 있어요. 주식값이 떨어지니까 중산층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오늘 아침 거래소 총액이 2500억달러인데 일본의 NTT 주가총액이 6500억달러이더라구요. 이건 뭔가 부자연스런 현상이거든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일본의 통신회사만도 못한 거예요. 핵심은 뭐냐 하면 신뢰의 문제예요. 신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구조조정입니다. 저는 그런 논리의 연장에서 정치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국가개혁을 밀고가기 위해서는 소수여당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회창총재 회의적이다”

    ─요즘은 기업이 잘못 되면 CEO의 책임이 90% 이상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신뢰의 위기에 부딪힌 것은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큰 것 아닙니까.

    “지금은 대통령이 말씀해도 실행이 안돼요. 인권법, 보안법은 대통령이 정기국회에서 개정하겠다고 말했어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구요. 그런데 여당이 아직 법안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어요. 반부패기본법은 대통령 선거공약인데 아직까지 못했어요.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차원에서 대통령이 중간 결산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최고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역할을 못하면 다 사표내라 이겁니다. 전당대회를 통해 뽑혀서 대통령이 당의 중심에 서라고 했는데, 못 섰으면 최고위원들 다 사표내야죠. 저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의원은 인터뷰 진행 방향이 대통령과 민주당 내부 문제로 치우친 감이 있다고 느꼈는지 화제를 돌렸다. 정의원은 당내에서 ‘흑색선전 공작정치 근절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청와대에서 발언 직후 권노갑 최고위원은 야당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있는 ‘장수’가 갑자기 집안에서 칼을 빼든 것에 몹시 당혹해 했다. 그런데 최근 정의원은 대책위원장으로서 할 일이 생겼다. 한나라당 기획위원회에서 만든 대권 관련 문서가 언론에 폭로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원은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타협의 역사는 없었어요. 앞으로 대선이 점점 가까워오는데 상생은 점점 더 어렵다고 봅니다. 이번에 한나라당 문건을 보면 기본적으로 네거티브로 점철돼 있잖아요.”

    이 문제는 이미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 기회에 여야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에 대해 정의원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정 의원은 이총재를 평소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우리나라를 맡을 만한 역량이 있다고 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총재가 YS한테 대들고 국무총리 사표낼 때 통쾌한 걸 느꼈어요. 감사원장 할 때도 기대를 많이 했어요. 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분이라고 보았어요. 하지만 야당 총재로서 정국을 이끄는 모습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이번 대선 관련 문건에도 보면 잘해보겠다는 부분은 이미지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네거티브예요. 대단히 위험해요. 정치사회적 불안을 야기해서라도 대선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거잖아요. 위험천만하고 무모하잖아요. 이런 위험한 정치는 그만둬야 합니다. 우리도 야당했지만 그렇게까지는 안했어요. 이번 문건에는 구체적으로 실행한 흔적이 있어요. 한달 내내 장외집회 하고 지역 돌아다니는 것은 끊임없이 정치사회적 불안을 야기한 행동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대단히 회의적이에요.”

    ─한나라당 대선 문건 파문과 관련, 민주당이 ‘이회창 총재가 사전에 보고받았다’는 증거를 입수했다는 소문은 사실입니까.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러나 당 공식기구의 문건에는 어떤 형태로든 총재의 생각이 반영됩니다. 우리도 야당 시절 참모로 일을 해봐서 잘 압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대통령감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대단한 정치적 역량, 파괴력, 돌파력, 뱃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장점이 많은 정치인입니다.”

    ─노무현 장관은 어떻습니까.

    “걸어온 길이 바르잖아요. 타협을 뚫고 몸으로 부딪혀 깨지면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런 정치인이 있으니 희망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정상에서 물러나고 싶어”

    이제 정의원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을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정 의원은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송영길 민주당 의원 후원회에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약 30분후에 돌아온 정 의원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인터뷰하는 동안 정의원은 몸살과 피로감에 못이겨 몇 번이나 하품을 했다. 얼굴 안색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송영길 후원회에서 ‘한 말씀’ 했는지 생기가 돌고 있었다. 정치인은 다 죽어갈 정도로 아파도 단상에만 오르면 기운이 펄펄 살아난다는 것을 입증이나 하는 것처럼….

