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가장의 얘기는 2010년대 한국 액션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성이다. 나아가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괴물’(봉준호, 2006)도 괴물에게 유괴된 막내 현서(고아성 분)를 되찾으려는 가족의 이야기이고,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도 전쟁터에서 동생 이진석(원빈 분)을 보호하려는 형 이진태(장동건 분)의 이야기다.
지동철에겐 두 개의 남성상이 내재한다. 하나는 가족을 위해 분투하는 영웅적 남성상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각종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소시민적 남성상이다. 이는 가족에 헌신하지만 현실에선 끊임없이 좌절을 겪는 오늘날의 한국 중년 남성의 내면을 반영한다. 따라서 지동철이 비록 탈북자 내지 전직 북한 공작원이라는 이질적 신분임에도 관객은 지동철에 동정을 보내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죄 없는 지동철 가족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을까? 국가가 이런 행위를 하는 동기는 국가의 이율배반적 속성에 기인한다. “국가에선 마땅히 법과 정의의 구현이 최우선해야 하지만 실제에선 국가를 움직이는 관료 엘리트들 간의 탐욕과 권력쟁탈이 최우선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베를린’과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주인공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근본적 이유는 북한 정권 내부의 권력쟁탈로 주인공들을 지휘하는 세력이 실각했기 때문이다. ‘용의자’에서 한국 정부의 김 실장은 박 회장 측이 비밀리에 진행한 실험결과물이 생화학무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국제 무기상에게 팔아 사욕을 챙기려 한다.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때의 북한 실력자와 한국의 김 실장은 과연 국가를 대표하는가, 아니면 공직자 개인일 뿐인가. 보기에 따라 전자일 수도 있고 후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정치와 이념보다 우선
김 실장에 대비되는 존재는 민 대령이다. 김 실장은 탐욕스럽고 권력지향적이지만 민 대령은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지동철이 홍콩에서 민 대령을 놓아준 것은 민 대령의 지갑에 든 가족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민 대령 역시 나중에 최경희 기자의 파일을 보고 지동철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김 실장으로부터 지동철을 보호하고 지동철의 복수를 돕는다. 지동철과 민 대령은 이렇게 적대적 관계에 있음에도 가장으로서의 동질감 때문에 서로 공감한다. 가족이 정치와 이념보다 우선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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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액션영화는 ‘버림받은 영웅’에 ‘조력자’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베를린’의 정진수(한석규 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서수혁(김성균 분)이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이다. 이들은 조력자로서 남북한의 화해 가능성을 담아내기도 한다.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영웅이라는 설정은 ‘간첩 리철진’(장진, 1999)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간첩 리철진’은 코믹한 전개와 비극적 결말이 충돌해 실패작이 됐다. 10여 년 뒤 나타나는 요즘의 스파이 액션영화는 ‘조력자’를 설정함으로써 이런 충돌을 피한다. 그만큼 한국 액션영화의 인물 설정이 진화한 것이고, 이런 진화는 남북이 그간 삐걱대면서도 꾸준히 교류해온 점이 영화에 반영된 결과다.