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본사.
물론 신자유주의를 기저로 한 시장주의에 대한 비판이 드센 2010년 감히 드러내 놓고 할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도 기업일진대 시장논리를 벗어나는 건 곤란하다. 여기에서 미디어 시장주의는 결국 광고료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를 의미한다.
노동력(출연진) 등 생산요소를 투입해 산출물인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방송은 산업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와 함께 경제적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방송에서 경영논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유경쟁과 시장에 의해 운영되기보다는 정치권력에 의해 방송구조가 논의되고 재편된 역사였다. 마케팅도, 시청자도, 공적 의무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비즈니스 측면을 무시하는 방송이 이른바 공영방송 시스템이다. 흔히 영국 BBC로 대표되는 공영방송은 시청료를 재원으로 운영된다. 이에 따라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상업방송과는 상당부분 궤를 달리하고 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목적은 오직 기업의 이익(The business of business is business)”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은 공영방송 체제에서 설득력을 잃게 된다.
“5000~6000원으로”
공영방송인 KBS(한국방송공사)가 28년 만에 시청료(수신료)를 올리겠다고 나섰다. 이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최근 KBS 시청료를 현재의 ‘월 2500원’의 갑절이 넘는 ‘월 5000~6000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이 현실화할 경우 대략 7000억~8000억원의 광고가 풀릴 것이다.
그러나 시청료 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많은 시민에게 월 5000~6000원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최 위원장 발언 직후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시청료 인상 거부운동을 선언하고 나서는 등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거기다가 진보성향 매체는 지면을 대거 할애해 반대주장을 내놓고 있다. 시청료 인상은 점차 보수와 진보 간의 한판 싸움으로 커지고 있다. 심지어 보수 언론 내부에서도 미묘한 입장차이가 나타난다.
KBS가 시청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공영방송 사업자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 정도로 볼 수 있다. 시청료는 공익성 제고 측면에서 봐야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종합편성채널 먹을거리 퍼주기’라는 종편 광고 기반 측면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상파 상업방송과 케이블 채널이 넘치는 시대에 시청자로부터 시청료를 올려 받으려면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시청료를 부담하는 것은 공영방송이 오직 공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하다. 공영방송이 말 그대로 공정하고 객관적일 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국민은 지갑을 열게 된다.
그러나 현재 KBS를 보는 눈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가장 비판받는 대목은 사장 인선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참모 출신인 김인규씨를 사장에 앉힌 것부터 그렇다. 집권자의 제 사람 심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정치관행이긴 하다. 미국의 잭슨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계층에 공직을 개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천 원리’라고 생각해 이른바 ‘엽관주의 인사제도(Spoil System)’를 앞장서 실천했다. 엽관제는 정당정치를 구현하고 관료제의 침체를 예방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선진국에선 공영방송의 경우엔 다른 정부 조직과는 달리 엽관제에 의한 인사를 지양해왔다. 공영방송은 공익적이어야 하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방송계의 경우 역사적으로 KBS는 물론이고 준 공영으로 분류되는 MBC, YTN도 많은 부분 정부의 통제를 받아왔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도 경영진 개편 또는 길들이기 시도가 줄기차게 있어 왔다. 김인규씨의 KBS 사장 취임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KBS는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정권 홍보에 올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시청자는 지금도 시청료 내는 것을 아깝게 생각한다. 문제는 시청료 인상 논쟁이 이념적 편 가르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이 임명한 정연주 사장 시절에는 보수 언론이 시청료 인상에 파상공격을 퍼부었고 보수성향 이명박 정권에서는 진보 언론이 시민단체와 연계해 시청료 인상을 거친 목소리로 반대하는 형국이다.
KBS가 ‘공정한 방송’ 아닐지라도
영국 공영방송 BBC가 극우정당인 영국국민당 당수를 출연시킨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2009년 10월22일 반파시즘 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벌였다.
KBS가 여전히 공정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며 수준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 방송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빌미로 국민은 너무 오랫동안 KBS에 ‘배터리를 충전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먼저 밥을 주고 그 다음 일의 성과를 따질 때가 왔다. ‘진정한 공영방송이 되면 시청료를 올려주겠다’는 게 기존의 논리였다. 그러나 수십 년을 기다려봤지만 이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시청료를 먼저 올려주고 공영방송이 되도록 지켜보자’는 게 나의 논리다. 덧붙여 지극히 정파적인 한국 정치의 후진성 때문에 KBS가 애꿎게 희생양이 된 점도 일정부분 인정하고 또 이해할 때가 왔다.
시청료 인상을 전제로 KBS는 달라져야 한다. KBS와 한국은행은 성격이 다른 기관임에도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독립성이 생명’이라는 점이다. KBS와 한국은행은 그들을 탄생시킨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설사 시청료 인상이라는 엄청난 떡을 안겨준 이명박 정부라 하더라도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만 KBS는 살아남는다. 공익을 위한 방송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질 좋은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에게 보답하려는 노력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시청료 인상 이후 이런 실천이 없을 경우 그 실망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시청료 인상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며 제2의 시청료 거부 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 KBS의 운명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게 된다. KBS는 2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시청료가 2500원으로 묶여 있었던 것이 시청자의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임을 뼛속 깊이 깨달아야겠다.
BBC 타령 그만하자
차제에 “BBC 타령은 그만하자”고 언론계에 제언하고 싶다. 공영방송 논쟁만 나오면 ‘BBC처럼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왔다. 지금이 ‘땡전뉴스’의 전두환 정권 시대는 아니다. 일개 국가의 특정 방송사일 뿐인 BBC를 마치 우리의 전범처럼 여기는 태도는 지나친 자기비하다. 나는 한국 언론의 수준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BBC에 그리 뒤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위대한 공영방송 BBC’는 1970, 80년대에 무모한 시청률 경쟁, 편파방송, 무사안일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마거릿 대처 수상은 1979년 ‘영국에서 최고의 월급을 받으며 빈둥빈둥 노는’ BBC의 민영화를 시도한 적도 있다. BBC는 1990년대 이후 자기비판을 기반으로 한 혁신경영으로 ‘Beeb’란 애칭과 함께 영국인의 사랑을 받으며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국산 휴대전화기가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섰듯이 KBS도 고품격 방송으로서 한국 국민과 아시아인의 사랑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