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시장 “가격 10% 올렸더니 매출 30% 줄어”
서문시장 “젊은이 다 떠나…여기보단 동성로가 죽었지”
동성로 “관광특구는 무슨, 손님은 가뭄에 콩 나듯”
택시기사 “손님들 ‘보수 죽었다’며 정치 얘기 안 꺼내”
“尹, ‘여사님’ 이미지 때문에 지지 못 받는다는 사람 많아”
“정부·여당 일 잘해서 활력 다시 생겼으면…”
9월 9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 [박해윤 기자]
9월 9일 밤 대구 동구 동대구역 인근 택시 정류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주모(73) 씨의 말이다. 착잡한 심경이 투영된 것인지 이따금씩 담배만 입에 무는 그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주 씨는 태어나 한 번도 ‘TK(대구·경북)’를 떠난 적 없는 토박이다. 고향은 경북 영천시. 대구에 온 지는 약 50년 됐다. 처음엔 작은 공업사를 운영했지만 IMF 외환위기 때 문을 닫았고, 이때부터 쭉 택시를 운전했다. 줄곧 보수정당에 투표해 온 ‘보수 지지자’다. 주씨는 “반세기 동안 대구에 살았지만 요즘처럼 도시와 사람 모두 기운이 없는 건 처음”이라며 “도시는 젊은이들이 떠나서 늙어가고, 정치는 대통령부터 여당까지 힘을 못 쓰니 기운 날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 청년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고, 얼어붙은 경기에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다. 여기에 ‘지리멸렬’한 보수의 모습이 더해지니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도 생겨났다. 9월 9~10일 찾은 대구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치, 경제 어느 하나에서도 좋은 일이 없다”며 “이제 정부·여당이 정신을 차려서 민생에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명절 때 잠깐 ‘반짝’하지예”
9월 9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상인들이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탕국용으로 쓰실 겁니꺼. 그라모 이 부위로 가져가이소. 오늘 고기가 좋아예.”
9월 9일 오후 4시 대구 북구 칠성시장. 생선을 손에 쥐고 흔드는 수산물 상인, 능숙하게 고기를 손질하는 정육점 주인, 함께 곡물 가게를 운영하며 엄마가 손님을 받고 딸이 포장을 하는 모녀까지 다채로운 모습이다. 일주일 뒤로 다가온 추석 연휴 ‘대목’, 시장엔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기는 드문드문 나타날 뿐 상인 열에 아홉은 손님이 없어 휴대전화를 바라보거나, 멍하니 앉아 자리를 지켰다. 시장 바깥쪽 주방거리엔 가게를 내놓은 듯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칠성시장은 1946년 북문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열렸고, 점점 확장해 칠성꽃시장, 대구청과시장, 삼성시장 등 9개 시장이 모인 종합시장이 됐다. 중구의 서문시장에 이어 대구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이에 대해 청과 상인 50대 박모 씨는 “대구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 이 정도다. 나도 최근 일주일 동안 하루 5만 원도 못 팔았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손님들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게 체감된다”고 입을 모았다. 수산물 상인 김모(72) 씨는 “근 1년간 찾아온 손님들 가운데 ‘살 만하다’고 얘기한 사람이 없다”며 “단골손님이 30명은 되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코로나 한창일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33년간 반찬 가게를 했다는 60대 이모 씨도 “재료비가 코로나19 때보다 최소 30%씩은 올랐다”며 “가격을 어쩔 수 없이 메뉴당 10%씩 올렸더니 매출은 30% 떨어졌다. 시장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는 맛에 오는데, 값이 비싸지니 아예 안 오는 것 같더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칠성시장을 떠나 서문시장으로 향했다. 서문시장은 대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보수 정치인이 찾은 ‘보수의 성지’이기도 하다. 2022년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후보)도 세 차례 방문, 지지를 호소했다.
