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 정치 물려주는 건 역사에 죄짓는 일
이재명 정부 제1 국정과제로 ‘개헌’ 채택 눈길
개헌 없는 ‘검찰청’ 폐지, 위헌 논란 부를 수도
‘내각제 총리’, 국민 여론 따라 언제든 교체 가능
다양한 정당, 의회 진출 가능토록 선거구 제도 개편해야

8월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 동아DB
이 대통령이 개헌에 의욕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올해 제헌절에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개헌 논의 과정에 국민의 뜻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함께 노력하겠다”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 중심 개헌’의 대장정에 힘 있게 나서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임기 초에 개헌을 언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개헌 논의는 다른 모든 이슈를 흡수하는 일종의 블랙홀과 같아 정치적 동력이 가장 강한 집권 초기에 대통령이 개헌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상당히 모험적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한에 대한 ‘도전’
그런데 집권 초기에 대통령이 개헌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현재 여권에서 벌어지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로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얼마 전 한 검사장이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과 공직자들을 향해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이라며 “장관이 검찰에 장악돼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나, “찐윤 검사” “인사 참사” “검찰개혁 5적”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정말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분명 대통령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국정 운영의 파열음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리 민주적 국정 운영이 바람직해도 조직에는 위계질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개적 비판은 조직 체계를 훼손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욱이 정권 초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니 국민의 우려는 클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은 이른바 ‘검찰개혁’과 관련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여당은 ‘속전속결’을 주장했고, 결국 여당 뜻대로 됐다. 9월 9일 발표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보면 이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여당이 보여주는 태도의 특징은 ‘일단 쟁점 법안들을 통과시킨 후 문제가 있으면 그때 논의하겠다’는 식이다. 또한 대통령의 의중과 자신들의 생각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이견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합리적 국정 운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법률 제정 시에는 신중함이 필요한데, ‘일단 만들어놓고 보자’는 식의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른바 ‘명·청 갈등(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의 갈등)’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을 민주적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여권 내 갈등이 집권 초기에 나타나는 것 역시 과거 정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례적’ 현상이다. 이러한 이례적 현상 중에서 개헌은 그나마 가장 의미 있는 긍정적 차원의 ‘특별한’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두말할 나위 없는 개헌의 필요성
개헌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1987년 개헌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음에도 헌법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987년 개헌 당시에는 장기 집권하는 독재정권 출현 방지에 초점을 둔 나머지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이뿐만이 아니다. 여권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위헌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개헌은 필요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89조는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검찰총장의 임명’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헌법이 검찰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거다. 또한 헌법 제12조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6조 역시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검사의 수사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검찰총장을 수장으로 하는 ‘검찰’을 하나의 국가기관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만일 개헌 없이 민주당의 주장대로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고 기소청으로 개편할 경우, 검찰이라는 조직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기관장은 헌법상 여전히 ‘검찰총장’으로 남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위법으로 공소청장을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인물로 규정한다 하더라도, 이는 하위법이 헌법에 우선한다는 모순을 만드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위헌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도 개헌은 필요하다. 단, 이를 위해서는 개헌을 먼저 하고 그 이후 그들이 주장하는 검찰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데, 현재는 순서가 바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어쨌든 이러한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도 개헌은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개헌의 필요성이 명백한 상황이라면 개헌은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추진돼야 한다. 또한 이왕 개헌을 하려면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전면 개헌이 돼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구조 개편이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겪어서는 안 될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위헌적이고 불법적 비상계엄 사태가 그것인데, 이와 같은 일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왜 대통령제에 그토록 매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대통령제는 그 속성상 ‘제왕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준 높은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 중에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도다. 그런데 미국은 연방제를 실시하며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국가다. 즉 상당한 수준의 지방분권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에서조차 대통령은 제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것을 보더라도 대통령제가 얼마나 제왕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미국이 이러한데, 모든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시스템인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제왕적’이 되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내세우며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제왕적이기 때문에 불법·위헌적 행위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각제로 권력구조 바꾸는 게 합리적
우리가 이러한 경험을 했다면,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내각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기 어렵다. 우선 우리 국민은 왜 유럽 국가 대부분이 내각제를 실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유럽 국가들이 내각제를 실시하는 이유는 내각제는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제보다 여론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있다. 정치권력이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권력을 잃는 권력구조가 바로 내각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같은 국가는 이른바 극우 정당이 권력을 잡았지만 권력을 잡은 이후 극우적 색채가 상당 부분 사라진 것을 보더라도 이러한 측면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권력구조가 내각제임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오로지 대통령제만을 고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오는 대안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4년 연임제든 중임제든, 이렇게 바꾸면 8년 임기의 제왕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3명 정도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임에 실패했지만 재선에 성공했기에 제외한 수치다. 이런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면 대통령제라는 기본 틀을 유지한 채 연임 혹은 중임제로 개편하려 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내각제로 개헌이 필요하다. 만일 이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개헌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를 열어놓아야 한다.
내각제와 관련해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이미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가 우리나라 대통령제에는 내각제 요소가 가미돼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욱 ‘제왕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정적이다. 내각제는 본래 ‘권력 융합’을 전제로 하는 권력구조다. 즉 입법부 다수당이 행정부를 ‘주도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 권력 융합이 일어나는 제도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각제는 대통령제보다 훨씬 비민주적 제도처럼 보인다. 권력은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눌수록 좋은 것이 사실이고, 그러니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대통령제가 내각제보다 민주적 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다. 내각제의 총리 임기는 법률 사안인 반면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 사안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헌법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드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우리는 이미 두 번이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기 때문에 탄핵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반면 내각제 총리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각제하에서 권력을 잡은 측은 앞서 언급했듯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 대부분은 다당제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정당 혼자서 행정 권력을 구성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즉 다른 정당들과 연정(coalition)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는 행정 권력 내부에서 또 다른 권력 분립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내각제가 오히려 대통령제보다 민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에 내각제 요소를 가미하면 자칫 제왕적 대통령을 ‘군주’로 ‘격상’시킬 수 있다. 대통령제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임기제를 유지하면서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 융합이 일어나면 당연히 대통령은 제왕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는 곧 대통령제의 단점과 내각제의 단점을 결합한 권력구조가 현재 우리나라의 권력구조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이번 개헌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중·대선거구제 선거구 개편도 필수적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개헌 사안은 아니지만 중·대선거구제로 선거구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만일 내각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바뀐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양당제 중심의 정치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이는 내각제 실시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밖에 없다. 양당제하에서 내각제를 실시하면, 입법과 행정의 권력 융합에 따른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당이 의회로 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이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면 현재보다 훨씬 많은 군소 정당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중·대선거구제는 내각제 실시의 전제조건이기도 하지만, 현재와 같이 특정 정당이 의회 의석을 독점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특정 정당이 의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면 민주주의 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가치는 수(數)로 밀어붙이는 다수결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의견을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우리나라 국회는 민주주의 실현의 ‘장(場)’이 될 수 없다. 의회 다수당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단독으로 처리하고 거기에 반발하는 제1야당의 목소리는 묻히는 현상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정당의 의회 진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 정말 개선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개헌은 바로 이를 바로잡는 ‘수리(修理)’의 중요한 과정이다. 이제부터라도 근본적인 수리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상태의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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