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 조림사업을 하고 탄소배출권을 사오는 방안을 검토하라.”
- 2009년 11월17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다소 뜬금없어 보인 이 발언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 뒤에는 짐작하기 어려운 배경이 숨어있었다. 임기 초 남북 사이에 비밀리에 진행된 탄소배출권 공동사업 협상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2009년 가을부터는 북·미 사이에도 관련 협의가 진행됐다는 사실 역시 확인된다. 남북관계 해빙과 6자회담 재개 분위기가 무르익는 2010년 벽두,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제시할 ‘새로운 당근’으로 떠오르고 있는 핵 폐기 지원 프로그램과 탄소배출권 프로젝트의 전모.
남측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틀을 빌려 대북 전문가들을 통해 탄소배출권 공동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를 평양에 처음 제안한 것은 2차 정상회담이 마무리된 2007년 가을. “한국 기업이 북한의 에너지 설비 등을 교체해주고 이를 국제기구를 통해 탄소배출권 형태로 인증받으면 서로 경제적 이익이 될 것”이라는 골자였다.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이던 그해 연말 북측이 긍정적인 답신을 보내면서 첫 만남이 이뤄졌고, 논의는 정권교체기를 거쳐 새 정부로 넘어갔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 간 비밀접촉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외형상 북한 측에서는 민화협이 책임을 맡는 형식이었지만, 실질적인 당사자는 통일전선부였다. 이어진 막후접촉 자리에는 협상진행 과정에 대한 감독관리와 상부 보고를 위해 국가안전보위부 관계자들도 동석했다.
민주평통의 ‘모자’를 쓴 남측 협상라인은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진척상황을 전했고, 김 장관은 이를 다시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무렵 청와대 안보라인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 무렵 김 장관을 중심으로 북한과 탄소배출권 사업 협력을 타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외교안보수석실에서 이를 전달받아 시기별 2단계 패키지로 분리 접근하는 방안을 만들었다는 것. 통일부 당국자 역시 협상 진행과정을 확인해주면서 “논의 진척에 필요한 자금을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출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퇴임 이후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김 전 장관은 수차례에 걸친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테이블에서 거론됐던 공동협력 사업은 크게 세 갈래였다. 동평양 화력발전소 설비 개보수와 비료공장 설비 교체, 하수쓰레기처리시설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구축이었다. 남한의 기업들이 이들 사업에 투자해 탄소배출량이 줄어들면 그 감소량만큼을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로부터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아, 투자기업이 영미권에서 공장을 지을 때 활용하거나 거래시장에서 판매해 이윤을 남기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사업 가운데 동평양 화력발전소 건에 대해서는 북측이 6자회담 논의내용과의 충돌을 우려해 난색을 표함에 따라, 초점은 비료공장과 재생에너지 발전시설로 모아졌다. 학술회의와 기술인력 교육, 실사, 시범사업, 전면사업으로 이어지는 5단계 로드맵도 도출됐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기업도 참여해야 하는 사안의 특성상 시행 로드맵의 첫 단계로 2008년 5월말 금강산에서 학술회의를 열어 그간의 논의내용을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뤄진 빠른 진척이었다.
한반도의 훈풍
그러나 2008년 4월 이후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하면서 논의는 중단상태에 빠졌다. 예정됐던 학술회의 역시 백지화됐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이 대통령의 ‘녹색 비전’과 부합하는 어젠다라고 판단해 힘을 실었던 김 장관이 새 정부 대북정책의 색채가 분명해지면서 한발 물러선 것에 가깝다”고 전했다. 통일부의 업무조직이 대폭 축소됐던 정부 출범 초기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이후 노동신문의 ‘이명박 역도’ 비난, 촛불정국,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이 문제와 관련한 남북 간 협의의 정체상태는 해소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남북관계란 변화하기 마련이다. 2009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얼어붙었던 한반도에는 간만에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정상회담 관련 비밀접촉 사실이 공개된 후 3차 정상회담에 관한 기대감이 새해 정국의 관심사로 떠오른 형국. 2~3월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는 당국자들의 예측이 쏟아지면서 초점은 다시 ‘과연 북한은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 과정에서 최근 주목을 받은 것이 미국 국가안보사업이사회(BENS) 관계자들의 평양 방문이다. 2009년 12월17일 ‘조선중앙통신’은 “찰스 보이드 BENS 회장을 단장으로 한 기업가대표단이 3박4일간 머물며 경제부문 일꾼들과 투자환경 조성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안보문제 전문가들은 BENS가 옛 소련의 핵 폐기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미국의 위협감축협력프로젝트(CTR) ‘넌-루거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91년 샘 넌,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 주도로 만들어진 법안을 근거로 꾸려진 넌-루거 프로그램은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핵무기 해체를 돕기 위해 미국이 자금과 기술, 장비, 인력 등을 지원한 프로그램이다. 루거 의원은 2007년 2·13 합의 이후 정책보좌관을 여러 차례 방북시키는 등 북핵 폐기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방안을 협의한 바 있으며, 2003년 이 법안이 확대적용되는 데는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동참했다.
