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현관만 나서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

이탈리아 나폴리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5-04-14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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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지라 늘 방문객들을 주눅들게 하는 로마와 달리, 나폴리에는 곳곳에 서민적 삶의 체취가 묻어 있다. 쾌적한 지중해의 기후를 배경 삼아 도시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어느새 중세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정신의 여유로움을 지향하는 이들의 고향이 바로 나폴리다.
    이탈리아 반도 서남부 해안가에 자리잡은 베수비오산. 기원전 79년 8월24일,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막 끝낸 오후 1시, 베수비오는 거대한 굉음과 더불어 무시무시한 불길을 내뿜었다. 땅이 흔들리고 뒤이어 불덩어리 같은 돌멩이가 비오듯 쏟아졌다. 불덩어리에 이어 화산재가 민가를 덮쳤다. 베수비오 화산 동편 기슭의 고대도시 폼페이는 이렇게 4m 높이로 쌓인 돌멩이와 화산재 밑에 매몰되고 말았다. 그 아래에서 죽어간 사람은 2000명이라고도 하고 5000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긴 불운의 고대도시 폼페이는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후손들에게는 황금을 선사하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나폴리와 더불어 남부 이탈리아의 대표적 관광지로 일년 내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화려한 유적지로 거듭 탄생한 것이다. 나폴리에서 전철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폼페이 유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화려했던 고대로마와 로마인의 삶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 그린 듯 빛깔도 뚜렷한 벽화에는 에로티시즘이 넘쳐난다. 폼페이에는 대재앙을 안긴 베수비오산이지만 나폴리 쪽에서 바라본 이 산은 산타루치아 항구와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을 꾸며주는 장식일 뿐이다.

    수백년간 변하지 않은 해안풍경

    로마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2시간 반, 한국의 시골과 닮은 전원풍경이 지루해질 즈음, 이탈리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20∼30층 규모의 고층빌딩 숲을 발견하게 된다. 수도 로마에서도 볼 수 없는 초현대식 건물들이 나폴리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나폴리를 한적한 항구도시라고 생각했던 선입관은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기도 전에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역 광장에 나서 본격적으로 나폴리와 마주하면서 생각은 다시 한 번 바뀐다. 화려한 현대식 도시는 역 광장 우측 일부분에 그칠 뿐, 도시의 대다수는 아직도 고대풍의 아담한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나폴리 중심부에 있는 왕궁박물관에는 17세기 나폴리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가 전시돼 있다. 그런데 그림 속의 나폴리는 등장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설명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마치 요즘의 나폴리 풍경화로 착각할 정도다. 그만큼 도시의 모습이 수백년 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가정집 대문에도 정교한 동물 조각이 있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실물 크기의 석상을 보노라면 이 도시 사람들의 만만찮은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로마가 ‘광장의 도시’로 불릴 만큼 도심 곳곳에 광장을 안고 있는데, 나폴리도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광장이 많다. 중앙역을 나서자마자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종점으로도 활용되는 가리발디광장이 펼쳐진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카보광장, 단테광장, 델제수광장, 플레비시트광장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광장이 등장한다. 물론 광장이라고 해서 사전적 의미 그대로 ‘넓은 공간’은 아니다. 도로가 도로와 이어지는 여유 공간에 조각상 하나 세우고 나무 몇 그루에 벤치 한두 개만 갖추고 ‘광장(piazza)’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방인이 나폴리에서 길을 찾을 때는 목적지 인근 광장 이름만 알아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용한 이정표 구실을 한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州)의 주도(州都)다. 인구는 대략 110만명, 로마, 밀라노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3의 도시다. 나폴리 만(灣) 안쪽에 위치하는 천연의 양항으로, 배후는 베수비오 화산의 서쪽 기슭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시가는 동쪽으로 차차 높아지는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다. 부산을 가본 사람이라면 나폴리 항과 이어지는 중심가 구조가 부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산이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무차별적으로 들어선 건물로 슬럼화돼 있다면, 나폴리는 항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제한했다는 점이 다르다. 항구 주변은 최대한 과거 모습을 유지하면서 늘어나는 인구는 도시 외곽에 주택가를 건설해 수용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키운 결과다.

    로마황제가 탐낸 카프리섬

    나폴리 항은 제노바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2의 상항(商港)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산타 루치아’라는 가곡으로 유명한 서편 항구는 1924년에 확장된 뒤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공업은 서쪽 포지리포 지구 및 남동해안을 따라서 발전하고 주택지구도 교외에 부단히 발전해 갔다.

