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동물실험을 하는 주요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체에서 해마다 열리는 ‘동물위령제’는 실험실에서 죽어간 동물들의 영혼을 달래는 자리이자, 동물의 고통과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연구자들의 부담감을 달래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 10월29일 식약청에서 100여 명의 직원이 참가한 가운데 동물위령제가 열렸다. 실험동물위령탑 앞에는 평소 동물들이 좋아하던 멸치, 과일, 땅콩, 밤, 고구마 등이 차려졌다. 독성연구원 이수해 연구관(실험동물자원과)은 “행사를 앞두고 직원들이 시장에 나가 제수 음식을 구해온다”며 “위령제는 식약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연례행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동물실험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의약품 독성실험이다. 의약품이 개발되면 그 안정성과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서 동물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하는 전임상 단계를 거쳐야 한다. 국내 모 의약품생산업체 안정성센터에서 독성검사 업무를 맡고 있는 연구관 A씨가 독성실험에 대해 들려줬다.
A씨의 회사에서는 의약품 독성실험에 주로 원숭이나 비글을 사용한다. 먼저 값이 싸고 실험 개체수를 많이 늘릴 수 있는 설치류(마우스나 래트)에 1차적으로 독성실험을 한 뒤 마리당 30만∼50만원 하는 비글, 1000만∼8000만원씩 하는 원숭이를 사용한다. 원숭이나 비글에겐 각각 농도를 달리한 약물을 주입해 독성 여부와 적정 투입량, 약효 유지 기간 등을 테스트한다. 이씨에 따르면 한 가지 의약품을 개발한 후 시판하기까지 설치류는 약 1000마리, 개나 원숭이는 60∼70마리 정도가 사용된다고 한다.
“물론 독성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기도 해요. 명랑하던 동물들이 침울해져서 꼼짝하지 않는다든가 침을 줄줄 흘리기도 하죠. 다음날 아침까지 살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미리 안락사를 시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죠. 개나 원숭이는 지능동물이어서 연구자들을 일일이 기억하면서 잘 따르거든요. 특히 원숭이와는 손뼉을 치면 바나나나 사과를 주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그러나 투입 약물에 독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더라도 독성실험에 쓰인 동물들은 모두 안락사된다. 모 대학 수의학과 B교수는 “눈으로 봐선 독성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으므로 혈액검사, 조직검사 등을 하기 위해 반드시 안락사시켜 부검한다”고 말했다. B교수는 얼마 전 국내 기업체가 유전자 제조법으로 개발한 약품의 안정성 검사를 위해 30마리의 비글을 사용했다. 비글들은 약이 투여되고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건강했지만, 모두 안락사됐다.
“안락사시키는 날엔 동물들도 세상 떠나는 날이란 걸 압니다. 자신의 동료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 동요하죠. 도살장에 있는 소와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그래서 동물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죽 늘어놓아 서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게 하면서 저 세상으로 떠나보냅니다.”
목숨 내놓고 새끼 낳는 대리모
최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생명공학 또한 동물실험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분야다. 서울대 성제경 교수(수의학)는 비만과 당뇨병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성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난 비만 쥐는 몸통의 크기가 정상 쥐의 두 배에 달했다. 비만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이 비만 쥐는 어미 젖을 뗄 무렵부터 다른 형제들보다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고, 정상쥐보다 먹이도 훨씬 많이 먹는다고 한다.
성교수는 “4쌍을 교배시켜 낳은 42마리의 새끼 중 단 3마리만 비만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며 “탄생시키기 어려운 만큼 비만 쥐는 아주 귀중하다”고 말했다. 실험에 활용되지 못하는 나머지 새끼들은 대조군으로 활용되거나 폐기처분된다.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킨 서울대 황우석 교수(수의학)는 “복제연구에서는 동물의 난자에 유전자적 변형을 가해 대리모에 착상시키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위해 해부할 일은 없다”고 한다. 다만 정상 분만을 못하는 대리모 중 제왕절개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황교수는 “대리모 역할을 해준 동물들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실험농장에서 여생을 보내다 자연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대리모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연구도 있다. 황교수가 요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장기이식 연구의 경우 대리모인 돼지는 새끼를 분만하기 전에 안락사된다. 새끼를 무균 상태에서 태어나도록 해야 하기 때문. 외국에서는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지만, 공기 중에 노출된 장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수술받은 사람이 곧 사망한 경우가 있었다. 황교수는 “돼지에 균이 한 마리라도 있으면 이식할 수 없다”고 했다.
“대리모의 자궁을 질식 상태에서 꺼내 무균실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분만 직전 드라이아이스를 대리모의 입에 씌웁니다.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2∼3초 만에 의식을 잃지요. 그와 동시에 배를 갈라 자궁을 꺼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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