오후 5시 20분께 찾은 서문시장의 상황은 칠성시장보다는 나아 보였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있는 시장 곳곳엔 가게당 2~3명씩은 손님이 있었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는 차들도 보였다. 하지만 상인들은 “오후 6시에 시장이 문을 닫아 ‘마감 세일’을 찾아온 손님이 많아서 그런 것뿐”이라고 했다.
9월 9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 국수거리. [박해윤 기자]
“대표 메뉴 떡볶이는 3000원이고, 납작만두랑 우동만 재료비가 감당이 안 돼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렸어예. 서울에서 오셨다 카니까 묻는데, 이만하면 싼 거 아입니꺼. 대구가 물가는 진짜 싸거든예. 그런데도 손님이 잘 안 와예.”
“그나마 시장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에서 장사하다가 약 8년 전 대구에 왔다는 의류 상인 김모(44) 씨는 “서울 사람들은 마트나 백화점을 가지, 재래시장 잘 안 가려고 하지 않나. 대구에 내려와선 사람들이 시장을 많이 이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서울에 있을 때에 비해서 매출은 10% 정도 올랐고, 물가·집값이 낮은 것을 감안하면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50대 최모 씨도 “오늘이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 첫 날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단 20만 원 정도 더 팔았다”며 “시장은 정부에서 보조도 꽤 해주고, 명절 대목 땐 그래도 ‘반짝’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삶이 팍팍해진 건 맞지만 경제가 나빠진 건 전 세계적 현상이고, 정부는 할 만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물가가 오른 것도 전 정권에서 돈을 많이 뿌린 바람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도시 늙어가는 게 피부로 느껴져”
9월 9일 대구 중구 동성로 로데오거리. [박해윤 기자]
4월 30일 동북지방통계청이 발표한 ‘대구와 수도권 청년 삶의 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청년(19~39세)인구는 58만5000명으로 2015년(70만5000명) 대비 17.1% 감소했다. 청년인구 비중은 24.6%로 수도권(28.3%)보다 3.7%포인트 더 낮았다. 지난해 대구에서 타 시·도로 순유출된 청년 수는 9307명으로,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 84.4%(7858명)를 차지해 유출이 제일 많았다. 이동 사유론 ‘일자리’가 7383명(73.3%)으로 가장 많았다.
오후 6시 30분께 찾은 동성로는 이를 반영하듯 사람이 드물어 썰렁한 느낌을 줬다. 테이블 20개가 놓인 한 카페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고, ‘임대’ 표지판이 붙은 건물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한 식당엔 4인용 테이블 24개 가운데 1시간 동안 두 테이블만 찼고, 15분마다 ‘배달 콜’이 한 번씩 울리는 정도였다.
동성로 상인들은 “경제 상황도 안 좋은데, 젊은 사람들까지 떠나니 죽을 맛”이라고 성토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김우진 씨는 “6년 전부터 손님이 줄어드는 추세긴 했는데, 코로나 때 절반가량 줄고, 지금은 더 줄어서 6년 전의 10% 수준밖에 안 된다”며 씁쓸함을 나타냈다. 이어 “동성로가 관광특구로 지정됐다는데 다 소용없다. 10평 남짓한 가게에 하루 손님이 5명 올까 말까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서운함을 나타내는 상인도 있었다. 한식 주점을 운영하는 40대 최모 씨는 “코로나가 한창일 땐 그래도 지원금이라도 줬는데, 현 정부는 그 상처가 회복이 다 안 됐는데도 지원을 다 끊고 있어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 토박이로 살면서 쭉 국민의힘을 지지해 오기도 했고, 딱히 민주당에 호감은 없지만 정부가 ‘25만 원 민생지원금’까지 반대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을 뿌렸을 때 매출에 도움이 됐는데 한 푼이 아쉬운 지금으로선 서운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특성을 감안해서라도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끊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양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8) 씨는 “청년이 떠나는 이유와도 연결되는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대구가 살기 나쁜 곳은 아니에요. 물가도 싼 편이고 인프라도 좋아요. 그런데 딱 그 정도예요. 돈 갖고 와서 살기는 좋은데, 돈을 불릴 방법이 뚜렷하지가 않아요. 변변한 대기업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청년들은 일자리 찾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거의 자영업하고 살아야 해요. 지금 도시가 늙어가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거든요. 기업을 세워서 청년이 살게 해주든, 자영업자가 살 수 있게 해주든 신경 써주면 좋겠어요.”
