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지질 이정우(68) 대표는 연배의 다른 경영인들에 비해 유머가 넘쳤다. 얼굴에도 개구쟁이처럼 웃음기가 가득했다. 사진 촬영을 하러 본사 1층에 있는 연구실에 들어서자 연구원들이 장난으로 “일하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타박할 정도로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수평적 리더십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대표가 회사를 창업한 것은 1971년 3월, 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한 직후였다(당시 사명은 동아지질콘설탄트).
“원래는 학과 조교로 내정돼 있었다. 조교를 2년 한 후 전임강사 자리를 주는 게 당시 관례였다. 교수의 길을 갈 생각이었다. 관련 서류를 모두 내고 조교실까지 배정을 받았다. 그런데 첫 출근 날인 3월 2일,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순식간에 백수가 됐다.”
취직 못해 창업
▼ 다른 곳에 취업할 생각은 안 했나.
“당시는 지금보다도 취직하기가 더 어려웠다. 오라는 곳이 없었다. 전공이 응용지질학이었는데, 터널이나 댐 등을 만들 때 지질학적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연구하는, 지질학과 산업을 연계하는 학문이다. 당시 일본만 해도 응용지질학을 활용한 컨설팅 회사가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한 곳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20만 원으로 회사를 차렸다. 취직을 못해 아예 직접 회사를 차린 것이다.”
▼ 경력이 없으니 영업을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할 때 육군공병학교에서 토양공학을 강의했다. 건설직 공무원 연수 교육을 하면서 그 분야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다. 이들의 도움으로 지반을 조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영향으로 지반조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돼 일이 많이 들어왔다. 지반조사를 시작으로 설계, 시공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영업 지역도 점점 넓혀 10년 뒤인 1980년엔 서울사무소를 내며 전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했고, 또 10년 뒤인 1990년엔 필리핀에 첫 해외사무소를 내고 세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 교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아쉽지는 않았는지.
“1974년부터 시간강사를 했다. 우리 회사 최재우 공동대표도 내 강의를 듣던 제자였다.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해 30년 가까이 함께 일해왔다. 시간강사를 하면서 외국 전문가들도 알게 되고, 새로운 공법도 일찍 알게 돼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 학교에서 들어오라는 제안도 있었는데, 아내가 돈맛을 알아서 가지 말라고 해서 못 갔다.(웃음)”
2020년 1조 매출 목표
동아지질은 올해 매출을 3300억 원 정도로 예상한다. 내년엔 5000억 원, 2020년엔 1조 원을 목표로 한다. 해외 매출이 35%에 달할 정도로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해외 매출을 전체 매출의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이 대표의 목표인데 내년이면 목표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 다른 토목전문건설업체와 어떻게 다른가.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땅을 다지고, 구멍을 뚫는다’고 말한다. 작은 구멍도 뚫고 큰 구멍도 뚫고, 단단한 땅에도 구멍을 뚫고 진흙에도 구멍을 뚫는다. 우리 공사의 80% 이상이 지반 개량과 실드TBM공법 공사다. 흙에 관한 한 세계 최고를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