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 자재 개발…옥상, 지붕, 벽면, 지하 등 영역 넓혀
- ‘자랑스러운 조경인상’ ‘자연환경대상’ 휩쓸어
- 녹색도시 건설에서 녹색도시 유지·관리로
- “공공공사 실적공사비 제도 개선 절실”
- ‘건설산업’ 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로부터 공종별 하도급을 받아 건설 현장 최일선에서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야말로 우리 건설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며 대안을 모색해본다.
말라죽은 나무들을 본 박 대통령이 청와대 관계자를 불러 국토를 제대로 가꿀 방법을 물었다. 청와대 조경을 담당하는 비서관이 “조경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관련 학과조차 없다”고 하자 “그럼 조경학과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1973년 서울대와 영남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조경학과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주)한설그린 한승호(61) 대표는 서울대 조경학과 74학번이다. 또한 그가 졸업하던 1981년 새로 생긴 서울대 대학원 생태조경학 석사과정 1기다. 계속 공부를 했다면 어렵지 않게 교수가 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기술 혁신 중소기업
“석사 학위를 받고 국비장학생으로 덴마크 유학을 가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덴마크에서 20년 동안 조경 전문가로 활동했던 김성문 선생 사무실에서 출국 전까지 일을 도왔죠. 그런데 갑자기 작고하는 바람에 진행 중이던 공사들을 뒷마무리하느라 유학 갈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어요. 하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1984년 집에서 제도판 하나 놓고 조경설계사무소를 차렸죠.”
유치원이나 아파트 놀이터에 목재 놀이기구를 설치하거나 소규모 조경 설계로 시작해 조금씩 영역을 넓혀나갔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달팽이 모양의 플라스틱 미끄럼틀도 그가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 보급했다. 1985년 회사 이름을 지금의 한설그린으로 정했다.
“‘한국을 그린으로 건설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한설을 영어로 ‘handsel’이라고 쓰는데, 새로 개업할 때 주는 선물이란 뜻도 있고, 우리의 손(hand ) 기술을 판(sell)다는 뜻도 담고 있죠.”
대한민국 조경 1세대인 한 대표는 미개척 분야이던 생태조경에 뛰어들어 특유의 뚝심으로 한설그린을 이 분야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한설그린은 친환경 조경 분야의 기술혁신 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시공능력평가액이 조경시설물 459억 원으로 전국 1위, 조경식재 250억 원으로 전국 11위 규모다. 지난해 38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업영역도 다양하다. 에버랜드 캐러비안베이 목재 시설물을 비롯한 친환경놀이터 설치, 다목적 운동장 조성은 물론 아파트단지와 백화점 조경 분야에서도 독보적이다. 수서역과 흑석역 등 지하철 공간의 조경녹화도 한설그린 작품이다. 청계천변 생태습지, 인천송도녹지공원, 양재천 공원, 길동 생태공원 등 생태공원과 수변녹지 조성 사업도 벌였다. 현재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조경공사를 한다.
생태조경 선구자
“사람은 자연과 함께 있을 때 심신이 편안해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인공지반에까지 조경을 통해 도심을 녹화하고 생태를 복원함으로써 살아 숨 쉬는 도시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도시에는 자연지반이 턱없이 부족해요. 그러니 자연히 건물의 옥상, 지붕, 건물 벽면, 지하 공간을 도시인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으로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의 조경론이 이어졌다.
“조경은 도시개발로 무너진 생태계를 다시 이어주는 기능을 합니다. 도시인에게 자연을 되찾아주는 것이죠. 매일 출근해 생활하는 건물 옥상에 조성된 녹색정원이 멀리 있는 설악산, 한라산보다 더 소중한 거잖아요. 조경의 기본은 생물을 관리하는 겁니다. 식물을 심으면 아이를 키우듯 꾸준히 관리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생태예요. 그걸 고려한 조경과 그렇지 않은 조경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눈길을 끄는 사업이 조경 자재 개발이다.