정부에 대한 원망은 대통령 지지율로 이어진다. 여론조사 전문 회사 한국갤럽이 9월 3~5일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37%로 집계, 40%를 밑돌았다. 다만 전국 기준 23%에 비하면 14%포인트 높은 수치다(응답률 11.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구가 보수 버리겠나”
대구의 택시기사들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잃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택시기사는 직업 특성상 다양한 지역 주민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만큼 민심을 파악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반월당역 인근에서 만난 70대 서모 씨는 “하루에 보통 10명, 많으면 15명 정도를 태우는데, 정치 이야기를 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하루 2~3명은 손님이 먼저 정치 얘기를 했거든.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처럼 보수가 잘나갈 때는 신나서, 문재인 정권 때는 욕한다고 마이 했다. 2022년에 정권 바뀌었을 때는 뭐 타는 사람마다 ‘이제 나라가 살았십니더’ 하고 좋아하고 그랬지. 그런데 올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고 나서부턴 사람들이 말을 안 해. 가끔 하는 사람들도 ‘보수는 죽었심더’라면서 짧게 말하고 말아.”
“윤 대통령이 애초에 보수가 아니라 애정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중앙로역 인근에서 만난 양모(68) 씨는 “대통령이 원래 보수 쪽에 있던 사람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특검으로 앞장섰던 사람이기도 하고”라면서 “여기 사람들 가운데 윤 대통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민주당 정권이 싫어서 찍어준 사람이 대부분이다. 보수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렸던 사람이 아니니 딱히 사람들이 정을 못 붙이는 것”같다고 설명했다. 양 씨와 함께 있던 구모(68) 씨도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모습은 참 멋있어 보였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니 별로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9월 9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인근 택시정류장. [박해윤 기자]
“만나는 손님들이 정치 얘기를 잘 안 하는 건 맞는데, 사람 성향이 어떻게 순식간에 바뀌겠어요. 제가 봤을 땐 오히려 윤 대통령이 잘했으면 좋겠는데 마음대로 잘 안 되고, 총선에서 지니까 스트레스 받아서 관심을 끈 거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80세인데, 총선에서 지고 나서 ‘이제 뉴스 안 본다’고 하시더니 일주일 있다가 다시 챙겨 보시면서 나라 걱정하시더라고요. 대구에 있는 사람들, 특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산업화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산업화 때 내가 열심히 일해서 가난한 나라를 부자 나라로 만들었다는, 그래서 더 잘 지켜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요.”
“국정 방향 자체는 옳게 가고 있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택시기사도 있었다. 60대 박수영 씨는 “그래도 아직 정부·여당을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특히 의료·노동·연금 3대 개혁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꿋꿋이 해나가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사람이 많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일협정이나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당시로선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을 강행했지 않나. 그것들을 안 했으면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먹고살 수 있었겠나. 윤 대통령이 지금 하는 일을 잘 해내면 대구시민들은 언제든 다시 지지를 보낼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택시를 타는 손님마다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국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거 같다고 말한다”며 “(명품 백 사건 등으로) 김 여사 때문에 대통령 이미지가 나빠져서 지지를 못 받고 올해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크게 진 이유가 됐다고 말하는 손님도 많다”고 부연했다.
결국 ‘민생’에 답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유모(49) 씨는 “대구 사람들은 정치와 상관없이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했고, 50대 김모 씨는 “요즘 대구를 보면 젊은이는 떠나고,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고립돼 가는 것 같다. 정부·여당이 얼른 일을 잘해서 여기에도 활력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