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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선각자 인촌을 말한다

토종자본에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한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가

주제발표 ③ 인촌과 경제

  • 이영훈|서울대 교수·경제학

토종자본에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한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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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에 의하면 경성방직은 그 성공으로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했다. 다시 말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한 총독부의 지배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김씨가의 민족주의는 타협적인 자치운동으로 변질되어갔다. 경성방직은 지주자본이 공업자본으로 전환한 형태로서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반봉건 지주제를 기축으로 하는 식민지 지배체제와 타협하고 그 일부분으로 체제화했다는 점에서 민족 독립운동에서의 그 역할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제국의 후예’의 강변

1991년 경성방직이 대표하는 일제강점기 한국 자본주의를 평가한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카터 에커트의 ‘제국의 후예’가 그것이다. 그는 경성방직으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자본주의와 기업가를 일본제국의 ‘후예’라고 묘사했다. 그는 경성방직이 남긴 각종 기업사 자료를 최초로 접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 자료들로부터 그는 경성방직에 투자한 주주들이 한국인만은 아니었음을, 일제강점기 후기로 갈수록 적지 않은 일본인이 참여했음을 밝혔다.

에커트가 열람한 경성방직의 자료는 조기준의 주장대로 동 회사의 기술진이 순수하게 민족적이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에커트에 의하면 식민지 자본주의가 드러낸 주요 특징은 국가의 압도적 우위였다. 총독부는 산업정책을 수립하여 경제개발의 기본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했으며, 식산은행이 중심이 된 금융기구를 통해 금융자원을 배분함으로써 개별 기업이 국가 정책에 순응하도록 강제했다. 경성방직은 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통제하에 있는 ‘준(準)공기업’과 다를 바 없었다.

에커트는 그의 저작에서 한국 자본가들의 도덕적·정치적 헤게모니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제국이 낳은 ‘후예’로서 한국의 자본가들은 진정 혁명적이며 민족적인 그의 동족들에 대해 서유럽 시민혁명기의 자본가 계층과 같은 도덕적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없었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전시기에 이르러 내선일체의 구호를 선창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을 제국의 전쟁터로 동원하는 데 협조했다.



경성방직과 김성수 형제에 대해 기업사의 방법으로 접근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는 주익종의 ‘대군의 척후’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성립 이후 기업의 대군(大軍)이 출현하여 오늘날 한국 경제를 선진국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경성방직은 그 대군의 척후였다. 보다 정확히 주익종의 말을 인용하면, 경성방직과 김성수 형제는 20세기 한국 경제와 기업의 역사에서 ‘뛰어난 학습자’였으며 ‘성공적인 후발자’였다.

주익종은 경성방직이 충실히 남긴 일기장, 총계정 원장, 경비 내역장을 자료로 하여 경영의 전반적인 상태와 흐름을 세밀하게 파악했다. 경성방직이 일본산 수입품과 일본 대기업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을 주익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별한 경영능력을 보유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첫째는 확고한 사업 의지다. 김성수가 경성방직을 창립한 것은 개인의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경제의 자립을 추구해서였다. 둘째는 기업의 탄탄한 재무구조였다. 셋째는 자질 면에서 당대 최고의 경영진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넷째, 그들은 선진 기술을 제대로 학습했다. 다섯째, 그들은 정부에 대한 교섭능력과 사회에 대한 선전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 지난 40년간 경성방직과 김성수 형제에 관한 학계의 대표적인 연구를 순차로 소개했다. 한국의 현실과 과거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역사학은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을 확보해야 한다. 그 점과 관련해 김성수 형제를 ‘대군의 척후’로 평가한 주익종이 이미 상당한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우리는 오늘날의 한국 현실을 초래한 구조적인 요인으로서 이른바 ‘사회적 능력’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기업가 능력’을 독립운동 중심의 정치사로부터 해방시켜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지난 20세기는 한국사에서 몇 세기 만에 찾아온 문명사의 일대 전환기였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 전환의 최종 결착이 어떨지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 전환이 지금까지 한반도의 남부에서나마 성공적이었다면, 거기에는 ‘창조적 소수’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경성방직의 김성수 형제는 전통경제의 근대적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선구적으로 인도한 ‘대군의 척후’로서 곧 20세기 한국 문명사에서 ‘창조적 소수’였다.

신동아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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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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