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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진출 스타트 신호만 기다린다

미국 기업·민간단체와 북한 유엔대표부의 비밀접촉 기록

  • 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북한진출 스타트 신호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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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가 미/북 교역협회(USA/DPRK Trade Counsel)에 보낸 서신(날짜 없음).

“북한의 티타늄 광산과 관련한 답변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티타늄은 강가의 모래를 정련해서 생산되며, 부존량은 수십만t에 이릅니다.

2) 현재의 생산능력은 3개 지역에서 월 200∼300t이며, 생산량은 수요에 따라 조절되고 있습니다.

1차 정련된 티타늄 모래는 40∼60%의 순도이며, 재정련할 경우 70∼75%에 이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련량과 1차 정련된 것을 재처리해서 생산되는 양질의 티타늄 생산량을 늘릴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3) 이 목적을 위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련설비 뿐 아니라 일체의 생산설비를 투자할 외국 기업/개인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원하는 투자규모는 양질의 티타늄 1000∼1500t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5) 현재 운송수단은 양호한 상태에 있으며, 귀측이 제기한 의문들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쟁력있는 회사가 귀측의 우려를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귀측의 전화와 팩스 번호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공화국내의 경제조직이 그것을 알려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평양의 관계 당국이 귀측 혹은 귀측이 지정한 대리인과 직접 접촉할 수 있도록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투자와 관련한 귀측의 의사와 위에 요청한 자료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미/북 교역협회 마크 윈클러(Mark Winkler) 사무총장이 북한 유엔대표부 앞으로 보낸 1995년 6월26일자 서신

“답변 : 티타늄 광산

귀하가 제공한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그 정보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것이었으며, 미국 기업들이 우리에게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에 답변할 자료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소와 팩스번호는 편지지 위에 적혀 있으며, 우리측 법률사무소의 주소도 위에 적힌 주소와 동일하며, 우리 전화번호는 …”

(90년대 이후 산업기반이 거의 붕괴된 북한이 그나마 해외에 내다 팔 수 있는 것이 원자재, 그중에서도 광물자원이다. 북한은 중석, 몰리브덴, 마그네사이트, 흑연, 은, 알루미늄 등이 풍부하고, 특히 마그네사이트는 전세계 매장량의 약 50%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 등 서방 기업들도 이 대목에 주목, 오래 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두 통의 서신은 그것이 사실임을 말해주고 있다.)

“평양에 세계무역센터 지어주겠다…”

▲ 미국의 조선(Chosun) 컨설팅사가 뉴욕 북한대표부에 보낸 편지 (1995년 8월22일)

“지난 월요일 뉴욕에서 우리를 만나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그날 면담은 생산적이었고, 귀하와 나눈 대화는 유익했습니다. 우리는 또 그날 면담이 상호신뢰에 기초를 닦았다고 믿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 간의 교역 환경이 빠르게 개선됨에 따라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우리 고객 모두에게 유익한 계기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향후 예정된 북한 여행과 관련해서 여러 고객과 접촉하고 있으며, 결론이 나오는대로 고객들에게 그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귀측이 상업관련 법률 자료를 제공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앞으로 상호 이익이 되고 장기적인 관계를 수립하기를 바랍니다.…”

▲ D.T. associates사가 북한대표부 대사에게 보낸 95년 10월6일자 서신

“(제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해외투자 기회

우리는 1995년 9월20일 수요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지에 위의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 대해 검토했습니다.

D.T. Associates사는 광범위한 기업군과 산업계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국내금융 및 동아시아에 대한 직접 투자기회에 관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컨설팅 회사입니다.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에 진출한 우리 고객들에게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기사를 보고 귀국에 대한 투자 정보를 요청해온 3개 기업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 회사들은 (1) 현재 중국으로부터 실리카, 카바이드 및 기타 광물을 미국으로 수입하고 있는 수입회사로 이 회사는 귀국에서 광물과 관련해서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2) 철골구조물용 크레인을 제작하는 대규모 회사로, 이 회사는 동아시아 지역에 건설용 크레인 생산설비를 세울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3) 캐나다에 사업기반을 가진 한 석유회사는 귀국의 해안에서 석유·가스 탐사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4) 우리 회사도 현재 해안가에 호텔/빌라 건설사업을 위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사업과 관련, 우리는 현재 ‘베트남 자산관리사’라는 별도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첨부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광고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귀국에서 그런 프로젝트가 가능하다면 이와 비슷한 별도 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 L.B.A. 아메리카사가 북한 유엔대표부에 보낸 1994년 12월20일자 서신.

“지난 몇 달간 귀하와 전화로 나눈 다양한 대화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귀측에 보낸 서신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1991년 10월 이래 귀측 대표부와 접촉해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귀측의 여러 대사, 동료들과 면담을 갖기도 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누차 강조했듯이 우리는 귀국과 사업관계를 맺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귀측 사무실에 여러 차례 밝혔듯이 우리는 다음의 사업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귀국 수도인 평양에 ‘세계무역센터’를 건설하는 일.

이를 위해서 우리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에서 수행한 세계무역센터 건립 프로젝트와 관련한 사업계획안과 타당성조사 보고서를 귀측 뉴욕 사무실에 제출한 바 있으며, 동시에 귀측의 세계무역센터와 관련한 세부 사항을 담은 서신을 여러 통 전달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세계무역센터 이외에 우리는 또 ‘국제 투자교역회사’를 설립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투자와 교역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A : 경제적으로 타당성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예를 들면 항만, 광물 프로젝트, 통신, 여행자 수용시설, 섬유·신발·전자제품 등 다양한 공장을 새로 짓거나 현대화하는 일.