“1980년대 중반,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옥상놀이시설물 공사를 수주하면서 종잣돈이 생겼어요. 일본 조경 잡지를 보다 영감을 얻어 생각해놓은 잔디블록이 있는데 그 돈으로 개발했죠. 이후 해외 조경산업 박람회를 다니며 새로운 조경 자재 아이디어를 발굴하곤 했어요. 평소 조경 공사를 하면서 조경 자재에 대한 욕구가 많았거든요. 필요한 소재가 없으면 직접 개발해야죠. 기존에 있던 것도 불편하면 업그레이드해야 하고요.”
조경이 필요한 공간과 관련 분야는 한없이 넓다. 운동장, 옥상, 경사지붕, 고가도로, 옹벽은 물론 해가 들지 않는 지하 공간에서도 조경이 가능하도록 적합한 자재를 개발해야 하고, 식물이 잘 살 수 있도록 토양도 개발해야 한다. 또한 비료 성분이 물에 흘러 내려가면 수질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필터링시스템도 연구해야 하고, 보습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러한 개발과 혁신 마인드에 힘입어 현재 (사)인공지반녹화협회장을 맡고 있다.
“회사 내에 조경생태 디자인연구소를 만들어 친환경적인 조경 자재와 공간디자인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동연구 제안이 많이 들어와요. 환경부에서 발주한 생태복원사업 ‘에코 스타 프로젝트’, 국토해양부의 저에너지 친환경 공동주택 기술 개발 사업, 중소기업청 미래선도과제 등 환경 관련 국책사업에도 적극 참여해왔습니다.”
그 결과 2013년 기술혁신으로 조경업을 발전시킨 공로로 ‘자랑스러운 조경인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생태환경건축대상 우수상(2011), 자연환경대상(2010), 행정안전부 대통령상(2009) 등을 연이어 수상했다.
두 번의 인생 위기
그러던 중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심혈관이 막혀 응급실에 실려간 데 이어 2012년엔 암으로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 큰 수술을 했다.
“병상에 누워 있으니 인생이 다시 보이더군요. 그동안 앞만 보고 바쁘게 뛰어왔는데, 과연 이것이 삶의 전부인지 회의가 들었어요. 사는 게 행복하고 의미가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내 방식으로 행복하게 사는 게 뭘까’ 생각하다 회사 건물 지하에 한설문화공간 Space LACH를 만들었어요. LACH는 여가, 예술, 문화, 건강의 영어단어 첫 글자를 딴 거예요. 이곳에서 CEO를 위한 오페라 강의, 사진 강의를 하는 등 함께 즐기며 마음을 나누려고요. 또한 산악인 엄홍길 씨가 네팔에 초등학교 16개를 짓는다고 해서 그 학교에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일도 하고 있어요.”
즐기며 살겠다고 해서 은퇴하겠다는 건 아니다.
“일을 해서 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주위와 함께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 그게 봉사를 하는 거죠. 기술개발도 그래요. 제가 개발한 새로운 기술과 제품으로 사람들이 자연과 더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돼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봉사가 아닐까요.”