북한이 핵 폐기를 결심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우선 북한이 그간 진행해온 핵개발 프로그램의 규모와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후 사찰과 검증작업을 통해 그 내용이 입증되면 확인된 프로그램에 사용됐던 설비와 시설을 폐기해야 하는데, 그 폐기 작업 자체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소요비용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아직 그 규모가 확인되지 않은 우라늄농축시설은 논외로 치고 국제사회에 알려진 플루토늄 핵 시설만 따져봐도 그렇다.
플루토늄 핵 시설을 폐기하려면 흑연로 및 재처리시설 관련 장비를 파괴한 뒤 국외로 반출하고,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과 플루토늄을 포함하고 있는 폐연료봉도 미국이나 러시아 등 핵무기 보유국으로 반출해야 한다. 핵공학박사인 강정민 미국 존스홉킨스대 객원연구원은 “이들은 모두 고준위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으므로 제염 분야의 전문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최대 수천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넌-루거 프로그램의 골자는 이렇듯 핵무기 개발에 사용된 장비와 시설을 민간산업용으로 전환하는 비용을 미국 정부 등의 예산으로 지원하고 관련 종사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돕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정해진 바가 없지만, 북측이 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보이드 BENS 회장은 귀국 직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한 관리가 넌-루거 프로그램을 우리의 방북 목적과 연계해 거론하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평양의 눈앞에 떨어진 제2의 당근인 셈이다.
‘봉이 김선달식 장사’
이와 함께 앞서 설명한 대로 2008년 봄 남북 간 협상이 진행됐던 탄소배출권과 CDM 사업 역시 최근 서울 주재 외교관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협상내용에 정통한 한 인사는 다국적 기업이 북한의 낙후한 산업설비와 발전시설을 저탄소 설비로 교체해주는 비용을 대는 이 사업을 가리켜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봉이 김선달식 장사’라고 표현한다.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앉아서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전혀 지급할 필요가 없는 장사이기 때문. CDM 사업의 구조적 특성이 이렇다 보니 정권교체기라는 민감한 시점에 남측에서 던진 제안에 대해 북측이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6자회담에서 논의됐던 경수로 건설이나 중유 제공에 비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데다, 그 자금의 출처가 각국 정부가 아닌 다국적 기업이라는 점도 미국 등 선진국 자본의 투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론적으로 CDM 사업에는 상한선이 없다.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할수록 투자금액도 고스란히 증가하는 것이다.
평양 시내의 한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남측 역시 CDM 사업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서의 2008년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선순위가 높았던 것은 아니지만, 남북문제와 관련해 CDM 사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책적 검토에 반영되어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전문연구기관에 검토지시가 내려가기도 했다”고 전한다. 비록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논의가 중단되긴 했어도, 2009년 11월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한 탄소배출권 검토 발언의 배경에는 1년7개월 전의 남북협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언에서 남북관계의 해빙에 발맞춰 관련 논의를 복원하려는 정부 핵심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은 비록 조림사업 계획 검토 차원이지만, 남측 관련부처의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지시 직후 대통령직속위원회와 산림청을 중심으로 그간의 연구 결과와 관계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북한 내 조림지 조성 사업계획을 확정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 2009년 5월25일 외교안보장관회의의 ‘대북 신규사업 중단 결정’에 따라 정체상태였던 사업계획 검토가 재개된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리처드슨-김명길 회동의 진실
남측의 제안으로 탄소배출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평양은 남북협상이 중단된 후에는 해외로 방향을 튼다. 한 서방국가 외교당국자는 “2008년 하반기부터 평양이 탄소배출권 사업이나 이를 위한 재생에너지 관련 노하우를 학습하기 위해 서방국가들에 협조를 요청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유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방안이나 국제기구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인증받을 수 있는 프로토콜 등에 관한 연수 프로그램 타진도 함께 진행됐다.
2009년 1월 영국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이 유럽의회 관계자에게 재생에너지 기술 전수를 부탁했고, 곧이어 평양을 방문한 영국 의회 대표단에 친환경에너지 개발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이렇듯 발빠른 움직임은 각국 외교 당국자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2009년 11월 스위스의 한 비정부기구(NGO)가 북한 대표단을 초청해 수력과 태양열 에너지기술을 제공한 일이 그것이다.
북한의‘구애’가 가장 적극적으로 진행된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미국 자본의 자국 내 유치를 ‘적대시정책 철폐의 상징’이자 체제보장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왔던 평양은 이 무렵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과의 탄소배출권 관련 협상에 힘을 기울였다. 이 일을 총괄적으로 담당한 인물이 뉴욕 유엔대표부의 김명길 정무공사라는 게 서방국 외교관들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북한 관련 사안을 분야에 관계없이 총괄한 김 공사는 미 국무부와의 협상채널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상의 주미대사’다. 이 시기 북한과 물밑 접촉을 진행했던 한 관련국 당국자는 “재생에너지 기술 도입을 타진하는 협상이나 탄소배출권 관련 투자를 가능하게 만드는 채널 구축에 관한 협조요청이 모두 김 공사 명의로 전달됐다”고 말했다(김 공사가 본국으로 돌아간 2009년 11월 이후에는 후임자인 한성렬 차석대사가 관련 업무를 인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8월19일 김명길 공사는 백정호 참사관과 함께 뉴멕시코주 샌타페이에 있는 빌 리처드슨 주지사 공관을 방문한 바 있다. 여기자 석방을 계기로 북·미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진행된 당시의 회동은 북측이 “6자회담이 아닌 양자협상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혀 큰 관심을 모았다. ‘북한통’인 리처드슨 주지사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당시 상무장관으로 거명되기도 했던 민주당 중진 정치인이다.