    ─정의원이 이번에 ‘튀는’ 발언으로 정치권 안팎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적 정치풍토의 특성상 ‘저 사람과는 정치 같이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의견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글쎄요. 제가 튀는 발언을 했나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버린다고 생각하니까 별 부담이 없어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뭘 던졌을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연애하다가 ‘직장 또 구하면 되지’ 하고 그만둔 적도 있어요. MBC 다닐 때도 사표를 두세 번 냈어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정치에서 스스로 결단해서 물러가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어요. 제 스스로 정상에 있을 때 물러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정상이 어디쯤입니까.

    “제가 생각해서 더 추구해야 할 바가 없고, 이제는 정말 내리막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떠난다는 얘기를 그동안 많이 했어요. 전당대회 끝나고 나서도 무슨 ‘차차기’ 하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때도 나한테 정직하게 물었어요. 저는 거론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지만, 내 스스로 채워지지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욕심으로 변하는 순간 불행이 옵니다. 제가 당장 할 일은 나를 채우는 노력이고, 그것이 제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 저를 뽑아준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청와대 발언을 계기로 초·재선 의원들의 힘을 결집한 것처럼 느끼지 않습니까.

    “서로 이심전심으로 이해와 신뢰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겠죠.”

    ─앞으로 초재선 의원이나 정치그룹이 차기 대권후보 경선에서 출마하기를 요구한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제 스스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주체적인 결단이 중요합니다. 누가 시킨다고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건 욕심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치인에게는 기본적으로 권력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당에서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야당할 때를 생각해보라. 민심의 옷자락을 붙들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느냐. 우리 여당 됐다고 민심을 외면하는 것은 오만한 태도다’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죠.”

    “정치인은 핵심을 말해야”

    ─차세대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비전과 통합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해야 합니다. 89년부터 3년간 미국에서 있었는데, 그때 미국은 적자와 패배의식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 디지털화 정보화를 통해 일어났어요. 그런데 한국을 보세요. 한보철강에 5조3천억을 넣었는데 연기도 나지 않고 5조가 사라졌어요. 경부고속철도에 20조원을 쏟아붇고 있는데 물류비용이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대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경쟁력이 생길 수 있겠어요.”

    ─정의원은 사학도인데 역대 왕들 중에서 리더십의 측면에서 누구를 가장 높이 평가하십니까.

    “광해군입니다. 광해군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말발굽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광해군이 물러난 뒤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났어요. 광해군은 국제정세를 살피면서 이기는 쪽에 투항했어요.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한 거죠. 지형적으로 볼 때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학때 개화당을 연구했어요. 위로부터의 개혁이 실패한 경우죠. 그때 문을 열었으면 혼란은 있었겠지만, 식민지는 되지 않았을 거예요. 기로에 섰을 때는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의원의 홈페이지는 파스텔조의 부드러운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 그림위로 “꿈꾸게 하는 사람, 꿈을 실현시키는 사람, 진실한 꿈을 파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글씨가 은은하게 스쳐 지나간다.

    ─내년에 정의원이 팔 꿈은 무엇입니까.

    “저는 전당대회에서도 ‘당이 재집권을 하는데 밀알이 되겠다’는 말을 했어요.”

    1953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정의원은 서울대 문리대에서 반유신투쟁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졸업후에는 문화방송 기자와 앵커로 오랫동안 일했다. 이때 이미지가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깊이 새겨져 있다. 그후 96년에 국민회의에 입당해 세 차례나 대변인을 지냈는데 성명을 발표하면 마치 앵커가 방송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방송기자 출신이 말하는 정치에 대한 생각이 흥미로왔다.

    “정치인은 핵심을 잘 찾아야 합니다. 기자들은 그런 데서 유리한 것 같아요. 저는 방송할 때 첫 문장, 첫 단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화자의 입장에 서지 말고 청자의 입장에 서야 하는데 정치도 그런 측면이 있어요. 유권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냐를 찾아서 그것을 긁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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