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대북전단=오물’은 가계도 비하한 셈
서해 GPS 교란 공격은 회색지대 전술
위력시위사격, KN-25 ‘연사 능력 없음’ 드러내
환율 폭등하고 식량 가격 고공행진
‘새로운 태양’ 되고자 ‘과속 우상화’ 시도
북한은 5월 28일과 6월 2일, 6월 9일 세 차례 ‘오물 풍선’을 날려 보냈다. [뉴시스]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핑계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으며, 다음 날 인민군 총참모부는 △금강산관광지구·개성공업지구 연대급 부대·화력구분대 배치 △9·19 군사합의로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재진출 △전방지역 근무체계 격상 및 접경지역 부근 군사훈련 재개 △북한 주민의 대남 삐라 살포 시 군사적 보장 등 이른바 ‘4대 군사행동계획’을 예고했다. 그러나 북한은 2020년 6월 2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개최해 4대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했다.대북전단에 대해 북한이 반발함에 따라 2020년 8월 3일 국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입법 절차가 시작돼 12월 2일 당시 여당 단독으로 법이 통과됐다. 대북전단금지법은 2021년 3월 30일 시행됐으나 2023년 9월 26일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한반도 기후 특성상 겨울에는 남풍이 거의 불지 않기에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본격화한 것은 올해 4월부터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말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대북전단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한 북한이 5월 28일과 6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북측은 3500여 개를 살포했다고 밝힌 반면, 남측이 확인한 것은 1000개 남짓이다. 2017년 한 해 북한의 대남 풍선이 1000여 개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1주일 만에 1년치 이상의 오물 풍선이 살포된 셈이다.
북한은 국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배포를 빌미로 6월 7일 밤부터 8일 새벽까지 오물풍선 330여개를 또다시 살포했다. 합참은 “우리 지역에 낙하된 것은 80여개”라고 밝혔다. 북한의 3차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를 6년여 만에 다시 설치하고 6월 9일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이날 밤에 또다시 오물풍선을 보냈다.
최근 민간단체들이 북한에 집중적으로 보내는 전단 중 하나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가계도다. 김정은의 외할아버지는 제주도 출신이며, 어머니 고용희는 재일교포다. 즉 김정은 피의 절반은 ‘백두산줄기’가 아닌 ‘한라산줄기’인 셈이며, 어머니는 북한에서 ‘째포’로 천시받는 재일교포다. 이모 고용숙은 탈북해 미국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김정은은 탈북자 가족인 셈이다. 가계도 한 장만으로도 권위가 추락하는 게 김정은의 현실이니 대북전단에 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김여정 부부장은 대북전단을 ‘오물’이라고 비난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가계도를 비하한 셈이다.
합동참모본부는 6월 9일 기동형 확성기 차량 및 장비의 운용을 일제 점검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합동참모본부]
확성기 방송은 강력한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최대 20∼30㎞까지 소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개성시를 포함해 전방 북한군 전체를 사정권으로 한다. 이로 인한 북한군과 주민들의 동요는 상상 이상이다. 북한이 그토록 오랫동안 공들여 성사시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 두 차례 오물 풍선 살포로 물거품이 된 셈이다.
서해 GPS 교란 공격에 숨은 뜻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대한민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고, NLL을 ‘불법무법’이라며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한국은 NLL을 확고한 경계선이라고 여기면서 절대 수호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정은 말대로라면 이미 전쟁 도발 상황인 셈이다. 5월 26일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은 남측 해군과 해경이 자신들의 ‘국경선’을 침범해 해상주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며 “어느 순간에 수상에서든 수중에서든 자위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을 상기하는 도발적 언사다.