한 대표는 조경인들에게 “이제 조경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국 뉴욕은 도시를 관통하는 옛 고가철도에 조경을 해서 공중공원으로 재탄생시켰잖아요. 서울시도 서울역 고가를 그런 식으로 개발한다고 발표했더군요. 앞으로 이런 새로운 영역이 늘어날 겁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조경이 삭막한 회색 콘크리트 도시를 푸르게 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조경은 푸른 도시를 유지·관리하는 일로 발전할 겁니다. 거기에 대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 해야 해요. ”
■ 건설업계 죽이는 ‘주범’ 실적공사비 제도
건설업계가 어려움에 처한 원인 중에는 경기침체로 인한 수주물량 감소도 있지만, 저가 수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가장 심각하다. 저가 수주의 대표적 주범으로 ‘실적공사비 제도’가 꼽힌다. 2004년부터 실시한 실적공사비 제도는 공공공사를 발주할 때 예정공사비를 과거 유사한 공사의 실적공사비를 토대로 산출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선 이 제도가 공사비 산정 기준을 현실화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오히려 건설업계를 저가 수주의 늪에 빠뜨린 주범이 됐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약단가가 예정가격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 국내 입·낙찰제도와 기계적이고 경직된 실적단가 산출방식으로 낙찰률에 비례해 공사비를 지속적으로 하락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처음에 1000원으로 산정한 공사를 한 업체가 80%로 낙찰받아 시행했다면, 다음에 벌어지는 비슷한 공사는 1000원이 아닌 800원을 예정가격으로 입찰에 부친다. 그러면 낙찰가는 다시 80%인 640원으로 떨어지고, 다음 공사는 640원을 예정가격으로 산정해 입찰에 부친다.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예정가격을 보정한다지만, 지난 10년 동안 공사비 지수는 64.6%, 노무비 지수는 56.8% 상승한 반면, 실적공사비는 2.3% 상승에 그쳤다. 물가변동 등을 고려하면 57.5% 하락한 수준이다. 건설업계로서는 구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 낙찰받은 원도급 건설사는 손실보전을 위해 다시 저가에 하도급 발주를 하기 때문에 전문건설사들은 더 큰 피해를 본다. 이는 자재장비 납품업자 등의 경영난을 유발하고, 저가·불법 하도급 및 임금체불로 이어져 건설근로자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등 사회적 문제를 양산한다.
경직된 공사비 산정 기준
공공공사 수주를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10건 이상의 대규모 입찰이 매번 유찰로 파행을 겪을 정도로 건설사들이 공공공사를 회피한다. 대형건설사들은 해외공사 수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견사들은 공사 물량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공공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박에 없다. 공사를 수주하지 못하면 6개월 이내에 망하고, 수주하면 1년 이내에 부도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에서 내년에 올해보다 3% 증가한 24조4000억 원의 SOC예산을 투자할 방침이지만, 적정한 공사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풍요 속의 빈곤’을 초래할 뿐이다.
정부도 문제점을 공감하고 2007년, 2012년, 2013년 3차례에 걸쳐 제도를 손질했지만 구조적 결함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실적공사비를 폐지하는 의원 입법이 발의됐고, 올해 3월엔 건설, 주택, 전기 등 17개 업계 단체가 참여한 ‘실적공사비 폐지를 위한 범업계 T/F’가 구성돼 정부에 연명탄원서를 제출했다.
기획재정부는 9월 24일 계약단가만 활용해 실적단가를 산정하는 현행 제도를 계약단가 외에 하도급단가와 입찰단가 등 다양한 공사비 자료를 활용해 실제 시장거래가격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국가계약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세부사항은 내년 1월까지 확정해 하위 법령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기존 계약 및 발주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무늬만 바꾸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 실적공사비는 스마트한 제도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30년째 시행하면서도 큰 불협화음 없이 잘 돌아간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건설산업 붕괴 주범으로 뽑히는 이유는 뭘까. 이종상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예정가격보다 일정 비율 낮은 금액으로 입찰할 수밖에 없는 경직된 입낙찰 제도와 공사비 산정에 대한 명확한 철학의 정립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은 국민 세금의 투자가치 달성(VFM·Value for Money)이라는 명확한 철학 아래 시공 규모, 현장 조건, 작업 조건 등에 대한 보정을 각각 구분해 면밀하게 시장단가를 보정함으로써 수요자와 공급자가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Fair · Reasonable Price)을 도출한다. 따라서 동일 공종이더라도 지역과 공사규모에 따라 실적공사비가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사비 산정 기준은 단하나의 단일 계량값을 사용한다. 이러한 경직된 공사비 산정 기준과 방식이 시장과 동떨어진 허수가 또 다른 허수를 만드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진정한 복지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공생의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작업이 필요한 때라는 인식이 아쉬울 따름이다.
세종시 국립도서관 조경 조감도, 여수엑스포에서 선보인 벽면 조경, 김포 한강래미안 아파트 조경(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