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평부대 대대장 트렌트 스콧.
“3대대가 1951년 4월23일과 24일, 이틀 밤낮을 중공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만약에 3대대가 중공군을 저지하지 못했으면 한국군 6사단과 유엔군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서울을 사수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 당시의 전황이 그렇게 심각했나?
“1951년 4월에 중공군의 춘계대공세가 시작됐다. 그 유명한 인해전술(Human Sea)로 중공군이 파죽지세로 내려왔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가평전선까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전쟁 초기에 낙동강전선까지 밀린 이후 최대의 위기였다.”
▼ ‘가평전투’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달라.
“한국군 6사단을 추격하던 중공 제118사단은 신속히 가평을 점령할 목적으로 종대 대형을 유지하고 도로와 계곡을 따라서 내려왔다. 504고지에서 매복하다가 중공군을 포착한 3대대는 집중공격을 퍼부어서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트렌트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는 스콧 대대장은 오랫동안 ‘가평전투’를 설명했다. 남하를 거듭하던 중공군 118사단은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비교적 기동이 용이한 가평천 골짜기를 통해 서울-춘천 간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연합군의 전선을 갈라놓으려 했다.
3대대와 중공군의 일진일퇴 공방은 24일 아침 녘까지 이어졌다. 날이 밝아 연합군의 항공폭격과 포병사격이 집중되자 중공군은 산더미 같은 시체를 남기고 급히 철수했다. 호주군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퇴각시키는 믿기 어려운 전과를 올린 것.
▼ 언제부터 ‘가평대대’라는 별명을 얻었나?
“3대대는 가평전투의 공로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고 ‘가평대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호주는 가평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4월24일을 ‘가평의 날’로 정했으며, 가평 퍼레이드 같은 행사를 통해 호주 군인의 용맹스러운 정신을 기리고 있다.”
▼ 한국 가평에서 열리는 ‘가평전투’ 6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줄리아 길라드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길라드 총리는 가평전투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서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만나서 격려했다. 3대대 부대원 20여 명도 가평 행사에 참석했다. 현직 총리가 직접 가평에 가서 가평전투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부대원들의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됐다.”
▼ 3대대 병사들의 자긍심이 크겠다. 부대를 돌아보니 1950년 11월에 평안북도에서 전사한 찰리 그린 초대 대대장이 영웅처럼 모셔지고 있는데….
“그분은 가평대대뿐만 아니라 호주 육군의 영웅이다. 지금 이 자리에 고 찰리 그린의 부인 올윈 그린 여사가 계신데 우리는 그분을 ‘맘’이라고 부른다. 3대대 병사들은 선배들의 업적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런 전통을 지켜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난 4월24일 오전 10시30분, 시드니 근교 홀스워디에 위치한 가평대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가평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가평전투 60주년을 기념하는 퍼레이드였고, 시드니에서 열리는 마지막 ‘가평의 날’ 행사였다.
한편 이날 가평 퍼레이드는 시드니에서 작별을 고하는 대단원의 장이었다. 3대대가 올 연말에 타운즈빌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3대대 출신의 전역병사들이 대거 참석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이들은 스콧 대대장의 “가평 퍼레이드 종료!”라는 구호를 들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트렌트 스콧 대대장은 “퍼레이드는 연례행사이기 때문에 타운즈빌에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가평의 날 행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서 “그러나 가평전투에서 비롯된 3대대 정신은 지금도 살아있고 가평대대에서 잘 보전될 것(The spirit from that time is still alive and well in the Kapyong battalion)”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