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민심 1번지 ‘인터넷 게시판’

  • 글: 박하영 ‘월간 PC사랑’ 기자 hanny@ilovepc.co.kr

    입력2003-09-26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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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심 1번지 ‘인터넷 게시판’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할 때 흔히 하는 일은 여론조사였다. 무작위로 뽑은 사람들에게 어떤 현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들어 공통점을 찾는 것이 민심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편화된 지금 굳이 힘들여 여론조사를 하지 않아도 민심을 읽을 수 있다.

    지난 8월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이 공개장소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해 말한 후 인터넷 게시판은 온갖 동물 이름들로 뒤덮였다. 아메바, 황소개구리, 바퀴벌레, 구더기 등 온갖 혐오스러운 동물을 동원해 ‘한나라당과 000의 닮은 점’ 시리즈가 네티즌 사이에 퍼져나간 것. 한나라당 사이트는 삽시간에 점령당했다. 사이버 정당으로 변환하기 위해 쏟아붓던 한나라당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때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했던 내용들은 네티즌이 한나라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즉 당시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이처럼 인터넷 게시판은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자기 생각을 말하는 곳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인터넷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받는 수단에서 네티즌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고 참여하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내 생각은 이렇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여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실제로 ID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사람의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따라 행동한다. 지난해 한일월드컵 광장 응원이나 효순·미선이를 위한 촛불시위도 얼굴 없는 네티즌이 제안한 것이 아니던가.

    자기 생각을 주저없이 말하기에 인터넷 게시판만큼 좋은 곳도 없다. 얼굴과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마음속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도 없다. 설사 누군가 토를 단다고 해도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이해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자기 편의대로만 생각하는 사람, 특정인에 대해 도를 넘어서는 욕설이나 비방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이 모든 것이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여진다.



    사회학자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며 자발적인 참여문화를 이끌어내는 곳”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혹자는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미디어가 만들어낸 여론이 아니라 평소에 사람들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진짜 여론을 알 수 있다”며 “하나의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보여줘 문제에 대한 해답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민심을 알기가 너무 편해졌다. 조선시대 왕처럼 암행어사를 몰래 보내는 일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 클릭만 하면 국민의 진짜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위정자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보기나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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