그러나 이튿날인 20일에도 양측은 다시 만났고, 회의의 주제는 북·미간 재생에너지 분야 협력이었다. 김 공사 일행은 이때 샌타페이 대학을 방문해 관련 전문가와 기업인들을 두루 면담했다는 것이 당시 회동에 관여했던 미국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뉴멕시코주는 풍력, 태양열,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개발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노하우를 보유한 지역. 한 미국 측 당국자는 “김 공사 일행은 리처드슨 지사와의 면담 후에는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 등에 들러 그 지역의 재생에너지 시설을 둘러보고 관계자들을 면담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부 돈은 한 푼도 필요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소의 정우진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해외에서 CDM 관련 투자를 유치하려면 우선 국내의 제도적 준비를 마쳐야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별조치법 등을 만들어 외국 자본에 사업 유지를 보장하고, 관리기구를 지정해 담당할 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기업들과 투자협상을 진행하는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 자본의 대북투자를 요청해왔다. 2009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리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이 “개성공단 확장 등과 관련해 미국 측 투자가가 북한을 방문하는 데 대해 매우 큰 관심이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 북한 전문가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이 얻으려는 최종적인 목표는 미국 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안전보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미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면 경제부흥에 활용하는 것은 물론 일종의 ‘인질효과’를 통해 실질적인 안전보장을 담보받을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반대로 미국의 눈으로 보자면, CDM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는 6자회담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경제적 보상책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수로 건설이나 중유 공급 등 기존의 에너지 보상방식과 달리 이 프로젝트에는 미국 등 6자회담 참가국의 재정을 쏟아 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장점”이라고 말한다. 앞서 설명했듯 기본적으로 CDM 사업은 기업 대 기업 비즈니스이고, 이들 기업도 투자비용에 대해 탄소배출권이라는 반대급부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다만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채널을 마련하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지급보증을 검토하는 정도가 해야 할 일의 전부다. 1994년 1차 핵 위기부터 ‘대북지원책에 들어갈 천문학적인 자금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를 두고 동맹국들과 얼굴을 붉혀야 했던 미국 입장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메리트다. 더욱이 중유나 경수로와 비교할 때 훨씬 친환경적인 CDM 사업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 노력과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공약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도 꼭 맞아떨어진다. 한 미국 측 당국자가 “북·미 간에 CDM 사업이 이뤄진다면 이는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윈윈 게임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 이유다.
현재의 예상대로 2~3월 중에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넌-루거 프로그램과 CDM 프로젝트 등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당근’역시 공개 테이블에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들 프로그램은 2005년의 대북 송전사업 제안처럼 6자회담에서 그간 논의돼온 다른 반대급부에 덧붙이는 형식으로 논의될 공산이 커 보인다. 북한의 핵 폐기 결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추가 카드로 활용되는 셈이다.
장애물은 없다
그러나 넌-루거 프로그램의 경우 본격적인 핵 폐기 일정과 조치가 시작돼야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한마디로 장기적인 과제에 가까운 것이다. 보이드 BENS 회장 역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방북기간에 이러한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논의 자체는 6자회담 테이블에서 진행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실제 핵 폐기 절차 돌입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CDM 사업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해 6자회담 프로세스와는 별도로 논의를 진행해도 무리가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순간부터 관련 논의를 시작한다 해도 단기간에 구체적인 시행절차 마련을 완료하는 데까지 별다른 장애물이 없다. 그간 북한이 물밑에서 이 문제에 쏟아온 관심, 이명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상징하는 서울의 분위기, 2009년 가을 이후 진행돼온 북미 간 논의 등을 종합해볼 때, CDM 문제는 빠른 속도로 ‘새로운 카드’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북 퍼주기’ 논란 피하려면
물론 이러한 논의가 실제의 투자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핵 폐기와 관련해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수적이다. 특히 이른바 ‘그랜드 바겐’에 관한 이명박 정부의 의지를 감안하면 CDM 사업에 관한 논의 자체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레버리지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섣불리 CDM 사업부터 궤도에 오를 경우 이전 정부에서 벌어졌던‘대북 퍼주기’논란의 전철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남북 혹은 북미 간에 CDM 사업의 틀이 만들어진다 해도 실제로 얼마나 많은 외국 자본이 북한에 투자하게 될지는 섣불리 가늠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투자주체인 기업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선화 박사의 말이다.
“관련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투자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나 투자보증 같은 부수적인 장치를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 문제는 기업들이 북한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 북핵 협상이 긴 시간을 요하는 지난한 일이라면 CDM 투자 실현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과연 이 사업이 북핵 협상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북한이 이를 통해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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