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비판에도 SNS 정치로 존재감↑
정치와 외교·국방, 경제에 스포츠까지…
‘한동훈 불가론’ 융단폭격… ‘어대한’ 경계
친윤·반한 기조 속 차기 위한 공간 확보
“보수화된 좌표” vs “긍정적 포퓰리즘”
“독고다이 뛰어넘는 상징성 아직 미흡”
2021년 10월 28일 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jp희망캠프에서 ‘서민복지 대전환’ 공약을 발표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홍준표 대구시장의 정치적 노림수는 무엇일까. 연일 페이스북을 통한 날카로운 독설이 쏟아진다. 제발 대구 시정에만 집중해 달라는 호소도 먹히지 않는다. 당 안팎의 비판에도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다. 4·10 총선 이후 홍 시장의 의견 표명은 그야말로 폭포수다. 관심사는 한둘이 아니다. 국내 정치는 물론 외교·국방, 경제,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래도 가장 큰 관심사는 여의도 정치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융단폭격과 불가론이 대표적이다. 좌고우면은 없다. 대부분의 표현은 직설적이다. 의견은 분분하다. 사이다처럼 시원하다는 지지층의 환호가 있다. 대다수는 과유불급이라는 부정적 반응이다.
왜일까. 홍 시장은 노회한 정치인이다. 1996년 15대 총선을 기점으로 정치에 입문한 후 중앙 정치 무대에서 30년 가까이 활약했다. ‘YS 키즈’로 불리며 함께 정치를 시작했던 여야 인사들은 대부분 정계 은퇴 상태다. 홍 시장은 여전히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대선후보, 당대표, 경남지사, 대구시장 등 화려한 경력에 5선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남은 건 차기 대선이다. ‘선진대국시대(先進大國時代).’ 홍 시장의 페이스북 상단에는 대권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다만 정치적 경륜에 어울리지 않는 돈키호테라는 비판과 더불어 좌충우돌은 끝이 없다. 과연 득일까, 실일까. 홍준표의 차기 대권 플랜은 가능할까.
이강인·김호중까지 언급하는 대권주자
2023년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3년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홍 시장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4·10 총선 이후 홍 시장이 쏟아낸 게시물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든 수준이다. 페이스북 정치에 능숙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여의도 정치의 내밀한 속살은 물론 스포츠·연예 분야까지 아우른다. △패장이 나와서 원내대표 한다고 설치는 건 정치 도의가 아니다(친윤 이철규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설 비판) △지구당 부활 논쟁은 반(反)개혁이며 원외 위원장들의 표심을 노린 얄팍한 술책(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지구당 부활론 반대) △인성 나쁜 애들은 모두 정리하라(축구선수 이강인 비판) △가수이기 이전에 인성 문제(가수 김호중 음주운전 비판).
이뿐만이 아니다. 김건희 여사 특검이나 채 상병 특검 등 초민감 이슈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자신의 여자를 보호하지 못하는데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냐. 그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다 △대통령 탄핵 운운하는 과도한 정치 공세다. 찬성 운운하는 당 일부 의원들 참 한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 조사도 믿기 어렵다. 응답률 10%도 안 되는 여론조사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등등.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홍 시장은 지자체장으로서의 한계 극복과 정치적 존재감 확보 차원에서 끊임없이 보수의 유력 대안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라면서도 “영리한 선택일 수 있지만 과유불급이다. 축구선수 이강인이나 가수 김호중까지 언급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분석했다.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플러스 요인이 적지 않다. 다소 과격하다는 이미지에도 중앙 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 차기 주자로 분류되는 이는 제한적이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정도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서울시장 이명박·경기지사 손학규’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시장 오세훈·경기지사 김문수’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시장 박원순·경기지사 남경필’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시장 박원순·경기지사 이재명’ △윤석열 정부 ‘서울시장 오세훈·경기지사 김동연’이 대표적 사례다.
다만 언론과 여론의 주목도는 늘 서울시장으로 쏠린다. 경기지사 출신으로 대선 본선에 나선 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일하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광역단체장은 망각의 대상이다. 여의도와는 거리를 두고 지역 현안을 주로 챙긴다. 이 때문에 차기 주자 대접은 언감생심이다. 예외가 있다면 과거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원희룡 전 제주지사 정도다.