B : 조인트 벤처회사 설립

C : 수출입 업무…”

▲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소재 림 인터내셔널(Ream International)사가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에 편지(1995년 8월15일자)

“북한 투자전망에 관한 세미나에서 귀하들을 만날 기회를 가진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귀하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임박사와 저는 두 개의 자유무역지대 개설을 비롯해서 외국투자 유치와 해외교역, 북한 내 기업활동에 관한 북한측의 계획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림(Ream)사의 식품점 체인, 림 인터내셔널사를 통한 관련 공급업체들과 그 네트워크는 귀하의 위대한 공화국에 모든 종류의 식품을 공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대(對)아시아교역에 관한 임박사의 지식을 통해 우리는 중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남한 등에 대한 수출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머지않아 그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고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귀하들의 지도를 요청합니다. 또한, 귀하들을 가까운 시일 안에 북한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솔트레이크시티의 기업인들의 세미나에 초청해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계속 연락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최근 움직임들

위에서 예로 든 서신들은 자료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1995년, 북한에 드리웠던 장막이 살짝 걷히는 듯하자 미국의 수많은 민간 기업들, 구호단체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북한측에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손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시들해졌다. 기업들의 경우, 무엇보다도 대북 경제제재와 적성국교역금지법 등 미국의 국내법적 제약 때문에 실제 대북투자까지 진전될 수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 후 “미국기업이 한국 기업에 앞서서 대북 진출을 도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통설’이 굳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긴 ‘겨울잠’이 끝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무엇보다 1999년 9월 북한 미사일문제를 논의했던 북·미 베를린협상 타결과 함께 대북 경제제재가 일부 완화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와 관련, 한 북한 전문가는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95년에 추진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됐던 대북 진출이 당시 논의되던 수준에서 다시 재개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주한 미 상공회의소(AMCHAM)가 작년 10월 이래로 추진 중인 대북 투자조사단 방북문제. 여기에 참가할 미국 기업들은 모토로라, 퓨리나(사료회사), P&G, 얼라이드 시그널(Allied Signal), 골드만 삭스, GE 캐피탈, 지멘스, 웨스팅 하우스, BBMS(섬유수출업체) 등 총 12개 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애당초 작년 11월에 이뤄진다고 발표했던 투자조사단의 방북은 그후 연기를 거듭해왔다. 이와 관련, 투자조사단의 구성을 주도한 제프리 존스 전 회장은 “조사단 방북 시기는 현재 뉴욕에서 진행중인 북·미 고위급회담과 연계돼 있다”고 말했다. 즉, 상공회의소의 방북조사단이 미국정부의 협상카드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3월7일부터 시작된 북·미 고위급회담은 작년 9월 베를린 합의에 이어 북·미관계에 하나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은 북한에 ▲ 테러국 해제 ▲ 식량지원 ▲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차관지원 등의 카드를 제시하는 반면 북한에게서 ▲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포기 ▲ 신종 테러 포기선언 등을 얻어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아무튼 투자조사단의 방북 일정은 뉴욕 고위급회담의 향배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조사단 실무를 지휘해온 제프리 존스 전회장은 “테러국 명단에서 북한이 제외되는 결과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적성국교역지법 상의 제약조건이 완화되기만 해도 조사단 방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 미 상공회의소의 대북투자조사단 방북문제와 관련,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은 작년 10월 초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경제학회 세미나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미국 경제계가 북한에 대해서 갖고 있는 관심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깊으며, 많은 미국기업들은 북한이 동북아 경제권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구체적인 기업을 거명하며 “벡텔사의 경우 부산에서 출발, 북한을 거쳐 중국 베이징을 잇는 철도사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는 북한의 전력산업을 건설하는 데 한몫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 기업과 민간단체가 활발하게 대북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굳게 닫혔던 북한의 문호가 조금씩 열리고 경제회생의 길로 접어든다면, 남북간 긴장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그동안 우리측 전문가들은 “어차피 미국기업은 한국기업과 동반 진출을 원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흔히 얘기하듯이 “북한이 미·일과의 협상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경제적 수혜의 폭이 넓어질수록 남북관계를 본격화시킬 필요성은 오히려 덜 느끼게 될 것”이라는 걱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북한 전문가의 말이다.

“미국은 동유럽에서 사회주의체제 국가를 자본주의체제 국가로 전환시키는 데에 상당한 노하우를 쌓은 나라다. 북한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진출 시도도 단순히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이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미국의 민간기업들도 사적 이익에서 뿐만 아니라 잠재적 라이벌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유지·확대한다는 미국의 큰 전략구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미 상공회의소의 대북 투자조사단에 미국 유수의 금융사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시 말해, 미국 민간기업들의 대북진출 시도는 좋게 표현해서 “북한에 대한 자본주의 교육의 일환”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본주의 교육을 통해 경제적 차원에서 남북한에 공히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와 관련, ‘신동아’ 1999년 1월호 ‘위기의 한·미·북 3각관계 정밀분석’에 소개된 미국측 보고서 ‘시장경제만이 통일의 해법’ 참조).

아무튼 북한으로 향하는 미국의 행보는 우리의 상식 수준을 훨씬 넘어 빠르고 치밀하다.

뻔한 결론이지만, 문제는 우리다. 정부는 2년 동안 포용정책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성과는 아직 불투명한 실정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카운터파트인 북한이 수용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반박하겠지만, 그것으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또 언제는 경쟁적으로 너도나도 뛰어들었다가 IMF 위기가 오자 썰물 빠져나가듯 한산해지는 기업의 대북사업 풍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사고 없이 무턱대고 한 건 올리려는 행태들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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