북한은 오물 풍선 살포 다음 날인 5월 29일부터 6월 2일까지 닷새간 서해 NLL 인근에 대한 GPS 교란 공격을 단행했다. 6월 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월 29일부터 북한에서 발신된 전파 교란 신호가 누적 1482건이지만, 큰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피해는 일부 어민들이 서해5도 인근 해상에 설치한 어구를 GPS로 찾는 데 애로를 겪는 수준이었다. GPS 교란 공격이 일주일 이상 장기간 지속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북한은 장기간 공격 역량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의 GPS 교란 공격은 일종의 회색지대 전술(Gray Zone Tactics)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회색지대 전술은 실제 무력충돌이나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는 수준의 저강도 도발을 통해 안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북한이 원점과 주체가 불분명하고 한국군의 대응이 어려운 형태의 회색지대 도발을 통해 NLL을 ‘분쟁수역화’하고 자신들의 목표를 관철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측은 절대 열세인 해군력으로 남측 해군에 정면 대응하기 어렵다. 한국 해군은 최신예 이지스함까지 보유하고 있지만 북한 해군의 수상전력은 연안해군 수준에도 못 미친다. 북한의 주력 로미오급 잠수함은 건조된 지 수십 년이 경과했으며, 지난해 9월 로미오급을 개조해 공개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은 진수 직후 이상 징후를 보여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NLL을 부정하고 무력 대응을 예고한 북한군이 고작 GPS 교란 공격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김정은의 분노와 ‘위력시위사격’
5월 30일 북한이 600㎜ 초대형 방사포(KN-25) 18문의 동시 사격을 실시했다. [뉴시스]
김정은의 분노는 5월 30일 이례적인 600㎜ 초대형 방사포(KN-25) 18문의 동시 사격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지도하에 실시된 ‘위력시위사격’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KN-25에도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매체는 이날 사격이 ‘통합화력지휘체계’를 가동해 진행됐으며,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밀암호지령문’이 전송된 뒤 김정은의 사격 명령에 따라 포병들이 사거리 365㎞의 섬 목표를 명중타격했다고 보도했다. 365㎞의 사거리는 당연히 대한민국이다. 핵탄두가 폭발하도록 활성화하려면 암호를 해제해야 하며 ‘비밀암호지령문’은 이때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군이 김정은 참관하에 열여덟 발의 핵무기를 남측을 향해 발사하는 훈련으로 ‘위력시위’를 한 셈이다.
방사포는 다연장로켓이며 개량해도 미사일이 가진 정밀도와 능력을 따라가기 어렵다. 지구상 어느 국가도 방사포에 핵탄두를 탑재하지 않는 이유다. 북한판 이스칸데르와 에이태킴스로 일컬어지는 KN-23과 KN-24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굳이 정밀도와 운반 능력이 떨어지는 방사포에 핵탄두를 탑재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북한이 미사일에 비해 저렴한 KN-25를 이용해 대남 대량 핵공격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사포는 연사 능력이 핵심이다. KN-25 이동식 발사대(TEL)는 6연발 또는 4연발 발사관을 사용하지만 세 발 이상을 연속 발사한 적이 없으며, 발사 시간 간격도 모두 달랐다. KN-25가 연사 능력을 갖췄다면 6연발 TEL 3대 또는 4연발 5대를 운용하면 열여덟 발을 발사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KN-25 TEL 18대를 동원해 대대적 위력시위사격을 실시한 것은 결국 KN-25가 연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 됐다.
북한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다량의 탄약과 미사일을 공급하고 있지만 정밀도가 낮거나 불량 등 많은 문제를 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수백여 발의 미사일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99%가 요격돼 체면을 구겼다. 이란 미사일의 원천기술은 북한의 노동과 무수단 계열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첨단무기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확보되지 않는다. 미국 군사력이 세계 최강인 이유다.
‘김정은 혁명사상’ 再교육
북한이 오물 풍선과 GPS 교란 공격을 통한 회색지대 도발과 아울러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발사체를 활용해 복합 도발을 지속하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의 혼돈은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이 국경을 개방했지만 환율이 폭등한 상태이며, 식량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은은 장기간 북한 주민에게 절대 목표로 주입해 온 통일 개념을 폐기하고 민족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태양절 명칭을 4·15로 변경해 김일성 위상 격하 동향까지 보이고 있다. 최근 북한은 마흔 살의 김정은을 인민의 어버이로 표현한 노래 ‘친근한 어버이’를 선전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동지 만세’라는 새로운 구호를 내놓았다.김정은은 노동당 최고 교육기관인 김일성고급당학교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비난해 해체하고 최근 중앙간부학교를 개교해 김덕훈 총리, 조용원 조직비서, 이일환 선전선동비서, 최선희 외무상을 포함한 최고위층을 ‘김정은 혁명사상’으로 재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체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권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갑자기 흔드는 것은 위험하다. 2013년생 어린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새로운 태양’이 되려고 ‘과속 우상화’를 시도하는 김정은의 무리수가 북한 체제의 내적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총체적 경제위기와 식량난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혼돈을 자초한 김정은 정권에게 남북 간 고강도 군사적 대치 국면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경제력이 취약한 소련은 미국과 벌이는 군비경쟁에 국력을 소진하고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걸었다. 김정은이 현실을 직시하고 현명한 대안을 찾기 바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일까. 한반도에 갈등과 대결의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