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국민의힘,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

[심층분석 | 흔들리는 영남, 무너지는 국민의힘] 與, 영남권 공략 핵심 타깃 된 부산

  •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입력2025-07-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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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 자민련’ 표현도 아슬…일부 지역서만 민주당 앞서

    • 부산에 원죄 있는 李, 해수부 이전 등으로 공략

    • 비명계 요직 앉히며 PK 지역 공략 8부 능선 넘어

    • 영남 의원들로 뭉치는 국민의힘, 2018년 지선 반복될 수도

    6월 1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 네 번째)가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해수부 이전, HMM 유치, 동남투자은행 설립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6월 1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 네 번째)가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해수부 이전, HMM 유치, 동남투자은행 설립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최근 몇 년 동안 국민의힘의 ‘낙동강 방어선’은 견고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 비위로 보궐선거가 치러진 2021년 이래, 국민의힘을 향한 영남권의 지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에 108대 175로 참패한 지난해 22대 총선에서도 영남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에 의석을 몰아줘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게 해줬다. 당시 국민의힘은 대구·경북(TK) 지역에서 25석 중 25석을,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서 40석 중 34석을 가져갔다. 

    만일 국민의힘이 이들 지역을 싹쓸이하지 못했다면 100석도 위험했을 것이다. 영남을 제외하면 ‘표밭’이라고 할 수 있는 데가 서울 강남권, 강원도, 충남 일부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전체 지역구 의석 89석 중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의석이 차지하는 비중은 65.2%에 달한다. ‘영남 자민련’이라는 말은 결코 정치적 과장이 아니다.

    ‘영남 자민련’ 표현도 아슬…일부 지역서만 민주당 앞서

    그런데 이제는 영남 자민련이라는 표현마저 아슬아슬하다. 영남은 문경 조령 이남, 경북과 경남을 아우른다. 지금 국민의힘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만 민주당에 앞서는 형국이다. 이미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6월 통합 여론조사(전화면접·표본오차 95% 신뢰도에 ±3%포인트)를 보자. PK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27%)은 민주당(36%)에 뒤처졌다. 기준을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맞추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한국갤럽의 7월 첫째 주 정기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1명 대상 전화면접·표본오차 95% 신뢰도에 ±3.1%포인트·응답률12.1%)에 따르면 PK 지역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60%로, ‘잘못하고 있다’ 26%를 훌쩍 제쳤다. TK 지역에서도 잘한다는 여론(56%)이 잘못한다는 여론(26%)보다 높았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PK 지역에서 40% 안팎, TK 지역에서는 20% 초반의 득표율을 얻었다. 선거 때보다 집권 후 이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재명 정부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정부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영남권 공략은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옅은 PK 지역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중 동남권을 대표하는 도시이자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이 핵심 타깃이다. 부산을 향한 정부 여당의 의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6월 5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해수부)의 조속한 부산 이전 준비를 지시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24일 국무회의에서 해수부에 “12월까지 부산 이전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라”고 추가로 지시했다. “새로운 건물을 짓지 말고 청사 공간을 임차하는 방식을 포함해 이전 시기를 앞당길 방법을 검토하라”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속도전을 펴겠다는 뜻이다.



    부산에 원죄 있는 李 대통령, 해수부 이전 등으로 공략 나서

    이 대통령은 부산에 원죄가 있다. 2024년 1월 부산 가덕도에서의 흉기 피습 사건 때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부산대병원 응급외상센터에서 응급처치만 받은 뒤 응급의료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황제 의전’ 논란은 곁가지다. 최종 의료기관인 부산대병원에서 수술받지 않고 굳이 서울로 향한 것을 두고 “부산 의료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부산 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산업은행 이전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도 지역 확장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헬기 이송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산업은행 이전 반대에 따른 반발은 해수부 이전, 해사법원 설립, HMM 등 해운사 유치 등 ‘해양 수도’ 비전으로 달래고 있다. 예전처럼 분위기가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PK 지역은 민주당계 정당의 숙원 과제인 ‘전국 정당’이 되기 위한 마지막 퍼즐과 같다. 민주당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경북·경남과 충청이 통합되면서 호남이라는 지역에 갇혔고, 그로 인해 늘 핸디캡을 안고 선거를 치러야만 했다. 호남 기반 지역 정당이라는 한계를 깨지 못하면 수권 정당이 될 수 없었다. 

    첫 관문은 충청이었다. 유동성이 큰 충청 민심을 잡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DJP 연합을 단행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냈다. 천안·아산 등에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충청 일부가 수도권 경제권에 편입됐다. 이제 충청은 민주당이 해볼 만한 지역이 됐다. 

    남은 목표는 PK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이곳은 국민의힘에 우호적이지만 민주당의 한 축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 이후 많은 친노 정치인이 PK 지역의 문을 두드렸다. 성과는 10년여 만에 나타났다.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6석(부산 4, 경남 2)을,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7석(부산 3, 경남 3, 울산 1)을 PK 지역에서 가져갔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선 부산에서 1석밖에 가져가지 못했으나 경남과 울산에서 각각 3석, 1석을 챙겼다. 소선거구제의 함정도 고려해야 한다. 당시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평균 45.14%를 득표했다. 역대 최대치다. 까딱 잘못했으면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수도권 정당이다. 수도권에서만 100석 넘게 가져간다. 21대 총선은 103대 16, 22대 총선은 102대 19로 국민의힘을 이겼다. 비수도권은 ‘상대적’ 열세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민주당의 여러 정책은 비수도권을 향한다. 7월 국회를 통과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추가경정예산안에서도 그 의지가 엿보인다. 

