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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김영삼 전 대통령

“97년 대선 ‘JP 대통령’이 역사의 순리였다”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김영삼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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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황장엽씨 망명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기획망명’이라는 거죠. 당시 안기부가 망명공작을 꾸민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인데요.

“그것은 사실과 달라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아들인 김현철씨가 황씨 망명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비선 조직이 움직였다고도 하는데요.



“언론이 전부 조작한 겁니다.”

─그렇다면 사전에 황씨의 망명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겁니까.

“그래요. 몰랐습니다. 북한에 있는 그 정도 위치의 인물에 대해 공작을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공작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공작에 의한 망명은 아니었다는 건데 혹시 대통령 모르게 안기부가 망명을 주도한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봐요. 그 사람이 중앙당 서기 아니요. 그 정도 되는 거물급을 한국에 데리고 올 정도로 공작능력이 있었다면 김정일도 벌써 죽였죠.”

─함께 망명했던 김덕홍씨에 따르면 망명방법과 망명시기 등을 두고 우리 정부와 상당히 많은 얘기를 나눴다는데요.

“나중에 황씨가 ‘일본 갔을 때 망명할 기회는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황씨는 국제담당 서기였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든 갈 수 있었어요.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망명을 하겠다고 맘먹진 않았을 테고. 망명이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김광일 설득해 노무현 ‘픽업’

지난 7월15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인사차 상도동을 방문했을 때 YS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일본, 중국에 가서 한 얘기가 다 다르며 아침과 저녁 얘기가 다른데 믿음이 가겠느냐”면서 “내가 ‘픽업(pick up)’했기 때문에 잘 해주기를 바랐는데 다 틀렸다”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었다. 화제를 ‘픽업’의 대상인 노무현 대통령으로 돌렸다.

─항간에 들리는 얘기로는 송기인 신부로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추천 받아 정치에 입문시켰다는데요.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달라요.”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났습니까.

“당시(1988년) 야당(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로서 내 맘대로 공천할 때 아니요. 부산에서는 내가 공천하면 다 되게 돼 있었어요. 5·6공 사람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많이 공천하면 좋겠다는 분위기였어요. (부산 지역) 재야에서 활동을 많이 하던 두 사람이 있었어요. 김광일과 노무현이었는데, 김광일이 노무현보다 훨씬 위였어요. 그래서 내가 가까운 사람을 불러 ‘부산에 가서 두 사람을 만나라. 특히 오야붕이 김광일이니 먼저 김광일을 설득해야 한다’고 이르고는 부산으로 보냈어요. 심부름을 한 사람 성은 ‘엄씨’였어요. (엄씨가) 김광일에게 술도 한 잔 먹이고 하면서 설득해 그 다음날 (상도동으로) 데리고 온 거요.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을 설득했어요. ‘재야 운동 그만하고 제도권으로 들어 온나’ 하고 말이죠.”

허삼수에 맞선 노무현 특별지원

─제도권으로 들어오라는 설득에 노무현 대통령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재야가 좋다’면서 ‘시간을 얼마 달라’ 하더라고. 그때는 김광일이 노무현의 오야붕이니까. 뭐 주로 김광일이 얘기를 하고 그 사람(노무현 대통령)은 따라가는 쪽이었지. 나도 오랜 시간 여유를 줄 수는 없었어요. ‘언제까지 답을 하라’고 시한을 정한 다음 여기서(상도동)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그랬는데 약속한 시일에 안 왔어요.”

─아무 연락도 없이 안 왔다는 겁니까.

“예. 연락도 없이요. 그래서 내가 직접 통화를 했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나도 공천을 줘야 하는데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안 오면 어쩌냐. 올라와라’ 이래 된 거라. 그러고 나서 다시 약속한 날짜에 왔기에 ‘이제 결정할 시기가 됐다. 나도 빨리 공천을 마무리지어야 되니까 미룰 수는 없다’ 이랬더니 결국 두 사람 이야기가 뭐냐 하면 ‘(국회의원 선거에 필요한) 등록금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거라. 그래서 ‘돈 같으면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어차피 다 도와준다.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면서 그 자리에서 등록금과 선거비용에 보태라고 얼마를 줬지. 그러니까 ‘착수금’으로 얼마를 주고 그 자리에서 입당원서를 준 후에 ‘내일 공천자로 발표를 하겠다’, 이렇게 된 겁니다. 선거구 얘기가 나왔는데, 김광일은 (부산) 중구를 선택했고 노무현은 ‘나는 허삼수가 나오는 (부산) 동구에서 나가겠다’고 해 그렇게 정리됐죠.”

─선거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도와주셨나요.

“아∼이∼고, 그거 말도 말아요. 유세뿐만 아니라 선거자금도 그 두 사람에게 특별히 많이 줘야 될 거 아니요. 사실은 특별히 많이 줬어요. 서너 번 나눠서 줬으니까. 그때는 내가 유세하는 게 굉장한 힘을 발휘할 때였거든. 노무현을 당선시키기 위해 심지어 트럭을 같이 타고 다니면서 하루종일 골목골목을 누볐어요. 사람들이 노무현 얼굴을 잘 모르잖아요. 하여튼 그때 사력을 다해서 당선을 시킨 것이지. 5공 인물인 허삼수에게 이기는 것은 상징성이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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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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