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에겐 이재명보다 조국”
분당·영통·일산·동탄·송도의 선택
지역구 이준석·비례 조국혁신당?
조국黨 투표자 44% “민주당 지지”
“이재명·조국, 지지층 성격 달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왼쪽 다섯 번째)와 22대 국회의원들이 5월 30일 국회 소통관에서 지지자들이 마련한 화환을 앞에 두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훈구 동아일보 기자]
묘한 대목은 지금부터다. 총선 비례대표 투표 당시 경기·인천 8곳에서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 비례 위성정당)이 조국혁신당에 뒤졌다. 성남 분당구, 수원 영통구, 고양 일산동구, 고양 일산서구, 화성시을, 용인 수지구, 용인 기흥구(이상 경기도), 인천 연수구다. 공통점이 보인다. 각 도시에서 중산층 밀집지로 꼽히는 지역이다. 소득 상위 10%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상위 20~30%에는 포함될 계층이 주로 사는 곳이다.
고소득·고학력 강남 좌파
정연경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이 동아시아연구원(EAI)을 통해 발표한 ‘이탈인가 항의인가?: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투표 결정 요인’을 보면, 월평균 가구소득이 400만~500만 원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약 30%가 조국혁신당에 투표했다. 500만~600만 원이라고 답한 유권자의 약 26%도 조국혁신당을 택했다. 세대로는 50대 응답자의 약 34%가 조국혁신당에 표를 줬다. 정리하면 월평균 가구소득이 500만 원 안팎인 50대가 지지하는 정당이 조국혁신당이다. 주로 화이트칼라일 공산이 크다. 넓은 의미에서 ‘강남 좌파’ 정당이다.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정치학) 교수는 “고소득·고학력 강남 좌파의 특징은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는 점”이라면서 “이들의 눈에는 이재명 대표보다 조국 대표가 좀 더 자신들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총선 개표 현황에 따르면, 성남 분당구에서 조국혁신당은 23.44%, 민주연합은 21.75%로 집계됐다. 판교동에서 민주연합이 17.20%를 얻는 데 그친 반면 조국혁신당은 26.69%를 득표했다. 수원 영통구에서도 조국혁신당이 26.33%, 민주연합이 25.53%로 나타났다. 특히 광교1동(민주연합 21.03%, 조국혁신당 26.82%)과 광교2동(민주연합 21.56%, 조국혁신당 26.76%)에서 조국혁신당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고양 일산동구에서는 조국혁신당이 26.99%, 더불어민주연합이 25.09%였다. 마두1동에서 민주연합 21.74%, 조국혁신당 27.85%로 나타났다. 마두2동에서도 민주연합 19.12%, 조국혁신당 27.52%로 집계됐다. 고양 일산서구의 경우 조국혁신당 28.04%, 민주연합 25.46%였다. 일산3동에서 양당 간 격차(민주연합 23.43%, 조국혁신당 29.51%)가 컸다.
화성시을은 가장 흥미로운 경우다. 이곳에서 조국혁신당은 27.45%를 얻어 민주연합(26.10%)과 국민의미래(국민의힘 비례 위성정당, 25.18%)를 모두 제쳤다. 동탄 1~9동 중 7개 동에서 조국혁신당이 수위를 차지했다. 이 중 동탄4동과 6동, 7동, 8동, 9동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곳이다. 9동을 뺀 나머지 4개 동의 비례대표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이 1위를 했다. 무슨 말일까. ‘지역구 이준석·비례 조국혁신당’으로 표현되는 교차 투표가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사례다.
용인 수지구·기흥구에서도 각각 조국혁신당이 26.67%와 27.08%를 득표해 21.78%와 25.23%를 얻는 데 그친 민주연합을 앞섰다. 인천 연수구에서는 조국혁신당이 25.42%, 민주연합이 25.03%를 얻었다. 연수구에는 송도국제도시가 있다. 연수구를 구성하는 동 15곳 중 10곳에서 민주연합이 조국혁신당을 앞섰다. 유독 송도1, 2, 3, 4, 5동에서만은 조국혁신당이 민주연합을 넉넉한 격차로 이겼다.
민주당 잠시 이탈했으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5월 25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범야당 및 시민사회 ‘채 상병 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박수 치고 있다. [뉴스1]
이는 반대로 말하면 ‘민주당+조국혁신당’이 확장성을 꾀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조국혁신당이 차지한 공간은 민주당의 왼쪽이다. 색채는 ‘더 선명한 파란’이다. ‘더 선명한 파란’은 조국혁신당이 홈페이지에 사용했던 표현이다. 실제로 조국혁신당을 택한 이들도 ‘새로 유입된 유권자’가 아니라 ‘기존 민주당 지지자’다. 민주당을 잠시 이탈했으나, 민주당을 비토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기회가 되면 민주당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통계가 말하는 바는 그렇다.
앞서 소개한 보고서 ‘이탈인가 항의인가?: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투표 결정 요인’에는 각 당 투표자에 대한 주관적 이념평가를 조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0점은 매우 진보, 5점은 중도, 10점은 매우 보수다. 조국혁신당 투표자의 평균 이념은 3.67점이다. 민주당 투표자(3.54점)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조국혁신당 투표자들은 민주당을 이념적으로 가까운 정당이라 평가했다. 덧붙여 조국혁신당 투표자의 약 44%가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조국혁신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유권자는 약 19.5%다.
질문은 남는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합당할까. 참고할 전례는 있다. 2020년 총선에서 3명의 의원을 배출한 열린민주당은 20대 대선을 앞둔 2022년 1월 민주당과 합당했다. 사실상 민주당으로 흡수된 형태다. 다만 조국혁신당의 의원 숫자는 12명이다. 거기다 열린민주당에는 없던 대권 주자(조국 대표)도 있다. 이재명 대표 처지에서는 조 대표가 야권 내에서 유일한 대선 경쟁자다.
조 대표 처지에서도 독자 세력을 유지하면서 대선 주자 행보를 하는 쪽이 ‘몸값’을 키우는 일이다. 대선에 돌입하면 단일화 카드를 쓸 수 있다. 물론 조 대표가 자녀 입시비리 및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점은 변수다. 대법원에서 형이 유지되면 조 대표는 의원직을 잃는다. 대선 출마 자격도 상실한다. 다만 조국혁신당이 총선에서 득표력을 입증한 만큼 민주당에 쉽게 흡수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조 대표가 의원직을 내려놔도 승계자가 있어 의석수는 그대로 12석이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차기 대선 전까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은 없으리라고 본다. 민주당 처지에서는 중도 확장을 해야 하는데, 왼쪽으로 가버리면 포지션이 흔들린다 생각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이재명 대표 지지층과 조국 대표 지지층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