    원래 정부안에는 소비쿠폰을 소득·계층에 따라 15만~5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고, 인구감소지역(농어촌)에만 2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안이 담겼다. 비수도권 지역 주민에게는 지역사랑상품권 할인율을 수도권보다 조금 높이는 정도의 혜택이 주어졌다. 그런데 민주당이 비수도권 3만 원 추가 지급을 보탰다. 추경은 민주당안으로 통과됐다. 현금 살포성 정책의 효용성을 논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주목해야 하는 건 정부와 여당이 비수도권을 향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수도권을 향한 의지는 이 대통령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동안 두 차례 타운홀미팅을 열었다. 6월 25일엔 호남, 7월 4일엔 충청에서였다. 앞서 6월 20일엔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을 찾아 김두겸 울산시장으로부터 지역 민원을 청취했다. 취임 한 달간 있었던 공개 일정 중 수도권 ‘지역 일정’이라고 할 만한 건 6월 13일 경기 연천의 군부대를 찾고 파주에서 접경지역 간담회를 가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비수도권과 정서를 같이하는, 민주당 약세 지역이라는 점에서 비수도권 일정과 다를 게 없다.

    비수도권 정책은 시대적 당위에 그치지 않는다. 비수도권에서 상대적 열세인 여권 입장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일종의 사전 정지(整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행정·입법 권력을 거머쥔 만큼 써먹을 수 있는 카드도 많다. 속된 말로 비수도권 지역에 예산을 퍼주려 할 때 야당이 발목 잡는 것도 쉽지 않다.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방시대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브랜드 중 하나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당선 직후부터 “새 정부의 모토는 지방시대”라며 “지방자치와 분권, 재정의 독립성, 지방 산업 등 어떤 것을 선택해서 집중할지 스스로 선택하는, 지방분권과 자치·자주성에서 지방 발전의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지방시대위원회로 개편하는 한편,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질적 액션이 뒤따르지 못했다. 극단적 여소야대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윤 전 대통령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비전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영남 의원들로 뭉치는 국민의힘, 2018년 지선 반복될 수도

    윤석열 정부에서 만든 지방시대위원회는 이재명 정부가 물려받았다. 이 대통령은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위촉했다. 이 또한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포석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김경수 위원장만이 아니다. 해수부 장관 자리에 부산 유일의 민주당 국회의원인 전재수 의원을 지명하고, 대통령실 정무수석으로 우상호 전 의원을 임명한 것 역시 부산시장과 강원지사 선거를 염두에 둔 수라는 평가가 많다. 이 대통령으로선 비명계로 분류된 이들을 요직에 앉혀 당내 통합을 꾀하는 한편, 이들의 노출도를 높여 내년 선거도 도모할 수 있다. 잠재적 후보군의 노출 빈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점령해 놓은 고지의 8부 능선까지 올라온 것과 다름없다.

    여권이 수도권과 충청을 넘어 경남·강원까지 진격하고 있는 데 반해 야권의 행동반경은 특정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기를 맞은 국민의힘은 TK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TK 지역 주류 의원들의 주장과 김재섭·김용태 등 수도권 30대 의원들의 주장이 사사건건 맞부딪히는 장면은 국민의힘이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실 국민의힘은 열세 지역으로 확장을 꾀한 역사 자체가 거의 없다. 앞서 말했듯 3당 합당 이후 늘 지역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이정현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전남 순천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정운천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전북 전주에서 당선된 사례가 있지만, 이들의 개인기가 빛을 발한 것일 뿐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호남을 공략한 결과로 볼 수 없다. 2022년 대선 선거운동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전남 신안을 돌아다니고, 복합쇼핑몰 유치를 공약해 광주 민심을 흔들어놓은 정도가 거의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60여 명의 국회의원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4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촉구 기자회견을 준비한 것도, 5월 후보 교체를 위해 의원총회에 모여 ‘후보 재선출’ 결정 권한을 비상대책위원회에 일임한 것도 60명 안팎의 의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 89명 중 58명이 영남에 지역구를 뒀다. 물론 주류 당론에 맞서는 의원도 있지만, 많은 의원이 영남 기득권에 기대 한목소리를 낸다. 약세 지역으로 외연을 확장하기는커녕 수도권 민심을 잡는 일도 요원하다.

    그렇다고 영남 기득권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이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다. 해당 선거는 ‘텃밭’이더라도 언제든 민심이 떠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부산 민심도 그랬다. 민주당계 정당은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이래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부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부산시장은 물론 16개 기초자치단체장, 42개 시의원 선거구 모두 항상 보수 정당의 몫이었다. 그런데 2018년 민주당은 부산시장을 비롯해 16개 기초자치단체장 중 수영구·서구·기장군을 제외한 13곳의 기초단체장을 가져갔다. 시의원 선거는 42개 지역구 중 무려 38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당시의 지방선거는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큰 영향을 끼쳤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키를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쥐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러다간 국민의힘이 PK 지역은 물론 TK 지역마저 위협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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