    토양은 비옥한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열대산인 오렌지 가로수가 끝이 없는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꼽힌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이런 속담 때문인지 나폴리 시내는 유럽 각국에서 찾아온 노인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나폴리 남쪽 30km 해상에 떠 있는 작은 섬 카프리는 폼페이만큼이나 유명한 관광지다. 2000년 전, 카프리의 아름다움에 반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나폴리 인근에 있는 황제 개인 섬인 이스키아를 나폴리에 주는 조건으로 이 섬을 얻었다고 한다. 면적이 카프리의 네 배나 되고 온천도 솟는 이스키아를 아낌없이 내줄 정도로 아우구스투스의 넋을 빼놓은 화려한 섬 카프리. 그의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 황제는 아예 로마를 떠나 이 섬의 별장에 기거하며 방대한 로마제국을 통치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최저 평균 기온이 8℃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교차가 적다. 여름은 건조하나 사실상의 건기(乾期)는 1개월 미만으로 농업용수 문제도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절실하지 않다. 아주 드물게 눈이 내리는 일도 있으나, 연중 온난하여 나폴리 일대에서는 오렌지·올리브·토마토 등 과실이 많이 산출된다. 또한 부근의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에서는 맥류·과일류의 집산 가공이 활발하다.

    뭐니뭐니해도 나폴리의 중심산업은 관광이다. 산타 루치아 해안 주변의 풍광 좋은 자리에는 대부분 호텔들이 버티고 있는데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10층 미만의 호텔들이 아름다운 해안선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배치돼 있어 개발과정에 고심을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나폴리 도심이 호텔과 관공서, 은행과 상가 등으로 구성된 반면, 주택가는 도심에서 10분 정도 벗어난 외곽에 배치돼 있다. 나폴리와는 지하철로 연결되는 소카보, 방롤리, 포초리 등 위성도시들도 잘 발달돼 있는데 이들 위성도시들은 풍부한 녹지로 둘러 싸여 쾌적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나폴리라는 도시이름은 그리스의 식민도시 ‘네아폴리스(Neapolis)’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를 피해온 주민들이 건설한 도시라는 설도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번영하던 도시로 그 당시 닦은 기본적인 가로망은 현재도 시 중심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2000년 전에 닦은 길 위로 자동차와 사람이 오가고 있다는 얘기다. 포장한 지 수세기가 넘은 중심가는 돌을 촘촘히 박는 방식으로 포장을 했는데 이 때문인지 달리는 차량 수에 비해 시끄럽게 느껴진다.

    늘 사람을 들뜨게 하는 기후, 비옥한 토지 등 천혜의 자연조건 탓에 역사적으로 나폴리는 언제나 주변 강자들로부터 침략의 대상이 됐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로마제국의 몰락 이후 나폴리의 통치자는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폴리는 통치자의 변경을 역사의 비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통치자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흡수해 나폴리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열심이었다. 이 작은 도시국가를 지배했던 이민족 왕들은 지금도 플레비시트 광장에 자리잡은 왕궁 벽면에 조각상으로 남아 나폴리를 찾는 관광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18세기 말 부르봉 왕조 지배를 받던 나폴리는 인구 40만을 헤아리는 이탈리아반도 최대 도시로 부상하기도 했다. 1861년 가리발디 장군에게 정복되어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스페인 프랑스 등 주변국의 나폴리 점령은 이곳 사람들의 모습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의 도시답지 않게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많아 가끔은 한국의 어느 지방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수도 로마와는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나폴리 사람들의 기질은 로마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 나폴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 소피아 로렌이다. 나폴리는 소피아 로렌의 어머니 고향이며 소피아 로렌 역시 나폴리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폴리 시내를 오가는 여자들은 어딘가 모르게 소피아 로렌을 닮은 듯하다.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폴리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며 정이 깊다’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와 닮아 보이는 나폴리 사람들의 진면목은 시내를 잠깐만 돌아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택가 베란다마다 널려 있는 하얀 빨래는 이 도시를 처음 찾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단숨에 풀어준다. 늦은 오후, 햇살 따가운 플레비시트 광장 한켠에서는 어머니인 듯한 중년 여성이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를 큰소리로 꾸짖고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딴청을 피우는 아이의 모습에서 사는 모습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폴리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나폴리 청소년 점령한 일본 만화영화

    이곳 청소년들은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방과 후 아이들은 플레비시트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한켠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몰려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다가가 보니 동남아계 행상 소년이 파는 일본만화영화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즉석에서 사진을 사고 파는 모습도 보였는데 그 흥정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탈리아의 동심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좌우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민영TV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본 만화영화를 보여준다. 일본풍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로 공중파를 타고 있어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이 만화영화에 나폴리 청소년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나폴리 시민들은 언뜻 보기에 무질서하다. 횡단보도가 있거나 말거나,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찻길을 건너는 이곳 사람들의 행동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을 따라 몇 번 무단횡단을 하다 보면 신호에 관계없이 철저하게 보행자를 보호하는 이곳 운전자들의 보이지 않는 질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유난히 소형차와 경차가 많다. 심지어 장난감 같은 2인용 일본제 초미니카도 곧잘 눈에 띄는데 이탈리아는 국가 차원에서 경차를 장려하는 나라다. 이 나라에서 중형차 가격은 대단히 비싸다. 배기량 1500cc급 이상의 자동차도 우리 나라와 비교해 30% 정도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나폴리 거리를 누비는 차량 행렬을 보노라면 10대에 1대꼴로 한국차를 볼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국가경제의 골치 거리인 대우자동차가 이탈리아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국가의 위신을 드높이고 있었다. 대우의 마티즈나 라노스 등은 대단히 인기 있는 자동차였다. 한번은 도심에서 시끄러운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지나가기에 유심히 봤더니 대우 마티즈였다.