이런 점에서만 본다면 홍 시장은 영리하다 못해 영악하다. 의도적인 좌충우돌로 본인의 정치적 존재감을 키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언론은 예전부터 경기지사도 잘 다루지 않았다”며 “차기 주자인 홍 시장이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SNS를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진욱 정치평론가는 “홍 시장의 페이스북 난사는 과한 측면이 있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면서 “홍 시장은 대구시장이 끝이 아닌 차기 대선까지 보는 정치인이다.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행보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대구시장으로서의 SNS 활동은 인지도 제고 효과 이외의 플러스 요인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보수의 심장부인 ‘TK(대구경북)’ 변수에 주목했다. 최 원장은 “이슈마다 강력한 메시지를 날리는 홍 시장의 전략은 인지도 면에서 효과 만점”이라면서도 “홍 시장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민심의 우세에도 당심의 뿌리인 TK에서 열세였다. TK를 중심으로 당심만 잡으면 대선 고지에서 유리하다는 계산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교안·한동훈 실패 ‘타산지석’
△한동훈의 잘못으로 역대급 참패 △대선놀이하면서 셀카나 찍는 선거전략 △주군에게 대들다 폐세자가 된 황태자 △총선 말아먹은 애 △문재인의 사냥개 △우리를 지옥으로 몰고 간 애….홍 시장의 페이스북은 그야말로 ‘한동훈 성토장’이다. 4·10 총선 참패 이후 한동훈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가 가시화하면서 횟수는 잦아지고 강도도 세졌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날 선 저격이 쏟아진다. 다소 원색적인 비난도 상당수다. 이후 노골적인 친윤석열·반한동훈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표면적인 해석은 차기 라이벌 견제다. 22대 총선 참패 이후 여권은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차기 구도도 불투명하다. 홍 시장으로서는 기회다. 다만 한 전 위원장이 차기 전대에서 당권을 장악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홍 시장이 총선 책임론과 대표 불가론을 연일 제기했던 이유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홍 전 시장은 총선 이후 윤 대통령과 만찬 회동을 했다. 그 뒤로부터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대변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홍 시장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당내 기반의 취약성을 확인했다. 대선 라이벌인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하면서 윤 대통령의 간접 지원을 받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다만 친윤·반한 기조가 끝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3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면 등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시장의 독설에 당 안팎의 반응은 냉담하다. 때로는 막말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홍 시장은 19대 대선 당시 막말 논란 때 “내가 막말한 것이면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도 막말이냐”고 반문하면서 “국민들에게 얘기할 땐 평균적인 언어, 쉬운 말로 얘기해야 한다”고 반박한 바 있다. 이후에도 막말 논란이 이어질 때마다 비슷한 취지의 반박을 해왔다. 다만 최근 상황은 지지자들조차 우려할 정도다. 홍 시장의 발언이 거칠어질수록 당 안팎의 날 선 비판도 쏟아진다. 특히 홍 시장이 한때 탈당을 시사했을 때다. 친윤계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홍 시장님, 더 빨리 나가셔도 좋다. 아무도 안 따라 나갈 것”이라고 비꼬았을 정도였다.
현 여야 정치 지형의 기원은 1990년 3당 합당이다. 보수는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승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내부 인재 육성보다는 외부 인재 수혈에 무게를 뒀다. 굵직한 사례만 살펴봐도 한둘이 아니다. 대법관 출신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샐러리맨 신화의 현대건설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로 18년간 은둔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칼잡이로 유명한 검사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대선후보로 나서진 않았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영입 사례도 있다.
홍 시장의 속내는 차기 대선주자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자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에게 당이 한번 점령당했으면 됐지, 문재인 믿고 우리를 괴롭힌 어린애에게 또다시 점령당하란 말인가”라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깜냥도 되지 않는(?)’ 한 전 위원장보다는 오랜 기간 준비한 본인의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읍소다. 홍 시장이 우려하는 대로 차기 전대에서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 현실화하면 향후 정치 공간은 협소해진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홍 시장은 윤 대통령에 이어 정치 초보인 한 전 위원장이 국정을 맡을 경우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는 듯하다. 윤 대통령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국민의힘이 또다시 외부 셀럽을 영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 “총선 이후 윤 대통령과 만찬 회동에서 차기에 대한 어느 정도 암시를 받았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무너지지 않아야 기회가 온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형·동성애·노조… 선명성 강조 행보
홍준표 대구시장이 4월 6일 대구 중구 삼덕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장점은 분명하다. 홍 시장의 주장에 찬성하는 지지층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은 암묵적 지지가 상당하다.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묻지마 증오범죄나 흉악범죄 발생 시 사형 재개 여론이 거세다. 이러한 목소리를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는 이가 홍 시장이다.
