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이어온 옛 방식으로 가죽을 염색하는 유명한 염색공장.
물론 시장터가 있던 역사만 따진다면야 우리에게도 내세울 곳은 많다. 하지만 페스의 수크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그 옛날 모습이 지금까지 잘 남아있다는 점,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역사책의 죽은 활자로만 남거나 박물관에나 곱게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날것이 되어 펄펄 살아있는 시장을 만난, ‘파괴된 시장’에서 온 여행자는 그저 부끄럽다.
페스의 수크를 남다르게 하는 또 하나는 골목이다. 어떤 이는 그 수가 8000개라 하고 어떤 이는 9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상상을 확인하기 위해 막상 가보아도 실감이 안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한쪽 귀퉁이에서 뺑뺑 돌고 있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수백도 아찔한데 수천이라니, 아니 만개의 골목이라니. 인체의 게놈 지도나 슈퍼컴퓨터의 회로에 견줄 수 있을까?
이 복잡한 시장 안에 또 그만큼 복잡한 활동이 있다. 물건을 만들고 운반하고 상품으로 내놓고 돈을 받고 판다. 이렇게 말하면 참 간단하다. 노동의 구체성은 그저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땀은 시장 안에서 바로 눈앞에 흐른다. 염색하는 양가죽 위에 떨어지고 원색의 스카프를 더 눈부시게 한다. 어린 여행가이드가 집으로 사가는 빵 안에 촉촉이 스며든다.
페스의 수크에서 얼마나 다양한 물건이 사고 팔리는지를 말하려면 막막하기만 하다. 내가 본 것이라고 해봐야 바닷가의 모래 한줌 정도밖에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페스의 시장에는 만개의 골목이 있고 수십만의 사람이 있으며 수백만점의 물건이 있다고.
1 형형색색의 가죽신발 지와니가 쌓여 있는 가게.
2 강렬한 원색을 뽐내며 눈을 유혹하는 스카프들.
3 수크 주변을 둘러싼 성벽 주위에 옷시장이 열렸다.
수많은 공방이 시장 구경을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
2 시장 한구석에서 재봉틀을 돌리는 노인의 눈길에 가슴이 시려온다.
3 시장 안의 도자기 가게는 온갖 색깔과 문양이 춤을 추는 듯하다.
4 구시가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골목은 현지인들의 생활 시장이다.
5 향수를 간직한 시장 안 이발소는 인심도 넉넉하다.
6 마법사의 옷 같은 전통복장인 질레바를 입은 노부부.
7 주인을 따라 장에 나온 당나귀와 노새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