    중앙역 안내데스크에 근무하는 시청 공무원은 “나폴리의 자랑거리가 뭐냐”는 질문에 “지금 서있는 이곳과 쾌적한 공기”라고 말했다. 도심을 중심으로 자동차소음과 매연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에 그는 “다 좋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나폴리 물가는 로마보다는 싼 편이다. 특히 음식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면 성인 두 사람이 배불리 먹을 정도의 피자 한 판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보면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물값’은 비싸다. 어느 음식점을 가도 음식값 외에 별도로 물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1만원어치의 식사를 할 경우 별도의 물값 3000원을 낼 각오를 해야 한다.

    올 봄, 나폴리의 유행색은 검정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나폴리 사람들이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 너무 의아했다. 그러나 정작 도심의 쇼윈도에는 감각있는 디스플레이가 돋보이는 원색 옷이 즐비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산타 루치아 해안가 호텔 밀집지 인근 상가에 있는 호텔 종사자 제복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옷가게. 각종 웨이터복과 룸메이드 여성을 위한 ‘하녀복’ 등이 다양한 형태로 전시돼 있었는데 이는 관광산업의 비중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나폴리 시민 수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 4월 말, 나폴리는 선거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주지사와 시장을 뽑는 선거였는데 우리나라 80년대 선거 때처럼 각종 정당이 내다 붙인 벽보로 뒤덮여 있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정권교체가 잦은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무려 30차례 이상 총리가 바뀌는 등 정치불안은 이 나라의 만성적 현상이 돼버렸다. 이곳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택시운전사는 “주지사나 시장, 각종 의원선거 등 자주 선거를 치르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밖에서 보기에는 불안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잡힌 곳”이라고 설명했다.

    나폴리에서 만난 유학생 이현미씨(여·24)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의 여러 도시와 비교해보면 나폴리 시민들의 정서가 한국사람과 아주 비슷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뚝뚝하다고 생각되지만 얼굴을 익히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게 이 도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이씨는 “다민족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 여러 인종이 뒤섞여 살다보니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 인종적 편견을 거의 느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가지·항만시설이 파괴되었으나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 주로 17∼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의 교회·왕궁 등은 대부분 복구되었다. 나폴리는 베수비오 화산과 나폴리 만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꼽힌다. 인근의 폼페이의 유적지 외에도 나폴리 시내에 자리잡은 중세풍 성(城)인 카스텔 누오보, 아름다운 해안선을 감상할 수 있고 ‘달걀성’으로 번역되는 카스텔 델로보, 나폴리 해안과 베수비오 화산이 어우러진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스텔 산토엘모 등의 건축물, 또 나폴리 민요·요리 등 다양한 문화자원을 갖고 있다.

    피자의 발상지

    플레비시트 광장을 중심으로 양편에 자리잡은 왕궁과 산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 교회, 그리고 인근의 움베르토 1세 갤러리는 그 규모에서부터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나폴리는 피자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나폴리 중앙역 앞 가리발디 광장 주변에 포진해 있는 피자가게에서는 싼값에 큼지막한 이탈리아 정통피자를 맛볼 수 있다.

    나폴리 만에 면한 소도시들은 대부분 나폴리의 위성도시 성격을 띠고 있다. 활발한 어항, 마카로니 생산의 중심지, 카메오 등 조개 세공의 산지로서 유명하다. 1224년에 창설된 나폴리종합대학과 동양연구대학, 1737년 개장한 산 카를로 오페라하우스 등이 있어 학예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도시 북쪽에 자리잡은 국립박물관에는 베수비오 화산재로 매몰되었던 부근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두 도시의 귀중한 고고학적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 해양박물관, 수족관, 육·해군기지, 음악학교 등이 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미항인 경남 통영과 군항인 진해, 그리고 상항인 부산, 여기에 유적 도시인 경주를 섞어놓은 듯한 도시가 바로 나폴리다.

    그러나 도시가 성장하면서 남부 각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인구가 일으키는 빈민문제 등 사회문제도 만만치 않다.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 아프리카계, 동남아시아계, 남미계 이민자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들 제3세계 이민자들이 나폴리의 적지 않은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공원마다 나른한 표정으로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긴 수염과 긴 머리카락의 히피족들이 어김없이 눈에 띈다.

    나폴리는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은 탓에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섞여 산다.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프랑스인, 아프리카인 등 출신지역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시민을 형성하고 있다. 동양계로는 중국인들이 막 상륙해 중국식당을 차리고 있을 뿐이다.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도시, 대문 밖 한 걸음만 나서도 문화를 숨쉴 수 있는 도시, 소피아 로렌처럼 풍만하면서 여유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 그래서 가능성이 넘쳐나는 도시가 바로 나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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