인권 문제로 논란이 적지 않은 동성애 문제에 대한 소신도 뚜렷하다. 세계사적 흐름과 진보 우위의 대한민국 지형을 고려할 때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홍 시장은 2017년 대선에서 동성애 논란을 대선 이슈로 끄집어 올린 바 있다. 대구시장으로 재직하면서는 퀴어 축제 반대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노동운동에 대한 시각도 독특하다. 현존하는 여야 유력 차기 주자 중 노조에 대해 가장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홍 시장이 강성 귀족노조라고 표현해 온 민주노총이 대표적이다. 홍 시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해 왔다.
반대로 단점은 지지층 확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사형 재개는 종교계와 등을 돌릴 수 있는 사안이다. 동성애 반대 역시 세계사적 조류와는 거리가 멀고 진보개혁층 표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귀족노조 반대라는 슬로건은 노동자들의 조직적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홍 시장은 정책에서 국회의원 소장파 시절 진보적 면모도 있었다. 국적법 개정안 등 정책적 유연성이 대표 성과”라면서 “경남지사 시절 경남의료원 반대와 무상급식 논란 등을 거치며 보수화된 이후 대구시장 취임 뒤 더 보수화된 좌표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사형제 집행이나 귀족노조 반대 등은 보수·진보에 얽매이는 사안이 아니다. 민심에 포커스를 맞춘 긍정적 포퓰리즘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尹과 전략적 연대 속 한동훈 연일 비토
홍 시장은 정치 인생은 대선 도전의 역사였다. 2007년 대선은 ‘이명박 vs 박근혜’의 맞대결 구도라는 점에서 참가에 의미를 둔 예행연습이었다. 2012년 대선은 이명박 전 대통령 레임덕 속에서 대선후보를 예약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존재로 출마 자체가 좌절됐다. 첫 본선 도전인 2017년 대선은 패전 처리 투수였다. 국정농단·탄핵사태의 여파로 당선 가능성이 제로였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를 제치고 2위에 오른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22년 대선은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도전이었다. 당내 경선 승리도 가능했고, 본선도 선전이 기대됐다. 다만 혜성처럼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세에 후보직을 내줘야 했다.보수 진영에서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대략 10명에 이른다. 홍 시장을 비롯해 한 전 위원장은 물론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나경원·김태호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유력 인사 대부분이 차기 도전에 말을 아끼는 것과 달리 홍 시장은 거침이 없다.
홍 시장의 ‘한동훈 비판’은 다목적 포석이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였던 한 전 위원장이 4·10 총선 이후 용산 대통령실과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친윤계의 차기 주자는 사실상 무주공산이다. 빈 공간을 노리는 홍 시장과 친윤계의 전략적 연대가 가능해졌다. 게다가 홍 시장은 당내 기반과 조직력이 약하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증명된 사안이다. 민심에서 앞서고도 당심에서 패배한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친윤계는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다는 점에서 홍 시장을 연대 대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홍 시장의 전략은 성공할까. 지금의 대권 지지율로 본다면 불투명하다. 홍 시장의 난타에도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확고하다. 보수 진영 차기 주자 1순위는 물론 전대 출마 시에도 당권 장악이 유력하다. 한 전 위원장의 지속적 상승세는 반대로 홍 시장의 위기다. 다만 정치문화의 변화로 향후 대선 국면에서 조직·자금·계파는 대세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는 아니다. 이는 홍 시장이 여전히 좌충우돌하면서 ‘독고다이’ 스타일의 마이웨이를 구사하는 이유다.
김진욱 평론가는 “정치적으로 성장하면 계파를 형성하고 세력화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계파에 기대지 않고 정치를 하려는 건 잘했다고 본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결과적으로 무계파라는 홍 시장 특유의 캐릭터와 퍼스낼리티는 차기 대선의 장애 요인이다. 독고다이 무계파 스타일을 뛰어넘는 정치적 상징성이 필요한데 아직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신동아 7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